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토(關東·관동) 대지진 당시 자행된 조선인 학살의 참혹성이 일본 도쿄도위령당에서 발견된 사망자 기록 속 제주 출신 일가족의 사연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기록에는 단순히 사망자의 이름과 본적, 생년월일 등이 들어 있을 뿐이지만 이들의 인적사항이 당시 일본 군부에 의해 희생된 '가메이도 학살 사건'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과 일치해 증언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께 규모 7.9의 대지진이 도쿄를 비롯한 일본 관동지방을 강타했다.
대지진이 발생한 다음 날부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폭탄을 소지하고, 방화한다'는 괴소문이 도쿄 전역에 나돌기 시작했고 일본은 즉각 계엄령을 선포했다.
일본 군대와 경찰, 각지에서 만들어진 '자경단'이란 자위집단 등이 죽창과 쇠갈퀴, 곡괭이로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나돈 데다 4년 전 일어난 3·1 독립운동 여파가 일본에도 미칠 것을 우려해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조선인들을 곳곳에서 무차별 학살하는 만행이 벌어졌다.
이때 임신한 여성도 한 사람 있었는데 일본군이 그 부인의 배를 가를 때 배 가운데서 어린 아기가 나왔다. 일본 군인들은 갓난아이가 우는 것을 보고 그 어린 아기까지 찔러죽였다.https://www.yna.co.kr/amp/view/AKR201605021359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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