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나왔는데 전정국이 끈질기게 쫓아왔어.
다행히도 밖에는 김태형씨가 있었지.
"빨리나왔네요. 같이 집 갈래요?"
"뒤에 전정국와요"
"빨리 가자 그럼"
"빨리빨리"
전정국한테도 상처를 주지 않고, 김태형씨에게도 죄짓지 않을 방법은 내가 빨리 걷는 것 뿐. 그것도 티나지 않게.
다 내가 사건의 발단이고, 원인이고 그렇지 뭐...
아무튼 전정국이 가까워지기전에 우린 후다닥 차 타고 집으로 돌아와버렸어.
"좋은 방안을 생각해봤는데"
"뭔데요?"
"내가 그 극단에 들어갈게요."
"예...?"
"다리를 놔줘요. 들어갈게"
나는 고민했지. 김태형씨가 극단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나의 득과 실을 따졌고.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결국 끝은 김태형씨가 극단에 들어오는게 최선이라는 것이었어.
그래서 확신한 김에 바로 일을 진행했지.
"선배..네..예...아...네.."
내가 통화하는 모습을 김태형씨는 지켜보고 있었고.
동아리장은 다행히 여자선배였어. 그리고 김태형씨를 알고 있는.
[진짜? 그 재벌4세? 우리학교 다니는 김태형? 당연히 좋지!!!! 신청서 메일로 보내줄테니까 써서 나한테 내일 가지고 와! 기다릴게~]
그렇게 힘들지 않게 절차를 마치고 김태형씨랑 나랑 나란히 집에 돌아왔지.
"크~ 이놈의 인기란. 역시 오디션 없이 바로 합격한거죠?"
"결국엔 배우가 아니라 연출을 맡게 될거예요. 나랑 같이 무대에 설 순 없을걸요?"
"그래요. 나도 거절이예요. 나 원래 연극 이런거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어? 그럼 저 단장언니한테 말씀드릴게요~"
"그건 아니고....보는건 좋아하죠"
무마하려는게 너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어.ㅋㅋㅋㅋㅋㅋ
아주머니께서 준비해주신 토스트 몇 입 먹다가 난 입단 신청서를 뽑아서 김태형씨한테 물어가며 적어서 완성했지.
"김태형씨."
"왜요. 또 있어요?"
"그건 아니고..."
"그럼 뭔데요"
"나...알바 다시 하면 안되나요?"
"또 그 얘기. 끝난 거 아니었어요?"
"대신 김태형씨도 같이 합시다. 이런 거 해보는게 좋지 않겠어요?"
"으으음~거절합니다"
"그럼 나만 허락해주세요!"
"그것도 안되죠"
"왜요!!!!"
"그냥 싫어요. 일하지 말고 공부나 하세요"
"어차피 이 공부 그렇게 다 해봤자 회사들어가서 일할건데 뭐"
"그래도 몸쓰는 일은 아니잖아"
"근데 왜 김태형씨 맨날 나한테 존댓말 반말 섞어써요?"
"왜? 맘에 안들어요?"
"아니 그건 아니고..."
나도 쓰고 싶다고 너한테 반말....이라는 말은 고이 접어 마음 속에 간직한 채 말꼬리를 흐려버렸어.
"그 쪽이 알바를 하겠다면 허락하겠어요. 대신 나는 반말 그쪽은 존댓말."
"헐.."
"근데 그 쪽이 알바 안한다고 하면 그쪽이 나한테 말을 놓을 수 있도록 허락할게요"
그러면서 은근 나의 반말을 자기가 더 허락해주고 싶어하는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김태형씨가 너무 웃긴거야 ㅋㅋㅋㅋㅋㅋ
"그럼 전 알바를 택하..."
"진짜? 알바를 택하겠다고?"
"....그럼.."
"당연히 후자를 택해야지"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알바 얘기는 다시는 입밖에 꺼내지도 않기로 하고 반말 사용권을 얻어냈지 뭐야...
어차피 난 공적인 자리에선 존댓말을 써야하는 걸?
흥이다.
김태형씨가 극단에 들어오는데 있어서 단장 선배가 굉장히 큰 공을 세웠어.
"야. 들여도 내가 들이는거야. 다들 반대할거면 나가"
카리스마 쩌는 단장 선배 덕에 남자선배들도 그래 뭐 한명쯤이야..어차피 연출이라면 사람도 부족한데 잘됐네..ㅎㅎㅎ 하면서 받아주는 분위기였어.
한 명 빼고.
"이렇게 갑자기 뽑혀도 되는겁니까? 이 사실을 알게되면 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역시 새내기는 티가 나. 면접으로 뽑는 건 단지 배우들 뿐이라고. 나머지는 다 연출이야. 배우오디션에서 떨어진 애들은 희망자에 한해 모두 연출팀으로 받아줬고."
단장선배의 명쾌한 반박에 전정국은 입을 다물었지.
물론 분하기야 하겠지. 뜬금없이 김태형이 연극부에 들어왔으니.
하지만 나도 김태형씨가 이 동아리에 있는게 훨씬 내가 마음 편하게 활동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어.
김태형씨 소개가 끝나고, 전정국은 김태형씨에게로, 선배 몇명은 나에게로 왔지.
" 너 남자친구가 쟤야?"
"예...?"
"맞나보네. 얘 너 능력자다"
"아니야. 얘 남자친구"
단장선배가 강력쉴드를 쳐줘서 나도 그냥 웃음으로 무마하고 마무리 했지.
아무래도 커플인걸 들켰다간 별로 득될게 없어서 그냥 말았지.
김태형씨랑도 내가 선배한테 전화드리기 전에 합의했어.
그렇게 내가 남자선배 여자선배 가리지 않고 시달린 후에야 겨우 연습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
그리고 김태형씨는 표정이 안좋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