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승완 감독의 1월31일 개봉작
'베를린'을 오늘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보았습니다.
첩보액션 분야에서
이렇게 완성도 높은 한국영화를 만난다는 게 무척이나 반갑네요.
북한의 권력 교체기 상황을 밑바탕으로 해서
미국과 독일과 러시아, 심지어 아랍권과 이스라엘까지 끌어들이며
매우 큰 그림을 그리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이야기 자체가 특별히 흥미롭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인물들이 느끼는 절박함이 생생하고
남성적인 힘이 전편을 관통하는 강력한 작품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흡인력이 상당합니다.
결정적인 대치 장면이나 클라이맥스 액션 장면에서도
감상적 여운을 기대하면서 (대사를 늘어놓는 식으로) 질질 끌지 않습니다.
심지어 주요 인물들이 총에 맞는 극적인 순간까지도
클로즈업이나 슬로모션 등을 통해 관성적으로 강조하지 않죠.
대신 시종 팽팽하게 당겨진 듯한 전개 속에서
사실감 넘치는 액션이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육박해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액션들은 움직이고 부딪치는 몸의 느낌을
('짝패'와는 또다른 방식으로) 고스란히 전해준다는 점에서 굉장한 실감이 있습니다.
싸움이 벌어지는 공간의 특성을 매우 잘 활용했고,
총 뿐만 아니라 가위 전기줄 통조림통 등
다양한 (생활)소품을 효과적인 액션 도구로
신선하게 끌어들였습니다.
액션 시퀀스들이 꽤 길게 짜여져 있는데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연결이 매끄러워서
늘어지는 느낌이 전혀 없기도 합니다.
사실적인 액션의 영역에서 '베를린'의 성취는
한국영화로서 거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네요.
제이슨 본 시리즈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겠지만,
이젠 첩보액션 장르에서 사실적인 스타일의 액션만 나오면
거의 자동적으로 그 시리즈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겠네요.
오히려 제 개인적으로 더 흥미롭게 떠올려진 작품들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컨버세이션'과
커트 위머의 '이퀼리브리엄'이었습니다.
거리에서 몰래 접선하는 듯한 인물들의 대화 내용을
도청이나 도촬을 통해 읽어내려는 대목은
'컨버세이션'의 특정 장면을 고스란히 연상시킵니다.
('베를린'에는 대체적으로 1970년대 미국영화의 느낌이 배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퀼리브리엄'은 권총을 격발의 무기가 아니라
타격의 도구로 사용하는 격투 장면에서 살짝 떠올려졌구요.
'부당거래'에서처럼 인상적인 대사들이 자주 나오는데,
그 대사들의 상당 분량을 역시 류승범씨가 소화한다는 것도 눈길을 끕니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기 종결 방식도 흥미롭구요.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등
배우들의 연기도 좋습니다.
하정우씨는 역시나 그의 시대를 힘차게 이어가고 있고,
류승범씨는 대체불가능한 스타일의 연기를 합니다.
한석규씨는 한국영화의 주인공으로 매우 이색적인 캐릭터를 그려내고
전지현씨는 '도둑들'과 상반된 연기법에서도 인상적인 적응력을 보여줍니다.
경이로운 데뷔작을 내놓은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기대를 모아온 류승완 감독은
필모그래피의 특정 시기에서 조금 위태롭게 보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당거래'에 이어 '베를린'까지 보고나면
이렇게 쭉쭉 뻗어나가는 그의 영화세계가
결국 어디까지 이르게 될지 굉장히 궁금해지네요.

인스티즈앱
잠실 먹금한 인플루언서한테 디엠한 최진실딸..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