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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조금씩 통증이 가시자 쭈구렸던 다리를 펴고 일어서서 조심스럽게 차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머리 안 부딪히고 들어가기 성공-! 곤히 자고 있는 남태현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그냥 대리 태워 보낼걸- 하는 후회가 마구 들었다. 아, 매니저. 매니저한테 전화걸걸. 전에 혹시 몰라서 남태현 매니저 전화번호도 구해놨는데. 괜히 뒷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미웠다. 정확히 말하면 그 전화기의 주소록 안 매니저의 번호겠지만. 남태현이 몇 번 음냐음냐 대더니 몽롱하게 눈을 반쯤 떴다. 계속 보고 있다가 든 생각이지만 어쩌면 조금은 내가 아는 면에 비해서 남태현이 귀여운 면이 있는 것 같기두. 한참을 멍해있다가 남태현을 마구 흔들었다.

 

 

 

 

"아아아, 아무리 내가 디따 조아하는 강승융이래두 날 깨울 순 없쏘!!"

"지랄하지 말고 일어나라아아아세요오오오, 제바아아알"

 

 

 

 

남태현이 차에서 내려 대충 비틀비틀 대며 차에서 일어내길래 바로 팔을 잡아당겨 등에 업었다. 마른 체구에 생각보다 가볍다 해도 무거웠다. 술에 취해 더운 숨을 내뱉는 남태현에 나는 그대로 굳어서 꼼짝 없이 뚜벅뚜벅 로봇처럼 걸어가 문이 열리는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아, 너무 천천히 와서 오는 길에 숙소 주변 지키는 사생한테 찍혔겠다. 내일이면 사진 또 떠돌아다니겠지, 강남커플은 레알이니 뭐라니. 뭐, 남태현 입장에서는 좋을 지도 모르겠지만. 

 

 

 

 

 

남태현이 내 등에 얼굴을 부볐다. 목에 따듯한 숨이 불어왔다. 아, 목 제일 예민한데....

 

 

 

 

"강승유우웅. 대답해라-! 대답해라, 오바!"

"뭐요. 힘드니까 말 걸지 말아요. 지금 남태현 씨 드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말 걸지 마요."

"나 나 징짜징짜 승융 씨 조아해애- 아랐찌?? 알았냐구우. 대답하라고!!!"

"아, 네. 아, 네. 차암 고맙네요-"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해온 동성애자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는 남자는 나밖에 없을 거야, 그럼그럼. 남태현이 나에게 업힌 채로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움직이지마요! 수많은 바벨들을 들었었지만 남자를 이렇게 들어보기는 거의 처음인 나에게 술취해서 무거운 남태현은 크나큰 미션이었다.

 

 

 

 

 

남태현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부비부비 비볐다. 이것도 술 버릇이라면 술 버릇인 것 같았다. 뭐라 중얼중얼 거리는데 하두 웅얼웅얼 거려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 승융승융 거리는 건 들리는데 나머지는 모를 정도로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다리를 동동 구르고 있었다. 흔들리는 몸 때문에 내 몸까지 같이 휘청휘청 거렸다. 

 

 

 

 

 

남태현을 업은 상태에서 자세를 고치고 나서 엘레베이터를 겨우 올라타고 손잡이에 남태현 엉덩이를 살짝 걸쳤다. 느허- 입에서 처음 듣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이미 녹초가 되었지만 가벼워진 어깨에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유- 세상은 정말 살 만하다. 나는 힘들어 죽겠어서 겨우 내려놓고 땀을 닦는데 남태현은 엘레베이터 벽을 침대 삼아 음냐음냐- 하며 잘 자고 있었다. 내가 참, 어이가 없어서. 게이고 뭐고, 고백을 들은 거고 나발이고 지금은 너무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았다. 

 

 

 

 

 

16층입니다- 띵 하고 문이 열리고 쓰러지다시피 남태현을 끌고 나와 엎어졌다. 아구구- 이게 뭔 생고생이야. 그냥 주차장에서라도 매니저 불러서 보낼걸. 다시 힘이 빠져 몸에서 주룩 흘러내린 남태현을 등에 다시 들쳐 업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08170121. 띠릭- 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가니 반가운 내 집이 나를 반기었다. 남태현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신발을 벗겼다. 다행인 건, 남태현의 발냄새가 심하지 않았다는 거. 

 

 

 

 

으아, 이제 이걸 어쩐담. 코트를 벗겨야 하나. 양말도 벗겨야 하나?

 

 

 

 

“우아아... 요기가 승융씨 집잉가아-? 우어워어어어억”

 

 

 

 

하하...ㅎ..... 졩쟝ㅇ.... 조대따... 

 

 

 

 

 

***

 

 

 

 

한숨도 못 잤다. 왜? 남태현의 토사물을 치우고 그 더러운 것들이 묻은 내 사랑스러운 옷가지들과 신발들 빠느라, 그리고 혹시나 또 토할까 봐 두려워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거울을 보니 내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남태현, 저 새끼가 눈 뜨면 바로 집 보내고 드러누워 자야지.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남태현은 내 침대에서 아주 색색 잘 자고 있었다. 저 망할 놈. 이제 슬슬 뜰 때 쯤 된 것 같은데... 졸려라... 쟤가 빨리 가야 내가 눈 좀 붙이는데.

 

 

 

 

 

“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남태현이 이불로 제 몸을 가린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아, 맞다. 어젯밤에 쟤 옷도 빨았지. 다른 사람 옷은 한 번도 입혀준 적이 없어서 어떻게 입혀할 지 몰라서 대충 윗옷만 벗긴 채로 침대에 눕혀놓았는데 저런 반응을 보일 줄이야. 지가 나를 좋아한다고 내가 지를 이성으로 보는 줄 아나.

 

 

 

 

 

“내가 왜 여깄어요!! 승윤씨 집이에요? 나 옷은 왜 벗고 있어요-! 설마...”

 

 

 

 

 

나를 무슨 요물 보는 보는 남태현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지금 이 꼴 된 게 누구 때문인데. 

 

 

 

 

 

“기억안나요?”

“뭐요.”

“어제 술 처마셔놓고는 나한테 주정이란 주정은 다 부리고, 애교도 막 승융씨, 승융씨 하면서 애교 부리고. 내가 차로 데려다 주려니까 나는 매니저 번호를 몰라, 태현씨 신분증이라도 찾아봤는데 없어 그래서 직접 집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귀를 이렇게 터억 막고는 집 주소오? 몰라몰라몰라 아아아아아아 하고서는 차 태우니까 잠들더만. 아아아아주 색색 자길래 장난도 안 치고 조용히 갔는데. 그래놓고 깨우니까 그 누구도! 아무도 날 깨울 쑤 없써! 해놓고 나는 차 천장에 머리 2번이나 박았는데. 뭐 이래놓고. 기껏 무거운 몸 하나 더 이끌고 힘들어디질 뻔해서 중간에 놓고 가버릴까 하던거 그래도 강남커플 마누라락 내 집 데리고 오니까 신발장 앞에서 땀 좀 닦고 신발 벗겨주니까 토나 시원하게 하고. 옷 벗겨서 빨아주니까 설마아-? 설마아아-? 어이구, 아주 나 억울해서 못 살겠다.”

 

 

 

 

 

 

완벽했어, 남태현. 내가 생각해도 아주 속사포였다. 이대로만 하면 아주 래퍼 a.k.a. MINO도 이길 수도 있겠다. 내 속사포 랩에 그제야 남태현이 아... 하면서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죄송해요오... 그러면서 끝까지 자기 몸을 가린 이불은 놓치 않고 있었다. 그래도 남태현이 필름이 다 끊기고 기억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서로 어색해했으면 어쩔거야. 남태현은 몸에 이불을 둘둘둘둘 말고서는 나에게 펭귄처럼 걸어와 다가왔다. 오히려 남태현의 행동에 내가 당황해서 뒷걸음을 쳤다.

 

 

 

 

 

“뭐, 뭐. 머머멈...ㅁ... 뭐요”

“제 옷 주세요... 입고 갈 거....”

 

 

 

 

 

남태현이 이불 사이에서 손을 쭉 뻗어 나에게 내밀었다. 아아아, 맞다, 맞다. 빨랫대에서 남태현의 마른 옷을 꺼내 남태현에게 던져주었다. 나이스캐치. 내가 저거를 빠느라 고생 좀 많이 했지, 참. 남태현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꼬물꼬물대며 옷을 입었다. 뭐, 남자들끼리 속살 보는 게 어떻다고.. 가 아니라 저 새끼 나 좋아하는 게이지. 맞다. 

 

 

 

 

 

옷을 다 입은 남태현은 이불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남태현이 통 넓은 사각빤스 차림으로 빨랫대에서 자기 바지를 꺼내 입었다. 남태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괜히 흠칫했다.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거 나 진짜 좋아하는 거 맞아? 나 떠볼라고 괜히 술 취한 척 연기한 거는 아니겠지...?

 

 

 

 

 

 

“아, 그 이현웅 감독님이 제목 정했다던데.”

“제목이요?”

“우리 다음 영화요. 그 사극 영화, 제목.”

“원래 촬영 중에 정하지 않아요?”

“에.... 뭐, 미리 정하셨다니까.”

“뭔데요?”

“오매비망, 이라던데요?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하튼 그렇게 한다 하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남태현은 옷을 다 입었는지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근데 승윤씨 나, 싫어하지 않아요?”

“싫은 건 아닌데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래요. 아무 생각 없는데요? 왜요?”

 

 

 

 

 

순간 뜨끔했다. 이 남자가 나를 찔러보는 건가- 하고. 

 

 

 

 

 

“오매비망, 그 영화가 거의 동성애 영화인데 하신 걸 보니 대단하다 싶어서요.”

“그냥 호모 코드만 살짝 있는 건데요, 뭘.”

“에? 승윤 씨, 그거 모르셨구나. 그 영화 거의 승윤 씨하고 저하고의 로맨스 이야긴데?”

“에...? 그냥 이번 것보다 조금 센 거 아니었어요?"

“제가 남자 기생이고 승윤 씨가 양반집 자젠데, 모르셨구나. 키스신도 있는데?”

 

 

 

 

 

멘탈이 붕괴? 멘붕! 아닌데, 내가 저번에 읽어본 시나리오... 가 없구나, 안 읽어봤구나. 이현웅, 이 감독 개자식. 

 

 

 

 

멍 때리며 한참을 바닥만 보고 있자 남태현이 나에게 왔다.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남태현이 내 팔을 잡고 침대로 질질 끌었다. 엄마, 나 게이랑 같은 침대 누울 지도 몰라요! 

 

 

 

 

남태현이 내 어깨를 잡아 침대 위로 집어던졌다. 아까 자기가 덮고 허물처럼 거실 바닥에 풀어놓은 이불을 들고 와 내 위로 던졌다. 

 

 

 

 

“제가 실례를 많이 했는데, 어서 자세요. 내일 스케줄에서 강남에서 남강 되는 팬들에게 말도 안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어버버 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나를 상큼하게 무시한 채 남태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내 집 밖으로 나섰다. 아마 내가 그렇게 그리던 지 매니저겠지. 한참을 남태현이 나간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저거 보통 게이가 아닌 것 같은데. 남강은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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