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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LOODY VALENTINE



얌 마, 이 새끼 조사 좀 해와라. 반장님이 거의 던지는 것과 다름없이 내게 건낸 서류봉투가 아슬아슬하게 내 손 안으로 세이프 됐다. 이거 집에 가서 누구 붙잡고 막 인터뷰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쉽사리 채워지기 힘들어 보이는 엄청난 여백을 보건데 내 힘으로는 딱히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아보였다. 아, 어쩌면 소파에 누워 나른하게 배를 긁던 줄리안이 귀찮은 척 지친 표정을 지으며 끝내 이 수사에 협조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사에 협조하는 용의자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였지만 그랬다.


나는 일곱 번째 흡혈吸血 살인사건의 용의자 조사를 위해 육하원칙에 맞춰 일목요연이 정리된 서류를 휙휙 대충 넘기면서, 결코 낯설지 않은 사진 속의 얼굴을 찾아냈다. 내가 좋아하는 투명한 초록색 눈동자를 하고서는, 탁월한 무표정을 짓고 있는 줄리안의 사진 속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웃겨. 누구보다 말이 많으면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은 잘나가는 클럽 DJ라도 되는 것처럼 그럴듯해 보였다.


디제잉이 아니라 살인을 저질러서 참 유감이지만 말이야.


나는 사진 속 줄리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시늉을 하면서 그만 피식 웃어보였다. 이건 줄리만 아니었어도 정말 못 봐줄 사진이구나, 하는 생각이 무심결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촌스러워도 이렇게 촌스러울 수가 없는 구도는 자기애가 극심한 줄리안조차 왜 이 사진을 쪽 팔리다는 이유로 들고 다니지도 않는가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아마 내 기억 속의 줄리안은, 사년 쯤 전 자신의 새로 발급된 민증을 보고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더란다.


그 때의 줄리안이 지금과 똑같은 건 오로지 그 눈빛 뿐이었다. 그리고 그 옆의 내 존재까지. 그게 다였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변한다는 건,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게 분명했다. 사실은 아직도 그런 상상을 한다. 오년 전, 그 수사를 맡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런 기분은 느낄 수 없었을 테다, 하는 것 말이다. 줄리안의 손에 들려있던 와인 잔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뚝, 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나를 적셔온다. 난 사실, 내 어깨 위에 있는 붉은 점을 지우려 애썼었다.


나는 밀려오는 우울한 생각들에 사진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반듯한 검은색 글자 세 개로 시선을 돌렸다. 잘 박힌 고딕체가 서류 특유의 딱딱함을 더했지만, 난 그만 조용한 사무실 내가 요란하게 울리도록 푸하하, 소리 나게 웃어보였다. 이래서야 사진을 보고 내뱉었던 불만스러운 말들은 몽땅 다 취소였다.


봉준우.


줄리안은 준우였다. 그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줄리안의 한국 이름이 바로 그런 이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촌스럽잖아. 설마 한국 이름으로 서류를 작성했을 줄이야, 반장님도 참 웃긴다. 나는 오래 지나지 않아 반장이 방금 그랬던 것처럼 책상 위에 성의 없이 서류를 내팽겨 치고는 얌전히 놀고 있던 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근무 중 애인과의 통화는 땡땡이로 간주할 필요 없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서 안에서만 예의로 신고 다니는 구두가 가진 발걸음이 퍽 가벼웠다. 뱀파이어 단속 1반, 내 뒤로 평화롭기 짝이 없는 사무실의 풍경이 멀어져갔다.



***



“줄리안!!!!”


흐아암, 보기만 해도 졸린 표정을 하고 일어난 줄리안의 왼쪽 눈에 짙은 쌍꺼풀이 졌다. 졸린데 왜 깨워. 하루 종일 집에서 꼼짝도 않고 자는데 열중했을 게 분명한 남자가 뻔뻔히도 그런 말을 한다.


“일어나서 이것 좀 봐봐.”


나는 대뜸 줄리안에게로 서류를 내밀면서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갈색 봉투에서 삐져나온 새하얀 종이뭉텅이가 억지로 줄리안의 손에 쥐어진다. 야- 이거 뭐야. 줄리안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몇 번을 봐도 구리기 짝이 없는 줄리안의 사진들이 서류봉투 밑으로 툭 떨어져 나왔다.


“아, 시발.”


줄리안은 잠이 확 달아났는지 노골적으로 찌푸린 표정을 지으면서 그 사진들을 발로 쓰윽 밀어냈다. 나는 말 없이 그 사진들 중 하나를 주워들고는 지갑 안에 몰래 숨길 작정으로 주머니 속에 그 사진을 접어 넣었다. 이 사진이 두고두고 좋은 놀림감으로 쓰일 생각에 비죽 웃음이 튀어나왔다.


줄리안은 잔뜩 구겨진 미간을 펴지 않은 채 여백이 반일 두꺼운 서류를 하나하나 넘기기 시작했다. 그의 거짓말투성이인 신분증 상 정보들이 그 안에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지만 그건 절대적으로 무의미한 것들뿐이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생년월일부터 지나치게 잘못됐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줄리안은 생년으로 기입된1987년이라는 글자가 바로 어제처럼 느껴져도 아무렇지 않은 뱀파이어였다.


“이거 완전히 엉망이네.”

“응, 그러니까 줄리가 좀 고쳐봐. 여백도 채우고. 재밌겠지?”

“허니, 그럼 우리 섹스하자.”

“싫어!”

“왜?”


머리속에 든 거라고는 피랑 섹스밖에 없는 뱀파이어 같으니라고. 그걸 몰라서 묻는지 순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줄리안에게 난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꾹꾹 눌러 담고는 온 몸 구석구석 가득한 줄리안의 이빨자국을 떠올렸다. 옷을 벗을 때마다 보게 되는 끔찍한 흉터들은 모두 그의 작품이었으니까.


“나보다 몇 백 살은 더 먹은 노땅주제에.”

“아, 허니. 우리의 모토는 원래 원조교제였어.”

“그럼 돈이라도 주던가.”


줄리안이 천천히 내 정면으로 다가온다. 지이익, 서류 위 얌전히 붙어있던 줄리안의 또 다른 증명사진이 가차 없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꿀꺽, 나는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바로 내 앞에 보이는 줄리안의 눈동자를 보면서 침을 삼켰다. 줄리안의 입이 열리자 끔찍이도 섹시한 숨결이 여과 없이 내 목덜미로 닿는다.


“그래서… 싫어?”


아, 지나치게 긍정할 수가 없는 말이어서 난 짜증이 솟아오를 지경이었다. 씩 웃는 줄리안의 입술 안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금방이라도 내가 지금 한창 수사 중에 있는 사건의 피해자와 나를 똑같이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콱, 순간 줄리안의 송곳니가 정확히 내 어깨 위 빨간 점 두개로 박혀왔다. 능숙하게 피를 빨아올리는 줄리안의 하얀 치아로 내 붉은 혈액이 방울방울 맺힌다.


“왜 깨끗한 척을 하고 그래.”

“윽….”

“다 똑같잖아, 어차피?”


줄리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단지, 그것이 욕구불만 때문이라는 게아니라는 것 또한.


줄리안의 새빨간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 뺨에 닿을 듯 말 듯했던 그의 머리칼은 곧 내게서 제 몸을 완전히 떼어냈다. 제 입술을 핥아 올리는 줄리안의 혀 위로 끈적끈적한 피가 흘렀다. 이곳의 모든 것들이 질척한 피로 가득 물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너 정말 최악이구나.”


인상을 잔뜩 찌푸린 줄리안이 얼이 빠진 채 가만히 앉아있는 내게로 쓸데없이 두껍기만 한 서류를 휙 집어던지고는 현관으로 다가가 선반 위에 얌전히 있던 렌즈 통을 꺼냈다. 줄리안의 푸른색 동공이 더 파랗게 빛나고, 나는 그가 또 다른 흡혈을 할 것이란 걸 예상했다. 저 렌즈는, 본능에 휩싸일 때마다 붉어지는 눈동자를 가리기 위한 용도였으니까. 나 나간다. 그렇게 말하는 파아란 눈의 줄리안을 등지고 남은 건 내 어깨에 남은 선명한 이빨자국과 거실바닥에 번진 몇 방울에 핏 자국 뿐이었다.


정말인지 이질적임, 그 자체였다.


나는 눈을 감고서는 찬 바닥에 드러누워 후으, 한숨을 쉬어냈다. 그리고선 연락이 온건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뒤였다.

여덟 번 째 흡혈살인 사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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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하아 기묘한 관계네요 지켜볼 수록 둘 사이에 더 흥미와 긴장이 느껴집니다 줄리안이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작가님의 막힘 없는 문체 덕분에 더 잘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늘도 잘 읽고 가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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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ONE
감사합니다 ////^^//// 줄리안 섹시하죠 흑흑 원래 줄로를 염두해두고 썼던 글이 아니라서 걱정 많이 했는데 좋아해주셔서 한번 더 감사합니다 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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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ㅠㅠㅠㅠㅠ작가님!!! 알림 울리고 후다닥 와서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ㅠㅠ 분위기가 묘하면서도 텐션있는게 좋네요 ㅠㅠ 봐도봐도 좋아요!! 그리고, 줄리안 너무 마음에 들어요 ㅠㅠㅠㅠ 이런 줄리안은 다른 데에서 많이 못봐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는 느낌!!! 딱 나쁜 성격같은데 왜 미워할 수없는거죠 ㅠㅠㅠ 로빈마음을 알 것같기도 한... ㅠㅠㅠ
다음편이 기다려져요! 작가님 쥬뗌므 ♥♥♥♥ 너무 잘 읽었습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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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ONE
로빈.. 제가 쓴 글 중에 요 글의 로빈쨔마가 제일 알기 쉬우면서 알기 어려운 것 같아요ㅋㅋㅋㅋ 줄리안은 후반부가 묘미이니 그 때까지 잘 달려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b 저도 쥬뗌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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