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화장지와 학생인권 올해로 개교 52주년을 맞은 '의정부여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파란휴지 줄까요? 아니면 빨간휴지 줄까요?"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다.
"제발 공짜휴지 좀 주세요!" 의정부여고 인권동아리 'You&I'가 학교 당국을 상대로 발칙한(?) 도발을 벌이고 있다.
바로 '학생화장실'에도 '교사화장실'처럼 화장지를 무상 공급해 달라는 것이다.
매번 급한 용무를 볼 때마다 화장지를 따로 준비해 가거나, 자판기에서 일일이 구입하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You&I는 '화장지 휘날리는 그날을 위해'라는 이색적인 캠페인을 벌이며, 학생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교내 화장지사용 실태조사'도 벌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교생이 하루 평균 6120m(1인당 3.4m × 1800명)의 화장지를 사용하고 있다.
300m짜리 점보롤 화장지 20여개가 날마다 필요한 셈이다.
점보롤 1개가 2000원이므로 하루에 4만원이 소요되고, 연간 수업일수를 200일로 잡으면, 800만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화장지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개인이 아닌 학급을 기준으로 화장지를 공급할 경우, 384만원까지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자료도 내놓았다.
You&I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은 "공교육을 올해로 11년째 받고 있지만, 학교 화장실에 화장지가 걸려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회장을 맡고 있는 우현정(2학년) 양은 "우리들은 수업이 시작되는 아침 8시부터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생활해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많죠. 그런데 백화점이나 마트는 물론 동네 주민자치센터 화장실만 가도 언제나 비치돼 있는 화장지가 정작 학교 화장실에는 없어요. 학생들이 화장지 때문에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마음 놓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서글픈 일이죠." You&I 친구들 가운데 일부는 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간간이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말'로는 학생화장실에 화장지가 없는 현실에 답답해하면서도, '우리가 요구한다고 과연 되겠어?'하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친구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도 '실태조사'와 '서명운동'에는 적극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캠페인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의정부여고 취재를 마친 다음날인 15일 오후, 김형배 You&I 지도교사로부터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교장선생님께서 내년부터 예산을 확보해 학생들을 위해 화장지를 구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내용을 기사에 넣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이나영(2학년) 양은 '학생인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른들은 '학생들이 공부나 하지 무슨 인권타령이냐'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하지만 저희가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학생이기 전에 단지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뿐이죠." #2. 디자인과 학생인권 14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동백고등학교를 찾았다.
지난해 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이 학교 인권동아리 '나너우리'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나너우리'는 코앞으로 다가 온 '학생의 날' 행사를 어떻게 치를지 한창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었다.
최홍서(2학년) 회장은 "인권소식지를 배포하고 '학생인권 OX퀴즈대회'와 같은 퍼포먼스를 통해 얼마 전 경기도가 공포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해 학생의 날(11월3일)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인권은 ○○이다'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학생의 날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에게 부여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스스로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다.
학생들의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었다.
동그라미에는 '두발 자유'와 '야자(야간자율학습)나 보충(보충수업) 자율 선택'을 적어 넣은 학생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나너우리' 동아리 친구들에게 다소 도발적으로 물었다.
"학생인권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고. 2학년 김동건 군이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학생인권의 핵심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거예요. 저는 앞으로 '디자인'을 전공해 그쪽분야에서 일을 하려고 해요. 제가 훌륭한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세요. 주변에는 온통 똑같은 머리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친구들뿐이고 매일 12시간 이상을 학교에서만 갇혀 지낸다면, 제가 어떻게 미(美)적인 감수성을 키워나가고 창조적인 발상을 할 수 있겠어요." 같은 학년 정지민 양도 꾹 참았던 이야기를 꺼내 놨다.
"전 여자는 치마만 입어야 되는 줄 알았어요. 지금까지 제가 입어온 여학생 교복의 하의는 모두 치마였거든요. 하지만 여자라고 반드시 치마만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 남학생이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냐고 물었다.
대답은 당연히 'Yes!'.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학교에 들어올 때는 머리가 걸릴까봐 무서워하고, 배가 고파서 학교 앞 분식점에 가려면 선생님께 외출증을 받아야 하는데 허락을 잘 안 하시거든요. 학교생활이 좀 더 자유롭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무한한 상상력의 시대'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에서 기사를 검색해봤다.
'상상력=경쟁력 시대 온다', '위기의 시대, 경영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한한 상상력', '무한한 상상력 펼쳐 둘리 태어났죠', '3D시대의 경쟁력은 창의성' 등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찬미하는 기사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 각계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들이다.
이들의 주장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분명 개인의 개성과 상상력에서 나온다면, 2010년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은 진로 수정이 불가피하다.
똑같은 헤어스타일과 교복에 길들여진 디자이너 지망생과 여자는 치마만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줍은 여학생, 학교를 감옥처럼 여기는 주눅 든 남학생,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쩔쩔매는 여학생에게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발랄한 개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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