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이전 인류 30만년 총생산량 < 19세기 이후 약 200년 총생산량 ]
산업혁명은 인류사 최대급 사건임. 그런만큼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자본가의 힘은 그야말로 막강했음.
예컨대, 요즘은 칭하는 백만장자 (millionaire) 의 경우 18세기말 19세기초 세계 최강국 영국조차 국가적 예외인 극소수에 불과.
영국에서 유언검인 기준으로 1809~1839년 30년동안 백만 파운드 이상 재산을 남긴 사람은 고작 8명 수준. 그러나 1857~1899년 백만 파운드 이상 남긴 고인은 133명으로 연 평균 10배 이상, 누적17배 폭증.
산업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부의 원천이 토지 기반에서 철도, 제조, 금융 기반으로 확대. 그러니 노동자와의 격차는 현격했고.
때문에 노동권 획득의 과정은 한번의 급작스런 사건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이루어짐. 첫 물꼬를 튼 것은 바로 아동.
그런데 원래 아동노동 자체는 이상한 게 아니었음. 전근대 농촌에서도 아이들은 일했거든. 농사 보조, 공방 보조, 가축 돌보기등. 그래서 초기에는 "아이도 가족 생계에 기여한다" 는 말이 통함.
문제는 산업혁명 이후 공장노동이 이미지를 완전히 다르게 바꿨음.
전근대 농촌의 아동노동은 부모 옆에서 배우며 돕고 집안 생계 기여 였다면 공장 아동노동 이미지는 달라짐.
" 낯선 자본가에 고용되어 새벽부터 야간까지 기계 노동 그리고 산업 사고 " 즉 "아이도 일한다"는 말은 원론적으론 동일해도, 그 성질이 달라짐.
그래서 아동노동 규제가 들어간 첫 이유는 아동노동이 가족경제 일부가 아니라 산업자본 착취 장면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
게다가 "자유계약" 논리가 아이에게 먹히기가 힘들었음. 성인 노동자는 " 본인 의지로 계약서 쓰고 월급 받는데 왜 국가가 개입 하느냐? " 란 논리로 방어 가능.
그런데 5살 짜리에게 이 논리를 적용하면 이상해짐. 왜냐면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함: " 인지 능력이 성숙하지 않은 아이가 정말 ' 자유 ' 계약을 한 건가? "
그래서 1833년 영국 Factory Act는 9세 미만 아동 고용 금지, 9~13세 노동시간 제한, 교육 의무등을 명시함. 다시 말해 국가에서 " 아동 노동은 성인 계약과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 " 는 쪽으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는 것.
여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게 조사보고서. 그전까지 직접적으로 "안 보이던 것" 을 정치판에 끌어올림.
그전에는 공장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엘리트들이 알 턱이 없었음. 애초에 그들은 공장에서 일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1832년 Sadler Committee 의 보고서에서 아이들이 새벽 6시부터 밤 8시 또는 격일 24시간 일했다는 증언도 나와버려, 공식 조사로 이어져 문제가 더 이상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구체적 사실이 되었음.
"시장 자유를 지켜야 한다" 는 말은 추상적으로 강력하지만, " 그럼 4~5살 애를 새벽부터 밤까지 돌리는 걸 옹호하냐? " 로 몰아붙이면 정치적 방어가 어려움.
게다가 공장제는 착취가 너무 눈에 띄었음. 반면 농촌 업무나 가내수공업 착취는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잘 안 보임. 그러나 공장은 생산을 집중시켰고, 이는 동시에 비판도 집중시킴.
아이들이 한 공간에 몰려 있고, 산업 사고에, 감독자의 아이들 폭행에 먼지, 소음, 열기. 사실상 일부 공장은 말 그대로 감옥이였음. 그것도 언제나 손 발이 잘릴지도 모르는.
[ Anthony Ashley-Cooper, 섀프츠베리 백작으로 아동 노동 제한 및 노동 조건 개선 주도 ]
그래서 경제논리 vs 도덕논리 싸움에서, 아동 노동 쪽은 경제논리가 밀리기 시작했음. 또다른 이유는 중산층과 인도주의 개혁가들의 참전.
이게 결정적. 노동자만 소리치면 " 폭도 " 로 밟아버릴수 있는데 지체 높은 귀족, 목사, 의사와 중산층 개혁가가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짐.
특히 1833년 공장법 전후로 강한 인도주의 개혁운동이 성장. 게다가 엘리트 입장에서 아동 착취는 국력 측면에서 장기적 위험.
왜냐면 아이들이 교육 못받고 공장에서 갈려나가면 -> 빈민층 재생산 -> 범죄, 질병, 폭동 가능성 증가 -> 군대 및 국력 약화.
그래서 아동 노동 제한은 순수한 자비만이 아니라 사회관리 정책. 1833년 Factory Act가 아이들의 일정 교육 조건까지 포함한 것도 이런 이유임.
즉 국가를 지배하는 엘리트들이 " 공장주 마음대로 두면 미래 병력자원 및 인적자원 자체가 망가진다 " 보기 시작한거.
[ 면직물 공장주 가문 일원임에도 노동 시간 단축 지지한 John Fielden ]
그리고 재밌는점은 일부 자본가들도 노동 조건 개선 지지를 했다는거임. 규제가 없으면 가장 악랄하게 아이들을 굴리는 공장이 비용을 낮춰서 경쟁에서 이김. 그러면 상대적으로 덜 악랄한 공장주도 더 악랄해지는 구조.
그러나 국가가 전체에 동등한 규칙을 걸면 "나만 덜 착취해서 손해 보는 문제" 가 줄어듦. 그래서 일부 온건한 엘리트에게는 아동노동 제한이 "반자본주의"가 아니라 시장 질서를 안정시키는 규칙이었음.
여기에 기독교 인도주의가 자본주의를 견제했음. 기독교는 꽤 묘했던게 근면, 절제, 소명을 강조해서 장시간 노동 정당화에도 쓰였거든.
그런데 동시에 약자 보호, 아동 보호, 노예제 반대 언어로도 쓰였음. 그래서 자본가가 "근면이 미덕" 이라고 하면, 개혁가들이 " 근면이 미덕이라 해도, 아이를 갈아 넣는 것까지 기독교 가치라고 할 수 있느냐? " 라고 받아쳤음.
즉 기독교 윤리가 노동착취를 정당화한 면도 있지만, 반대로 착취를 공격하는 도덕 언어도 제공한 거임.
또한 19세기 영국과 서구는 노예제 폐지 운동이 활발했음. 그러다 보니 공장 아동노동을 " 국내의 백인 노예 " 처럼 묘사하는 수사가 먹혔음.
[ Will Thorne ]
이 프레임이 세지면, 자본가 입장이 위험해짐. 해외 노예제는 야만이라고 욕하면서 왜 국내 백인들은 노예처럼 굴리느냐? 고 비판 받으니까.
즉 유럽 자본가가 단순 착해져서 바뀐게 아니라, 가장 보기 흉한 착취부터 단계적으로 방어가 불가능해진게 핵심.
이렇게 아동 노동 조건이 개선된 이후로 성인 노동자 조건도 바뀌기 시작함. 1889년 런던 Beckton Gas Works의 12시간 2교대 조건을 노동운동을 통해 3교대로 바꿨고, Will Thorne 등이 노조로 노동시간 단축을 강행함.
[ 전태일 시절 한국이나 현대 중국보다 훨씬 길게 일했던 유럽 국가들 ]
즉 유럽 노동 조건 변화는 참상의 공론화 + 엘리트 분열 + 노동자 조직화의 결합에 가까움. 노동자가 흩어져 있으면 없던 협상권이 뭉치면서 생김.
게다가 19세기 생산량 증가는 주로 노동시간 연장 및 저임금 노동에 기인하나, 20세기는 기계화, 전기화, 교육 개선으로 시간당 산출량이 증가해 노동 시간 단축을 제도에서 흡수할 여지가 커졌음.
[ EU Working Directive ]
그래서 상대적으로 " 덜 일해도 굴러가는 사회 " 가 되었음. 더해, 19세기 말부터 성장한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은 노동시간 단축을 단순 거리 노동자 시위에서 제도 정치 의제로 끌어올림.
1919년 ILO의 하루 8시간, 주 48시간 기준이 그 상징이고, 2차대전 이후에는 복지국가와 단체교섭 체제까지 결합하면서 노동시간 단축은 단순한 노동자 요구가 아니라 전후 사회계약.
그 결과 유럽에서 " 일만 하는 삶 " 보다 " 가족, 여가, 건강도 챙기는 삶" 이 제도상 정상적 삶에 가까워짐. 이는 수많은 논쟁과 조직화된 힘을 통한 투쟁의 결과로 원래부터 주어진게 아니고. 그렇게 지금 유럽은 19세기와 정반대가 된 것.
산업혁명기 유럽인들도 진짜 지옥처럼 일했었구만
지옥처럼 일했음 ㅇㅇ 하루 14-16시간 주 6일 심한 일부 산업 경우 주 7일도 갈렸으니. 그런데 그걸로 대단한 부자 될 희망도 없고 입에 풀칠 하면 다행이였고.
오죽하면 “주일학교“ 운동이 애들 최소한 글은 읽고 써야 할거 아니냐는 성직자들 사이에서 시작됨
정확하게는 성직자 집안 태생 언론인이 보도하고 처음 시작했는데 성공회 감리교운동 하던 성직자들이 그거 보고 거의 광적으로 보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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