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ㅣ심재걸 기자] 리더인 선예가 결혼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원더걸스는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소속사와 멤버들은 굳이 '해체'라고 단정짓지 않았지만 사실상 현역 활동은 마감된 셈이다. 2007년 데뷔와 동시에 걸그룹 신드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원더걸스. '텔미' 열풍부터 미국 진출, 선예의 결혼까지 '국민 걸그룹' 원더걸스의 6년 발자취를 한 곳에 모아봤다.
원더걸스의 데뷔 초창기 모습./스포츠서울닷컴DB |
▲2007년~ '텔미' 열풍, 가요계 지각변동
JYP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 박진영은 2001년 선예를 영입하고, 6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7년 원더걸스를 세상에 내놓았다. 선예를 중심으로 현아, 소희, 선미를 차례로 발탁했고 예은이 막판에 합류하며 5인조를 완성했다.
싱글 '아이러니'로 야심차게 데뷔했지만 4개월 만에 팀은 시련을 겪었다. 소희는 영화 촬영 중 오토바이 사고로 무릎을 다쳐 한 달 간 무대에 서지 못했고, 현아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탈퇴를 선언했다. 멤버 세 명에 댄서를 동반해 활동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 해 9월 유빈이 새로운 멤버로 영입되고 정규 1집 앨범 '텔 미'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강남스타일'의 열풍처럼 전국은 다섯 소녀들과 '텔 미'에 취해있었다. 패러디 UCC의 시작점이었고, 원더걸스의 성공을 보고 기획사들은 잇따라 걸그룹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듬해 후크송의 대명사로 통하는 '소 핫'과 '노바디'를 잇따라 히트시키며 원더걸스는 '국민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노바디'로 전성기를 달리던 원더걸스./스포츠서울닷컴DB |
▲2009년~ 미국 진출, 선미의 탈퇴
원더걸스는 2009년 3월 국내 걸그룹 중 10년 만에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열고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이 때부터 미국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노바디'를 영어버전으로 녹음을 새로했고, 뉴욕으로 건너가 언어 적응에 매진했다. 같은해 6월부터는 미국 대표 아이돌 그룹인 조나스 브라더스의 전미투어 오프닝 무대를 책임지며 이름을 알렸다. 현지 매체들은 원더걸스를 보며 '아시아의 스파이스걸스'라고 찬사를 보냈다.
국내 최고의 자리를 박차고, 낯선 타지의 생활은 힘겨웠지만 성과는 7개월 만에 나타났다. 원더걸스의 '노바디'는 빌보드 핫100 차트에 76위로 진입했다. 한국 가수가 빌보드 메인차트에 이름을 올린 것은 가요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2010년 선미가 돌연 탈퇴를 선언하면서 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해 2월 미국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끝내고 귀국한 선미는 연예활동을 중단하고 진학을 결심했다. 선미의 빈자리는 혜림이 대신했다. 이후 '투 디퍼런트 티어즈(2 Different Tears)',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 '라이크 디스(Like This)'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펼치기도 했다.
'결혼 반지에요~.' |
사랑하는 동반자와 달콤한 키스./스포츠서울닷컴DB |
▲2012년~ 선예 결혼, 아듀 원더걸스
지난해 7월 세계적인 힙합 뮤지션 에이콘과 작업한 '라이크 머니(Like money)'는 원더걸스의 마지막 싱글이 됐다. 선예는 지난해 11월 2년여간 교제해온 선교사인 제임스 박과 결혼을 깜짝 발표했고, 소속사는 "앞으로 원더걸스의 다른 멤버들은 개인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선예는 신혼여행을 다녀와 지난 5일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스페셜올림픽 폐막식 무대에 올랐다.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해온 원더걸스의 사실상 마지막 무대였던 셈이다. 그리고나서 7일 오전 선예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신혼집이 마련된 캐나다 몬트리올로 떠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한국 떠나는 선예./인천국제공항=배정한 기자 |
선예는 출국 직전 "행복하게 잘 살겠다. 결혼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 감사하다. 정확하게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돌아왔을 때 좋은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서겠다"고 짧은 작별 인사만 남기고 떠났다.
원더걸스의 다른 멤버들은 연기자로 새로운 변신을 꾀한다. 예은은 뮤지컬 '삼총사', 유빈은 OCN 스릴러 '더 바이러스'로 생애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한다. 소희와 혜림도 조만간 개별활동의 방향을 잡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펼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