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B. 헝거게임]
- 김한빈의정석 -
이번 편은 좀 정신없게 썼네요. 지원이 시점으로 썼는데 4시간에 걸려서 쓴 만큼 많이 혼란스러우시고 정신없으실 거예요.
그래도 독자님들의 많은 이해와 양해 부탁드릴께요. 그동안 밀려온 지원이의 시점을 쓰자니 분량도 많고 힘드네요 ㅠㅠ
* 암호닉 *
지나니
수박
매력넘치는
뽑뽀
보리차
꽁냥꽁냥
햫기동동
쿠쿠
라임
하늘
코카콜라
쎄니
기맘빈과김밥
들레
디보
우현동자
두비두밥
옥수수
김밥이랑
파랑짹짹이
밤비
까만원두
당근
백년가약
토끼이빨
페브리즈
갓바비
뿡뿡이
김빱
닐리리야
찌푸
소녀
메추리
꿀떡
바비사랑
bobb_y
심아가씨
헛둘헛둘
비니비니한비니
오필리아
구릴라
허니콤보
<3 기맘빈과김밥 <3
뜟
한빈아뿌잉
몽실
냐미냐미
콩밥
워더
J
말미잘
두둠칫
달여우
진주
꽁빈냥
네티
헤헷
조으디
도비
쥬넹쥬네
주네야
지원아
너에게로가는걸음
슬리데린
햇님
동덩
동그리동동
아야오유
닭다리
소묘
감자
꿍디꿍디
분홍양말
뿌요
으우뜨
콘이
몰랑이
꿍디네
콩듀
꿀갓빈
진지한팀비
헝거게임 최초로 초록글 감사합니다 :)
헝거게임이 시작되고 나서 네게 손수건을 건넸다. 경황이없었던 모두는 서로를 신경쓸 겨를도없이 각자 죽이기 바빴다. 나 또한 버벅거리다가 당할 뻔했다.
너와 김한빈은 총을 쓰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나는 영 총에 젬병이라 손에 그립감이 적절하게 떨어지는 칼을 선택했고, 황급히 가방을 챙겨 중앙지를 떠났다.
여기저기서 죽어가는 소리와 달려나가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때맞춰서 하늘에 울려퍼지는 대포는 죽은 이들의 숫자를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되가는 것도 모르고 그냥 앞만 보고 뛰었다. 그냥 마음내키는 대로 방향을 틀거나 빙 돌기도 했으며 혹여나 너를 만났는데 칼을 들이밀까봐 겁났다.
첫 번째로 만났던 인간은 5구역의 박수영이였다. 나보다 훨씬 앳되보이는 얼굴에 죽일까, 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않고 오히려 무시한 채 내 갈길을 갔다.
그녀 또한 흠칫 놀라다가도 가만히 앉아서 멀어져가는 내 뒷모습에 시선을 꽂는 눈길이 느껴졌다. 최대한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너의 흔적을 조금 찾으려고했다. 자꾸 뒤에서 누가 주절거리면서 따라오길래 힐끔보니 10구역의 김성규였다.
그는 혼잣말을 하면서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동맹을 맺으려고 하는 건지, 기습공격을 하려는 건지 그의 기색을 봐선 도무지 몰라서 걸음걸이를 멈췄다.
그도 따라서 멈췄다. 풀을 밟는 사박사박함이 없어졌고 동시에 휑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한숨을 쉬고 뒤 돌아보지 않은 채 그에게 말을 걸었다.
따라오려는 목적이 뭐야. 그러자 김성규는 뭔 의도인 것 같냐며 내게 물어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날 죽일 것 같은데. 하지만 말하지않았다.
김성규는 대답하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들지않았던건지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꽤나 섬뜩했다.
죽어야해, 죽어야해.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나는 죽어야해. 아니, 죽여야하는 걸까? 그래, 죽여야하는 걸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해야겠지?
그의 말은 정확히 저런 구절을 반복하고 있었다. 눈이 풀린 채 중얼거리는 모습이 내가 만약 여자였더라면 주저앉고 울먹여도 남을 판이였다.
황급히 뒤를 돌아서 김성규 쪽을 쳐다봤다. 그는 주머니에서 슬슬 뭔가를 꺼내더니 손목을 천천히 돌렸다. 빛을 받아 빛나는 칼이 꽤나 날카로웠다.
씨익 웃으면서 김성규는 흐, 흐... 하고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뭔가 잘못됨을 느끼고 뒷 걸음 질을 쳤다. 점점 빠르게 다가오는 그의 스텝.
죽어야해, 죽어야해.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나는 죽어야해. 아니, 죽여야하는 걸까? 그래, 죽여야하는 걸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해야겠지?
친하지도 않았던 그가 날 죽이려고 한다. 머릿속이 텅빈 느낌이였으나 애써 신경을 바로잡고 입술을 축였다. 진정해, 당장. 그러나 말을 듣지않았다.
뭐 때문에 내가 이렇게 널 죽여야하는걸까! 김성규는 그 말을 하고나서 내게 달려들었다. 씨발, 진짜 무대뽀네. 나는 비니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날카로운 칼의 접촉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스로 그의 칼집을 막아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김성규는 내 눈앞에서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난 그것을 내 칼로 대항하고 있었고. 그는 어라,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얘가 날 막았네? 그는 낄낄 웃으면서 칼을 빼냈다. 김지원, 너 재밌다?
방송에서 패기있게 고백하더니 현실에서도 패기가 넘치나봐. 김성규는 지딴에는 드립이라고 생각했는지 크게 웃었다.
너가 좋아하는 그 여자아이는 죽어버릴꺼야. 나약하기만 해보이던데, 내가 예언하지. 그 아이는 울면서 죽을꺼야. 김성규는 미친얼굴이였다.
괴기스럽게 웃는 그의 얼굴이 마치 날 위협하는 것만 같아서 제정신이 아닌 걸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칼을 내리 꽂았다. 팔이 가는 방향대로 이끌려갔다.
아무런 잘못없는 애를 왜 끌어들여서 사람 신경긁어, 개새끼야. 나는 그에게 조곤조곤 속삭이며 꽂힌 칼을 비틀었다.
"너가 조용히만 했다면 그냥 벗어나 주려고했는데 말야."
"...하, 하하...결국에는...꽂아버렸네?"
결국에는 너도 똑같은 인간이 되버렸어, 김지원. 넌 평생 살인자라는 제목을 걸고 살아야할꺼야. 김지원, 넌 나를 찔렀어. 여기 보여?
김성규는 내게 찔린 곳을 가르키며 내 손을 잡았다. 심장이 뛸때마다 나오는 혈액,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나오는 붉은 피가 모든것을 말해줬다.
살인자라는 그의 말에 나는 더욱 오기가 생겨서 칼을 빼내고 거세게 그의 명치를 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내 발밑으로 떨어졌다.
끝까지 김성규는 웃었다. 너가 날 죽이지않았다면 내가 널 죽이려고 했는데... 그의 말이 자꾸만 귀에 들어와서 난 귀를 막았다.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내가 막지않았다면 내가 찔렸을 것이고, 너의 얼굴을 시작하고나서부터 보지도못한 채 죽어나가야만 했을 것이다.
살, 인, 자. 김성규는 날 끝까지 쳐다보며 입모양으로 또박또박 중얼거렸다. 그리고서 그의 동공은 멈췄다. 꿈틀거리던 손가락도 더 이상 신경을 긁지않았다.
대포소리가 펑, 하고 가까운 곳에서 터졌다. 나는 그 소리에 몸을 크게 한 번 떨고 김성규에게서 멀어졌다. 엮이고 싶지않았다. 지금 당장은 어디론가 도망쳐야해.
피가 묻은 칼을 김성규의 옷에 마구잡이로 닦아내고 엉성하게 그의 가방에서 물을 꺼낸 뒤 뿌렸다. 콸콸, 하고 쏟아지는 물 줄기에 피는 말끔히 닦여나갔다.
죽였구나. 마음속에서 중얼거렸다. 뜻 밖의 확인사살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실전이다. 장난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실전이라는 것을.
나는 그 자리를 떴다. 오늘 자기는 무리였다. 몇 명이 죽었는지 알 길은 전혀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너는 살아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최대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쪽이라고 애초부터 생각해왔겄만 이건 모순이였다. 벌써 한 명을 죽였다. 칼을 비틀 때 찔꺽거림이 손을 타고 아직도 느껴졌다.
눈 앞이 새파랗게 변하는 것만 같았으나 환상이라고 믿었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몸을 맡겨 피부로 잡아낸 채 천천히 벗어났다.
추위와 배고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물론 덮고 잠시 쉬고 있던 것은 아니였지만 시간이 꽤 지난 것일까, 수트 사이로 치고들어오는 공기가 뾰족했다.
배를 울리는 진동에 급히 몸을 일으켰다. 파스락, 하고 풀들도 나를 따라 움직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히 짙푸른 남색이 감돌고 있었다.
자고 있었던 것이다. 피곤에 지쳐서 나도 모르게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었던 것은 기억하는데, 그 뒤가 전혀 생각이 안날 정도로 피곤했던 것이다.
마음이 벌써 풀어진 것이라고 나름의 자책감이 느껴져서 몸을 급히 일으켰으나 비틀거렸다. 어지러움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 틀림없다.
습관적으로 머리를 툭툭 쓰다듬는데, 뭔가 허전하길래 마구 더듬거렸다. 따뜻하게 머리를 감싸고 있던 것을 원체부터 쓰고다녔던 터라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비니, 비니가 없다. 분명 김성규를 죽이기 전에 벗어던졌던 것을 갖고 오지 못한 모양이였다. 이런 멍청한... 욕을 곱씹으며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다시 그 자리로 가서 가져올 깡조차 들지않았다. 내가 죽인 현장을 다시 가는 것도 웃기고, 시체 주위를 맴돌면서 찾아낼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 습격 받으면 귀찮아 진다. 등에 매고있던 가방을 꺼내서 입구를 열어보니 담요가 곱게 접혀있는 채로 들어있었다. 조금 걷어내니 마련되있는 식량도 있었다.
가방을 잘 집은 모양이였다. 칼 네다섯개가 들어있는 지퍼백도 한 쪽 구석에 있었다. 부욱 뜯어내니 제각기 다른 모양, 크기가 잔인한 기색을 표출하고 있었다.
비니를 가져와야 할지 생각 해보았지만 이미 방향도 모르고, 그 때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맴돌았으니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랐다. 어쩔수 없이 입맛만 다셨다.
찌뿌둥한 몸을 피니 뼈들이 다시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심호흡도 좀 하고, 가방을 끌어안고 멍 하니 앞만 쳐다보고있자니 멍청해보여서 그만뒀다.
초록색 숲들은 권태롭기만 하다. 같은 색들로만 반복되있는 곳에 갇힌 미로, 그리고 언제 벗어나게 되는지도 모르는 기약없는 감옥같았다.
대체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고개를 두리번 거리고 있자니 너무 계획없는 것 같았다. 물로 씻어낸 칼을 꺼내서 나무에 표시를 해뒀다. 큼지막한 엑스자 모양이였다.
이렇게 조금씩 표시해두고 나면 중앙지와 어느덧 가까워 지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겠다. 이슬에 젖은 수트를 툭툭 털어내고 가방을 닫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와중에도 죽는 사람이 있구나. 그리고 순간적으로 든 불안감. 설마 너일까 하는 추측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누가 죽었는지 알려주질 않으니 답답해져왔다. 그렇다고 스폰서에게 누가 죽었는지 알려달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내겐 스폰서가 있는지도 몰랐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방향도 약간 틀었다. 빼먹을까봐 항상 칼을 들고다니면서 보이는 쪽으로 엑스자를 그려넣기도 했다. 어서 중앙지에 도달해야 할텐데.
약 10번은 그렇게 그려놓자 벌써부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하루빨리 너를 만나 같이 동행하면서 살아남아야할 텐데, 김한빈에게 뺏길까봐 그것도 겁났다.
엑스자를 다섯번 더 그려넣었다. 까득까득 거리는 소리가 멈추자마자 다시 하늘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어디서 죽고 죽이는 건지 몰랐다.
까막눈마냥 나는 멍청히 눈을 끔뻑였다. 불안의 파동을 그리던 가슴이 멈췄다. 너와 연이 이어졌던 건지 아니면 내가 자기합리화를 워낙 잘해서 그런건지.
그 대포향연이 공중으로 분산되자 나는 뭐에 홀린 듯 그 대포쪽으로 목표를 바꿨다. 아까보다는 가까운 쪽에서 들려왔다. 사박사박, 하는 밟힘이 들려왔다.
혼자만 있으니 조금 웃기게 말하자면 재미없는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언제끝날지도 모르고 언제 나가야하나 타이밍만 재고 있으니, 웃기는 부분이없다.
김진환과 김동혁, 그리고 앨리스 리는 이 장면을 다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형과 누나도 숨죽이면서 내 자취를 보고 있겠거니.
비니없는 머리가 잔뜩 삐쳐있었다. 슥슥 쓰다듬으며 붕뜬머리를 정리하고 촉각을 곤두세우며 다시 다가갔다. 중앙지가 가까워지기를 빌었다.
어영부영 헤매다가 얼결에 중앙지를 발견했다. 숲속과 다르게 하얀 빛이 가득 들어오는 곳이 보여서 풀과 나무를 헤쳐가며 가까이 다가갔더니 그리도 찾았던 곳이였다.
꽤나 긴 시간동안 바보짓을 했군. 나는 청량하다 못해 지독한 공기를 잔뜩 들이쉬며 중앙지를 살폈다. 그 곳에는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시신이 눕혀져있었다.
긴 머리카락이였다. 여자아이 두 명. 그 시신을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두 명의 남자. 내 눈썰미가 아직 죽지않았다면 저 둘은 분명 차학연과 김종인이였다.
차학연은 한 여자아이의 시신을 툭툭 건들다가 신경질적으로 그 아이의 머리에 쓰고있던 무언가를 거칠게 빼냈다. 진한 보라색에 핏자국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
내 비니였다. 움찔하고 앞으로 나아갈 뻔했으나 김종인이 주위를 둘러보길래 몸을 다시 낮췄다. 차학연은 너 다음으로 고득점을 받은 아이란 것을 잠시 잊고있었다.
안 죽을 것같지 말해놓고는 멍청하게 죽어? 그것도 폭탄을 다 터뜨려놓고선 말야... 박초롱, 멍청한 년. 차학연은 욕을 지껄이며 침을 뱉었다.
김종인은 물을 마시면서 천연덕스럽게 물어왔다. 차학연, 그 여자아이도 당했나 본데. 그는 생수병 뚜껑을 돌리며 살금살금 멀어져갔다. 등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학연은 아직도 그 멍청함에 분이 풀리지 않았던 것인지 씩씩거리면서 내 비니를 아무렇게 뒤집어 썼다. 씨발, 이 와중에 따뜻해서 존나 좋네.
김종인은 분명 타이밍을 재고있었다. 슬그머니 쥐어지는 주먹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물건이 내 쪽에서 적나라하게 보였다. 소리를 죽이면서 자취를 드러냈다.
이제 그 여자아이도 죽었으니... 그는 말꼬리를 늘렸다. 누군가 습격을 받은 모양이야. 주변에 누가 있나본데? 차학연은 띄엄띄엄 말을 반복했다.
여기가 딱 좋잖아, 안그래? 김종인은 살풋 웃었다. 무슨 소리냐며 차학연이 생뚱맞게 지랄하지말고 다시 지키자는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필요없어.
"어차피 말야,"
"..."
"죽어야해."
그러고나서 김종인은 잽싸게 칼을 던졌다. 칼을 찔러 비틀던 나와 다르게 그는 능숙하게 차학연의 명치쪽으로 던졌고, 나는 눈을 질끈감았다.
꽂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차학연의 숨소리와 김종인의 숨소리가 녹아들어갔다. 몇 초간은 눈도 못뜨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잠시뒤에 들리는 웃음소리.
김종인... 대단한데? 차학연의 목소리였다. 꽂힌 채 저렇게 여유만만인 건가, 싸이코새끼네.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다시 내밀었다. 차학연은 칼에 맞지않았다.
그는 자신이 건들고있던 시체를 급하게 올려 몸을 방어했다. 결국 차학연은 하나도 다친 곳이 없었고, 자신이 든 시체 얼굴에 칼이 박혀버린 것이다.
동맹맺어서 좀 봐주려고 했더니. 그는 침을 찍 뱉고는 시체를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박혔던 칼을 빼내서 위협적으로 돌리면서 김종인에게 다가갔다.
너가 던진 칼로 너가 죽어봐, 어떤 기분인지 나중에 꼭 말해라. 차학연은 입꼬리를 올려 등을 내보인 김종인의 뒤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시체는 이미 피가 굳어버려서 빼냈지만 피는 분수처럼 솟아나오지 않았다. 뼈는 으스러졌고, 괴상하게 고꾸라진 채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있었을 뿐이다.
김종인의 비명소리와 함께 대포가 터졌다. 있는 힘껏 등 속으로 쑤셔박았던 것인지, 칼의 반 이상이 김종인 몸으로 들어갔다. 피가 미친듯이 쏟아져나왔다.
깝치고 있네. 차학연은 입가를 북북 닦고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상당히 위험한 존재였다, 그는. 난 입가가 벌벌 떨리는 걸 느끼고 꼼짝없이 가만히 있었다.
김종인의 비명소리와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미동도않는 텐트 안과 바깥은 사뭇달랐다. 그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다가 엎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김종인은 더이상 움직이지않았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갔고, 나는 이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위험할 순 있지만 언제 차학연의 등을 쳐야할지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무리수를 둬서라도 저새끼는 꼭 죽이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지금 뭐할까, 내 생각은 하고 있을까. 사람죽이는 꼴 못보는 것 같던데 가져갔던 내 손수건을 잘 가지고 있을지. 아니면 벌써 누군가를 죽였다거나.
나는 너가 뭘 하던 지켜줄 자신은 있었다. 문제는, 다름아닌 나였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아니면 김성규가 말하던 살인자로 날 볼까 겁나기도 했다.
김한빈이랑 같이 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을까. 누구랑 같이있던간에 꼭 혼자가 아니길 바랬다. 나는 상관없어, 너만 괜찮다면.
울지 말고 내가 꼭 데리러가겠다고 그 말을 못한게 뭇내 아쉬웠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나길 빌면서 담요를 바닥에 깔았다. 부드러운 느낌의 소재라서 기분이 좋았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마른 체격이라 볼 때마다 무슨 괴력이 저렇게 나오나 웃기도 했었지만 다시 되돌아보면 그것도 너의 매력 중 하나였었는데.
하늘을 올려다봤다. 너가 죽지않았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무슨 장난인건지, 웅장한 음악소리가 울려퍼지면서 하늘에 뭔가가 떴다.
첫번째로 뜬 것은 헝거게임 처음 시작할 때 자살했던 놈 구역의 여자애였다. 고양이같이 생긴 여자아이는 날 노려보고는 곧 사라졌고, 곧이어 김종인이 떴다.
김종인? 그의 얼굴이 비춰지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떡 몸을 일으켜서 올려다봤다. 저거 설마, 죽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건가?
첫 판부터 11명이 죽어나갔으니 그 중에 너는 없다고 확신했다. 김종인에 이어 박초롱, 남태현 그리고 정수정까지 비춰주고 나서야 한꺼번에 보여주곤 사라졌다.
5명까지 총 16명이 현재 사망했다. 8명이 남았다고 치면 대체 누가 남은걸까. 김한빈은 죽었을려나? 조금 아쉽긴 해도 너만 지켜준다면 상관없을 텐데.
한참동안 머리를 팽팽 돌리면서 생각에 잠기다가 곧 다시 누웠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냉정하고 올곧은 너지만 어딘가 허술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뒤늦게라도 저걸 보여준다는 걸 알게되서 다행이였다. 첫 날부터 정신 잃고 자기만 했으니 내가 너무 한심해보였다.
알단 차학연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일어나야 한다. 몸 속깊이 주의에 염두를 해두고 눈을 감았다. 사각지대에서 몸을 숨기고 있으니 최소한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터.
[아, 아.]
[전달, 전달합니다. 현재 살아남아 있는 생존자의 수는 총 8명 이며,]
[모든 생존자들은 중앙지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단체 결투를 벌이고 다시 생존자를 가려내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의 명령입니다, 그럼 이상.]
지지직 거리는 주파수를 잡는 잡음과 함께 커다랗게 나레이션이 울렸다. 헝거게임 게임장을 울려놓는 잡음에 눈을 뜨니 하늘에는 해가 이미 뜬 후였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몸은 찌뿌둥하지않다. 어제보다 좀 개운한 느낌이였다. 살짝살짝 스트레칭을 하면서 나레이션이 말했던 말을 곱씹어보았다.
모두가 중앙지로 모인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널 볼 수 있다는 것인가. 몸을 내세워서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할지도 고려해봤지만 결론은 아니였다.
너가 어떻게 됐는지 간에 그게 중요했다. 몸을 아직까진 숨기고 차차 지켜본 뒤에야 널 데리고 다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휘몰아쳤다.
비겁해보일지도 모른다. 내겐 이게 최선이고, 비교적 기술면에서 딸리고 무식하게 힘만 센 내겐 가장 적합했다. 담요를 천천히 정리하면서 차학연 쪽을 살폈다.
그도 지금 일어났는지 지퍼를 부욱 열고는 기지개를 피고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어제 김종인과 떠온 생수병을 열고는 목을 축이고 있었다.
소리안나게 행동하는데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조심조심 가방을 닫고 다시 맸다. 아빠다리를 한 채 무의미한 손짓으로 풀을 잘라내기도 했다.
미리 꺼내놓은 식량을 한 움큼씩 씹어내며 굶어있던 배를 채웠다. 차학연은 내 비니를 덜렁덜렁 들다가 자신의 머리에 다시 쓰고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저 새끼가 진짜. 내 것 소유에 강한 나는 이따금씩 튀어나는 본능에 깜짝 놀래긴 했어도 애써 잠재웠다. 그럴수록 그는 비니를 만지작거렸다.
무슨 생각인건지 차학연은 갑자기 급하게 오른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낮췄다. 계속 보고 있었기 때문에 어딨는지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면서 크게 심호흡하고 찬찬히 기다렸다. 1시간 정도 지나자 스멀스멀 형체들이 보였다. 내 쪽에서 반대인 곳에서 육성재가 나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박경리가 표독스럽게 눈빛을 띈 채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아마 둘은 동맹을 맺은 모양이였다. 하아, 한숨을 쉬고 뒷 목을 꺾었다.
점점 시간이 갈 수록 정리표가 뒤집어지는 느낌이다. 예상치도 못했던 저 둘은 동맹을 맺고 이태껏 살아남은 케이스라는 것이 불쾌했다.
왼쪽에서 너와 김한빈이 걸어나왔다. 부어오른 얼굴이지만 약간은 봐줄만한 김한빈의 얼굴을 보고나서야 너의 얼굴을 봤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입술의 색이 없었다. 오히려 새파란 얼굴에 마음 속 한 켠에서 시큰하게 쥐어짜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김한빈의 어깨에 기대서 비틀대면서 나온 것이다. 다리가 부러진 것인지 깁스를 한 채 균형도 못잡고 아예 김한빈에게 기대고 있었다.
내 쪽 가까이서 손승완이 튀어나왔다. 언제부터 있었던건지 모르지만 그녀는 날 쳐다보지 않은 채 꼿꼿이 중앙지로 걸어나갔다. 너의 눈이 그녀에게 닿았다.
손승완에 이어서 초 간격으로 나온 오세훈. 꽤나 가까이 있었구나, 싶어서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오세훈의 손에는 상당히 긴 칼이 쥐어져있었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잡음들. 나레이션의 말이 시작되겠거니 하고 너를 주시했다. 너는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당장이라도 데리고 오고싶었다.
다들 각자 무기를 풀고있었다. 안전장치를 한 손으로 풀면서 김한빈은 널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모이셨습니다.]
[1구역, 2구역, 4구역, 9구역, 10구역, 11구역, 그리고 가장 선두하고있는 12구역.]
다들 한 명씩 죽은 듯 했다. 가장 선두하고 있다는 말에 모두들 궁금증을 드러냈지만 한 명도 묻지않았다. 너 또한 눈을 크게 뜨고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이였다.
다들 널 쳐다봤지만 다시 나레이션의 말이 이어졌다. 이 곳으로 모이라고 한 것은 다들 이유를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누가 누굴 죽였는지 모두들 대충 짐작은 하거니와 다 모르잖습니까? 나레이션의 말에 오세훈의 얼굴이 돌아갔다. 아마 상황을 살피고 있는 듯했다.
손승완은 활을 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육성재는 그걸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차학연은 비니를 쓰고있었고, 너와 김한빈은 몸을 떨어뜨렸다.
박경리의 손에서 와이어가 뽑아져나왔다. 다들 눈길을 주고는 전투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나레이션의 말이 또 한번 이어지고 있었다.
[1구역, 배주현. 김종인에게 사망.]
[2구역, 김기범. 이홍빈에게 사망.]
[3구역, 김남준. 자살.]
[3구역, 강슬기. 박초롱에게 사망.]
김기범이라는 말이 들리자 손승완 쪽에서 움찔거렸다. 김한빈은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를 내며 총알탄 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4구역, 이혜리. 남태현에게 사망.
이혜리라는 말이 들리자 너는 고개를 들었다. 이혜리와 평소 안면이 있었던건지 눈이 떨고 있었다. 들고있던 총은 다행히도 떨리지않고 있었다.
5구역, 김종인. 차학연에게 사망. 5구역, 박수영. 오세훈에게 사망. 6구역, 전정국. 오세훈에게 사망.
6구역, 박초롱. 손승완에게 사망. 7구역, 이홍빈. 손승완에게 사망. 7구역, 초아. 이홍빈에게 사망.
8구역, 남태현. 육성재에게 사망. 8구역, 최진리. 경리에게 사망. 9구역, 현아. 오세훈에게 사망.
10구역, 김성규. 김지원에게 사망. 11구역, 정수정. 자연사.
이러고나서 모두들 웅성웅성 거렸다. 너와 김한빈은 조용히 속삭이던 터라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않았지만 손승완의 무서운 욕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내 손에 든 칼을 한번 휘둘러보았다. 공기 가르는 소리가 약하게 들려왔다. 언제라도 찔러달라는 듯이 칼은 뾰족한 기색을 뽐냈다.
여기까지 죽은 사람들을 불러보았다고 나레이션은 말했다. 이윽고 대통령님의 의견아래에 참가자들의 단체 전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런 곳에 여러분들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했고, 30초 뒤 단체 전투를 시작하겠다며 소음을 끄고 사라졌다. 하늘에 카운트다운이 떴다.
김남준 꼴이 날까봐 나 조차도 겁났다. 가만히 숫자가 줄어드는 걸 지켜봤다. 28, 27, 27, 26, 25, 24, 23, 22... 21, 20.
중앙지에 바람이 불었다. 조금있으면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겠지. 나는 숨을 들이키고 내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직 너 쪽을 주시했다.
김한빈과 너는 더 멀리떨어졌다. 차학연을 힐끗 바라보는 걸 보니 아마 차학연을 노리는 모양이였다. 혹시몰라서 가방을 다시 꺼냈다.
칼이 들어있는 지퍼백을 꺼내서 두 개만 꺼냈다. 시간을 재면서 주머니에 황급히 넣어놓고는 다시 맸다. 9, 8, 7, 6, 5. 몸을 다시 낮추고 주먹을 쥐었다.
카운트 완료가 다 되었다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제각기 목표로 정해두었던 사람으로 달려나갔다. 손승완은 육성재에게로, 육성재는 손승완에게로 달려나갔다.
오세훈은 박경리의 와이어를 끊어내려고 했으나 무리인 걸 알아채고 텐트를 찢어냈다. 김한빈은 차학연 쪽으로 다가갔고, 너는 총을 불규칙하게 쏴댔다.
김한빈과 차학연이 동시에 타격을 입자 잠시 멈칫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다시 쐈다. 차학연의 반격이 보이지는 않는 동안, 박경리가 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안돼, 안돼. 나는 입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정해놓았던 안전지대를 벗어나서 너에게 폭격을 가하는 박경리 쪽으로 향했다.
옆에서 누가 기합을 가하길래 저절로 몸이 방어자세를 취했다. 뒤늦게 얼굴을 확인해보니 오세훈. 나는 오세훈의 얼굴을 그제서야 미세하게 볼 수 있었다.
땀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그는 내 것보다 긴 칼로 날 찌르려고 했다. 나는 그의 명치를 가까스로 차고 잠시 뒤로 물러섰다. 오세훈은 이를 악물었다.
"난 네게 피해 준게 없어."
"...알아, 안다고."
"근데 왜..."
"씨발, 이래야 내가 이기잖아! 다들 싸우는데 나 혼자 멍청하게 있으라고?"
오세훈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명치를 더듬거렸다. 쿨럭, 거리는 소리가 연속으로 튀어나오고 있었고 그틈을 타서 박경리 쪽을 쳐다봤다.
난 지금 너랑 싸울 시간도 없고, 마음도 없어. 죽고싶으면 다른 사람 알아보라고 한 뒤에야 박경리 밑에서 깔려있는 너를 발견했다. 너의 얼굴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팽겨치고는 다리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심지어 깁스한 다리 중심으로 차대서 점점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꺾어지기 시작했다.
저 년이 진짜.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오세훈이 막았다. 너의 상대는 나야, 김지원! 빽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다시 그 칼을 들고 일어섰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순간적으로 김성규가 생각났다. 자칫하면 그 새끼의 심리전에 놀아날 수도 있었던 그 혼잣말을. 나는 눈 동공을 풀고 오세훈을 쳐다봤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써서라도 빨리 박경리를 해치워야 했으므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오세훈에게 말했다. 살, 인, 자.
그러자 오세훈의 몸짓이 멈췄다. 너, 세 명이나 죽였더라. 1구역이라고 하던데. 다들 겁에 질려서 벌벌 떨어야 겠군. 독을 입으로 쏘는 것만 같았다.
내가마지막으로봤던여자아이도너에게죽었어오세훈근데너는아무런죄책감도눈에보이지않아이게정상이라고생각해물론지금당장에서는너가발악을할수있겠지
하지만너가이게임에서우승한다고쳐보자너가사람죽였던일이곧네게자랑스러운일이될까너가죽인사람들의자책을받아서너의꼴이우습게끝나버릴게보이는데
살인자라는타이틀을벗어날수없어너는짊어지고살아야할죄만늘뿐이야오세훈과연너는이걸듣고나서도사람을죽일수있을까나라면포기하고도남을것같다
억지라고듣지마귀막지마부정하지마눈감지마이게현실이야지금눈앞에내가보이겠지만눈감으면박수영과전정국김현아가널쳐다보고있겠지넌뭐라고변명할래
진작에라도그만둬그만두고모든걸내려놔이미멀리까지와버렸으니너가가장적합하다고생각되는걸네게실행해오세훈그게답이야더이상누굴해치지마알겠어?
너와다른점이뭐냐고묻는다면난적어도너보다그사람들의심정을이해해거침없이칼질하는너보단내가더살아남아야할이유가충분하다고그니까넌탈락이야오세훈
그렇게 말하고나서 고개를 돌렸다. 박경리는 너의 멱살을 잡고 싸대기를 때리고있었다. 철썩, 하는 소리가 내 쪽까지 들리는데 김한빈은 차학연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박경리의 높은 목소리에서 김진환 이라는 말이 들렸다. 방송사고 때 박경리가 김진환과 만나고 싶어했던 것이 기억났다. 지금 그 빌미로 널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저 씨발년이. 자동으로 욕이 튀어나오고나서 나는 달렸다. 높게 쳐든 박경리의 팔에서 짧은 단도가 보였다. 하늘에는 해가 빛났다.
손에 있던 칼과 왼손에 여분의 칼 하나를 더 들었다. 두 칼 모두 등에 찌르고나서 하나 남은 칼 하나를 더 찔렀다. 삼각형 모양을 이룬 칼들이 반듯했다.
차학연의 목을 딴 김한빈이 내게 비니를 던졌다. 먼 거리였음에도 한 손에 들어온 터라 난 능숙하게 비니를 잡아냈고 박경리의 허리를 밟았다.
너는 쿨럭이면서 피를 토했다. 입가를 틀어막았다가 점점 눈에 힘이 풀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숨도 고르게 쉬지못하고 있었다.
이런 썅년이. 나는 욕을 뱉으면서 박경리를 발로 치웠다. 너는 눈을 감고있었고, 희미한 웃음을 걸친채 그 상태에서 굳어버렸다. 대포가 펑, 펑 하고 터졌다.
씨이발!!!!! 널 두 팔에 든 채 달렸다. 김한빈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아랑곳하지않고 다시 숲속으로 달려나갔다. 오른손에 끈적함이 묻어나왔다.
허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박경리의 작품이다. 정말 끝까지 엿먹이는 게 개같아서 조금만 참으라고 들리지않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제발 참으라고. 죽지말라고. 겨우 널 지켜냈고 널 데려왔는데 너마저도 죽으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 눈 감고 있으니까 정신잃은거라고 생각하겠다고.
널 나무에 기대놓고 담요를 꽁꽁 둘러주었다. 엉성하게 너의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둘러주니 약간 안심이 되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지만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던 터라 나름 봐줄만 했다. 언제봐도 참 예뻤다. 박경리가 널 죽였더라면. 그 생각이 들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곧 나름 흐뭇한게 쳐다보고나서 물이나 뜰려고 자리를 떴다. 올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면 들 때까지 기다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근처에 물줄기가 새어나오는 곳이 있었다. 페트병 한 개를 들고 저벅저벅 걸어가는데, 맞은 편에서 손승완의 모습이 보였다.
손승완은 완전히 지쳐보이는 얼굴로 날 힐끔 쳐다보고는 말았다. 들고 있는 활과 화살에는 누군가를 죽인 흔적이 나타났다. 아랑곳하지않고 묵묵히 물만 떴다.
너가 김지원이지. 손승완은 아는 척을 해보였다. 날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착잡한 한숨을 뱉었다.
"너가 그 패기있게 고백했던 놈이구나."
"어."
"걘 좀 어때, 아까 너가 들고갔잖아."
"...몰라, 정신을 못차려."
내 말에 손승완은 들고있던 가방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물품 하나를 건넸다. 이건 비상약이고, 정신못차리면 이걸 먹여. 정신들면 좀 쉬게해.
곧 이어 날아온 것은 연고였다. 그건 다친데 발라, 아무데나 발라도 빠르게 회복될꺼야. 손승완은 이제 가보겠다며 다시 뒤돌았다.
"야!!!"
"...뭐야, 할말 더 남았어?"
나는 손승완을 불렀다. 그녀는 귀찮은 얼굴로 다시 날 쳐다봤다. 그 표정은 무시하고 손승완이 내게 건넸던 약품을 흔들어보였다.
"왜 이걸 준거야?"
"..."
"그냥 무시하고 가도 되잖아. 왜 굳이 나한테 준거야, 왜?"
걔가 말 안했나 보구나. 그녀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무슨 말? 재차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딱딱하게 말을 마저이었다.
걔가 직접 말하면 더 좋았을텐데, 이렇게 마주친 겸 내가 말해야겠다. 그녀는 여전히 거리를 둔 채 조금 크게 말했다. 이상한 말은 절대 아니니까 피하진 말고.
김기범 죽었잖아. 우리 구역 남자애. 손승완은 텀을 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표정은 워낙 괴롭게 짓던터라 차마 뭐라고 할 순 없었다. 너가 나랑 비슷해보여.
비슷해보여서 더 공감가겠지만, 만약 너가 죽던 걔가 죽던간에 이거 하나는 알아두라고. 너가 평소에 못했던 말, 마음속에 썩혀뒀던 말은 해줘.
김기범이 죽고나서 내가 가장 후회되었던 것은 시간을 놓친 거였어. 진작에 말할껄, 조금 아껴뒀다가 말할껄. 이게 제일 몹쓸 짓이였고 할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후회라는 단어는 참 잔인해. 그 때 할껄, 하지만 어떡하라고.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나는 이 자리에 서있잖아. 그니까 김지원, 내 말은 말야.
"걔 좋아하잖아."
"..."
"말하라고, 찌질이처럼 숨기지 말고."
약간 어퍼컷 같은 느낌인데. 뭔가 확 와닿았어. 내가 중얼거리자 손승완은 허, 하고 어지간히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진짜 특이한 놈.
아, 잠깐만. 그녀는 할말이 더 있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한빈 어디갔냐? 그녀의 질문에 어깨만 으쓱였다. 몰라, 난. 그러자 그녀는 마음에 들지않는 눈치였다.
니 새끼가 그렇게 튀고나서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중앙지를 떴어. 아마 걔 구하러 튀느라고 듣지못했겠지만... 손승완은 입을 달싹거리다가 곧 다시 열었다.
오세훈한테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너 꽤 말빨이 존나 쎈 거 같다. 김지원, 무서운 새끼. 뭔데,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는데 한 마디만 해.
"...오세훈, 자살했어 새끼야."
"...뭐?"
"니가 뭐라고 지껄였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오세훈 죽었어."
어쨌든 내 말 명심해. 이까짓 죽었다는 말은 대수롭진 않지만, 이것보다 중요한건 진심이야. 손승완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손승완의 말을 듣고나서 너에게 오글거렸던 말을 서슴없이 뱉었던 것도 사실 내가 평소에 담아두었던 말이였어.
그녀의 표정을 읽고나서 직감적으로 깨달았지. 손승완은 위험하구나, 지금 걷잡을 수 없이 방황하고 있구나.
아무런 관련없는 내가 손승완을 잡을 순 없잖아. 그저 그녀가 깨달았다고 한 말을 들어주고 돌려보냈지만 나름 생각이 많이 들었어.
티를 냈는데 너가 그렇게 쓰러지고나서부터 나는 널 조금씩 피했다는 걸. 시작하고나서부터 내가 반대로 너의 뒤를 쫓아간 것같았어.
동등해져야하는데 기울어지고 있으니 이게 참 뭔 운명의 장난이냐. 손승완은 그러고나서 쿨내나게 뒤돌아서 갔어.
어쩌면 그녀가 죽은 것도 내가 미리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덤덤했던 것 같아. 일부러 위로의 핀트가 나가게 널 달래준 것도 그랬던 거야.
눈물을 지으면서 손승완을 구하지못했던 것에 손을 벌벌 떨고 있는 너의 모습을 그저 꼭 껴안아주었어.
이미 떠나간 사람은 보내야해, 김기범을 찾아간 손승완은 이제 행복할꺼라고. 너무 속박하지말자고 우리가.
뒤돌아서 보면 구해지 못했던것에 후회하지말길 바래. 그녀가 원했던 거고, 우린 그녀가 김기범과 더 가까워지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거라고 생각하자.
네게 웃어보였던 것도 다 정말로 진심으로 행복해서 웃었다는 것을.
어쩌면 그 때 김기범의 모습과 얼굴이 보여서 기꺼이 살아남길... 거부했을 거라고.
다시 깨어난 너와 입맞춤을 하고, 황홀한 시간을 보내면서 일기를 써내려갔다. 그 때 너가 말한 달의 이야기는 조금, 비로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들을 수 없었던 설화였다. 소년을 사랑한 달, 더이상 사랑하지않는 소년을 이해해 주었던 달. 기꺼이 지켜보겠다는 달의 마음을 이해했다.
너의 옆모습을 보니 그래도 달을 이해못하겠다는 얼굴이라서 살짝 가슴이 아려왔다. 2년동안 짝사랑한 내 마음을 내가 고백했을 때 너는 왠지 부정할 것같았다.
애써 손을 놀려서 그 날의 일기를 쓰고 오세훈이 죽었다는 말을 하자 예상과다르게 충격먹은 얼굴로 재차 물어온 너의 표정을 보니 크게 잘못한 느낌이 들었다.
상상하지 못한 사람이 죽었다고 했는데 정말 상상치도 못했던 것이다. 너의 반응은 봐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했는데 이상하게시리 마음이 편해졌다.
싸이코패스라고 욕해도 나는 할말이 없었다. 내가 말로 그 아이를 죽인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마구 혼란스러워하길래 약간 텀을 두고 장난을 쳤다.
너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사람 죽는게 여기서는 하루이틀꼴로 대수롭진 않으니까. 너의 반응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면서 조금, 달콤하게 장난쳤다.
그리고 너의 얼굴을 어깨에 기대게 해서 처음으로 너와 같이 잤다. 굉장히 이상하게 들리지만 정말 순수하게 너와 함께 밤을 지냈다.
그전에 너의 코에 살짝 입맞췄는데 너는 그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않았다. 오히려 내 손에 이끌려서 내 어깨에 대담히 기대도 가만히 있었다.
너는 숨을 고르게 쉬며 깊게 잠에 들었지만 나는 잠이 오지않았다. 손승완의 말과 너의 달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기 때문에 일기도 엉망진창이였다.
손에 닿는 거리에 둔 가방을 꺼내서 내가 이태껏 지어온 일기를 펼쳤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이렇게 뭘 읽어내려 가는 것도 나쁘진 않는 법이다.
더군다나 너가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심장이 빨리 뛰어서 어쩔수가 없어진다. 눈을 한 번 돌리고 올해 일기가 시작되는 부분을 더듬어내려갔다.
끝까진 다 읽지못했다. 나 또한 피곤했고, 오세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말에 뒤통수 맞은 얼굴로 멍 하게 서있던 모습이 계속 기억이났다.
너의 반응도 상상치도 못했고. 내가 중앙지에서 엿보고 있는 동안 둘이서 뭔가 썸씽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대체 뭐였는지는 알길도 없었다.
한숨을 푹 쉬고 내 자신을 또 한번 다독였다. 괜찮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들고있던 일기장을 여러번 내 얼굴에 갖다치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젠 4명밖에 남지않아서 나도 혼란스럽다는 말. 김한빈, 손승완, 그리고 나와 너.
만약 나와 너가 남는다면 나는 극단의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일기장 한편에 써놓았던 문단이였다. 자꾸만 눈에 밟힌다. 오세훈도, 그것도.
그러다가 나도 깜빡 잠에 들었다. 어깨가 아파와서 일어나니 사방이 밝아져있었다. 내가 한번 움직이자 너도 문득 일어나서 얼굴을 비비다가 기지개를 폈다.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이제 슬슬 이동해야 할 것 같아서 너의 상처를 가리고있던 붕대를 드러내고 약을 바르자고했다. 내가 굳이 해줄필요는 없댄다.
하지만 꼭 해주고싶어서 굳이 밀자 무어라고 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너의 앞에 섰다. 약을 조금 짜고 바르고, 짜고 바르고를 반복했다.
언제까지나 같이 있고싶은데, 그럴수가 없어서 짜증나. 내 말에 너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그리고 내 품으로 당겼다. 너가 다시 내게 가까워졌다.
널 내 쪽으로 오게하자 뒤에 무언가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뭔가 싶어서 일부러 말을 놀렸다. 너는 간간히 숨을 들이쉬면서 내 말을 경청했다.
점점 가까워졌다. 번뜩이는 눈이 사람눈이아니였다. 오히려 새하얀 눈알에 검게 박힌 점들이 눈알에 빼곡히 박혀있었다. 저건, 사람의 눈이 아니다.
서벅서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점점 다가오길래 너가 쓰는 총을 급히 빼내서 쐈다. 꽤나 가까이 왔던 짐승은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고, 곧이어 짐승들이 나타났다.
왜 쐈냐는 질책에 둘러댄 말. 그리고 다가오는 또 다른 짐승들. 김지원... 너는 내이름을 부르면서 가방끈을 꼬옥 쥐었고, 난 씨발이라고 읊조리며 너의 손을 잡았다.
튕기듯이 빠져나온 그곳에서 서로의 추격전이 시작되었고 뒤도안돌아보고 달렸다. 힘에겨워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이상태에서 널 잃고싶지않았다.
번갈아가면서 겨우 죽이고, 중앙지에 도착하고. 그제서야 여유롭게 너의 얼굴을 다시 봤다.
손승완이 죽었던 장면은 평생 기억에 남겠지만 그걸 기억도 안나게 해주고 싶어.
손승완이 너에게 했던 말처럼 내게 했던 말은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고, 이젠... 정말 세 명 밖에 남지 않았구나.
울먹거림을 다독여주길 몇 십분이 지나자 저 멀리서 김한빈이 보였다. 11구역 수트에는 아무것도 묻혀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친 얼굴로 날 발견했다.
서로의 시선이 오갔다. 고개를 끄덕이고 너를 달랬다. 김한빈 왔다고. 이제 내려가자,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어. 이제 내려가자.
잔뜩 무서워하고 겁내길래 귀에 입을 맞췄다. 쉬, 괜찮아. 내가 있어. 뚝, 울지마. 울지마... 응?
김한빈과 나, 그리고 너가 최후의 후보자가 되었다. 예상했던 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 사랑한다면.
사랑, 한다면.
사랑한다,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