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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 전체글ll조회 601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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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위한 세계

W. 다원


















정국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침 잠이 많던 편은 아니었던 지라, 지민과 함께 자리에 앉아 그런 정국을 바라봤다. 화장실에 갔다, 식탁에 갔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정국은 그제야 시선이 느껴졌는지 우리를 바라봤다. 잠시 멈춰 무언 갈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곧바로 침대 옆에 있던 핸드폰을 주어 들었다. 정국의 전화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정국이 밖으로 나가 주문했던 걸 받아와, 내 앞에 내밀었다.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가 내민 걸 받지 못한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눈썹을 한번 찌푸린 그가 다시 한번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검은색 여자 정장이었다.




"구경시켜줄게."




그러고 보니 처음 마주쳤던 때와 지금 정국의 옷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엔 워커에 폴라티로 나름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정국은 반듯한 넥타이를 맨 정장에 구두 차림을 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그를 받아 들자 망설임 없이 돌아선 정국이 거울 앞에 서 머리를 매만졌다. 의문에 가득 찬 눈동자로 고개를 돌리자, 똑같이 당황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지민아-"


"걘 안 돼."




아직 말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정국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어젯밤 흘렀던 싸늘한 공기가 갑작스레 우리를 찾아왔다.





"내가 옆에서 잘-"


"A지역에 갈 거야. 거긴 사람들이 있어. 크롭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크롭으로 인해 신체의 일부를 잃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야. 크롭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이라고."


"하지만-"


"데려가도 말리진 않아. 네 마음대로 해. 근데 그걸 쟤도 원할 것 같아?"




정국이 턱짓으로 지민을 가리켰다. 시선을 돌려 지민을 바라보는데, 지민이 눈을 피하며 손가락을 매만졌다. 불안하게 떨리는 손이 탁탁- 손가락을 긁어 결국 피가 나오게 만들었다. 극도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전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민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을 살며시 잡자, 지민의 움직임이 멈춰 섰다. 피가 맺힌 손가락을 소매로 조심스레 닦아내자, 지민이 놀란 얼굴을 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했던 행동인 것 같았다.




"지민아."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 지민이 서둘러 내 말을 막았다. 더 이상 무언가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크롭이 공포의 대상인 듯이, 지민에겐 사람들이 공포의 대상이겠지. 정신을 잃은 자신이 수없이 죽였던 이들을 봤을 때 지민의 마음을 감히 나는 알 수 없으니까.




"안에 들어가 있어."


"야, 전정국."




정국이 덤덤한 얼굴로 키를 내밀었다. 문을 잠그라는 뜻이었다. 그를 받지 않고 노려보자, 정국이 손을 뻗어 억지로 내 손 위로 키를 올렸다. 차가운 감촉이 손 안을 맴돌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 키를 부숴버리고만 싶다고 생각했다.




"네가 없는 곳에서의 저 아이는 믿을 수 없어. 뭐, 사실 네가 있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너 어떻게 말을-"


[저 괜찮아요. 잠시 동안이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화를 낼 참이었는데, 지민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지민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지민은 죄인이 되어있었다. 말을 하다 말고 지민을 바라보자, 정국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지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정국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신경 쓰지 않고 지민의 손을 붙들자, 지민이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했다.




"박지민."


[정말 괜찮아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잔뜩 힘들어하는 얼굴이 엉망으로 찡그려져 있었다. 제발 그만해달라고 내게 비는 것만 같았다. 자신은 정말 괜찮다고. 지민은 그렇게 애절하게 나를 바라봤다.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지민의 손을 놓았다. 지민의 손이 힘없이 뚝- 떨어졌다. 더 이상 고집할 수 없었다.




"너 근데, 뭐야. 아까부터. 혹시 크롭의 말이 들리는 거야?"




등 뒤로 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행동이 이상했으니, 의심을 할 법 했다. 지민의 의사를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지민을 바라봤다.




[말 하지 마세요. 복잡해질 거에요.]


[나중에. 때가 되면 그때 말해도 돼요.]




지민의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게 단호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랬다면 내가 먼저 이야기 했겠지."


"하긴. 그럴 리가 없지."




쉽게 수긍한 정국이 고개들 끄덕였다. 그를 바라보던 지민이 스스로 걸음을 옮겨 방으로 다가갔다. 아무것도 없이 어두운 방 안에 지민이 들어갔다. 주먹을 꽉 쥐고 그 뒤를 따랐다. 키를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문 앞에 서서 지민을 바라보는데, 지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잠가도 좋다는 말이었다. 고개를 푹- 숙였다. 못할 짓을 하는 기분이었다.




"빨리 올게."


"조금만, 기다려."




키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이는 나를 보던 지민이 활짝 웃었다.




[네. 기다릴게요.]




그렇게 문이 잠겼다.






*






정국이 건네준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섰다. 호석씨를 찾으러 나갔던 이후 처음으로 하는 외출이었다. 정국은 내가 누군가에게 발각될까 불안한지 나를 뒤로 숨긴 채 자꾸 주위를 훑었다. 옷도 정국과 맞춰 입었고, 신분증이나 뭘 확인하지 않는 이상 들킬 일이 없을 텐데도 정국은 거세게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이러면 더 눈치채겠다고, 한 소리 하려다가 그저 입을 다문다. 


저번에 나와봤던 복도를 지나 로비로 나오자, 복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정국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내 등을 밀어 거의 뛰다시피 한 정국은 건물 앞에 서 있던 차에 재빠르게 나를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정국이 빙-둘러 운전석에 앉았다.




"저번처럼 바이크가 아니네요?"


"A구역에 가는 거니까. A구역 사람들은 시끄러운 걸 싫어해."


"시끄러운 걸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다 크롭인줄 알거든."




정국의 말에 멍청히 아-하고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A구역에 가보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살아가는지 벌써 보고 온 기분이었다. 익숙하게 차에 시동을 건 정국이 건물을 빠져 나왔다. 그 뒤로 우리가 탄 차와 똑같은 차 몇 대가 따랐다. 모두 A구역을 향하는 차인 것 같았다. 그제서야 답답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차를 타고 꽤 달렸는데도, 삭막한 모래가 가득했다. 뿌연 모래가 시야를 가리는데, 정국은 익숙한 듯 신경도 쓰지 않고 익숙히 운전을 했다. 




"A구역엔 사람들이 산다고 했잖아요."


"크롭을 죽이는 일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 곳에선 어떤 일을 해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차 안을 맴도는 어색한 공기도 풀고, 궁금증도 해소할 겸 지금이 딱 좋은 질문 타이밍인 것 같았다. 조용한 차 안을 울리는 목소리에, 정국이 힐끗-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리퍼들이 노력하고 막는다고 해도, 가끔 크롭들이 A구역을 침범할 때가 있어."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했듯 사람들이 소리를 경계하는 거고."


"A구역으로 가서 크롭이 내려올 때를 경계하고 마을과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해."


"이미 당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는 일도 하고."





그제야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정국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크롭을 막아서는 날 보고 당황했던 모습도. 이곳의 사람들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할 만큼 크롭을 두려워하는데, 사람인 것 같아 보이는 내가 크롭 앞을 막아서니 당황스러웠겠지. 주변을 둘러보자 아까는 보이지 않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창문이 작고 허름하긴 하지만 분명 집이었다. 도착한 건지 정국이 차를 세우고 내렸고, 그를 따라 나 또한 차에서 내렸다. 다른 차들 또한 주변에 차를 세우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들고 내린 모자를 쓰려고 하는데, 정국이 그를 막았다.




"안 써도 돼."


"여기선 리퍼인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


"B구역엔 감시 카메라나 그런 게 많아서 조심해야 하지만, 여긴 아냐."




그에 별 말 없이 모자를 차 안에 던져 넣었다. A구역에 오면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스산한 기운이 들기까지 했다. 인상을 찌푸리고 주변을 훑어보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자세히 보자 작은 창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숨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고요하던 곳에 조금 소란이 일었다.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우리를 발견한 사람들이 하나 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북적거리는 분위기 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제야 사람이 사는 곳 같았다.




"A, C 지역이 워낙 크기 때문에, 리퍼들이 항상 마을 모든 곳을 지키지는 못해."


"그래서 사람들은 숨어 있다가, 리퍼들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게 확인되면 내려오고는 해."


"그게 안전하니까."




당황한 내 표정을 본 건지, 정국이 설명을 했다. 그럼 리퍼들이 없을 때는 집 안에 숨어서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언제 올지도 모를 그들을? 멍하니 서있는 나를 두고 정국은 차 뒷문과 트렁크를 열었고, 그곳에서 과일과 빵 등 음식들을 꺼냈다. 사람들은 재빠르고 익숙하게 정국의 차 앞으로 줄을 만들어냈다. 리퍼들이 오는 날만을 기다리며 농사를 지을 수도 없을 테니 이렇게 식량을 공급하는 거겠지. 이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그제야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분명 이 세계는 크롭들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세계는 그들을 지키는 리퍼들로 인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리퍼들이 있어야 밖을 걸을 수 있고, 리퍼들이 있어야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리퍼들이 있어야 마음 편하게 잠에 들 수 있는.


정국이 음식을 나눠주고, 사람들은 그런 정국을 향해 고맙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정국이 마치 신이라도 되는 양 그의 손을 꽉 붙들고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가만히 정국이 음식을 나눠주는 것을 지켜만 봤다. 다른 일이었으면 먼저 나서 도왔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음식 배급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정국은 음식을 다 나눠주고, 차를 정리했다. 음식을 담고 있던 상자를 차에 넣는 것을 돕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옆에 있던 정국이 곧바로 뛰쳐나갔다. 소리가 난 곳은 우리 차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들고 있던 음식들을 챙겨 다들 집으로 들어갔다. 정국이 앞장 서 뛰어갔기 때문인지, 정국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인지, 다른 리퍼들은 모두 뒤에서 우리를 지켜봤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길가엔 네 사람만이 서있었다. 아니, 그들의 말을 따르자면 세 사람과 크롭 하나.





"고개 숙여!!"




달려간 정국이 허리춤에서 곧바로 총을 꺼내 들었다. 정국이 소리쳤고, 그 앞엔 조금 어린듯한 사내 한 명이 덜덜 떨며 서있었다. 무서움에 잠식 돼 뒷걸음질 치는 사내 앞으론 붉은 눈의 크롭이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사내는 정신이 없는지 정국의 소리를 듣지 못했고, 크롭을 막고 선 사내 때문에 총을 쏠 수 없는지 정국은 욕을 뱉으며 사내에게로 달려갔다. 서있는 것 조차 버거워 보이는 사내의 곁으로 다가간 정국은 곧바로 사내를 옆으로 밀쳐내고 크롭 앞에 섰다. 거칠게 밀쳐진 아이는 저 멀리 밀려 건물에 쿵-하고 부딪혔다. 정국의 앞에 선 크롭은 중년 여성이었다. 붉어진 눈으로 조금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질질 끌리는 걸음으로 앞을 향하고 있었다. 지민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곧바로 정국이 그녀에게 총을 들이밀었다.




"...쏘지 마요!!!"




총구를 여자의 머리에 들이밀었던 정국의 몸이 움찔- 옅게 떨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정국이 소리쳤지만, 끝내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여자가 기괴한 비명소리를 내더니 정국을 향해 높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런 그들에게로 재빨리 뛰어갔다. 갑작스레 빠른 속도를 낸 몸이 순간 비틀거렸다. 넘어질 듯 위태롭게 그들에게로 뛰었고, 망설임 없이 정국 앞에 서 있던 여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성과 내가 동시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놀란 정국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쓸린 무릎이 아팠지만, 곧바로 고개를 들어 내 밑에 깔린 여성을 바라봤다. 여전히 기괴한 소리를 냈지만, 공격 태세를 갖추던 손이 멈춰있었다. 떨리는 손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고, 종국엔 나를 가득 끌어안았다. 지민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일으키려던 정국이 멈춰 섰다.




"이건 진짜,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정국이 헛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녀를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멀리 있던 리퍼 중 한 사람이 우릴 향해 다가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데려가."


"오늘 본 건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말고."




정국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롭의 손목을 뒤로 묶은 남자가 손 위에 천까지 덮어 크롭의 공격을 예방했다. 언제 공격할지 모르니, 크롭을 묶는 리퍼들의 움직임이 다급했다. 그를 바라보다 불안한 얼굴로 정국의 팔을 붙잡았다. 정국이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죽이, 려는 거 아니죠?"


"죽이지 마요."


"절대, 죽이지 마요."




정국의 눈빛에서 망설임을 읽고 그의 팔을 더욱 거세게 꽉 쥐었다. 단호한 말로 정국을 노려보자 정국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날 뿌리치지는 않았다.




"하-"


"룸에 넣어 둬."





한숨을 내쉬며 머리가 아픈지 정국의 두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의 말을 들은 남자가 의문이 가득 담긴 얼굴을 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확인한 후에야 정국을 잡고 있던 팔을 놓았다. 그제야 주변 상황이 조금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아까 정국에게 밀쳐져 아직까지 박은 팔을 부여잡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곧바로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팔을 확인했다. 쓸려서 상처가 났을 뿐 그리 큰 부상은 아닌 듯했다. 다행이다 싶어 막혀있던 숨을 내뱉었다. 남자를 일으켜 건물에 기대어 앉혀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정국에게 가려는데, 뒤에 있던 사내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방금, 뭐에요?"


"방금 누나가, 누나가 그런 거죠?"


"그러니까. 누나를 안은 거죠, 크롭이??"




팔을 잡고 끙끙거리는 상황에서도 크롭이 나를 끌어안은 상황을 본 것 같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곤란한 얼굴을 했다. 이 곳에서 이건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고 그랬으니까. 시선을 피하려 하는데, 초롱초롱한 눈을 한 사내가 자꾸만 시선을 따라왔다. 괜히 아까 확인했던 그의 팔을 다시 잡았다.



"눈으로 봤을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또 다른 데 다친 곳은 없니?"


"크롭이 누나 말을 듣는 거에요?"


"다리는 괜찮아?"


"누나, 대답해줘요."




말을 돌리려고 했는데, 그조차 통하지 않는다. 꼭 대답을 들어야 하겠다는 듯 단호한 사내의 눈이 내 눈을 직시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어두운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했는데, 마주한 남자는 낮은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게 밝은 목소리를 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인 듯 했다.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마도, 말 끝을 흐리자 사내의 얼굴에 놀라움이 피어났다.




"우와- 저 이런 거 진짜 처음 봐요."


"그럼 누나가 짱인거잖아요!"




사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사내는 이런 거 처음 본다며 내 팔을 잡고 동동 뛰었다. 혹시 몰라 사내에게 비밀이라며 소근소근 말하자, 또롱또롱한 눈을 한 사내가 열정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놀라서 벌벌 떨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잔뜩 신난 얼굴이 조금 상기 되어있었다.




"저, 그럼 누나-"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사내가 말 끝을 흐렸다. 목소리엔 망설임이 가득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더욱더 사내에게 가까이 가져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잡아당겼다. 얼떨결에 뒤로 밀려났다. 정국이었다. 정국이 나와 사내 사이를 파고들어 사내 앞에 섰다. 내 손목을 붙잡은 정국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내가 사내에게 말했던 것을 들은 것 같았다.




"앞으론 위험하니까 여기까지 나오지 마."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게 아니면."




정국의 말엔 날이 서있었다. 저렇게까지 거칠게 말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그를 지켜봤다. 아까 그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가던 정국의 모습이 떠올라서. 사내는 갑작스런 정국의 등장에 조금 놀란 얼굴을 하더니, 곧 진지한 눈빛을 했다. 아까까지 꼼지락거리던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동생이 있어요."


"동생이 크롭한테 끌려갔어요."




사내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정국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시체라도, 아님 그냥 옷가지라도 가져오고 싶어서."


"그래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사내가 끝내 고개를 푹- 숙였다. 숙여진 고개가 얕게 떨렸다. 가볍게 위로를 건 낼 수도 없을 만큼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정국은 아무 말 없이 그런 사내를 바라봤다. 정국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으나, 그때뿐이었다. 정국은 잔뜩 질린 얼굴을 했다. 조금은 아픈 얼굴도. 아마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이 사내 같은 이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겠지. 잔뜩 움츠린 사내를 앞에 뒤고 정국은 망설임 없이 뒤 돌아섰다.



"가자."


"잠, 잠시만요!"




정국이 발걸음을 떼자마자 사내의 손이 다급하게 정국을 붙잡았다. 정국이 인상을 찌푸리며 사내를 바라봤다.





"저도 데려 가줘요."


"뭐?"


"저, 리퍼가 되고 싶어요."


"그게 무슨-"


"진짜 열심히 할게요! 죽을 만큼 열심히!"




이번 말은 많이 당황스러웠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정국이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놀라 잔뜩 굳어 섰는데, 앞에 선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절실한 얼굴을 했다. 한동안 침묵이 지속됐다. 사내는 긴장한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를 바라보던 정국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내렸다. 정국이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붙잡고 있던 사내의 팔을 뿌리쳤다. 사내가 놀란 얼굴로 정국을 바라봤다.





"너 사람 죽여본 적 있니?"


"네?"


"아님, 죽어본 적은?"


"저-"


"총으로 크롭을 쏘면 크롭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는 아니? 아님, 상상은 해봤어?"




정국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었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딱- 잘라 거절하고 돌아섰으면 됐을 일이었다. 하지만 정국은 이성을 잃은 듯 잔뜩 화가 난 표정을 했다.




"크롭의 머리가 터지고 차갑게 식어가는 과정을, 볼 자신은 있어?"


"그런 생각은 해 보고 리퍼가 되고 싶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속사포로 쏟아지는 정국의 말에 사내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정국을 바라봤다. 살며시 손을 올려 정국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만하라는 신호였다. 정국이 으득- 이를 갈았다.




"말 쉽게 하지 마."


"함부로 하지도 말고."




분명 상처 줄 말을 뱉은 건 정국인데, 그는 잔뜩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돌아선 그가 곧장 차로 향했다. 남겨진 사내를 바라보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사내는 더 이상 우리를 잡지 않았다. 차에 올라타자, 안전벨트를 할 세도 없이 정국은 차를 출발시켰다. 마치 도망치는 듯. 핸들을 쥔 정국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있었다.




"쉽게 한 거 아닐 거에요. 함부로 한 것도 아니고."


"리퍼가 되어서라도 동생 유품을 찾고 싶은 거라는 거, 알잖아요."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정국은 대답이 없었다.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그저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차가 빠른 속도로 A구역을 벗어났다.





"동생을 다시 살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흔적 하나만 찾고 싶다는 건데."


"그렇게 심하게 말을 해야 해요?"




여전히 정국은 대답이 없었다. 끝까지 대답을 해줄 것 같지 않아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가운 공기만이 차 안을 맴도는데, 순간 정국이 핸들을 거칠게 돌렸다. 깜짝 놀라 정국을 바라보는데, 굳은 얼굴의 그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반동으로 인해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게 무슨-!"


"넌 리퍼가 뭐라고 생각 해?"


"네?"


"진짜 리퍼가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알아?"




갑작스런 상황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화를 내려고 하는데, 정국이 말을 끊었다. 낮게 가라앉은 시선은 그제서야 나를 바라봤다.





[방탄소년단/전정국] 작은 것을 위한 세계 03 | 인스티즈


"사람들은 참 안일해."


"자신들을 죽이는 크롭은 괴물이라고 생각하면서, 크롭을 죽이는 리퍼는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유품을 찾고 싶다는 애한테, 괴물이 되라고 등 떠밀어 주는 게, 네가 원하는 거야?"


"동생을 위해 리퍼가 됐다가, 처음 그 모든 이유를 잊고 크롭을 죽이는 일에 미치게 만드는 게. 네가 원하는 거냐고."




그제야 정국이 이렇게까지 흥분을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국은 리퍼를 싫어한다. 크롭만큼이나. 아니, 이 세계를 증오하고 있는걸 수도. 





"리퍼가 되려면 괴물이 되어야 해."


"사람으로 남는다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없을 거고."




잔뜩 상처 입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린다. 정국이 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처절하게 울고 있는 정국이 보였다.




"그래서,"


"그래서 이 세계가 좆같다는 거야."




정국이 결국 핸들 위로 얼굴을 묻었다. 클락션 소리가 시끄럽게 길가를 울렸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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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순대곱창입니당 ㅜㅜㅜㅠ이 미친 마무리ㅜㅜㅠㅠ정말 극적이고 문학적이에요ㅜㅜㅠㅠ몰입도 최고ㅜㅜㅠ정국이도 힘들게 버티는 거였군여ㅜㅜㅠ힝 진짜 너무너무 유잼 ㅠㅠㅠ
4년 전
독자2
으앙 ㅠㅠㅠㅠㅠ 짱이에요 정국이 대사 하나하나 다 좋아요 ㅠㅠㅠㅠㅠ 잘 보고 갑니다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3
정국이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싶어서 리퍼가 되었다고 다 잊어버리고 오직 크롭을 죽이는데에만 신경썼었나보네요..여주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크롭들이 여주만 보면 온순해질까요? 여주에게만 있는 능력이라 그런지 멋져보여요!! 오늘도 재밌는 글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4
각각 인물들의 성격이 진짜 각각 특성이 있어서 좋아요!!! 정국이는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는 건지....
4년 전
독자5
하아 작가님 ㅠㅠㅠ 정국이 윤기 호석이 태형이 지민이 너무너무 찰떡이에요 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6
정국이도 참 난처하겠네요 언제 자신들을 죽일지모르는 크롭들을 여주는 자꾸 죽이지말라고하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래도 둘의 사정을 알아서 어느누가 틀리다고 할수도 없어서 더 슬프네요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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