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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렸다, 펄펄. 10시간을 꼬박 달린 마차가 멈춰 서더니 마부는 말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근처 마을에서 하룻밤 묵고 가길 제안한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서 발목이 묶이다니, 나는 모자를 눌러쓰며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묵을 곳을 살피는 것도 일이거니와,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내게 좋을 까닭이 없었다.
얼마 안 가 멀리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불빛 몇 점이 수놓인 꽤 작은 마을이었다. 마차에서 내리니 바람은 더욱 거세게 느껴진다. 폭풍이 불어닥치려나 보다. 마부는 큰일이라는 듯 내 눈치를 몇 번씩 살피더니 밤사이 눈이 얼면 마차를 끄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등 며칠 밤은 이 곳 여관에서 보내야겠다는 등 내가 향하는 곳의 거리는 너무 험하다는 등의 사족을 연달아 붙이며 내일 동이 트면 이만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 묻는 것인데 난 한 손으론 모자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 옷깃을 여미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위해, 그럼 이만 헤어지자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차에 오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혼자라는 것을 되새겼지만, 이제야 비로소 혼자가 된 것 같다. 외지인으로서 걷는 한 발짝 한 발짝에서 결의를 다지려 애쓴다.
마을을 아무리 누벼보지만, 여관이라 할만한 곳은 마땅히 없었다. 하긴, 이런 외진 곳에 누가 들른다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오래돼 보이는 선술집이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난 이곳 문을 열었다. 선술집안엔 좋지 않은 날씨가, 밤늦은 시간이 말해주듯 술 마시는 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난 그를 말 벗 삼아 술잔을 비웠다. 그는 이 마을의 토박이였으며 내가 외지인이란 것을 단숨에 알아보았다. 덕분에 난 그에 대한 경계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술을 마시면 몽롱한 기운이 나를 감싸는데 난 응어리진 마음을 부여잡고 나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한다. 난 꽤 먼 곳에서 왔다고, 혹시 마을 가까이의 대저택을 아느냐고, 난 그곳을 향하는 중이었다고. 내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지는 않았다. 이는 내가 어릴 적부터 그에 훈련돼왔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은 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를 이해한다는 듯 쉬이 내 말동무가 되어준다. 그리고 대저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인은 손님을 알아보곤 익숙하단 듯 술과 술잔을 꺼낸다. 그리고 아직 매듭짓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 아무튼 대저택은 흉흉한 곳이에요. 그곳으로 갈 생각은 말아요. "
노인의 단호한 어조에 내가 애써 고개를 끄덕인다.
막 들어선 객은 내 옆에 자리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앳된 소년에 가까웠다. 이야기 소재에 흥미를 느낀 건지, 처음 보는 외지인에 호기심이 인 것인지 그는 한참 동안 끈덕지게 나를 보는듯했다. 그리고 술잔을 채운 뒤에야 노인에게 나의 신분을 묻는 것이다. 외지인이라고만 들었소, 노인의 대답을 듣고 그가 술잔을 비운다.
" 외지인이 대저택을 궁금해한다라. "
" ... "
" 신기하네요. 사실 이 마을 사람들은 다 그곳에 경외심을 품고 살죠. 금방이라도 금이 떨어질 것처럼 화려하거든요. 아무도 실내를 보지 못했다곤 하지만, 금장을 한 고급품들과 반짝이는 보석들이 가득할 거예요. "
그의 말이 끝나고 그는 이제 내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 나를 향해 자세를 고친다. 외지인인 내가 대저택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가 궁금하겠지.
술기운이 올라온다. 난 나의 언더락잔을 기울이며 눈을 내리 감고 술기운을 참아낸다. 어떤 핑계를 대야 하려나.
" 나쁜 소문도 많다고 하던데. "
난 말을 돌려야겠다 생각하며 눈을 지그시 뜬다. 그리고 그에게 눈길을 준다. 눈 맞춤이 이어지길 한참, 그가 코를 찡긋거리곤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뿐인듯 보였다. 내가 저를 경계한다는 것을, 나의 속을 감추려 한단 것을 들킨 걸까 민망했다. 아무 대꾸도 없는 그에게 내가 왜 웃는 것이냐 형식적인 물음을 하자 그는 미소를 머금곤 내 귀에 대고 말을 잇는다.
" 아름다운 분께 소문을 두려워한다고 말하기가 싫어서요. "
그의 대답에 표정을 굳히자 그는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소년처럼 어깨를 으쓱대며 또 웃어 보인다. 그래도 언젠가 그곳을 차지할 거예요, 그가 결연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꼭 여섯 살 난 어린애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그는 비웃는 것이냐며 입을 샐쭉거리며 서운해한다.
달아오르는 술기운, 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는 분위기에 나는 오늘 하루를 놓고 싶어진다. 모든 것을 잊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 기억에 담진 않았지만.
..
" 외지인이면 묵을 곳이 없겠네요? "
어떤 맥락에서 그가 던진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 의미 없이 툭 뱉은 말일지도 모르지.
일순간의 감정으로 난 그와 입을 맞춘다.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는 것을 느낀다. 유난히 가시 돋친 외로움을 이기적이게나마 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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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야기가 이상해도ㅠㅠ 너그럽게 봐주세요..
어쨌든 이어집니다,,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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