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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의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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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래보다 조금 더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동급생 셋은, 싸구려 화장품을 치덕치덕 발라 만들어진 새빨간 입술로 어떤 대상에 대하여 조용히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표정엔 무언가를 두고 헐뜯기 좋아하는 여자 특유 본성이 잘 드러나 있었다. 바코드가 붙여진 천체도감. 동급생들은 모두 그걸 들고 있었다. 과학 시간, 특별 수업을 앞두고 있는 도서실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육 반의 절반 정도가 도서실에 마련된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쟤가 걔 맞지? 귀 안 들린다는.”
  “맞아. 걔야.”
  “어떻게 알아?”
  “아까 명찰 봤어.”
  “그럼 정말 아무 것도 안 들린다는 거야?”
  “불쌍해.”

 

 
  그 말은 꼭 장애 자체가 아닌 그걸 가진 존재를 가엾게 여긴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들 중 하나가 알게 모르게 거만한 웃음을 터뜨렸다.
  햇살은 그녀들과 몇 걸음이 떨어진 책장에서 더듬거리는 손길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책등에서 책등으로 손가락을 옮겨가며, 햇살은 분주히 눈을 움직였다. 천체에 대하여. 천구사상론. 천체를 돌아서. 우주를 다루고 있을 무수히 많은 책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녀들과 같은 책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좋겠다. 평생 이어폰 살 걱정은 없겠네. 난 한 달에 한 번은 새 걸로 갈아치우는데.”
  “병신. 그럼 너도 귀머거리 해.”
  “야! 아무리 그래도 애한테 귀머거리가 뭐냐? 쟤 듣겠다!”
  “귀머거리가 듣긴 뭘 들어?”
  “아, 그러네.”

 

 
  한 명의 백치 같은 발언에 옆에 있던 동급생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구를 기세로 웃어댔으므로 그 소리는 결단코 적지 않았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학우들이 일순간 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이내 익숙하게 다시 본래 하던 일로 고개를 움직였다.
  갑작스럽게 살며시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유진은 괴기스럽게 웃던 걸 멈추고 뒤를 돌았다. 그녀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친하지도 않은 반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끔씩 마주칠 때마다 봤던 것의 전부가 친절히 굴며 웃는 얼굴이었으므로, 유진은 그런 동혁의 날카로운 표정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런 이질적인 감정도 잠시, 동혁은 곧 매사에 그러는 것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너무 과하지도, 부실하지도 않은 적당한 웃음이었다.

 

 
  “미안한데 자리 가서 좀 앉아줄래?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셔서. 이제 곧 종이 치거든.”
  “아, 그래…….”
  “그리고 더 미안한데, 책 하나만 빌려줄 수 있어? 지금 다른 선배가 책을 빌려가서 수가 부족하다고 하더라. 너희 셋은 친하니까 좀 나눠서 같이 봐도 되잖아. 그렇지?”
  “…그래, 그렇게 할게. 여기.”
  “고마워.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안한데.”
  “…….”
  “교내에서 화장은 벌점이야.”

 

 
  벌점 지우고 싶으면 이따 학교 끝나고 화장실 청소해. 그러면 선생님이 지워주실 거야.
  동혁의 말투는 충분히 살가웠지만 그 속엔 어딘지 모르게 새된 표현이 숨어있었다. 여전히 친절히 웃고 있는 얼굴은 반박할 틈 따위를 주지 않았다. 유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로부터 건네어 받은 책을 다른 한 손으로 쥐고서 동혁은 그녀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책을 고르고 있는 햇살에게로 다가갔다. 햇살은 여간한 기척이 아니면 옆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동혁은 아까 유진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햇살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햇살이 깜짝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았다. 동혁은 그런 햇살을 쳐다보며 반갑게 말했다. 내가 빌렸으니까 같이 보자. 햇살은 소리를 판별하기 위해 상대방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햇살은 기어코 동혁이 내는 소리를 알아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동혁이 손을 잡아끌었다. 그 감촉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라서, 이젠 지겨울 정도였다.

 


  “쟤 뭐야? 둘이 무슨 사이야? 사귀나?”
  “……몰라. 짜증나.”

 


  유진이 한껏 표정을 찌그러뜨리며 대꾸했다. 씨발, 하고 작게 욕설을 내뱉은 그녀는 동혁의 표정을 떠올리며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동혁의 말대로 이윽고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한빈은 수업이 시작되고 십 분이 지나서야 느리게 도서실에 들어왔다. 물론 빌려오기로 한 책은 없었다. 동혁은 그런 한빈을 잠시 시선했다가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못 본 척을 했다. 과학 선생의 지루한 우주 이론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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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면서 올리는 글입니다.

그냥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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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런 내용 좋아요..다음 기다릴게요!
9년 전
비회원200.86
와 색다른 주제랄까?뭔가 기대가 됩니다!!기벼운 마음으로 읽으라고 하셨지만 엄청 집중해서 읽었어요ㅋㅋ직가님 화이팅 하세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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