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열 본부장님 01 (부제: 잔소리)
"딸~ 얼른 일어나! 여덟시 반이야"
얼마나 꿈을 꿀게 없었으면 엄마가 나오는 꿈을 다 꿨대. 나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괴롭히는 직장 때문에 내 잠자리도 방해를 받을 줄 몰랐다.
출근 시간에 맞춰서 깨우는 엄마 꿈은 정말 내 손에 꼽을 수 있는 악몽 중 단연 최악일 것이다.
상사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잔소리가 안 봐도 쏟아질 것이며,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박본부장이다.
틈만 나면 곁눈질에 1분에 한 번씩 오피스톡까지 선사해주시는 또라이다. 정말 한마디로 또라이에 싸가지.
다른 직원들한테는 존댓말을 꼬박꼬박 쓰면서 나한테만 반말을 섞어 쓴다. 처음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겠거니, 했는데 나보다 1살이나 어렸다.
다 큰 어른이 돼서 나보다 한 살 어린놈한테 반말을 듣고 있는 내 신세도 참.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릴 때 공부나 더 열심히 해 놓을걸.
박본부장이 정말 치가 떨리도록 짜증나는 이유는 나보다 어려서라는 것도 있지만, 아마 제일 큰 이유는 완벽해서랄까?
우리 팀장님이랑 부장님보다도 나이가 훨씬 어린 박찬열이 본부장이 된 이유는 하나다. 회장님 아들이라서.
그래서 그런지 새파랗게 어린 박본부장님을 보면 팀장님이던 부장님이던 항상 꾸벅꾸벅, 박찬열이 하자는 대로.
거기다가 못생겼으면 몰라. 차라리 그러면 짜증이 덜났을 텐데 정말 더럽게 잘생겼다. 더럽게.
처음에 회사에 입학했을 때는 본부장님 얼굴을 보고 친구들한테 자랑까지 했다. 회사 행복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 그땐 그랬지.
이제는 얼굴만 봐도 확 거품 물고 쓰러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일요일........나 일요일에 술 마셨는데. 그제야 생각이 났다.
내일 출근하는 날이라 안된다는 나의 말을 듣고도 괜찮다며 함께 박본부장 뒷담을 하자는 꼬드김에 넘어갔었고
어제 분명 오세훈이랑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해가 뜰 때까지 마셨다.
미쳤지 정말 무슨 생각에서 그런지 모르겠다.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다 보니까 오늘은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이다.
그것도 출근 시간을 훨씬 넘긴 월요일.
본인 사무실에서의 곁눈질은 밀착 감시로, 1분 간격으로 오던 오피스톡은 30초 간격으로 날 괴롭힐게 뻔하다.
정말 이 사람 하나 때문에 내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이는 것 같다.
25년 동안 꼬박꼬박 아침밥을 챙겨 먹던 내가 엄마의 끈질긴 부탁 아닌 부탁에도 불구하고 거르고 뛰쳐나와야만 했다. 시간과 박본부장의 고나리는 비례하니까.
중, 고등학교 때 계주였던 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데에 도움이 될 줄이야. 영하 7도의 추운 날씨 속에서 땀을 내며 열심히 뛰다가 구두 굽이 뚝 하고 부러져버렸다.
젠장. 가뜩이나 늦었는데 구두굽까지 부러지면 어쩌라는 건지. 구두를 보고 한동안 멍을 때리고 있다가 다시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순간적인 생존 본능에 의해 구두를 벗고 달렸다. 생존을 갈망하는 내 모습이 가여웠는지 가던 버스도 멈춰줬다.
비틀대면서 앉아서 생각하니 내 꼴이 보통 웃긴 게 아니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을 둘러보니 모두 웬 도시에 야생마가 있나 하는 표정들이었다.
내 사정을 알면 너네들은 그러면 안 돼.
회사 앞에서는 차마 발 벗고 뛸 수가 없어 어기적 어기적 걸어갔다. 걸어갔다기보다는 기어갔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렇게 겨우겨우 9시에 맞춰서 들어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불편하게 걸어가니 모두들 쓱 쳐다보더니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내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이 와중에 오세훈만 날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본부장님 사무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그렇지.
이제 와장창 깨질 일만 남았겠구나.
신발을 질질 끌면서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내가 그렇게 보기 싫어하던 박 본부장이 내 앞에 앉아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잔소리를 해줄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아무 말이 없다.
그냥 그렇게 조용히 있어줬으면 했다.
정적 속에 오분이 지나고 불행히도 그때야 박 본부장이 내게 할 말 없느냐면서 물어왔다.
없어요. 존나 없거든요?
내가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잔소리 대상이 될 걸 아는데 여기서 입을 여는 게 바보지. 하면서도 구구절절 저 싸가지한테 할 사과의 말을 지어내고 있었다.
제가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서 형식적인 사과를 늘어놓았다.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를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를 하려던 찰나 박 본부장이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
하며 내가 하던 말을 자르고 내 '대사'를 낚아챘다.
. 이걸 시작으로 형식적이고 매번 똑같은 사과는 필요 없다, 상사들은 뭐냐, 우리 회사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부터
내 지원서 내용까지 읊어가면서 별의별이야기를 다 한다.
본부장님은 어떻게 잔소리를 이렇게 잘하시는지 모르겠다.
날마다 새로이 발전하는 싸가지의 유쾌한 고나리가 이제는 경이롭게 느껴질 뿐이다.
듣는 둥 마는 둥 말 끝마다네를 연신 외쳐대다가 끝났는지 빨리 나가라고 한다.
네, 빨리 꺼져드리죠 뭐.
부러진 구두를 질질 끌면서 나가고 있는데 박 본부장이 뜬금없이 발 사이즈가 몇이냐고 물어봤다.
마음 같아서는 신발 한 짝을 던져주고 오고 싶었지만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230이라고 말했다.
설마 하다 하다 잔소리할게 없어서 사람 발 사이즈 가지고 뭐라 하겠어?
그리고 내 예상은 완전히 빗겨 나갔다. 내 대답에 또 얘기를 이어나갔다.
정신 차려 상대는 박찬열이야ㅎ.........
뭐래더라.....?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 회사에 힘 쓸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면서 그래가지고 일을 똑바로 할 수 있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댔다.
아니 그러면 지원서에 발 사이즈 아예 기입하라고 하시던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이렇듯 황당한 박 본부장의 고나리는 이제 나에게 일상이 되었지만 아침부터 힘을 다 빼서인지 그냥 오늘 기분이 재수가 없는 건지 축 처졌다.
박찬열 때문에 기분 잡쳤어.
모니터 배경화면만 멍하니 쳐다보다 문득 내 옆자리에 오세훈이 멀쩡히 앉아있는 게 보였다.
아니.... 술도 똑같이 마시고 집도 나랑 가까운 오세훈은 이렇게 멀쩡하게 왔는데.
꼴이 엉망진창이 된 나를 보더니 위로한답시고 직원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직원 휴게실은 나랑 오세훈의 피신처이다. 정확히 말하면 박찬열의 따가운 눈초리에서부터의 피신처. 그리고 항상 박찬열을 까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본부장님을 '싸가지'라고 부른다. 차마 대놓고 '박찬열'이라고 할 수 없어서 그런 거다.
여느 때와 같이 싸가지가 나한테 했던 만행들을 모두 오세훈한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오세훈은 내 얘기를 들어주면서 내가 당한 게 웃긴지 눈치 없이 웃다가 한대씩 맞고는 했다. 하여튼 눈치라고는 1도 없는 새끼.
말하다 보니까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언성을 높이면서 '그래서 그 싸가지가 ...!' 하는데 휴게실 문이 열렸다.
박찬열에 의해서.
당황한 나의 눈은 오세훈을 향하게 되었고 오세훈의 당황한 눈은 나를 향했다.
그리고는 둘 다 본부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도망 나와 버렸다.
오세훈이랑 둘이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앞으로는 박 본부장 욕을 해도, 좀 더 조심하기로 했다.
안 하고는 못 사니까. ^^
잘못한 것도 많으니까 가만히 업무나 해야겠다 싶어서 문서파일을 키는데 렉이 걸린다. 얼마 안 된 컴퓨터라서 문서 하나 연다고 느려지진 않을 텐데.
이런저런 이유를 다 따져보다가 한 가지 답을 얻어냈다.
분명 박본부장 그 새끼다.
이놈의 오피스톡을 지워버리던가 해야지.
본부장님은 손에 모터가 달리셨나 보다. 30초에 한 개에서 거의 15초에 한 개로 기록을 단축하면서까지 나를 괴롭혔다.
[ 김사원 ]
[ 회사를 일하러 오지 연애하러 옵니까? ]
[ 그 싸가지는 또 누굽니까 ? ]
[ 설마 나에요? ]
[ 김사원? ]
[ 김사원 ]
[ 씹는 겁니까? ]
[ 기마사ㅜ언 ]
이 남자는 다른 건 몰라도 끈기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자기가 싸가지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조만간 오세훈이랑 호칭 변경을 의논해봐야겠어......!
오늘은 또 뭐라고 대답해줘야 조용히 할까. 아니, 뭐라고 해야지 덜 시끄러울까. 박찬열에게 조용함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할 업무도 많은데 본부장님 오피스톡 답장 하나 하자고 머리를 쓰고 있는 나를 보자니 참 한심해 보였다. 아 몰라, 그냥 원래하던 대로 해.
[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
박찬열 같은 또라이는 무시하는 게 상책이지.
그렇게 몇 시간을 보고서와 서류 마무리에 열중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밥이고 뭐고 지금은 너무 졸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밥 사주겠다는 오세훈의 유혹을 뒤로하고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담요까지 덮으니까 따듯하니 잠이 정말 잘 왔다.
"김사원?"
침까지 흘려가면서 열심히 자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깨웠다.
간만에 잘 잤는데 어떤 눈치 없는 놈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 그렇게 고개를 들었다.
내 입에서 떨어지는 침과 얼굴에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 머리카락을 까마득히 잊은 채.
재수 없게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박찬열이었다.
그리고 내 몰골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싸가지는 싸가지 없는 짓만 골라서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자기를 째려보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크게 웃다가 내 표정을 보더 애써 피식 웃음 참는 게 보였다.
아, 뭐야 쪽팔리고 기분 나쁘게.
왜 오셨냐고 여쭤보니까 갑자기 크게 당황을 한다.
뭐 훔치다가 걸린 사람처럼 한참 요리조리 둘러보다가 크게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했다.
"큼......그냥 김사원이 열심히 일하러 왔는지 확인차 온겁니다."
뭘 또 굳이ㅎㅎㅎ
확인은 20초마다 직접 해주시면서^^............ 내가 아무 말 않자 혼자 뻘쭘한 듯이 말을 줄줄줄 이어나갔다.
"그게 그러니까....... 김사원.이번 한 번만 챙겨주는 거니까 받아요. 발에 살 좀 찌우고 일 좀 열심히 하세요."
" 그리고 오피스톡은 장식이에요? 본부장이 연락을 하면 그때그때 답장 해야겠다는 생각 안 들어요? "
내 대답도 듣지 않고 혼자 쌩 가버렸다. 하여튼 이상한 사람이야.
아까 본부장님이 던진 비닐봉지에 뭐가 들었나 살펴봤다. 일부로 나 엿 먹이려고 이상한 거 사왔나 하는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예상한 것과 다르게 스타킹과 슬리퍼 한 짝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사이즈 230으로.
하루 종일 발도 아프고 찢어진 스타킹이 불편해서 티도 못 내고 있다가 덜컥 이런 걸 받게 되니까 괜히 감동이라는 감정이 꿈틀꿈틀 올라왔다.
줄 거면 조용히나 하고 주지 꼭 저렇게 잔소리를 해가면서 줬어야 했나. 무드 없게 .
화장실 가서 스타킹을 갈아 신으면서 괜히 고맙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그래도 덕분에 일은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고, 직원 하나둘씩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차 태워다줄태니까 같이 가자는 오세훈의 말에 콜!을 외치려는 순간 박본부장한테 오피스톡이 왔다.
[ 김사원 오늘 야근입니다. ]
기막힌 타이밍이다.
가끔 이런 식으로 절묘한 타이밍에 껴들어서 내 계획을 망치는 박본부장님을 보면 어디 도청 장치라도 있나 싶다.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세훈이에게 야근이라 먼저 가라고 말하고 보냈다. 그렇게 어둑해진 곳에 싸가지랑 나만 남았다.
남은 보고서와 결제 서류 마무리를 하고 제출하러 사무실에 들어갔다.
앉아있는 본부장님 앞에 서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보고서는 보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보고서를 빨리 보셔야지 제가 집에 갈 거 아니에요ㅎㅎㅎㅎㅎㅎㅎ;
한참을 서 있었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듯한 표정을 하고 날 쳐다봤다. 뭐가 잘못됐나....?
" 스타킹 갈아 신은 겁니까? "
스타킹 갈아 신었냐고 물어오는 본부장님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숨을 쉬고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주더니,
" 집에 가서 발라요. "
본부장님 손에 있던 건 다름 아닌 연고였다.
웬 뜬금없이 연고인가 하면서 내 다리를 살펴봤더니, 멍 투성이에 피딱지가 군데군데 보여 흉측해 보였다
. 아침에 뛰다가 나도 모르게 넘어진 모양이다.
연고를 주머니에 넣자 본부장님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 김사원 앞으로 다치면 그날은 진짜 해고해버릴지도 몰라. 알겠어요? "
또 잔소리다.
아무래도 인생을 헛살았나보다.
어떻게 살았길래 내가 내 마음대로 다치지도 못하며,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한테 협박 받고 있고. 심지어 말도 살짝 놨다.
이거 완전 하극상이 따로 없네!라고 하기에는 나는 일개 신입사원이었고 박찬열은 본부장이었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은 네, 알겠습니다. 뿐인걸 어떡해. 피곤할 테니 그만 가보라는 박본부장 말에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야근을 하라길래 12시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는데 8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간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집에 가서 계속 누워있어야지.
지잉. 지잉. 지이잉.
내일은 지각하지 않으려고 침대에 일찍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자꾸 울려댄다.
이 시간에 나한테 연락할 사람 별로 없는데.
[ 김사원. ]
[ 이제 퇴근 후에도 괴롭힐 수 있겠다. ]
[ 그리고 나 싸가지 있습니다. ]
박찬열이 보낸 게 틀림없는 문자와,
[ 미안. 어쩔 수 없었다. ]
시발새끼 오세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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