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지애 : 천년의 사랑]
02.
그 날 저녁, 원치 않은 물놀이를 즐긴 경수는 목욕 후 노곤해졌는지 일찍 잠에 들었다.
일찍 잠에 든 만큼 밤이 긴 것은 당연지사라.
잠이 든 경수의 생각 속엔 무엇이 있었던지 그 날은 잘 꾸지 않던 꿈을 꾸게 되었다.
꿈 속의 경수는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연신 두리번 대다 자신은 바로 낮에 보았던 그 연못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못의 잉어들은 언제 경수가 빠졌냐는 듯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그리고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것 같은, 한 사내가 나왔다.
그는 다정하게도 잉어들에게 먹이를 흩뿌려주고 있었다.
햇살에 눈이 부셔 잘 보이지 않는 얼굴 탓에 누구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어 이리저리 그를 보았다.
왼쪽으로 보면 그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오른쪽으로 보면 그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고싶어 들여다 보면 그는 계속 얼굴을 감추었다.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누구던가. 호기심은 절대로 못 참는 도경수가 아니던가.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또 한 걸음.
사내 옆으로 갔다. 경수 자신보다 한 뼘 반 정도 큰 키를 가진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가 웃는다. 그리고 경수를 내려다 본다.
김종인, 종인이었다. 경수는 자신을 향해 살풋 웃어보이는 그가 왠지 간지러웠다.
마치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이 곳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도 같이.
종인이 무어라 말을 한다.
'.... -님.'
잘 들리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듣고 싶다. 들어야만 할 것 같다.
실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낯설지 않은 소리다.
더욱 귀를 기울인다.
"-님! 도련님!!"
종인의 입에서 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게, 뭐지.
"경! 수! 도! 련! 님!"
".....?"
"어휴, 이래서 내가 제 명에 못산다니까? 해가 중천에 떴구만. 언제까지 이불 속에 있으실거에요!"
무슨 상황인지 나는 모르겠소라는 표정을 한 경수가 일어나기는 커녕 눈만 뜨고 껌뻑껌뻑거리고 있으니 답답해서 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박씨가 이불을 홱 걷어냈다.
하여간, 불 같은 박씨 성격 누가 말리겠는가.
"대감마님이 아-까부터 대청마루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응...응? 아버지가?"
"거봐 거봐, 또 까먹으셨죠?"
"내가.. 무얼.."
"오늘 글 공부 하시는 날이잖아요! 어휴, 저 어린 도련님을 누가 데려갈꼬."
흐업 하는 소리와 함께 요를 박차고 일어난 경수가 어쩔 줄을 몰라하며 안절부절 하고만 있었다.
물론, 박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말이다.
"내가 못살아, 얼른 세수부터 하셔야죠! 눈곱 좀 떼시고!!!!"
"어어! 맞아맞아! 세숫물 좀 가져다 주라."
"이미 떠왔거든요? 도경수 도련님?"
어푸 어푸 급하게 세수를 하는 경수는 박 씨가 챙겨준 옷을 입고 구석에 쳐박아둔 문방사우를 꺼내들었다.
글 공부는 죽어도 하기 싫어하는 경수인지라 갔다 오면 문방사우는 안 보이는 곳으로 빠이빠이인 것이 당연한 거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문방사우를 챙겨들고 빠른 걸음으로 아버지가 기다리는 대청마루로 향했다.
멀리서만 봐도 나는 대감이오, 양반이올세. 하고 풍겨져 나오는 기품이 딱 봐도 도 대감, 경수의 아버지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괜한 헛기침을 하며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경수는 손에 든 문방사우를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뚜벅뚜벅 아버지가 계시는 대청마루 앞으로 걸어갔다.
"문안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벌써 이것이 몇 번째이더냐. 경수야."
"저.. 그것이 말입니다. 제가 오늘은..."
"거짓말이 아주 버릇이 되었구나 이놈."
"아, 아닙니다! 송구하옵니다."
입술을 앙 다물고 고개를 떨군 경수가 차마 마루에 올라가지 못하고 우물쭈물 서 있자 도 대감은 주눅 든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한숨을 내쉬고는 굳은 얼굴을 피며 경수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것이냐. 이리 올라 오거라."
가지런히 신발을 벗은 경수는 아버지의 맞은 편에 앉아 미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펴고 벼루에 먹을 갈았다.
혹여 아버지에게 흠이 잡힐까 살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어른보다 먼저 준비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했다, 앞으로는 먼저 와서 기다리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벼루에 먹을 갈던 경수가 머쓱한 듯 슬쩍 웃어보이며 알겠다며 대답했다.
.
.
배꼽시계가 시간을 알릴 무렵, 경수 역시 아버지와의 글 공부를 마쳤다.
그는 종이에 주름이 가지 않게 살살 말아들고 먹물이 가득한 벼루를 조심스레 들었다.
그리고 마루에서 내려와 디딤돌로 발을 딛으려 하던 찰나,
"으억!"
넘어지고 말았다.
"아고고, 아파라.."
넘어질 때 벼루를 짚어버렸는지 손바닥은 꺼멓게 먹물로 가득했고 한쪽 손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어제는 물에 풍덩 빠지고 오늘은 칠칠맞게 넘어지기나 하고, 경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우선 얼른 가서 씻고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얼른 벼루와 붓을 챙겨들고 별당채로 향했다.
.
.
.
"오메, 도련님! 손이 왜 그란데유?"
"응? 이거? 그게.."
몸종인 삼식이가 물어오자 경수는 손을 홱 뒤로 숨겼다.
삼식이가 알면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골치아픈 건 자신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이라고 생각한 경수였다.
"아냐! 아무것도! 그냥 좀 그런 일이 있었어~ 하하 그럼 수고해~"
삼식이가 어리둥절하며 그냥 지나치자 얼른 수돗가로 가서 손을 씻는 경수였다.
물이 닿아오자 생채기가 난 경수의 손바닥이 따끔거렸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휴, 이게 뭔 난리야 정말."
"도련님! 오셨음 오셨다고 말을 하셔야죠~ 밥에 파리 앉겄네요 그러다가!"
그럼 그렇지, 잔소리쟁이 박 씨가 빠진다면 섭할 뻔했다.
꽥 소리를 지른 박 씨가 꼬물거리며 먹물을 지우는 경수를 보고 허구헌 날 손만 벅벅 씻어대고 있다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상 앞에 앉은 경수는 마지막 반찬이 나오기도 전에 숟가락을 들었다.
밥그릇에 얼굴을 묻다시피 먹는 경수를 본 박 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녁에 배 아프다고 손 따달라 하면 안돼요. 알겠죠?"
"어? 아 애 오 아오이야"
입에 밥을 한 가득 머금고 말을 하는 경수가 당최 양반의 자식이 맞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박 씨였다.
그냥 밥이나 먹으라며 눈짓을 하자 바보같이 웃어보이며 밥을 먹는 경수였다.
밥을 거의 다 먹어 갈 무렵, 삼식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도련님, 누가 도련님을 좀 뵙자고 하는디요?"
"응? 누군데?"
"모르겄어요. 들어와보쇼!"
박 씨에게 상을 무르라고 시키고 물로 대충 입 안을 헹군 경수는 누가 자신을 찾는 건지 궁금해 문을 빼꼼히 열어보았다.
얼핏 보니 아무도 없자 무슨 일인가 싶어 다시 문을 닫으려는 찰나 문 틈 사이로 종이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그리곤 익숙한 말소리도 들려왔다.
"글씨가 참 예쁩니다. 경수 도련님."
[♥암호닉♥]
독
고러쥐
트로피카나
안알랴줌
비버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p
데크레센도입니다!
쌀쌀해진 날씨에 추워서 감기 걸리시진 않으셨죠?ㅠㅠ
저는 콜록콜록 거리고 있답니다.. 흑
전편에 꽤나 관심을 가져주셔서 저 진짜 무한감동 먹었어요!!!
제 사랑스런 독자님들 정말 the love♡
암호닉 신청해 주신 분들도 너무너무 고마워요~ 사랑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니까요?ㅎㅎㅎ
오늘도 재밌게 읽고 가..주시는 거죠? 그렇죠?ㅠㅠ 그렇다고 생각할게요 헝헝
다음편도 기대 많이 많이 해주시구 궁금한 거 질문 같은 거 댓글로 남겨주세요~ 친절히 답변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차, 암호닉은 계속 받습니다! 그럼 뿅!
(암호닉 색은 단어에 어울리는 색으로 했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