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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밟히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온 신경이 쓰이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다른 놈이랑 붙어있으면 짜증도 나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우지호는 김유권을 좋아할 리가 없다.

#1

"지호야! 나 이거 좀 까줘!"

귀찮다. 무슨 애가 나이가 20살하고도 더더욱 먹었으면서 사탕 하나 제대로 못 까는가. 그래놓고 왜 매일 나한테 부탁하는 건지 참. 근데 안 까주자니 입 쭉 내밀고 '지호는 잘 까면서... 나는 못 까는데...' 라며 웅얼거릴 녀석의 모습이 아른거리니 안 까줄 수도 없다.

투덜대면서도 결국은 까주니 환하게 웃곤 입에 사탕을 넣었다.

"지호야 고마워!"

사내 놈 주제에 웃는 건 예쁜 것이 계집애같다. 계집 같은 웃음을 짓곤 민혁이 형한테 가서 안긴다. 저 못생긴 놈은 여기저기 아무한테나 잘 붙는 것 같다.

조금만 천천히 깔걸.

#2

오늘도 김유권은 길을 걷다가 넘어졌다. 겨울인지라 날도 추운데 주머니에 손 넣고 걸어다니다 넘어지는 일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나이도 스물 넘게 먹어놓고 하는 짓은 완전 애다. 넘어지고 나서는 몇 초간 앉아있는다. 그럴 땐 굳이 내가 가서 일으켜줘야한다. 일으켜주면 녀석은 또 계집애같은 미소를 짓는다. 못생긴 놈. 여튼 오늘도 일으키며 바보 같이 웃는 김유권을 보자니 답답하다.

가끔은 김유권이 바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3

오늘은 녹음을 했다. 태일이 형, 민혁이 형, 재효 형, 오이 새끼, 막내 놈까지도 웬일인지 상태도 좋고 몇 차례만 녹음을 하니 술술 풀렸다. 한 놈만 빼고 말이다. 바보 같은 김유권이 틀렸던 데를 틀리고, 틀리고 또 틀리는 것이다.

"야 씨 왜 못 하는데 그걸. 뭐하자는 거야 그게."

말까지 횡설수설하며 윽박을 질렀다. 답답해 머리를 한 번 쓸고 한숨을 한 번 푹 쉬었다. 그러곤 김유권을 보니 표정이 가관이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으면서도 본인 파트를 뚫어져라 주시하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저걸 달래줘야하나 싶어 발을 떼려는 찰나, 태일이 형이 김유권한테 가서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내가 가서 하려고 했는데, 소리질러서 미안하다고 하려고 했는데.

#4

내가 소리를 지른 후 김유권하고는 서먹서먹해졌다. 친구 사이가 서먹해졌을 뿐인데도 뭔가가 켕기고 아무것도 안 해도 짜증이 났다. 오늘도 박경 놈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기도 했다. 김유권이 문제는 아닐 건데 왜 김유권에게 소리를 지른 후부터 기분이 나쁜가.

"지, 지호야."

김유권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물론 항상 먼저 말을 걸어준 김유권이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이상하게 답하기가 들뜨고 설렜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퉁명한 '왜' 한 글자였다.

"나느은 지호랑 두, 둘이 있고 싶어서 그랬지... 답답했으면 미안해."

고개를 확 돌렸다. 얼굴이 갑자기 확 달아올랐다. 보다.

#5

'둘이 있고 싶어서'

이상하게 남자가 남자인 나에게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설렜다. 드디어 죽을 때가 왔나. 곡을 쓰려고 해도, 양치질을 해도, 밥을 먹으려고 해도 저 한 마디가 떠올랐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김유권이 한 저 말이 떠올랐다. 하루종일 김유권이 머리 속에서 아른거렸다. 보다.

#6

자꾸 생각나는 김유권때문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얼굴이라도 한 번 봐야 이게 풀릴 것 같아 말을 걸어볼 이유를 찾아보았다.

"야, 김유권."

뭐가 좋을 지 몰라 김유권이 나한테 매일 까달라 부탁하는 라임맛 츄파춥스를 건넸다. 말도 많이 생각해뒀다. 화내서 미안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 네가 매일 이거 먹길래 준비해봤다. 근데 나온 말이라곤 저 퉁명스러운 한 마디 뿐이었다.

"고마워 지호야!"

바보 같은 김유권은 저 츄파춥스 하나에도 바보 같이 웃었다. 덩달아 제 입꼬리도 근질근질해졌다. 애써 억누르곤 김유권의 손목을 잡았다.

"야, 김유권."

#7

매일 김유권에게 바보라고 칭하면서 나조차도 바보가 됐나보다. 할 말이 야, 김유권, 야 이거 밖에 없는 것인가.

"왜 지호야?"

웃으며 날 올려보는데 그게 참 예뻤다. 건장한 사내놈 주제에 왜 이렇게 계집애 내를 풍기고 다니는가. 남자놈들이 탐내진 않으려나.

"누군가 얼굴이 자꾸 생각나고, 나한테 해준 한마디가 자꾸 생각나고, 괜히 말 걸고 싶고 그런 거는 왜 그런 거냐?"

제가 겪었던 감정을 내뱉었다. 다만 그 누군가가 김유권이라고는 말을 못 했다. 평생 못 할 듯 하다.

김유권의 표정이 바뀌는 게 느껴졌다. 살짝 시무룩해보였다. 그러곤 톡 쏘듯 제게 말하곤 뒤돌아갔다.

"네가 그 누군가인 지 어떤 여자애인지 좋아하나보지."

내가, 우지호가 김유권을 좋아하는 건가.

 

=========

 

여기서 끝낼 지 더 쓸 지 고민중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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