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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찌 보면 당연하단 듯 난 이한결의 무리와 함께하게 된다. 학교 내 골칫거리들을 주동하는 폭군. 그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나는 학교의 스타인 김요한과 자주 입방아에 오르내렸으며, 이는 이한결에게 보기 좋은 장식 거리이자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테니까.
나는 그의 관심이 불쾌했으면서도 안락했는데 그 까닭 역시 단순했다.
어느 순간 그와의 친밀감을 찾을 수 있었으니깐.
첫째로, 그는 나와 공통점이 있었다.
요한과는 다르게, 자신이 받을 시선에 대해 개의치 않아 한다는 것.
한결과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 학교 내 진실로 악독한 자는 김요한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것이 비밀이라도 되는 냥 요한에 대한 침묵을 지켰는데, 이는 우리가 요한에 대해 좋지 못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재차 확인시켜주곤 했다.
둘째로, 그는 요한과 닮은 점이 많았다.
독기 서린 눈빛, 감정이 앞선 행동. 그러다가도 치고 빠지는 기술하며 멍청한 이들을 비웃는 태도까지. 물론 한결이 요한보다 야생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닮았다. 이것은 나에게 묘한 안정감을 선사했다.
난 그렇게 이한결의 무리와 가까워졌다.
***
이한결의 무리 구성은 학교 내 전체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쉬는 시간에도 꽤 자주 그들은 한결을 찾아오곤 했다.
작년만 해도 이들의 존재조차 몰랐던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그의 무리 중 주요인물은 몇 안 됐는데,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들과 어울리려 노력한다는 것. 마치 전교생이 김요한에게 호의를 베풀 듯 말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탄식이 터졌다. 그는 삐딱선 타기를 갈망하는 이들의 공허한 상징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그와 어울리고 얼마 안 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던 점이란 듯, 더 크게 학급 아이들에 대고 포효했다.
그의 반항은 요한의 것과 비교해 그 질이 낮았지만, 나에게 더 큰 동정을 살 순 있었다.
그리고 여기, 한결을 동정하는 이가 더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차준호였다.
그는 우리 학급의 옆 반 학생이었다. 그가 한결을 자주 찾아오는 것을 난 학기 초부터 느끼고 있었다. 왜, 낯선 이의 방문은 묘한 긴장감을 주지 않는가.
더군다나, 나는 한결과 그리 친해지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준호는 나와 같이 낯을 잘 가렸는데, 그럼에도 상대에게 편안함을 선사해주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난 그와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김요한도 알 것이다. 내가 얼마나 '친구'라는 표현을 아끼는지.
준호와 나는 정말 빠른 시간 내에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이라도 한 듯 셋이 어울리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그것은 꽤 자극적이며 흥미로운 일이었다.
***
우리는 쉬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학급 안에서나, 복도에서나 가끔은 또 다른 장소에서. 우린 킬킬대며 따분한 시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내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금기의 유흥을 즐기는 것, 누군가를 이유 없이 괴롭히는 것.
요한이 하는 것을 볼 적에는 흥미가 없던 일들이 그들과 함께할 때는 퍽 간간한 일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번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요한과 마주친 적이 있다.
학교 내엔 쓰지 않는 건물이 있는데, 그곳 옥상에서 그를 마주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기 전이었지만, 그가 옥상문을 열고 나를 흘겨보던 적엔 왠지 모르게 해명을 늘어뜨리고 싶단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그의 동공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나의 변화는 그에게도 당황스럽겠지. 우리는 항상 서로가 서로의 이유이자 동기였으니깐.
" 너 담배 펴? "
" .. 어? "
" 쟤네가 시켰냐? "
" .. 뭐? "
상황을 보자 하니 그는 건물 아래서 우리를 보고 올라온듯했다.
그렇지 않으면 요한이 여기까지 올라올 이유가 없었다. 그는 학교 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멍청한 짓은 안 했으니깐.
시켰냐니, 분명 어처구니없는 발언이었다. 난 누구의 지시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점은 그도 알고 있었을 텐데.. 요한은 무엇을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요한의 등장에 한결이 담배 연기를 푸우 내뱉더니 라이터를 키고 끄길 반복해댔다. 요한의 심기를 건들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곤 라이터를 요한에게로 던지는 것이었다, 툭. 제 감정이 상했다는 것을 들키길 강력하게 원한단 듯 말이다.
" 아깝네, 피우게 할 수 있었는데. "
"..야."
" 그만 꺼지시지. 좆같게 방해하지 말고. "
이한결이 담배 한 모금을 한 번 더 빨았다. 그리고 다시 푸우, 짙은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주위가 금방 뿌예졌다가도 말길 반복했다.
그의 빈정거림에도 요한은 제 자리에 한참 서있었는데, 이는 나에게 어떠한 기회라도 주는 듯했다.
솔직하게는,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에 점점 설득 당하고 싶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끝에 가선 나를 이곳에서 꺼내달라고 그에게 애원이라도 하고 싶어졌지만, 그것은 요한이 떠나고 난 뒤 드는 생각이었다.
준호가 괜찮을 것이라며 나를 다독이며, 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내게 내어준다. 그리고 따뜻하게도 맑은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동시에 나는 비로소 이 무리에 둥지를 트고 있음을 실감했다.
한결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는 괜스레 제 행동에 찔렸는지
" 담배 안 펴도 돼. 우리가 너 있을 때 안 피우면 되지. " 나에게 심심한 조언을 던지곤 했다.
난 그런 것이 아니라며 담배에 불을 붙이곤 퍽퍽 펴대었지만,
이상하게 피어오르는 씁쓸함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앞으로 당분간도 요한의 모습을 보기란 힘들 것이었다.
이는 내게 위로일까, 고통일까.
답이 없는 자문을 담배와 함께 태우기 시작한다. 애초에 질문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나는 흘러넘치는 씁쓸함을 꾹꾹 눌러 담아, 외면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
" 여주야 "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때면 낯설 때가 있다. 특히 나와 어떤 교집합도 찾을 수 없는 아이가 그런다면 섬뜩하기까지 할 것이었다.
김민규, 요새 그는 자주 내 이름을 불러댔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는 이 학급의 반장이었다. 가히 우러러볼만한 모범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모두와 곧잘 어울렸으며 사랑받는 것에도 능해 보였다.
모든 이들에게 날이 서있는 한결조차 반장을 괴롭히는 일엔 별 흥미가 없어 보였으니깐.
그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은 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 두려울 뿐이었다.
난 그런 류의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에도 학을 뗀지 오래인데, 그 이유는 그들을 알아가는 것이 별 소득 없는 멍청한 짓이라 확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엔 가까이할수록 별로인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으레 그들을 경계했고 나를 지키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기 일쑤였다.
" 여주야 "
그가 또 내 이름을 부른다. 어쩔 땐 웃으면서 어쩔 땐 심각한 표정으로. 그리고 언제나 다정하게.
물론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이의 관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우월감과 쾌감을 선물하곤 했으니깐.
한번은 준호가 질투가 난다는 듯 반장과 무슨 사이인 것이냐 추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때 우리는 학급 내 뒤편에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준호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나의 시선을 민규에게로 두게 됐다.
그리고 곧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기라도 한단 듯 나와 눈을 맞추며 민규는 의미 모를 미소를 머금는 것이었다.
이상한 설렘이 돋았다.
내가 저런 애와도 엮일 수 있구나, 그는 항상 나 자신을 나름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하게끔 만들었다.
동시에 그가 궁금해진다.
" 무슨 사이긴. "
" 하긴 저 범생이가 너한테 관심을 가질 리가 없지. "
그리곤 준호가 푸흐흐, 웃는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정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저를 사랑하게끔 만드는. 그가 마치 나를 다정히도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그니깐. "
나는 고개를 천천히도 끄덕였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나도 먼 존재를 가까이서 탐하는 건 할 짓이 못된다는 점을 빠르게 인정하려 애쓰는 것이었다.
반장은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어쩜 내가 그 시선을 갖고 싶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일지도.
뭐든 좋았다.
하지만 싹 트는 호기심은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