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여진구
서울에 홀로 상경해 기댈 곳 없이 막막한 나를 보듬어준건
어느 누구도 아닌 컴퓨터와 집안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뿐이었다.
하루종일 집안에 쳐박혀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시끄러운 세상속에 나홀로 조용해진 느낌이 들곤 했다.
세상에 나 혼자 남은 느낌
잠깐, 아주 잠깐 그렇게 세상이 멈추고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 세상이 돌고 새가 지저귀고 자동차 크렉션이 울린다
일상은 너무나 단조롭고 너무나 행복했다.
느즈막히 일어나 대충 끼니를 때우고 컴퓨터를 켜고 마저 원고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다 막히면 다시 끼니를 때우고 책을 읽고, 그마저도 지겨우면 티비를 켠다.
일주일에 한번 혹은 이주에 한번쯤 옷을 추켜 세우고 최대한 두껍게 나를 감춘뒤 장을 보러 나선다.
사람이 싫은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냄새가 그리워 가끔은 시장골목을 누비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때도 있었다.
그저 조금 두려웠을 뿐
저 사람들 속에 내가 스며들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지병을 앓으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뒤로하고, 지긋지긋 했던 사람들에게서 도망와 서울로 올라왔다.
사람에게서 도망쳐 온곳이 가진건 사람뿐인 도시 서울이라니 모순이 얼룩져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에겐 집이라는 나의 세계가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조용했던 나의 세계에 누군가 발을 들여 놓았다.
가득찬 종량제 봉투를 버리려고 문을 열었을 때였다.
교복 차림에 겁도 없이 대놓고 담배를 꼬나물고 창밖을 구경한다 교복만 아니었다면 제법 운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철커덕 하는 문소리에 아이가 눈썹을 찡긋이며 뒤를 돌았다
이목구비가 서글서글하니 잘도 생겼다
햇빛에 비추어 설익은 듯한 입술 끝이 눈에 익었다 마치 전에 본적이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딱히 또렷이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으나 괜히 가슴 한켠이 아리고 간지러웠다
얼른 고개를 돌린다고 돌렸는데 눈이 마주친건지 말을 걸어온다
"저기요, 아저씨"
아저씨라
나이 24에 아저씨라니
"담배 좀 있어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자 소년이 어휴 하고 밭은 숨을 내쉬며 어느새 줄어든 세상 굴러가는 소리만큼 작아진 담배를 조용히 비벼 끄고
소년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한동안 마치 교통사고 후유증처럼 그 아이가 가시지 않아서
그자리에 멀뚱히 서서 그 아이가 있던 자리를 쳐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