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효는 차갑게 돌아섰다.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려 손을 붙잡는 손을 힘없이 빼낸 건 안재효였다. 추운 겨울 날씨 때문이었겠지만, 그 때에는 차갑게 돌아선 마음 때문에 손마저도 차가운 것 같았다. 핏기없는 손이 안쓰러웠다. 다 내 탓이었다, 안재효가 떠나가게 된 건.
맨 처음 안재효와 나는 그냥, 그 나잇대 남자애들이었다. 안재효가 좀 수다스러웠던 것만 빼면. 우리가 만날 때면, 항상 안재효는 함께 있지 못한 동안의 일을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다. 조금만 내가 표정관리를 안 하거나 저에게서 관심이 떨어지는 것 같다 싶으면 안절부절 못 해 하는 게 계집애같은 구석도 있었다. 뭐 그런 모습 하나하나들이 싫지는 않았다. 나는 안재효의 모든 것들이 다 좋았다. 그건 안재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린 서로를 너무 좋아했다. 지나치게 좋아했던 게 탈이라면 탈이었다.
작용이 크면 반작용마저도 크다 했던가, 지나친 사랑 덕에 우리는 지나치게 큰 권태기를 맞았다. 안재효는 차가워진 손으로 더 이상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안재효에 질려 그만 그를 놓아버렸다. 그 때 그를 한 번 더 잡았더라면 안재효는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지금의 우리는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었을까.
겨울에 이어 벚꽃이 만개한 따뜻한 봄마저도 지나고, 이제는 파슬파슬 봄비가 내리며 곧이어 다가올 장마를 예견하고 있다. 추워진 저녁 날씨가 쌀쌀했다. 꼭 마지막 날의 안재효마냥. 쌀쌀한 날씨에 내리는 비는 나의 처량함을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홀로 남은 소파 옆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갑자기 나타난 안재효를 무작정 끌어안으려 해봤자 남는 건 헛손질 뿐이었다.
아, 안재효가 보고 싶다. 가는 손목과 깡마른 다리에 입술을 파묻고 싶다. 나를 바라보던 커다란 눈, 멍한 표정과 다시 조우하고 싶다. 오늘은, 안재효가 너무도 보고싶다.
씨발, 그 때 죽이는 게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