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순수함과 잔혹함의 경계에 선 소녀들,
*I'm in Danger
이솝 우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전래 동화 상당수의 기원이 성인향 잔혹 동화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 인형인 '피노키오' 이야기도 원작은 지금의 각색 버전과 다소 다른 톤을 띄고 있었다고 한다.1881년 이탈리아 어린이 신문에 C.콜로디가 연재했던 '피노키오의 모험'에서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 반항아였으며, 책 살 돈을 빼돌려 서커스단에 들어갔다가 여우와 돼지의 꾀임에 빠져 금화를 빼앗기고 칼에 찔리게 된다.그러나 목각 인형인 피노키오는 상처를 입지 않았고 결국 여우와 돼지는 그를 나무에 목매달아 죽인다.당시 신문사가 원고료를 몇 달째 체납하자 화가 난 원작자가 일부러 이런 식의 결말을 냈다는 설이 있지만, 어찌됐든 간에 피노키오 이야기가 태생부터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주제가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2011년에 f(x)가 변용한 '피노키오 이야기' 역시 이러한 잔혹동화의 톤앤매너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¹Remember Me
I'm In Da Da Da Danger 피노키오
Remember Me
'난 지금 위험하다'라고 선언하는 [피노키오]의 도입부는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로 시작하는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를 연상시키기도 하여 흥미롭다.두 작품은 '철처하게 나의 관점에서' 상대방과의 관계를 일방 진단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꽃을 위한 서시'에선 화자에 의해 상대의 본질이 흐트러지는 반면 [피노키오]에서는 오히려 화자의 입맛대로 상대의 본질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¹의 'Remember me'는 이러한 측면에서 '나'를 각인시키겠다는 일방적인 의지 표명인 셈이다.
어디보자 읽어보자 네 맘을 털어보자
¹에메랄드 훔쳐박은 눈동자 스륵스륵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해 징징윙윙
칼날보다 차갑게 그 껍질 벗겨내
난 지금 Danger 한겹 두겹 페스츄리처럼 얇게요
Danger 스며들어 틈 사이 꿀처럼
²너는 피노키오 너 밖에 모르는 내가 됐어
아슬아슬 위태위태 시작되는 쇼
³따랏따랏 땃따따 짜릿짜릿 할거다
궁금투성이의 너 꼼짝마라 너
조각조각 땃따따 꺼내보고 땃따따
맘에 들게 널 다시 조립할거야
I'm In Da Danger 피노키오
Re-mem-mem-mem-ber Me 피노키오
Remember Me
¹은 본격적으로 상대방의 외피를 해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눈동자부터 갈아치운 후 '페스츄리처럼 얇게 껍질을 벗겨내고' 그 틈새로 나의 세계관이 '스며든다'(최근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멀쩡한 대중가요들이 19금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을 상기하면 이런 잔인한 가사가 버젓이 살아남은 게 더 의아하게 느껴진다).²에서의 화법 역시 의미심장한데, '너'를 인형으로 규정하고 거기에 병적으로 몰입하는 과정이 결국은 가벼운 '쇼'로 설명되고 있다.그리고 일종의 고문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의성어들이 날아다니는 ³에서 이 쇼는 일단 '해체-재구성'으로 마무리된다.
*순수한듯 잔인하게, 천진난만한듯 위험하게
벌스 2는 시작부터 흥미롭다.화자가 일방적인 해체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제시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순수함과 잔인함, 천진난만함과 위험함의 양면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¹나는 의사 선생님은 아냐 그냥 널 알고 싶어
너란 미지의 대륙의 발견자 콜럼버스
심장이 막 뛰어 뛰어 내 맘을 어떻게 해
어릴 적 아빠랑 샀던 인형처럼
난 지금 Danger 한입 두입 마카롱보다 달게요
Danger 스며들어 틈 사이 샤르륵
너는 피노키오 너 밖에 모르는 내가 됐어
아슬아슬 위태위태 시작되는 쇼 쇼 쇼
따랏따랏 땃따따 짜릿짜릿 할거다
궁금투성이의 너 딱 꼼짝마라 너
조각조각 땃따따 부셔보고 땃따따
맘에 들게 널 다시 조립할거야
'나는 의사 선생님은 아냐'라는 ¹의 발언은 얼핏 흔히 말하는 'f(x)식 병맛'으로 인식되기 쉬우나, 사실 이 곡에서 화자의 일관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쉽게 말해 '의사 선생님의 수술'은 '치료'를 전제로 한 '당위성이 있는' 행위인데, 여기서 화자는 그와 무관하게 '그냥 궁금해서'라고 단순 호기심을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이다.이어지는 '심장이 막 뛰어 뛰어 내 맘을 어떻게 해 어릴 적 아빠랑 샀던 인형처럼'은 말투에서 감지되는 정서 자체가 너무나 천진난만하여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암호의 미로 헤맸지 그건 널 열기 위한 Key
¹매트릭스 덮인 껍질을 벗겨내
Oh! I Just Wanna Tell You I’m In Danger Now
I`m In Danger In Danger Remember Me Danger
²누가 봐도 넌 완벽한 걸 너는 다시 태어난거야
자 이제 입술에 숨을 불어 넣어 꿈꿔 왔잖아 피노키오
¹에서 '매트릭스 덮인 껍질을 벗겨내'라고 말하는 브릿지의 랩 가사도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이 대목이 영화 '매트릭스'를 차용한 것이 맞다고 전제한다면, 결국 [피노키오]의 화자는 상대방의 실체를 허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지금의 너는 진짜 너가 아니므로 죄다 해체시킨 뒤, 결국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재구생했을 때에야 ²'완벽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하지만 이렇게 재구성한 존재는 결국 '피노키오'와 다를 바 없는 인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보통 소녀들'의 욕망을 끄집어낸 21세기판 잔혹 동화
얼핏 사이코패스적인 독백이라고도 볼 수 있는 [피노키오]는, -그러나 어쨌든 예쁜 10대 소녀들이 재잘거리며 부르는 러브송이다.사비에서는 시종일관 망치를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면서도 섬짓하게) 들리지만 동시에 f(x)의 보컬은 유난히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구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곡의 최대 아이러니가 발생한다.이 아이러니는 '잔혹'과 '동화'라는 모순적인 요소들이 조화를 이룬 원작 '피노키오의 모험'과도 맞닿아 있으며, 최근 샤이니의 [Sherlock]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보편적인 소재를 선택한 후 겉껍질만 놔두고 속 내용을 비틀어 활용하는 SM의 컨셉트 기획 능력은 역시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다.
[피노키오]의 가사는 소유욕이 발동하여 어느 순간 뒤틀리는 지점을 포착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관계 일반론에 적용되는 내용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명백하게 '10대 소녀팬'들을 타겟팅하고 있는 f(x)가 이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다.그러니까 이건 딱 이 나이 때 소녀들에게서 나올 법한 반응이다.상대방에게서 자기가 보고 싶은 점만 보는 것, 판타지에 기반한 (이해와 존중이 결여된) 일방적인 이미지화와 재구성 작업, -이것은 물론 순수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한 사고방식이며, 천진난만한 아이가 호기심에 인형의 팔을 잡아뜯는 행위와도 겹쳐보이는 심리라 할 수 있겠다.이 곡의 전작 [Nu ABO]에서 '언니'를 호명했던 것처럼 f(x)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린 소녀'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오빠들에게 인기 많은 예쁜 언니'인 소녀시대나 '잘 놀고 기쎈 언니'인 투애니원보다 훨씬 보편적인 '보통 소녀'들을 겨냥한다.SM 팬덤이 유독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심각한 자아 동일시 경향을 보이며 아이돌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며, 이렇게 지적이며 동시에 기형적인 f(x)의 브랜드는 점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스티즈앱
개꿀 콜을 잡은 배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