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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현성] 하얀 거짓말 10 | 인스티즈

이러케 예쁜 애인을 두어 늘 마음이 편치 않은 남우현씨

내가 널 사랑해, 어?

 

 

 

 

 

 

 

 

 

 

9편에서 엿같은 기분을 겪으셨는지요.........ㅎㅎㅎ;;;;;;

이번 편에서는 그럼 빡침이 극을 달할 지어니.......................

((((((((((((이라라))))))))))))))

 

 

 

 

 

 

 

 

BGM : 이상걸 - Piano Tears

 

 

 

 

 

 

 

 

 

 

 

 

하얀 거짓말

W. Irara

 

 

 

 

 

 

 

 

 

 

 

* * *

 

 

 

 

 

집에 돌아가지 않은 지가 꽤 오래전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네가 그렇게 나에게서 떠나가고 난 후,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성열이의 집으로 들어와 살고 있었다.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을 뿐더러, 아무도 없는 집은 아무래도 좀 외로웠으니까. 여기저기 너의 냄새가 베인 집은 어쩐지 불쾌했다.

 

대놓고 너를 농락했던 지난 화보 촬영. 내가 돌아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린 너의 울음소리 들으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괘씸하다는 생각이 컸으니까. 기껏 공을 들여 옆에 두었는데 다른 곳으로 튕겨져 나가버린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너를 쥐고 흔들었다. 아닌 듯 보이지만 심하게도 휘청거리던 너를 보면서 어쩌면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남우현의 옆으로 가 얼토당토않은 사랑을 운운하며 나를 비워내던 네가, 이렇게 눈살 한 번 찌푸려보지도 못하고 내 손에 놀아나는 게 너무 웃기고 우스웠다. 감독님께 선정적인 사진으로 골라 올려달라는 주문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내내 울고 당혹감에 빠질 네 얼굴 투성이었다. 왜 너의 우는 얼굴이 그렇게도 보고 싶었는지. 바닥으로 무너져 앉아 괴로워하는 모습이 왜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

 

명수는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환하게 켜져 있는 전등 불빛에 눈이 따가우면서 앞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도 같았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어제 새벽 걸려온 우현의 전화가 자꾸 신경이 쓰여서, 명수는 잠에 들 수 없었다.

 

 

 

 

 

 

-성규가 사라졌어요.

‘뭐?’

-성규가… 사라졌어요.

 

 

“그 말만 하고 끊을 건 뭐야, 미친 새끼.”

 

 

 

 

 

 

명백한 사실만을 뱉어놓고 전화를 끊어버린 우현을 상기시키며 명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현의 목소리가 계속 메아리처럼 귓가를 울려대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흐트러진 우현의 목소리가 너무 인상이 깊었던 거다. 그의 목소리가 계속 떠오르면서 성규의 얼굴을 함께 떠올렸다. 왜 사라졌을까? 아무 말도 없이. 누군가에게 묻는지도 모를 물음에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명수는 손을 뻗어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성규에게서 온 연락은 부재중 통화도, 짧은 문자 메시지 하나 조차도 없었다. 정말 사라진 거야? 기가 찬 마음에 명수는 콧방귀를 뀌었다.

 

네 주제에 어디로 도망을 가고 누구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는 건지.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돌연 사라질 정도로 내가 싫은 건지를 묻고 싶었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녀석에게 집착을 보이고 있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만들어낸 첫 번째 모델, 그리고 어쩌면 이성열보다 더 나를 사랑하던 첫 번째 남자. 그래서일까? 너는 내 것 이라는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욕심. 너는 죽을 때 까지 내 옆에 있어야 한다는 그런 사고 때문에 내가 너에게 이토록이나 집착을 보이는 걸까.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이 아니었다. 단순한 집착이었다. 집착만으로도 이런 답답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지가 궁금했다. 일종의 ‘보험’이라 생각했던 네가 사라졌다는 말에 이렇게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수가 있나. 동우에게 했던 스케줄을 함께 잡으라는 말은 다 증발을 해 버린 건가, 왜 동우는 성규를 잡아두지 않았나. 너를 탓하다 못해 다른 사람에게까지 탓을 돌렸다. 핸드폰을 들어 동우에게 문자를 넣었다.

 

 

 

 

 

 

[내일 스케줄 성규도 오지?]

[휴가에요. 본격적으로 활동 들어가기 전에 좀 쉬라고 대표님이 휴가 주셨어요. -매니저 동우]

 

 

 

 

 

 

곧바로 오는 동우의 답장을 보며 핸드폰을 저만치 던져버렸다. 자꾸만 나 때문에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휴가라고 했다. 휴가면 길지 않게 주어졌을 텐데, 이렇게 연락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건 대체 그 가녀린 몸 어디에서 나온 배짱인지. 문 밖에서 성열이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그저 성열이가 해주는 음식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음식이니까. 그런 생각뿐. 네가 사라졌다던 새벽은 지나가버리고 없었다.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행여나 지금, 내가 설마 네 걱정을 하고 있는 건지. 문득 들어오는 의문.

 

명수는 몸을 돌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숨이 막혔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얼굴을 덮어버린 베개에 뜨거운 숨이 퍼졌다. 내쉬어지기만 할 뿐, 들이마셔지지 않는 공기에 점점 몽롱한 기분이 끌려왔다. 성규를 향한 감정의 고찰. 저는 왜 이렇게 집착을 하고 욕심을 부리는 걸까. 이제 이쯤에서 성규는 놓아주는 게 옳은가. 그런 감정의 고민. 숨이 막히고 이제 곧 정신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방문이 열리고 성열이 들어왔다. 자기, 밥 먹어. 늘 그렇듯 애교 있는 성열의 말투. 그제야 명수는 지금 제가 머리에 담아야 할 사람은 성규가 아닌 성열이라는 걸 깨달았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직 뻐근한 목을 이쪽저쪽으로 돌리자 내 곁으로 쪼르르 달려와 아직 피곤한 거냐면서 어깨를 조물거리는 성열이가 느껴졌다. 괜찮다며 고개를 젓고 성열이를 끌어안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품에 폭 안겨 들어오는 성열이의 느낌에 다시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벅차게 반응하는 심장. 그에 나는 다시 한 번 내 사랑이 성열이라는 걸, 확인받았다. 부엌으로 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차려진 식탁 앞으로 앉았다. 뭘 이렇게 많이 했어? 내 물음에 성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로 답했다.

 

 

 

 

 

 

“자기 곧 있으면 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잖아. 먹고 힘내라고.”

“고마워.”

“내가 더 고맙지.”

“내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고마워?”

“자기가 내 자기해줘서, 그게 고맙지.”

“하여간 말은.”

 

 

 

 

 

 

간지러운 대답을 서슴지 않고 하는 성열이를 보면서 괜히 너와 비교를 해 보았다. 늘 수줍은 목소리로 사랑한다 말하던 너. 그런 너에게 나는 대답을 해준 적이 별로 없는 듯 했다. 당연한 거였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으니, 사랑한다는 말에 대답을 할 수 없던 거였지. 그런데 왜 사랑하지 않는 네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꼴은 볼 수가 없는 걸까. 새삼 내가 참 이기적인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얼른 먹어, 자기야. 성열의 재촉에 명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언제 먹어도 맛이 있는 성열의 요리였다. 맛있게 먹는 명수를 뿌듯한 얼굴로 보던 성열도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성열의 수저 위로 반찬을 놓아주는 명수의 행동에 성열은 익숙하다는 듯 살짝 웃으며 입으로 밥을 밀어 넣었다. 입을 오물거리며 밥을 먹는 성열을 보며 명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열아.”

“응?”

“김성규, 어떻게 하면 좋겠어?”

“뭐가?”

“아니, 김성규를 곁에 두면 지금처럼 너랑 함께 있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김성규랑 살아야 하잖아. 내가 김성규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냥 적당히 가지고 놀다 버려. 어차피 그럴 거였잖아.”

 

 

 

 

 

버리기는 이미 버렸다. 물론 내가 아닌, 네가 나를 버린 거지만. 흰 밥을 입에 넣고 씹으며 생각했다. 정말 그것만이 내게 내려진 답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심 놀라기도 했다. 성열이는 너를 일종의 ‘나의 장난감’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다른 사람이 보고 느끼기에도 그럴 정도로 내가 너에게 너무 심하게 했었나. 내 방식으로 너를 곁에 두었던 일이 너무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면, 너는 왜 진즉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성열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네 생각을 하는 건 너무 모순적인 일이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내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너를 떠나보내야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하필 네가 사라져버려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는 이때, 나는 이런 고뇌를 겪어야 하는지.

 

밥을 깨작거리는 명수를 보며 성열을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자기야, 맛없어? 성열의 물음에 눈을 크게 뜬 명수는 제 얼굴을 빤히 보고 있는 그와 눈을 맞췄다. 하얗고 작은 얼굴을 빼면 성규와 성열은 닮은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명수는 참 의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성규가 제 눈에 들었는지, 왜 성규를 곁에 두면서까지 모델 일을 가르치려 했었는지. 그게 과연 오롯이 명수와 성열, 저희들만을 위한 일이었는지. 머릿속의 모든 것이 뒤엉키면서 뒤죽박죽이 되고 있었다. 참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명수를 보며 성열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그래?”

“어?”

“자기 표정이 좀, 그래.”

“아니야.”

“김성규가 마음에 걸려서 그러는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성열이의 말에 흠칫, 어깨를 떨 수밖에 없었다. 긍정을 할 수도 부정을 할 수도 없어서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성열인 한참을 나를 짐짓 화가 난 얼굴로 보고만 있더니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알을 입으로 집어넣어 우물거리는 성열이를 보면서 나는 내 안의 고민을 살짝 털어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혼자 앓지 말고, 말해봐.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성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명수는 놀란 얼굴이었다. 저의 마음을 보고 있기라도 했던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명수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았다. 처음에 비해 무거워진 분위기에 성열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어쩌면 이 끝도 없는 굴레에 놓인 세 사람을 꺼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처음 말하는 저의 본심이었다. ‘성열아.’ 힘겹게 꺼낸 말의 첫마디. 성열은 괜찮다는 얼굴로 명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 놓았다. 너에게 갖고 있던 내 욕심과 집착,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 당치도 않은 너와 남우현에 대한 질투와 시기. 그리고 내 몹쓸 짓들로 인해 네가 사라져버린 걸지도 모른다는 내 말 못한 불안함까지, 전부 털어 놓았다. 성열인 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열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참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너와 남우현의 중간에 서서 뭔가 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기분은 어떻게 해서든 나를 따라왔으니까. 말이 없던 성열인 갑자기 웃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와 천천히 눈을 맞추며 성열인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하라고 한다 해서 해결 될 일이 아닌 거 같은데.”

“……….”

“자기가 스스로 김성규를 놓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렇겠지.”

“자기 말대로 정말 데려다 놓고 키우는 것, 그뿐인 줄 알았는데. 자기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봐?”

“……….”

“사람 마음이 본인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이해해.”

 

 

 

 

 

 

다시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기 시작하는 성열을 보며 명수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뱉었다. 진심을 토로함으로써 얻어지는 답 없이, 행여 성열과의 사이가 멀어져버리진 않았을까. 그것부터 걱정하는 명수였다. 어쩔 수 없는 ‘혼자만의 싸움’ 명수는 저 스스로 제가 벌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달력을 보며 김성규와 함께 잡혔던 사인회를 떠올렸다.

 

 

 

 

 

 

“……….”

 

 

 

 

 

 

어쩌면 오지 않을 지도 몰랐지만, 한 번 기대를 갖고 정말 매듭을 지어봐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 *

 

 

 

 

 

낮 동안 호텔 안에만 있던 성규는 점점 어둑하니 해가 저물어오자 호텔 밖으로 나왔다. 하나 둘 씩 켜지는 가로등과 네온사인. 그 반짝이는 것들 틈에 섞여 아직은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부산의 밤하늘은 서울보다는 높고 깨끗한 기분이었다. 호텔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 성규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비교적 서울보다는 적은 편이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길을 따라 걸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걷다보면 해운대 바닷가가 나타났다. 겨울에 찾은 해운대의 밤바다는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여러 아롱거리는 불빛들을 머금은 주황빛과 검은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냈다.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섞여 성규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다 특유의 비릿한 냄새마저도 성규에게는 치유로 다가왔다.

 

막상 휴가를 받고 떠나기로 마음을 먹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서 한참을 헤맸었다. 그러다 예전에 친구에게 들었던 ‘해운대의 밤바다’가 우현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무작정 짐을 챙겨 부산으로 내려왔다. 모든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은 챙기지 않았다. 현금과 옷가방. 그게 내가 가지고 온 전부였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부산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호텔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무 망설임 없이 낮잠에 빠지기도 하고, 이렇게 바닷가에 우두커니 서서 바다 위로 너를 그려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어수선한 생각이 참 많이 정리가 됐다. 어지럽게 나를 괴롭히던 형에 대한 기억들은 이미 한차례 정리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우상’― 형은 그렇게 정리를 했다. 길게 늘어 설명을 하자면 참 어려운 기억들이지만, 모든 것을 제쳐놓고 지금 이 순간 이 상태를 말하자면, 형에 대한 내 감정은 ‘우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새로운 꿈을 먼저 이룬 형에 대한 동경심 같은 거. 막연히 닮고 싶다는 생각이 어쩌면 사랑으로 비쳐 졌던 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다면 너는?

 

 

 

 

 

 

“……….”

 

 

 

 

 

 

…너는 아직 답이 없다.

 

생각을 정리해버리는 건, 어쩌면 성규에게 참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사사로운 감정들과 기억들을 다 정리해버리고, 오롯이 남아있는 성규 자신만의 감정과 마음을 찾아내려는 일은, 그 어떤 사람이 한다고 해도 어려운 일 일거다. 그 어려운 일을 성규는 혼자서 해 내려고 하고 있었다. 우현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성규의 눈을 가려버리고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던, 자잘한 기억들과 잔정들을 다 지워내고 나면 남는 게 무엇일까― 성규는 그게 궁금했던 거다. 궁금한 것을 떠나 우선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제 자신의 모든 것을 이제 우현에게 맡겨야 했으니까. 우현의 곁으로 가 함께 하겠다고 말을 뱉은 순간부터 저는 우현을 사랑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처절하게까지 생각을 정리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찰랑거리고 있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괜히 네 생각이 더 나고 그랬다. 쉴 새 없이 흔들거리던 나를 그저 바라봐주며 지치지 않게 옆에서 붙잡고 서주던. 나보다도 어쩌면 더 아플 너이면서 행여 내가 상처를 받을까 재촉조차 하지도 않았던 너. 그런 너에게 어쩌자고 나는 상처를 줬을까. 일이었다고 단호하게 잡아뗐어야 그나마 네가 안심이라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흔들리고 말았던 내 그날을 여과 없이 보여준 게 어쩌면 잘못일지도 모른다. 너를, 너의 입장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됐다. 나야 곁을 지켜주는 네가 있다지만, 너에겐 나 말고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 혼자 아프고 나 혼자 힘들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

 

성규는 조심스럽게 모래를 깔고 앉았다. 딱딱한 것도 같으면서 푹신한 느낌이 나쁘진 않았다. 정말 아름다운 경치였다. 두꺼운 패딩점퍼 안에 묻혀서 차가운 겨울 바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일은 다시 생각해 봐도 낭만적인 일이었으니까.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우현과 함께이지 못했다는 거. 겁쟁이 같고 미련에 끝이 없는 그는 이렇게 무작정 우현에게서 도망을 쳐버렸다. 사실은 현실을 버리고 싶었던 거였다. 잠시 현실을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었다. 불확실했던 우현과의 관계도 마저 버리지 못한 명수를 향한 감정도. 모든 걸 정리하고 정말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 곁으로 가고 싶어서였는데, 지금의 성규는 하염없이 우현을 그리워만 하고 있었다.

 

 

 

 

 

 

“…후우….”

 

 

 

 

 

 

앉아 있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각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곁에서 맴돌던 사람들이 사라질수록, 성규는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빠져들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깔끔하게 명수를 비워냈고, 앞으로 남은 약 일주일의 시간동안 우현에 대한 쓸데없는 감정들을 가지 치는 데에 써야했다. 우현을 향한 미안함, 어설픔, 불안함. 사랑하는 데에 방해를 할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을 없애는 과정이 필요했다. 너무 많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명수를 비워내면서 의지를 했던 사람이니만큼, 더 한 노력이 필요했다. 성규보다 더 먼저 성규를 사랑하고 있던 사람이기에, 그런 그의 사랑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알고 있기에. 성규는 과감하게 저를 믿고 우현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들을 모두 다 정리해내고 있었다.

 

이번 휴가가 끝이 나면 망설임 없이 너의 곁으로 갈 거라고 다짐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네 옆인 것 같았으니까. 지난날들 동안 너를 아프게 하고 다치게 했던 내 잘못을 사과하면서 너를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에게 사랑을 받았던 만큼 돌려주려 한다면 남은 시간도 너무 부족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너의 사랑. 그 엄청난 사랑을 나에게 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해야 했다. 그리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도, 앞으로 너만 사랑하겠다는 말도 해줘야 했다.

 

네가 이제껏 내게 해 주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끝이 없었다. 나에게 처음으로 네 마음을 보여줬을 때, 참고 참았던 말을 처음으로 뱉어 냈던 때. 그리고 친구하지 말자던 말과 함께 처음으로 맞춰 보았던 입술까지. 되짚어보니 하나하나 조심스럽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내가 모질게 굴고 밉게 너를 내치던 때에도 너는 늘 내 곁에서 나의 편이 되어줬었던 것 같다. 형의 바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체했던 나와는 달리, 늘 좋은 쪽으로 되돌리려 했던 너. 이제와 생각해보면 너의 행동들이 하나같이 다 옳았던 것들인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너를 나무랐던 건지. 하나하나 미안한 기억들뿐이었다.

 

성규는 무릎을 끌어 모으고 앉았다. 바닥에 손을 짚자 손안 가득 쥐어지는 모래가 있었다. 검은 하늘 위로 그려지는 우현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늘 웃어주던 그. 단 한 번도 힘든 기색 내비추지 않았던 그. 성규는 볼 위로 뜨겁게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우현아….”

 

 

 

 

 

 

한 번도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왜 나는 늘 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던 걸까. 형에게 사랑을 주던 버릇처럼 너에게 줄 수 도 있었을 텐데. 과감하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낯설었던 것도 있었다. 사랑을 주면 돌아오지 않던 형과는 달리, 내가 표현하면 표현하는 만큼 사랑을 돌려주는 게 눈에 보이던 너의 사랑 방식이. 형이 내게 했던 사랑표현― 사탕 발린 소리들이야 계속 듣다보니 너무 익숙해져 나중에는 정말 사랑인지 헷갈리기까지 했었는데, 너의 사랑 표현은 좀 달랐다. 처음 들어도, 아니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말들. ‘사랑해’ 이 한 마디가 그토록 설레고 가슴 간지러운 소리라는 걸 나는 너를 통해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었다.

 

변함없는 너의 사랑이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내 사랑은 너에 사랑에 비할 것이 못되었다. 너에게 흔들려 결국엔 무너지고 말았던 내 사랑을 돌이켜 보니 건질 것도 없었다. 끝없는 질투와 집착. 그리고 혼자 했던 사랑까지. 돌아보니 부끄러운 것들뿐이었다. 내 사랑이 문제가 되었던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악착같이 붙잡고 있으려 했던 것이 문제였겠지. 눈에 뭐가 쓰인 듯,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당시에는 내 사랑이 전부인 줄 알았다. 사랑 하나 때문에 이렇게 무너지게 될 줄 알았더라면, 네가 말했던 진즉에 내 사랑을 끝냈어야 했는데.

 

내 사랑이 깊다보니 너를 사랑하는 것도 힘에 겨웠다. 그렇게 미련한 사랑을, 또 미련하다고 알고 있었던 사랑을 왜 쉽게 놓지를 못했던 건지. 머리로만 형을 지우면 다일 줄 알았던 건지. 나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내 모든 아픔과 고통을 보듬고 더러운 모습까지 사랑해주던 너를 아프게 한 나는 죄인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형과 끝없이 흔들리던 내 자신을 못 이기고 울며 너에게 달려갔던 그 어느 날, 너는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과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눈을 하고서 나를 안아주었다. 너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었고 내 곁에 있기에 과분한 사람이다. 그걸 알지 못해 나는 너를 기다리게만 했던 걸까. 무엇보다 이렇게 소리 없이 사라진 나로 인해 너는 또 아파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갈까.”

 

 

 

 

 

 

일주일도 오래 비웠다고 생각했다. 휴가가 끝나면 형과 함께하는 팬사인회를 시작으로 또 쉴 새 없이 스케줄이 잡히겠지. 그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잘 마주치지도 못할 너에게 내 마음을 모두 털어 놓을 수는 있을지, 그런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할지. 그것도 걱정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너에게 내 사정을 말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동시에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고 사랑하는 지를 말해줘야 할 텐데. 걱정이 하나둘 씩 늘어가고 있었다. 내 상처를 감싸 안아준 너에게 이제는 내가 보답해야 하는 때가 아닌지. 나 때문에 숨을 쉬는 것만큼 아프고 다쳤을 네 가슴을 어루만져줘야 하는 때가 지금이지는 않은 지. 당장 너에게 전할 말이 있는 지금, 괜히 핸드폰을 두고 와버린 건가 싶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성규는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빠져나가버리는 모래 알갱이들. 과거는 그런 존재였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존재. 그러니까 그에 순응하고 보내주어야 하는 존재. 모래를 저만치 던지고 또 쥐어 던졌다. 고민하는 중이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 더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지.

 

 

 

 

 

 

“보고 싶다.”

 

 

 

 

 

 

자꾸 혼자 앉아있다 보니 네 생각이 간절해졌다. 네 따뜻한 품에 안겨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과거에 나는 너에게 친구의 감정으로 너를 대했었지만,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니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아직은 무리였다.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못난 것 같고, 못해준 것 같고. 부족한 부분들만 생각이 나서, 자꾸 과거에 얽매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생각이 나고 보고 싶고, 너에게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정말 내가 너를 사랑하려 하고 있어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 되면 확고해진 것도 같았지만 아직 확실하지 못한 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섣불리 돌아갔다가 다시 흐트러지고 말까봐.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찬바람이 점퍼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콧물이 나오려 할 때 즈음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 앉아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벌써 주위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나― 싶은 생각에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텅 빈 바다를 보고 너무 외로운 기분에 모래 위로 ‘남우현’하고 글씨를 새겨보았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래위로 새겨진 우현의 이름을 보며 성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야 우현의 소중함을 깨닫는 저는 참 바보가 아닌가 싶어서.

 

바닷가를 벗어나 호텔로 돌아오면서 고민을 하고 또 했다. 언제쯤 네 곁으로 가야 옳은지. 언제쯤이 가장 자연스럽게 네가 나를 받아들일지. 물론 갑자기 사라져 갑자기 나타난 사람인데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어색함 없이 너와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시작을 다시 하고 싶었다. 내 손가락에 끼워진 ‘내가 네게 선물한 반지’도 빼고, 우리 둘만의 커플링도 맞추고 싶었고, 수줍게 맞춰보았던 입술도 다시 맞춰보고 싶었다. 따뜻한 너의 품이 그리워지니까 전보다 더 네가 그리워졌다.

 

 

 

 

 

 

“내일 올라가야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네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를 보자마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넬 거라고 다짐했다. 아쉬운 바다를 뒤로 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마음이 따뜻하고 너에 대한 내 생각이 확실해진 지금, 뭐라도 행복하지 않은 게 없었다.

 

너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들은 쳐낼 것이 없었다. 내 안에서 지워버려야 할 것들이 아닌, 너에게 빌며 용서를 구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짧은 시간 안에 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너를 사랑하면서 해 나가도 늦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미안한 만큼 내가 더 사랑하면 되고, 너를 아프게 했던 만큼 내가 더 잘해주면 되는 거였다. 사랑이 끝나버린 사이가 아닌, 이제 시작일 사이니까. 뭐든 가능하지 않은 건 없었기에. 꽤 경쾌한 발걸음으로 호텔로 돌아갔다.

 

성규는 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가서 내일 서울로 올라갈 짐을 싸 놓을 생각이었다. 호텔 주차장을 가로질러 걸으며 오로지 우현 하나만 떠올렸다. 우현에게 해줘야 할 것들, 해주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 이것저것 행복한 상상 속에 갇힌 성규를 너무 급히 차가운 현실로 끄집어내버리는 누군가.

 

 

 

 

 

 

“……….”

 

 

 

 

 

 

너무 익숙한 차와 차체에 기댄 너무 익숙한 실루엣.

 

 

 

 

 

 

“어디 갔다 이제 와.”

“…혀, 형.”

“이야기 좀 하자.”

 

 

 

 

 

 

저를 기다리고 선 명수를 보며, 성규는 그 자리에 얼음이 되어 버렸다.

 

 

 

 

 

 

 

 

 

 

 

 

 

 

 

 

 

 

 

 

 

* * *

 

 

 

 

 

네가 사라진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동안 연락 비슷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나와 연락을 하는 게 힘이 든다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안부를 전해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잘 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밥은 잘 먹는지. 기본 적인 안부정도만이라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그렇게 사라져버리고 난 후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왜 네가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돌연 떠나버렸는지.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의미를 다 알아차릴 수 없는 쪽지 하나 남겨두고 이렇게 사라져버렸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참 많이 묻고 또 물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으니까. ‘고작 그 일 하나 때문에?’ 하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그 일 하나가 어쩌면 네가 나에게 실망을 하게 만들어버리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나보다는 네가 더 불안정한 상태였고, 아직은 너를 보듬고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너를 의심하고 외롭게 내버려두었다. 내 정신적인 충격, 그리고 너를 등져버렸던 섣부른 내 판단과 행동. ‘고작’ 그것 때문에 너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

 

 

 

 

 

 

아직도 네 경악에 찬 얼굴을 잊지 못했다. 치부를 들킨 기분에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너와 그의 사진을 내가 봐 버렸을 때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너를 죽을 때 까지 사랑하겠다고 해놓고 너의 마음하나 이해해주지 못한 내가 과연 너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해보았다. 절대로 너를 의심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제 겨우 나에게 기울기 시작한 네 마음인데, 내 욕심대로 섣부른 내 판단으로 너를 의심하고 몰아붙인 게 너를 나에게서 떠나가게 만들어 버린 건 아닌지. 그를 완전히 잊지 못한 상태로 나와 함께 살면서 수도 없이 내 눈치를 보고 나에게 맞추려 애를 쓰고. 그런 너를 알고 있었으면서 나는 내 마음대로 네가 내 것이 되었다 안심해버렸던 것은 아닌지. 이제 와서 네가 다시 김명수 그에게 돌아가겠다고 해도 나는 너를 붙잡을 면목조차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우현은 어두운 집을 혼자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글라스에 가득 담긴 술과 투명한 얼음. 얼음이 유리에 부딪혀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까지 모두가 외롭게만 느껴졌다. 천천히 술을 들이키는 그는 규칙적으로 시계를 보았다. 초침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시간에 우현은 힘겨운 한숨을 내뱉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성규를 다시 볼 수 있는지. 행여 이대로 영영 못 보는 건 아닌지. 그가 겪고 있는 불안감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너 없는 이 빈자리가 이렇게나 크게 느껴져, 과연 너 없이 내가 견딜 수 있을지. 이젠 그것도 궁금했다. 따지면 원래 나 혼자뿐이던 집이었고 생활이었는데, 너와 함께한 지난 두 달 동안 난 그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를 나 혼자 사랑하던 때와 지금은 조금 달랐다. 나에게로 살짝 기운 네 사랑을 봐 버렸는데 이대로 포기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서. …하긴, 나에겐 뭐든 너와 연관된 일이라면 쉬운 일이 없었다.

 

 

 

 

 

 

“……….”

 

 

 

 

 

 

집에서 혼자 나를 기다리던 네가,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을까. 더디게만 가는 시간과 홀로 외롭게 싸우며 문이 열리기를 바라고 또 바랐을까.

 

우현은 글라스를 탁자 위로 천천히 내려놓았다. 소파에 깊게 몸을 묻은 그는 눈을 감고 지끈거리는 머리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전에 비해 눈에 띠게 좋아진 저의 모습이었다. 성규가 없으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트라우마에 갇혀있던 제가 이렇게 소파에 앉아 여유로운 모습으로 술을 들이켜고 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일이었다. 전과 같았으면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성규를 그리며 잠을 청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차분한 마음으로 너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고 있었다.

 

 

 

 

 

 

“…아아….”

 

 

 

 

 

 

왼쪽 관자놀이에서 북을 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둥둥― 머리가 울리는 기분이 들어 손등으로 이마를 덮었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부터 줄곧 생각해 오던 문제였다. 친구 사이였을 때는 ‘너는 나를 얼마나 좋은 친구로 생각할까?’하는 문제. 나 홀로 너를 사랑하던 때는 ‘언제쯤 너는 나를 사랑으로 생각할까?’하는 문제. 네가 김명수에게 가야겠다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네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하는 문제. 그러다 결국 네가 내 사랑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너를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늘 문제는 끊이지를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덧, 네가 내 옆에 있었고. 아파하면서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늘 나 스스로에게 던졌던 문제의 답은 가까운 데에 있었는데, 나는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그래도 내 나름의 방법대로 너를 사랑해온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소모적인 면으로 볼 때는 그에 비해 내가 훨씬 불리했다. 그는 너에게 새로운 꿈이라는 걸 심어준 사람이었다. 늘 곁에서 머물러만 있던 나와 비교하면 내가 너무 못나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너로 인해 내가 꿈을 갖고, 성공을 가지면서도 왜 너를 돌아 볼 생각은 안했었는지가 가장 먼저 든 후회였다. 너는 혼자 외롭게 남아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등을 져버렸었나. 다른 사람을 찾아 그를 보고 있기도 했었다. 내 노래가 좋다는 너의 말과는 전혀 다른 행동. 나를 보지 않는 너의 행동에 나는 처음으로 후회라는 걸 해봤었다.

 

우현은 테이블 위의 잔을 들어올렸다. 전보다 맑아진 술을 입으로 흘려보내고 인상을 찌푸렸다. 모든 기회는 놓치면 소용이 없어지는 법이라는 걸, 우현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진즉에 성규를 잡아야 했고, 진즉에 사랑한다 말했어야 했는데 우현은 너무 늦게 했다. 기회는 지나가버렸고 그렇게 남은 상처는 이제 와서 모두 성규가 빌어야 할 것들이 되고 말았다. 성규는 모조리 저의 잘못으로만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우현의 잘못도 있었다. 저보다도 더 아파하는 성규를 보면서 함께 아픈 건 우현도 마찬가지였다. 기회를 놓쳐 둘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 그게 저라는 걸 알고 나니 견딜 수가 없어졌겠지.

 

심각하게 생각했다. 네가 내 곁에 있어, 과연 네가 행복하다고 느낄까―하는 그런 것들을. 시기가 겹쳐서인지, 아니면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너의 웃는 모습보다는 우는 모습만 봤던 것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김성규도 너 진심으로 사랑한대?’ 문득 호원이의 말이 귓가에 메아리쳤다. 대답을 듣지도, 그 전에 물어보지도 못했던 물음. 너무 당연한 물음인데 하지 못했던 물음. 나 사랑해? 기본적인 물음과 기본적인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었다.

 

 

 

 

 

 

“나… 진짜 한심했구나.”

 

 

 

 

 

 

테이블 위로 놓인 내 핸드폰. 그리고 그 옆으로 나란히 놓인 너의 핸드폰. 너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고민하다가 ‘동우’라는 매니저를 떠올렸다. 네 핸드폰을 집어 들고 그 사람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동우형’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오고, 나는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새벽인데도 아직 깨어있는지,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성규니?’ 내가 듣기에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사람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남우현입니다.”

-아, 네. 우현씨. 어쩐 일로 전화를….

“혹시 성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나 해서요.”

-…저… 그게.

“동우씨는 알고 계신가 보네요. 너무 급하게 확인 해 볼 게 있어서 그럽니다.”

 

 

 

 

 

 

답하기를 망설이는 동우의 반응에 우현은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갔다. 동우씨도 알고 계실 텐데요. 저 성규 애인입니다. 단호한 우현의 목소리에 동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불안하게 떨리는 동우의 목소리가 신호를 타고 넘어왔다. 굳은 얼굴로 괜찮으니 말해달라는 우현을 이기지 못하고 동우는 성규가 머물고 있는 숙소 주소를 알려주었다. 우현의 ‘감사합니다―’를 끝으로 끝난 통화에 우현을 서둘러 겉옷을 챙겨 입었다. 부산― 서울에서 부산은 꽤 먼 거리였고, 우현은 내일 오후 한시에 스케줄이 있었다. 채 열두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차키를 집어든 우현은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내가 계속해서 너를 사랑해도 되는지가 걸린 일이었다. 허겁지겁 주차장으로 내려와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 넣으면서도 계속되는 불안감은 멈추지 못했다.

 

 

 

 

 

 

“제발… 제발….”

 

 

 

 

 

 

자꾸만 그 사람이 말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맴 돌며 떠나지 않고 있었다. 더불어 어슴푸레 떠오르는 뭣 같은 상상도,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전화를 끊기 직전, 그가 했던 말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어떤 걸 보시더라도, 절대 성규를 우현씨 마음대로 판단하지 마세요.’

 

 

“씨발, 그게 뭔데!”

 

 

 

 

 

 

악에 받쳐 핸들을 손으로 내리 친 우현은 급히 차를 출발시켰다. 우현의 사랑이 걸려 있었다. 성규를 사랑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저 때문에 성규가 자꾸 아프기만 하는 것 같은 상황들의 나열 끝에 우현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토록 단단하던 믿음이 자꾸 흔들리고 있었다. 잡아줄 성규가 필요했고 믿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 우현은 계속해서 ‘제발’을 외치고 있었다.

 

재수 없게 남은 동우씨의 마지막 말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내 마음이 제 멋대로 돌아서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게 너를 등지려 하고 있었다. 어떤 방법도 좋다고, 계속해서 너를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내 울부짖음에 네가 가볍게 웃어주기만 해도 좋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지금의 남우현으로 붙잡아 두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발악과도 다를 게 없었다. 너를 사랑하기 위해 치는 발버둥― 그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난폭한 운전이었고, 만약 사고가 난다 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최대한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곡예를 했던 것 같았다. 부딪칠 뻔 한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사람을 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어두운 새벽 도로를 미친 듯이 달렸다. 너와의 끝으로 향해 가는지, 너와의 처음으로 향해 가는지. 그건 도착을 해봐야 결정이 나겠지.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는 정신없이 두시간 만에 달려왔던 것 같다. 헐떡이는 숨으로 호텔 주자창에 파킹을 하고 프론트 데스크에서 너의 이름을 확인하는 게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너의 이름을 부르는 나를 본 직원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708호입니다.”

“감사합니다.”

 

 

 

 

 

 

찝찝한 표정으로 네가 머물러있는 호수를 말해주는 직원의 얼굴을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맑은 소리를 내면서 문을 열어주고, 푹신한 카펫 바닥을 밟고 복도를 걸어가면서 왜 이렇게 갑자기 후회가 밀려드는지. 괜히 왔나, 돌아갈까― 이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708이라고 새겨진 문 앞에서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가볍게 노크를 세 번 하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는 문. 이번에는 벨을 눌렀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음에도 안에서는 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문을 한 번 더 두드리려던 찰나, 너무 갑작스럽게 문이 열렸고 나는 안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형, 정말…!”

“…김명수, 당신이 왜….”

“……….”

“……….”

“들어오지?”

 

 

 

 

 

 

너무 당당한 얼굴로 문을 열어주던 김명수 그 사람과, 그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던 너.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했을까. 끝? 혹은 처음?

 

 

 

 

 

 

“…우현아.”

“……….”

 

 

 

 

 

 

이미 반 이상 등을 돌려버린 내 가슴이 내린 결정은 아마도,

 

…끝.

 

 

 

 

 

 

 

 

 

 

 

 

 

 

 

 

 

[인피니트/현성] 하얀 거짓말 10 | 인스티즈

현성이들이 슬퍼서 우는 그대여.........................................................

가티 우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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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라라에요ㅠㅠㅠ 깊은 빡침이ㅠㅠㅠㅠㅠㅠ 겁나 슬프네요 ㅠㅠㅠ한편으로는 명수도 안타까운것도 있네요 ㅠㅡㄹ바로11편으로 꼬우
11년 전
독자2
오일에요...헐..........저 울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3
마르인데요ㅜㅜㅜㅜㅜㅜ아 진짜ㅜㅜㅜㅜ왜이래여ㅜㅜㅜㅜㅜㅜㅜㅜㅜ눈물나잖아여ㅠㅠㅠㅠㅠㅠ아이고 우리 현성이들 우짜노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4
?????????????감성이에요 아니 이게 무슨일이요 이노무 자식 김명수 네놈 짓이렸다!!!!!!!!!!!안돼 이러지마 왜그래 왜 그러는건데 ㅠㅠ 으헝 하지마 그러지만 우리 현성이들 ㅠㅠ 안되 ㅠㅠ 진짜 ㅠㅠ 왜 그러는데 ㅠㅠ 우현아 끝아니야 ㅠ 그러지마 ㅠㅠ제발
11년 전
독자5
ㅠㅠ전편암호닉신청한 린이에요!!
아아오해야..이건오해야ㅠㅠ
우현아 끝이라니...ㅠㅠ
다음편보러가야겠어요ㅠ
잠자긴틀렸네....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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