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한 상황이었다. 절대 위안부로 끌려가선 안돼, 00은 어머니의 말이 문득 귓가를 스치며 그녀가 저를 안아줄 때마다 났던 그 내음이 생생하리만치 코끝에 스치는 듯 했다. 그리고는 왈칵 눈물이 차올라 00은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며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벌써 한 달째 계속되고있는 피난길이었다. 벌써 초여름이구나, 점차 후덥지근해지는 날씨에 손부채질을 하던 00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진 후의 전장은 더더욱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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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00아.'
'흐으..현아, 백현아.'
'어쩔 수 없잖아.'
멋쩍은듯이 백현이 웃으며 00의 머리를 헝클이다 이내 조심스레 머릿결을 정돈해주었다. 만 18세부터라 했나, 학도병으로 강제징집되어 끌려가던 백현은 00과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보던 그 순간까지도 애써 웃어보였다. 어느 날, 피칠갑을하고 돌아와 싸늘한 주검이 되버린 어머니와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 그리고 백현까지. 점과 같았던 암흑이 00의 모든것을 흡수하고 빨아들여 점차 커져 구덩이가되고 지금은 00마저도 덮으려 하고있었다. 00이 산 속 깊은 곳 임시로 쳐두었던 천막 밑에서 낡은 천조각을 깔고 누웠다. 더워진 날씨에 찝찝함을 느낀 00이 인상을 찌푸렸다. 산을 조금만 넘어가면 계곡이 있어 식수와 세면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만에하나라도 인민군들에게 발각된다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의 시한폭탄이 되는 일이므로 그것조차 마음편히 하지 못했다. 00이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도저히 이런 찝찝한 기분에는 잠이 들 수 없다는 연유에서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무일도 없을 것이라며 안심했다. 아니, 방심했다.
흐르는 강물이라는 것이 본디 차갑지만 저녁의 계곡물은 더욱이 차디찼다. 00이 꿀꺽소리가 나게 물을 마시고는 얼굴부터 목까지 벅벅문지르며 세수를 하였다. 마음같아서는 온몸을 씻고싶었던 00이였지만 챙겨온 옷가지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어 임시방편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어디서 무슨 소리 안납니까?"
"귀신소동이거덩 집어치워라."
"정말 소리가 났는데,"
00의 모든 행동이 멈췄다. 모든 세포조직과 기관들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집중했고, 잠깐도 놓치지않고 그들의 행색을 살폈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고요히 물이 파동에 일렁이지 않도록 빠져나왔다. 말투로 봐서는 완전한 인민군으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표준어라기에는 어색한 그들의 어투로부터 그들이 인민군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최대한 빨리, 침착하게 그들이 그저 지나가길 바라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해야했다. 00이 조심스레 자갈밭을 걷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꽤나 큰 발자국 소리가 나왔다.
"자네도 들었지?"
"거보십쇼, 분명 내가 난다고 그리 말했는디도,"
"바람소리다, 가자."
"예에? 바,람소리라기에는 조금"
"소탕작전이 가차운데 괜한 시간낭비말고 가자."
다른 남자가 한 명 더 있는듯했다. 누가 들어도 바람이 낸 소리가 아니였지만 그는 왠지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목적지를 향해 가려고했다. 분명 소리를 들었다던 두 명의 인민군들도 그의 말에 별말없이 동조하고는 그대로 길을 나섰다. 00이 순간 다리에 힘이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정말이지 큰 일이 날 뻔한 상황이었다. 계곡물에 말끔히 씻겨내려갔던 00의 얼굴에는 어느새 송글송글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그리고 00이 다시 일어나려 할 때,
"움직이지마."
낮은 음성이 계곡주변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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