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려 공민왕의 동성애 스캔들을 배경으로 한 글이며, 글 중 공민왕과 홍륜을 장옥안과 타쿠야라는 인물로 바꾸어 표현한 것 이외 주변 인물들은 실명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하였지만 픽션적 요소가 가미된 팩션이므로, 정확한 사실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 아비, 아비가 누구라더냐? "
불이 광을 발하지만 어둑스레하고 위엄이 느껴지는 곳.
뜨듯하게 올라온 바닥에 대접의 찬물이 떨궈지어 서로 더운 기와 찬 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것은 옥안의 눈에 밟히지 못했다.
" ..저.. "
" 누구냐 묻잖느냐! "
" 타, 타쿠야라 하옵니다. "
가늠치 못했던 것도 아니다. 아니, 모를 수 없었다.
익비와 동침시킨 자는 그뿐이었으니.
알고 있음에도 나는 모른다고 그리 제 자신을 속이고 싶어 그는 계속 되물었다.
" 누구..? 누구라고..? "
" 자제위 소속 ㅌ.. "
" 누구! 아이의 아비가 누구란 말이냐! "
" 전하..! "
듣기 싫다. 타쿠야라는 대답 말고, 다른 이름을 불러라.
거짓으로라도 그리해라.
옥안은 머리가 복잡해 죽을 것만 같았다.
본디 제 무사들을 자신의 빈과 관계를 가지도록 하여 후사를 생산케 하면, 그는 그들을 죽일 셈이었다.
나올 아이가 제 씨라고 속이고 그것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그 이유요, 타쿠야도 그가 빈과 동침할때까지 그럴 생각이었다.
허나 지금와서, 그것이 죽도록 망설여진다.
죽여? 누구를, 타쿠야를?
아니, 그건 안되지. 나는 그 아이를 죽이지 못해.
머릿속으로 제가 타쿠야를 죽이는 것이 떠오르자, 옥안은 마음속이 썩어 아렸다.
머릿속이 뜨겁게 달아올라 깨져버릴것만 같았다.
숨조차 고르게 쉬어지지않고, 다리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자꾸 굽어지기만 했다.
" 전하, 냉수를 한 번 더 대령하오리까..? "
그 말에 눈을 꼭 감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라 손짓하자, 하문한 이는 뒤로 물렀다.
누구는 죽어야 한다. 그럼 그 '누구'는 누가 되는가?
옥안은 제 자신을 가다듬고 실리적으로 생각을 이끌어 보고자 했다.
원하는 것은 이 일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 것.
그에 필요한 이를 매장시키기 위해 끊길 목숨, 이 사실을 아는 자.
그것이 누가 되겠는가?
답은, 모습을 숨기고 있을 뿐 언제나 가까이 있다.
미닫이 문이 열렸다.
두 손에 물이 담긴 대접을 올린 나무 쟁반을 들고 들어온 만생은, 마지막으로 본 옥안과는 달리 평안케만 보이는 그의 모습이 의아했다.
그래서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이 그리 필요치 않아 보였다.
" 대령했나이다. "
" 이리 가지고 오라. "
짧은 걸음을 쳐 그 옆에 사기 그릇을 손을 뻗어 드리자, 그것을 들어 입에 기울인 옥안은 그릇을 제자리에 올려두더니,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 너는 이 일을 어찌 하면 좋겠누? "
" 어찌..하문하시옵니까? "
" 아니, 네 생각은 어떤가 싶구나. "
" 일을 묻고자 하신다면, 아는 이를 없애야지 않겠습니까. "
만생은 그에 입에서 뱉은 말이, 내심 을씨년스러웠다.
그저 쉽사리 넘기기엔 속이 걸리는 것이 그랬다.
" 그렇다면, 어떠한 이들이 이를 알고 있느냐? "
" 어의 이임계.. 궁녀 옥정인, 내관 석융현되옵니다. "
" 너는? "
" 예? "
" 네 이름은 왜 없느냐? "
" 아..ㅈ..저.. "
" 그만 물러나보라. "
" ..예, 전하. "
만생은 불안했다.
제 처소에 와서도 손발이 떨리고 발이 저절로 굴러졌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이는 안되었다.
하지만 분명했다. 저에게 물으시는 것 하며.
모가지가 떨어지게 생기니, 참 뵈는 것이 없었다.
충성 따윈 더 이상 신경쓸 바가 못되었다.
배반할 경우 이유로 댈 핑계로만 쓰일 수 있을 뿐.
그저 제 목 날아가지 않게 할 방법만 머릿속에 굴렀다.
어쩌면 살아갈까, 어쩌면.
검은 창밖의 빛이 점점 푸르스름해질 때까지 앉지도 않고 안절부절하지 못한 보람이 있는지, 그는 정신이 뜨였다.
찜찜한 구석이 없잖아 있지만, 어디 가릴 처지던가.
바쁜 걸음으로 서둘러 신을 신은 그는 방 밖으로 달리어갔다.
" 타쿠야, 타쿠야! "
밖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그는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누구십니까? "
" 나, 최만생일세. "
" 이리도 이르게 어찌 발을 이끄셨습니까? "
" 잠시, 들어가도 되겠나? "
" 그리하소서. "
바깥 이를 맞는데 침의 차림일 수 없었던 타쿠야는 뒤를 돌아 옷가지를 챙겨입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만생이 급히 입을 연다.
" 큰일 났네. "
" 무슨..? "
" 사단나기전에, 어서 움직이세. "
" 예..? "
" 전하께서 자넬, ..죽이시겠다고하시네. "
옷에 매듭을 짓던 타쿠야의 손이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계속 하던 일을 이어갔다.
그리고 만생도 그를 보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 ...그래서요? "
" 그래서라니, 내 농이나 던지는 줄 아는가? 자네가 안았던 익비마마께서 복 중에 아이를 품으셨단 말이네. "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에도 멈추지 않았던 손이, 그 말에 멈추었다.
" 무어라.. 하시었습니까? "
" 마마께서 자네 아이를 가지셨다했네. 그러한데 그대가 산 목숨이겠나? 다른 비빈마마들과도 동침을 한 자네 동료들이 산 목숨이겠냐는 말이네. "
죽는 것은 상관 없다.
그런데 그 분께서 임신하셨다니, 그것도 제 씨를.
" 그만, 물러주시겠습니까. "
" 제 정신인가? 지금 ㅈ.. "
" 나가주시라 하였습니다. "
큰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그에 비하는 힘을 담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 나가는 만생이었지만, 그 뜻을 굽히지 않았음은 분명했다.
타쿠야는 벽에 손을 집고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가서 아이를 없애기를 할 건가, 전하를 죽이기를 할 건가.
흐르는 대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주제인 것을 알면서도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벽에 짚은 손에 기대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금일, 낮이 새었다.
또 푸르스름한 창호지 빛이 하얗게 변할 시간 내내 눈을 감고 머리를 기대고만 있었던 타쿠야는 오전 점호를 보러 무겁게 몸을 이끌어 지나가던 군사들과 어깨를 치여가며 관 내에 들었지만, 그곳에 성이 난 낯을 하고 있는 제 밑 무사들과 내키지 않는 내시의 모습에 이곳에 걸어온 기력조차 빠지는 듯 했다.
" 다들 어찌 이리 있소. "
" 몰라서 물으시오? "
" 무엇이 그리하는데 이러시는지. "
" 우리 모두 말살시키겠다는 왕의 명을 내관께 전해듣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눈 가리고 계실거요? "
" 그대는 본국의 지존께는 사용하지 않는 존대를, 그분의 내시 나부랭이에겐 쓰는구려. "
" 내 명줄을 끊겠다는 이인데 주군이든 노비든 가릴 게 있으리까? 지금 관심둘 곳은 그게 아니잖소. "
" 내관께선 바쁘셨겠습니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자제위 모두에게 입을 놀리시느라.
미어터지는 속을 짐작케 하는 다른 이의 얼굴들을 뒤로 하고 그가 개인 집무실로 들어가는데, 만생이 그 뒤를 쫓아 들어온다.
" 충심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디라고 발을 들여. "
" 생각해 보게. 이것이 누구를 위한 일인가? "
그 말을 들은 타쿠야는 표정을 굳히고 짐짓 분한 표정으로 눈에 힘을 주어 화자의 멱살을 잡아챘다.
" 그러면, 이것이 네 놈 살자 하는 짓이지, 나를 위한겐가? 아니면, 밖의 저들을? 전하를? 내가 모를 성 싶었느냐? "
" ..자네 일가 모두, 살해당했네. "
" ..뭐? "
" 홀어미에 누이 둘이라 하였나? 다 죽었다네. 자네의 그 대단하신 국왕께서 그리하셨지. 발걸음 하다 지나가는 군인들을 하나도 보지 못하였나? 그들이 무슨 명을 받고 움직일까 궁금하지 않았어? "
그래, 저와 부딪힌 그들.
뒤통수를 후려 맞은 기분이다.
죽여? 나때문에?
온 몸이 풀리는데, 그에 예외가 아닌 손도 쥐었던 멱살을 풀어놓아버렸다.
" 이런데도 충성따위를 이어갈건가? 핏줄보다 더 중요한가 그것이? 내가 볼 땐 아닌듯 싶네만. 그대가 개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
흐릿한 시야에 속삭여지는 그 발린 목소리가 몽롱했다.
" 결심이 서거든 내게 알려주게. "
결심? 암살의 결심?
헌데 정말 그분이 그리 하셨다고? 왜? 나를 마음에 담으셨던 것이 아니었어? 망상일 뿐이었나?
아니면, 진정 내가 그 아래서 개처럼 굴렀을 뿐인건가?
배신감이 타쿠야의 정신을 빨아들였다.
제가 가졌던 뜨거운 연심이 버려지었다는 생각에, 깊이에선 의지하고 있던 믿음에, 저 혼자 착각한 것이었다는 것에 미치도록 분했다.
그래서 손에 집히는 것이라면 모두 다, 던지어 부수고 깨뜨렸다.
악을 써가며, 제 가족을 죽여버렸다는 정인에 분노했다.
그러고선 혼자 주저앉아 울분을 토했다.
소리쳐 그 이름을 불러대며 울부짖어댔다.
그날 낮은 그렇게, 그의 슬픔에 잡아먹혔다.
이제 연재가 일주일컷이 되어버렸네요..ㅠㅜㅜㅜㅠㅠㅠ어쩌죠..죄송해요ㅠㅜㅜㅠㅠㅠㅠ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포인트는 댓글 달아주시면 돌아갑니다!
사실 이런 글에 포인트를 다는것도 죄송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