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만 철벽 안 치는 남사친 썰
01
"야 너 진짜 구준회랑 안 사귀는거 맞아?"
켁. 열심히 밥을 퍼먹던 나는 목에 밥알이 걸리는 바람에 숟가락질을 멈추고 기침을 터뜨렸다. 괴롭게 한참을 쿨럭거리다 간신히 진정이 돼 천천히 숨을 고르며 앞에 앉은 친구를 노려봤다. 이런 망할것..
"아..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너 그 질문 몇 번째인지 알아?"
"그니까! 납득이 안 돼서 그런다!"
왜 갑자기 발끈하고 난리람.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국을 떠먹었다. 그 놈의 사귀냐 안 사귀냐 소리.. 이젠 너무 질려서 신물이 날 정도다.
"진작에 설명 했잖아. 구준회랑은 원래부터 친했다고."
"그래. 어릴적부터 놀았다고 했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너만 여자취급 해주는게.."
"걘 나 여자라고 생각 안 함"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구준회 너 여자취급 제대로 해주고 있어."
ㅇㅅㅇ
그 말이야 말로 납득이 안 되는뎁쇼..?
떫은 내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었는지 친구가 진짜, 너만 모르는거야 멍청아. 하고 핀잔을 준다. 아니.. 진심으로 걘 날 여자라고 생각 안 하는데?
"처음엔 낯가림 심하고 좀 철벽치는 앤가 보구나, 너처럼 친해지면 되겠지 했는데 친해지긴 개뿔 2년 통틀어 인사 한 번 해본 게 끝이야. 말이 돼?"
"음..그건 걔가 좀 싹퉁머리가 없어ㅅ.."
"넌 조용히 해봐. 유일하게 같이 다니는 여자가 너 뿐이고 너도 걔 말곤 딴 남자애랑 같이 안 놀잖아. 근데 넌 딱히 철벽녀는 아니거든. 근데 왜 구준회 이외의 남사친이 없느냐 하면,"
"..하면?"
"구준회가 다~ 차단해서 그런거야. 네가 딴 남자애랑 좀 가까워질라 치면 항상 걔가 불쑥 나타나서 너 데려가고 방해하고 그런단말야. 넌 눈치가 빵점이라 몰랐겠지만."
눈치 빵점이라니. 내가 얼마나 센스 넘치고 촉 좋은 여자인데. 하며 반박하고 싶지만 구준회가 방해를 했다니, 전혀 느끼지 못했던 점이다. 그래서 차마 뭐라 따질 수가 없었다. 진짜 그랬단 말이야?
"본인 철벽도 모자라 네 철벽까지 대신 쳐주는데 이게 꼭 여친 관리하는 남친 같다고!"
나는 또 다시 흥분하기 시작하는 친구를 내버려두고 식어버린 반찬을 집어먹었다. 그리곤 멍하니 우물거리고 있는데 친구의 어깨 너머로, 우리와 좀 떨어진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있는 구준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 반찬을 입에 우겨넣었다.
준회와는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이웃이었고 초등학교 6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짝꿍도 여러번 하다보니 저절로 친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좀 적극적으로 준회를 따라다니긴 했지만.
중학교 때는 우리 서로 여중 남중을 가게 돼 떨어져야 했는데, 등하교를 같은 버스를 타고 하게 되면서 잠깐이지만 매일같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고 있었으니 학교가 다른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연락도 매일같이 했고.
그러다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오게 됐는데 운이 좋게도 둘이 같은 데로 올 수 있었다.
집에서도 가깝고 중학교 때 친구들도 꽤 많이 있어서 참 만족스러웠었는데
'너 구준회랑 무슨 사이야?'
'준회랑 사귀니?'
'있잖아, 준회랑 너 말이야..'
등등등.. 수많은 질문 공세에 난생 처음으로 구준회와 떨어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처음엔 우리의 관계가 이상해 보인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점차 깨달은 게 있는데 정리하자면
첫번째 문제는 구준회가 우리 학교에서 나름 킹카라는 것.
두번째 문제는 구준회가 어마무시한 철벽남이라는 것.
세번째 문제는 그런 구준회가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여자애가, 스킨십도 하는 사이인 여자애가 있다는 것.
네번째 문제는 그 여자애가 나라는 것..
차마 준회에게 다가가질 못한 애들은 모조리 다 나에게 와서 준회와의 관계를 캐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상황에 시달리던 나는 결국 입학하고 한 달이 지나자 몸살 때문에 쓰러지는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했고 참다못한 나는 준회에게 새 여사친을 만들어주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다 실패한 끝에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해탈의 경지에 오르게 된 거다.
"너랑은 그렇게 친해졌는데 다른 여자애랑은 아예 말도 안 섞는게 이상하지 않아?"
"......"
"그렇다고 걔가 뭐 여친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오직 너랑만 붙어있잖아. 너 말고 딴 여자한텐 관심없다 이거 아니겠어?"
"또 오바한다.."
"너도 좀 의심해봐. 정말 온리 친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게 너 혼자일 수도 있잖아. 구준회는 뭔 생각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밥이나 얼른 먹어. 다 식었겠다."
"나같음 그렇게 붙어있다 보면 없던 애정도 생기겠다. 게다가 구준회가 좀 잘생겼니?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고 설렐만 하잖아."
친구는 드디어 조잘대던 입을 멈추고 남은 급식을 와구와구 입에 털어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잔반을 젓가락으로 끼적대며 친구가 한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았다. 구준회가 날 여자로 생각한다고? 나한테 연애감정 같은 걸 느낀다는 소리잖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된다. 그냥 내가 제일 편하니까 그러는거지. 다른 뜻은 없을거야. 그리고 나 또한 구준회를 남자로 본다거나 설렘을 느낀다거나 그런 거 없었고..
"ㅇㅇㅇ, 멍하니 뭐 해."
"어?"
"다 먹었으면 그만 가자."
한참 구준회와의 문제 아닌 문제를 생각하다 친구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아 정신없어, 괜히 혼란스러워지기만 한 것 같아. 그냥 잊어버리자 마음먹으며 식기를 반납하러 가려는데 무심코 아까 전 구준회의 자리로 눈길이 향했다. 이미 나갔을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여전히 앉아있는 교복무리. 그리고 그 틈에서 날 바라보고 있는, 구준회.
눈이 마주치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멍청히 굳어서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옅게 미소를 지으며 먼저 고개를 돌린다. 평소와 다름없는 눈빛과 표정이었다.
"이상해.."
평소와 다른 건, 구준회가 아닌 '나'였다.
어째서 그 눈빛에 심장이 멎는줄 알았다고 생각했는지.
어째서 그 웃음에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는지.
친구에게 괜한 소리를 들어 그냥 잠시 싱숭생숭한 것 뿐이라고 마음을 달랬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 구준회한테 설렌거야..?
"
* * *
"비 온다."
"아, 우산 없는데!"
"망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던 나는 소란스러워진 교실 분위기에 이어폰을 빼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창 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하필 야자 끝날 시간에 비가 와. 우산을 안 챙긴 것을 생각하고 인상을 찡그리며 어떡할까 고민하는데 끝나는 종이 쳤다. 일단 짐을 마저 챙긴 뒤 부산스럽게 교실을 빠져나가는 아이들 틈에 끼어 복도로 나오니 구준회가 성큼 다가와 내 팔을 잡는다.
"우산 없지?"
우리는 언제나 등하교를 같이 했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등장은 절대 당황할 만한 게 아니었다. 다행히도, 아까 점심때처럼 심장이 쿵 한다거나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역시 단순히 착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안도하며 그의 질문에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넌 우산 있어?
"혹시나 해서 두 개 챙겼어. 이거 너 써."
그가 쥐고있던 까만 우산과 노란 우산 중 노란색 접이식 우산을 내게 건넸다.
난 역시 네가 최고라며 감격스럽게 그걸 받아들고 준회와 같이 학교를 나섰다. 봐라, 친구야. 구준회가 나한테 흑심이 있었다면 나한테 우산을 주지 않았을거라고. 한 우산을 둘이서 같이 밀착해서 쓰고 갈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순수하게! 양심적으로! 남은 우산을 내게 건넸다는건 얘는 평소에 그냥 나한테 호의를 베풀 뿐인거야. 친구니까!
"또 정신 놓고 다니지, 너."
으억?! 나는 갑자기 뒤에서 확 잡아당기는 힘에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놀란 마음을 달래며 구준회를 돌아보니 인상을 팍 쓰면서 날 다시 한 번 자기 곁으로 끌어당긴다. ㅁ..뭐뭐야 갑자기???
"어두운데다 비도 오는데 그렇게 멍하니 다닐래? 사고 당하려고?"
멍하니 준회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보도블럭 끝에 와 있는 내 몸이었다. 한 번 생각에 잠기면 옆에서 누가 넘어져도 모르고 땅이 꺼져도 모르는 나였기에 종종 이런 경우가 있었다. 그 때마다 옆에 있던 구준회한테 잔소리 폭격을 당했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걸음질로 구준회가 서 있는 데까지 이동했다. 그리곤 우산을 푹 아래로 눌러쓰며 구준회의 무시무시한 째림을 애써 외면했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저 놈이 뭘 노려보고 있으면
정말 지릴 정도로 무섭다.
"제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 멍때리지 말고."
"넴.."
"대답은 잘 하지."
비는 다행히 얼마 안 가 그쳤다. 우산 때문에 나란히 걸을 수 없었던 우리는 우산을 접자마자 자연스레 서로의 옆에서 걸었다. 나는 우산 손잡이에 달린 끈을 붙잡고 살랑살랑 앞 뒤로 흔들며 손장난을 하다가 아까 전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 나 구준회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구준회가 나를 바라보며 왜? 한다.
"아까 내 친구가 너랑 나랑 사귀냐고 또 물어봤거든."
"그래?"
"너가 나 말곤 딴 여자랑 안 노니까 자꾸 애들이 이상한 오해 하잖아."
"내가 너 말고 딴 여자애랑 같이 다녔으면 좋겠어?"
..어?
구준회의 질문에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입을 우물거리며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 뭐, 철벽 안 치고 어느정도 어울리면 좋긴 하겠지. 그럼 더 이상 너랑 나랑 사귀느냐 그런 질문 안 받을거고.
"..나쁠 건 없잖아."
중얼거리듯 그 말을 내뱉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집 앞이다. 나와 눈을 한참동안이나 맞추고 있던 구준회는 살짝 웃으며 내 손에 들린 우산을 가져갔다. 우산 고마워, 하고 작게 인사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가."
"응. 내일 봐."
"일찍 자."
구준회는 항상 내가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마당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구준회를 돌아봤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여태껏 준회를 돌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뭔가 오늘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서 있는 구준회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난 그 어둠에 가려진 녀석의 형체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넨 뒤 냉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꽁꽁 언 얼굴에 따뜻한 기운이 닿았다. 한순간 긴장이 탁 풀렸다.
"비 오던데 안 젖었네? 어떻게 왔어?"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니 엄마가 서둘러 나왔다. 준회가 우산을 빌려줬다 얘기하니 다행이라며 웃는다. 데리러 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잘 됐네, 역시 우리 준회.
"나 씻을게."
구준회찬양론자답게 엄마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구준회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준회랑 사귀냐 안 사귀냐 만큼 익숙하고 질리는 말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얼른 방에 들어가서 가방 정리를 하고, 가볍게 샤워를 마친 뒤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피곤했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잠들려던 나는 자꾸만 떠오르는 구준회 생각에 결국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괜히 카톡을 켜서 구준회 프로필을 살폈다. 나와 같이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 놓은 걸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그냥 다시 베개 위로 얼굴을 묻었다.
"난 구준회 안 좋아하는데."
구준회도 나 안 좋아하고.
근데 아까 왜 구준회가 한 질문에 당황한거지? 걔가 다른 여자애랑도 놀았음 좋겠다 생각했었잖아. 근데 왜 대답하길 망설인거야?
"안 좋아하는데.."
안 좋아하는데. 분명히.
오타 지적해주시면 감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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