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참 잘 했다.
매일 놀면서 90점 밑으로 성적이 떨어져본 적이 없었고 어디를 가든 유식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가 좋아서는 전혀 아니었다.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었고 공부 분위기가 좋지 않은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나보다 한참 뒤떨어진 아이들 사이에서 1등을 하며 나는 항상 자만했다.
만 점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내가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하기만 하면 당연히 만 점을 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중학교 공부를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공부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에게 "너는 항상 사람을 깔보는 표정이야" 라는 말도 들었다.
더욱 충격인 것은 내 친구들이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머리 좋은 시건방진 애'로 보냈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에는 책도 읽지 않았고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도 없었다.
밑천은 생각보다 금방 드러나더라.
고등학교를 공부 좀 한다는 여고에 갔다.
생전 처음 받아본 점수였다.
그 여고에는 나 같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그애들은 성적을 받고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하기만 하면 당연히 만 점을 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내가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하기만 하면 성적은 잘 나올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물론 공부를 하지 않으니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형편없는 성적을 받으면서도 마음을 먹으면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 나보다 공부를 못 했던 친구들이 낮은 인문계에 가 1등급을 받는 걸 보고는 '내가 저 학교에 갔으면 내가 더 잘했어'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마음만 먹으면 성적이 오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으니 위기감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사람을 깔보는 표정으로 대하는 사람과 마주하며 내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느꼈던 감정을 내가 느껴봤다.
정말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는 1등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되어 겨우 마음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이미 수학과 과학은 교과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성적은 몇 과목을 제외하고 오르지 않았다.
사실 오른다고 해도 늦은 시기였다.
그렇게 나는 지방 대학에 갔다.
재수를 할 용기는 나지 않았고 전문대는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다니는 대학교를 깔보며 학교를 다녔다.
반수나 편입을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마음을 잡고 공부를 했더라면 분명 이 대학보다는 좋은 대학에 갔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생각만 하며 대학 생활을 흐지부지했다.
자격증을 따지도, 학점을 잘 받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는 요즘 공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 자신을 예전보다는 조금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별볼일 없는 대학을 나와 아직까지 취직도 하지 못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마음을 잡고 공부를 했더라면 분명 이 대학보다는 좋은 대학에 갔을 거야'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못했고 다시 돌아간대도 분명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꽤 하는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 자신을 알라'고.
절대 나쁜 뜻이 아니다.
내가 이제까지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며 뼈저리게 느낀 점이다.
나는 내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자만하고 합리화해서 이렇게 되었다.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가 아니라도 무언가 꼭 열심히 하라.
그 분야에서 네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에 가장 쉬운 것이 바로 공부다.
Conócete a ti mismo
너 자신을 알라
마지막으로, 너네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그리고 너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