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어디서 들 그렇게 창창한 신입 코디들을 데려와 다 해 쳐먹는지 집 안에서만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할 짓없이 인터넷 서핑만 한지 3일째. 떡질대로 떡져 이제는 빗질도 안되는 머리와 집에서만 입을 수 있다는 정열의 빨간 레드 트레이닝을 입고 마우스만 클릭해대고 있으니, 어머니는 속 터져 죽으려 하시고 과묵하신 아버지는 오죽하면 요즘엔 일이 없냐며 걱정을 하기 시작하셨다. 오, 세상에. 어머니 아버지. 저도 밖으로 기어 나가고 싶사옵니다만. 그동안 7년째 코디로 먹어온 밥과 그 수많은 양을 받아내기 위해서 커져버린 밥그릇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돈을 더 줄 바엔 차라리 신입들을 쓰자는 주의의 기획사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사오네요. 옘병할.
사실 끈기라고는 눈꼽만 치리 찾아볼 수 없던 내가 7년째 코디짓을 하리라 생각도 못했다만, 젊은 시절 나름 패션디자인과에 합격해 어떻게든 졸업장을 따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공강은 물론 방학까지 바쳐가져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벌어오던 수입들이 짭짤해 결국 졸업장을 따기 위해 하던 코디일 때문에 대학교까지 때려치우고 했던 이 일이 벌써 7년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바로 어제 참이슬 팩을 입에 꼬라물고 미련하게 하나하나 날짜를 세다 빌어먹을 끈기가 안돼 친구에게 전화해 주사를 부리니 질릴 대로 질렸다는 듯한 친구는 초록색 네이놈 검색창에 물어보라는 답변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무리 똑똑해도 네이놈 주제에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미친년 마냥 꺄하하 웃으며 네이놈 검색창에 검색해보니 날짜 계산기란 게 나와 정말 될까 싶어 쳐보니 벌써 7년이더라.
세상에. 7년이래. 7년! 하얀 화면에 나타난 2681일은 정말 7년이었다. 뻥 안치고 진짜 7년. 나 년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순간이 없다 싶었던 나는 모니터에 비춘 실로 엄청난 네 숫자에 웃다 엉엉 큰 소리로 울어 간 밤 잠을 주무시려던 어머니는 내 방으로 뛰어들어와 내 등짝을 내리치셨다. 이 미친년이 정말 미쳤나! 하시면서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 일이 없다는 거다. 일이. 일이!!! 내 7년 동안 부족함 없이 살아오게 만든 그 수입들이 없다는 말이다. 오 세상에, 어쩜 좋을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을 하던 도중 배에서는 뭘 집어넣으라며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고럼,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데. 곧 넣어줘야지. 정말 심각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나의 웃음에 잠시 내 상태를 보기 위해서 열린 문틈 사이로 나를 보신 어머니는 기겁을 하시며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아아. 배고프다.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집의 유일한 천국인 냉장고를 털어볼까 하고 일어서던 내 발에 떨어진 휴대폰에 괴성을 울부짖으며 펄쩍펄쩍 뛰어다니다 반쯤 나간 정신으로 이 못된 휴대폰을 집어 던져버리자 하고 들어 올리면 3일째 감감무소식이던 충전은 제대로 되었는지 궁금할 휴대폰에서 010으로 시작해 현주 언니로 저장되어있는 번호가 뜨며 울려대기 시작했다.
아픈 발등을 몇 번 문지르다 엽떼여 하고 전화를 받으면 미친년이로 시작해서 쏟아지는 육두문자에 그저 나는 스마일을 고정한 체 귀에서 들려오는 개,소,말 따위를 흘려보냈다. 야, 듣고 있어? 중간 중간 들려오는 그녀의 확인하는 말에는 네 언닝 듣고 있져 하고 답해준다. 곧 씩씩대며 제 성질을 다 쏟아낸 현주 언니는 내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했다.
" 야, 이번에 내가 진짜 중요한 패션쇼 도와야 해서, 저번에 내가 SM 스타일리스트 애들 보내준다고 하고 깜빡하고 이번 패션쇼에 애들 다 배치했지 뭐냐. 그러니까 니가 거기로 가서 일 좀 해라 "
" 헐, 진짜여? 저 요즘에 일 없는 거 어떻게 아시구~ 사람해요 "
" 처음엔 알바식으로 갔다가 잘하면 정식으로 채용해준대니까 알아서 기어 알겠지? 성질 부리지 말고 "
" 핳, 제가 언제 성질 부렸다고 그래여 언니두 참. "
" 지랄도 병이야 이 년아. 아무튼 내일부터 출근해라. 거기 담당 직원한테는 너 간다고 이야기 해둘테니까 "
" 옙, 수고하떼여 언니 "
"그래, 다음 통화때는 그 역겨운 애교는 집어 치우고 "
" 네 "
와, 일이다 일! 드디어 내 입에 넣어줄 아가들이 더 많아진다! 와!후! 집에서 방방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자. 어머니는 화가 아주 많이 난 목소리로 닥치라며 밥이나 쳐 먹으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어머니, 어머니 딸 드디어 일해요! 더 이상 집에 있지 않아! 신난다! 그전에 밥 부터.
* * * * *
인기가 많은 가수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는 만큼 회사 앞에 모인 팬 수도 엄청 어마어마하더라. 한바탕의 거사를 치른 나는 아침부터 쌩난리를 피우며 얼굴에 두껍게 씌운 가면이 애석하게도 내 피부에서 흘려대는 눈물에 조금씩 형태를 숨기고 있었다. 덕분에 공개하고 싶지 않은 나의 볼에 있는 점도 드러났고 말이다. 한숨을 푹 내쉬며 앞에서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글방글 웃으며 나를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가니 한 오지랖 할 것 같은 직원은 무슨 일 있냐며 힘내라는 말까지 해주고 가더라. 허허. 힘내야죠. 암요
아직은 아무도 안 온 건지 아님 그 오지랖 직원이 나를 이상한 곳에 쳐박아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텅텅 빈 공간에 이럴 때 화장이라도 고치자 싶어 파우치를 꺼내 본격적으로 화장을 고치며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던 때,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며 웬 후눈하게 생겨 두꺼운 파일을 여러 장 든 남자분 한 명과 최근 염색한 듯한 갈색빛의 머리를 가진 여자가 들어왔다 거울을 가방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니. 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소개를 하신다. 후눈하신 남자분은 홍보담당 직원분이라 하고 갈색빛의 머리를 가진 여자분은 나와 같이 일할 코디 분이시란다.
홍보 담당 분은 왜 여기에…. 하고 물으니 갈색빛의 머리를 한 여자분도 오신지 얼마 안돼 길을 몰라 같이 온 거라며 할 일과 배정될 그룹의 컨셉을 알려주겠다며 손에 들고 있던 두꺼운 파일을 내게 넘긴다. ㅎ? 알려주시겠다더니, 이걸 다 읽으라고 ㅎ…. 네 개의 파일을 모두 내게 넘겨주고는 허허 인심 좋게 웃던 남자분은 열심히 하시라며 파일 위 비타민이 오백 개가 있다는 음료를 주시곤 유유히 떠나셨다. 갈색빛의 머리를 하신 여자분과 나는 그 자리에 다시 앉아 네 개의 파일을 모두 넘겨보며 서로 통성명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곧 다시 우리를 찾으러 온 그 후눈한 홍보 담장 직원분과 함께 아주아주 잘생기고 인기가 많은 내가 담당할 연예인을 보러 가니. 남자 여러 명이 검은색 의자 등받이에 기대 눈도 체 못 뜨고 꾸벅꾸벅 졸아가며 메이크업을 받고 있던 것이다. 허허…. 지금 아침 7시인데… 눈들이 참 알차게 부으셨군요? 전날 밤 라면이라도 드셨나? 나도 밤에 먹는 라면 좋아하는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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