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장 안의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답답했다. 콧구멍 안을 꽉 메우는 불쾌함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자, 그 새를 못 참고 엄마가 핀잔을 주었다. 어른들 많이 계시는 곳에서 그러고 있을 셈이야? 어서 웃어. 나는 그 강압적인 말에 반항 한 번 하지 못 하고 억지로 입 꼬리를 끌어 당겼다. 네가 백현이니? 아마 나는 이 물음을 오늘 밤 백 번도 더 듣지 않을까 싶다. 와인을 건네는 웨이터에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렇게 노안인가. 손거울로 모습을 살피는 시간마저 아까운지, 묵직한 목소리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 파티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진부한 첫 인사는 길게 이어졌다. 이걸 듣고 있을 바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훨씬 더 실용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백현아, 할아버지껜 인사 드리고 왔니? 너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뭘요.”
“얘가, 알면서 모르는 척 하기는. 회사 일 말이다. 졸업 후에 바로 교육 들어갈 테니 마음 단단히 먹어.”
“말씀 드렸잖아요. 저는 회사 이을 맘 없대두요.”
“이런 곳에서 소란 피우고 싶지 않구나 백현아. 나중에 다 같이 모였을 때 이야기 하자.”
엄마는 파티에서 뭘 그리 많이 얻었는지 선물로 가득 담긴 쇼핑백을 트렁크에 실었다. 어서 차에 타라는 말을 남긴 뒤 끝까지 인사를 청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는 뒤늦게 차에 올랐다. 나는 불퉁한 얼굴로 거의 드러누운 자세를 하고 있었다. 회사 일? 그런 거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 뉴스에 툭하면 얼굴을 내비치고 경제와 관련된 일엔 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하며 그 뒤는 얼마나 더럽고 치졸할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사랑하게 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이 회사를 갖는 것이 어마어마한 행운이 될 거라고 늘 말한다. 물론 난 그런 헛소리를 믿지 않는다. 뭘 좀 아는 체 하며 지껄이는 어른들의 말을 믿기에 나는 너무 많이 자랐다.
“엄마 근데 나랑 박찬열이란 애랑 아는 사이였어?”
“지금 바쁘다고 했잖아. 그런 건 나중에 묻지 그래.”
“급한 일이라서 그래요. 박찬열이라는 애 알아요 엄마?”
“변백현!”
미운 털이 박히기 전에 입을 다무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서류를 뒤적였고 옆에선 비서가 스케줄을 중얼대기 바빴다. 나는 저런 일상이 싫었고, 저런 사람들이 싫었으며, 내가 저런 사람들의 뒤를 이을 사람이라는 게 싫었다. 그냥 나의 가혹한 운명이 싫었다. 할아버지께 여쭈면 아실까. 기억이 나는 건 하나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확신하고 있었다. 나와 박찬열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다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할 뿐이다. 텁텁한 여름 공기가 시간이 빨리 흐르고 있다는 걸 굳이 내 몸으로 실감하게 해주었다. 벚꽃이 만개했던 교정에는 어느덧 진한 녹색의 나뭇잎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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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어제 파티 했다며. 거긴 예쁜 애들 많아? 먹을 것도 많고? 너도 샴페인 같은 거 마시구 그러냐?”
“나 미성년자잖아. 예쁜 애들은 무슨 다 아줌마, 아저씨들뿐이야. 너 드라마 좀 그만 봐라.”
“뭐, 너도 드라마랑 비스무리하게 살면서. 아니야?”
“별로.”
종대는 자신의 옆 자리를 탕탕 두드리며 박찬열을 찾고 있었다. 얘 언제 와? 오늘은 이동 수업 하나도 안 들었으니까 안 데리고 다녀도 되겠지? 어우, 키만 멀대 같이 커갖구 같이 다니기 힘들어 죽겠어. 대답 없는 나를 상대로 한참 동안이나 떠들어대던 종대가 뒷문을 힐끔 보고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나는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박찬열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여학생들은 손수 만든 초콜릿부터 학교 앞 매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건네며 찬열아, 널 위해 준비했어! 라는 오그라드는 멘트를 내뱉기 바빴다. 아침에 먹은 볶음밥이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책상에 엎드리자,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 왜?”
“이거 먹을래? 나는 별로 먹기 싫은데.”
박찬열이었다. 굵직한 목소리에 여자도 아닌 내가 괜히 가슴이 뛰는 것 같아 냉큼 삼각김밥을 받아 들었다. 이렇게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달아올랐을 두 뺨이 들통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박찬열은 그런 내 동태를 가만히 살피더니 작게 웃었고, 여학생들은 괴성을 지르며 찬열이 웃었어! 를 연발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물이 날 것 같아 괜히 가만 있는 창 밖에 시선을 내던졌다.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종대가 삼각김밥 포장을 벗기더니 한 입 베어 물곤 감탄을 내뱉었다.
“똥, 축하해. 드디어 네 인생에도 꽃이 피는구나. 내가 말했지? 쟤랑 너랑 분위기가 딱 행쇼야, 행쇼.”
“시끄러워 좀. 전학 온 지 이틀밖에 안 된 애랑 나랑 뭘 어쩐다구 그러냐.”
“괜히 기대하는 거 다 알아. 내가 너랑 쟤랑, 퍼펙트하게 이어줄게. 대신 잘 되면 떡볶이 쏘기다. 응?”
“……됐다니까.”
종대는 까르르 웃으며 남은 삼각김밥을 몽땅 입 안에 넣었다. 박찬열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종대에게 핀잔을 주었다. 외면하려고 했지만 둘의 대화 내용은 너무나 생생하게 들렸다. 너 왜 저거 먹어. 내가 변백현 먹으라고 준 건데. 나는 그 굵은 목소리를 피하려 혼자서 끙끙댔다. 여학생들은 벌써 박찬열에 대한 흥미를 잃은 건지 오늘은 이상하게 교실이 잠잠했다. 박찬열이 내게로 걸어왔다. 한 손엔 바나나 우유와 삼각김밥이 들려 있었다.
“아까 김종대가 뺏어 먹은 거 봤어. 이거 먹어.”
“나 아침 먹고 와서 괜찮아. 쟤들이 너 먹으라고 사온 건데 뭐 하러 굳이 나를 줘.”
“너 먹어.”
“괜찮다니까.”
“네가 먹어. 나는 안 먹을 거야.”
박찬열은 고집이 셌다. 첫 날 보았던 왁스로 세운 앞머리처럼 성격은 매우 곧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게 옳다고 할 순 없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삼각김밥과 우유를 받아 들었고, 여자애들의 따끔거리는 시선을 그대로 흡수하느라 애썼다. 뚫어져라 날 쳐다보는 박찬열 때문에 고프지도 않은 배에 억지로 꾸역꾸역 음식을 넣어야만 했다. 뭐가 잘못된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이 어려운 걸까, 내가 멍청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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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거지 같았다. 체육 수업 시간이었다. 평소에도 몸이 조금 허약한 편이라서 좋아하는 수업은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날씨가 매우 좋아 괜히 마음이 들떠 있었다. 2인 1조로 피구를 하게 되었다. 박찬열은 아니겠지. 차라리 여자애가 낫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인지 박찬열을 피해야 할 것 같아 속으로 그렇게 빌고 빌었건만, 늘 그랬듯 하늘은 나의 편이 아니다. 찬열이는…… 백현이랑 하도록 해. 너무 우스운 상황이었다. 일본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거지같은 상황. 박찬열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손에 공을 쥐어주었다.
“피구 잘 해?”
“아니.”
“나도. 그런데 너, 부잣집 애라며?”
“어?”
“나도 부잣집 애라서. 니네 할아버지랑 우리 할아버지랑 친구였대.”
의문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그래. 아주 어릴 적 할아버지들의 만남이 있을 때 잠깐 스치고 지나갔나 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운 게 하나 굴러 나간 것 같은 기분에 괜히 경쾌해진 몸놀림으로 피구 경기에 임했다. 박찬열이 키가 큰 탓인 걸까, 내가 키가 작은 탓인 걸까. 그 앤 날아오는 공을 몽땅 막아 주었고 나는 뒤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애들은 그걸 보고 웃었다. 변백현 고추 떼라, 고자 새끼! 종대가 펄쩍 거리며 날 놀렸지만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으니 드디어 내가 미친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체육 수업이 끝날 때쯤 처음으로 박찬열이 웃는 걸 보았다.
읽어주세요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음 일단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굉장히 많아요. 생각지도 못 했던 반응을 얻고, 초록글까지 올랐네요. 저의 누추한 글이 말이에요. 너무 기쁘기도 하면서 한 편으론 단지 구독료를 돌려 받기 위한 수단으로 댓글을 다는 게 뻔히 보이는 분들도 더러 보여서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암호닉은 당연히 받습니다. 암호닉 신청해도 되나요? 라는 뻔한 질문, 안 하셔도 돼요. 혹여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텍파 메일링을 한다면 저는 암호닉 신청을 하셨던 분들께만 드릴 계획이에요. 재차 강조하지만 언제든지 암호닉은 받으니 부담없이 신청하셔도 됩니다. :D 또, 제 필명에 대해 이야기 드릴게요. 댓글 보니까 심님? 하시는 분들 계시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귀여우신 분들.. 제 필명인 心 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자극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저의 작은 소망과 지금 저와 함께하고 있는 소중한 사람의 이름에 마음 심 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생각해보면 다 끼워넣기고 아무런 뜻이 ㅇ벗어요! 그러니 그냥 야 라고 하셔도 되고 너징 이라고 하셔도 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손이 똥이니까 응가라고 불러주셔도 돼요. 응가 안 귀엽나요? *.* 또 작가님 대단해요ㅠㅠ허류ㅠㅠ짜유ㅠㅠㅠ 이런 댓글보단 우래기 잘해쪙 우쭈쭈 식의 댓글을 더 좋아합니다. 전 애기니까여. 연재는 빨리 빨리 진행될 계획이에요. 제가 중간고사를 똥망으로 치룬 탓에 기말고사 시즌에는 닥치고 공부만 해야겠지만 그 전까진 아마 이렇게 잽싸게 연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댓글 수가 너무 많아 일일히 답글 달아드릴 수 없다는 점 유의해주세요. 전 님과 소통하고 싶어여! 님이 필요해여! 라는 분들은 댓글 앞 부분에 [답글] 이라고 써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당. 아놔 얘 말 왜캐 많음ㅋ? 아나 짜증ㅋ 하시는 분들을 위해 중요한 부분만 진하게, 빨갛게 했으니 읽어주세요. 구독료 돌려 받으려고 댓글 다시는 건 사양할게요. 정말. 쿠크 깨집니다요. 차라리 눈팅이 낫다구요! 진정으로 저와 함께하실 분들 모집해요. 독자분들 댜릉합니다. 암호닉 목록은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할게요 알라붕붕씽씽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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