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 끼익-
그가 나를 바라본다. 하얗고 얇은 얼굴 위로 달빛이 내리는 것 같았다. 아니다. 모든 빛을 막을 듯 두터운 저 커튼은 나를 이 방에 데려온 뒤로 한번도 젖혀진 적이 없었으니 그 얼굴에서 흐르는 빛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여려보이지만 결코 여리지 않은 그의 손을 관자놀이 위에 얹은 채, 그는 여전히 흔들의자에 앉아 나를 본다. 느리게 흔들거리는 의자는 마치 최면과도 같다. 앞으로 뒤로- 또 앞으로 뒤로.
"별빛아."
그는 언제나 나른한 미성에 내 이름을 담아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아무런 어조의 변화도 없다. 그의 목소리에는 언령이 있었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면 내 이름에는 그의 빛이 잠시 옮겨갔다. 비록 금방 사그라들 빛일지언정,
나는 내가 빛나고 있다고 느꼈다.
"왜 그렇게봐."
그리고 단 한순간도 그의 목소리에 진심이 담기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의 말이 가진 힘은 그 진심을 근원으로 하고 있으리라.
잔인할 만큼 폭력적인 그 진심.
나를 이 집에 데려오던 밤도 그랬다.
어두운 가로등 아래 큰 손으로 내 입을 막고 내 귀에 속삭이던 그 날의 목소리에도 그는 분명 진심을 담았다.
"볓빛아, 나랑 같이 가자."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이 집을 나갈 수 없었다.
잔인한 그의 진심에 갇힌 채로, 이 집을
나갈 수 없었다.
끼익-
흔들거리는 의자에서는 여전히 소리가 났다. 아무리 두꺼운 카펫을 깔았다 한 들, 아무리 나른한 움직임이라고 한 들 소리가 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도 그랬다.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리 미워하려 해도 이제는 더 미워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두껍게 미움을, 그리고 원망을 겹겹히 깔아도 이미 새어나오기 시작한 마음을 말릴 수는 없었다.
"미안해. 답답하게 만들어서."
"....."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너는 내게 빛이니까."
반대였다. 이미 그 반대가 되었다. 나는 이미 이 방의 어둠에 동화되었고, 그래서 이미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이제 빛이였다.
어둠은 빛의 부재니까,
나는 이미 그가 존재함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의자와 카펫이 마찰하며 내는 조그마한 비명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성큼성큼 그가 다가온다. 하얀 손끝으로 부드럽게 내 턱을 잡아 올린다. 그의 눈 속에 내가 담겨있다. 나는 어둠이니까, 그의 눈 속엔 어둠이 있다.
그의 얼굴이 내려온다. 숨결이 가까워오고, 그의 입술이 내게 닿는다.
아무리 나에게 닿아도 부족하다는 듯 더 깊이, 그리고 깊이.
"빛이 없으면 난 살 수가 없어."
내가 해야 하는 말이 그의 입을 빌어 나온다. 더해지는 진심이 폭력적이고, 또 잔인할 만큼 짙다.
입을 열면 질식할 것만 같아, 나는 오늘도 그에게 말하지 않는다.
이미 내 빛은 그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