“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나갔는데 경찰차가 와서 내를 강제로 태아 가뿟다. 그래 되믄서 물지게를 우물가에 놔두고 와뿟는데, 그 물지게가 우예 됐는지 모르겠다. 우물가 어덴가에는 내버려져 있겠재. 내가 나중에 국방부 장관 만날 기회가 있으면, 내가 국방부 장관한테 물지게 값 물아내라 칼끼다.”
2024년 가슴 속 응어리를 끝내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6·25 참전 소년병이 생전에 남긴 말이다. 당시 만 15세의 어린 나이로 강제 징집됐던 고(故) 장병율 어르신이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 그는 평소에도 1950년 8월의 그 날을 생생하게 공포 가득한 목소리로 되뇌곤 했다.
어르신이 말한 물지게는 단순히 물을 긷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의 위법한 공권력 집행에 의해 우물가에 팽개쳐진 채 영영 행방을 알 수 없게 돼 버린, 6·25 참전 소년병의 빼앗긴 청춘이자 부서진 삶 그 자체였다.
끝내 사과도 인정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고 장병율 어르신의 유지를 받들어, 하경환 변호사는 23일 피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대구지방법원에 국가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하 변호사는 6·25 참전 소년병들의 법률대리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소송의 원고는 현재 생존해 있는 6·25 참전 소년병 장성곤(93)씨와 박태승(93)씨, 고 장병율·고 하명윤(입대 당시 만 17세)씨의 유족으로 위자료 각 1억원씩을 청구했다.
‘6·25 참전 소년병’은 한국전쟁 당시 만 17세 이하의 아동이었음에도 정식 군번과 계급을 부여받고 전선에 투입된 정규군을 뜻한다. 1950년 당시 대한민국 병역법에 따르면 만 17세 이하 아동들은 징집 대상자도 아니었고 병역의 의무조차 없었다.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병력이 턱없이 부족하자 대한민국 국군은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인근의 지역에서 장정들을 징집하는 과정에서 17세 이하 아동들에 대해서까지 아무런 법적근거 없이, 때로는 강제로 징집을 실시했다.
약 1주일 간의 기초군사훈련만 실시한 채 다부동 전투, 안강전투 등 당시 치열했던 전투지역에 소년병들을 투입시켰다. 당시 약 3만 명에 이르는 소년병이 전투에 투입됐고 그 중 약 3000명이 전장에서 산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는 2024년 7월 9일 “한국전쟁 중 소년병들은 법령 근거 없이 시행된 병역 의무를 떠안고 생명권 침해, 육체적·정신적 피해, 학습권 박탈 등 극심한 사회적 피해를 입었다”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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