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해져요 우리 02
조승연 한승우 김요한
깜깜한 밤 하늘이 물결 치듯 울렁거렸다. 취기가 평소보다 많이 올라온 듯 했지만 옆에 승우 선배가 계속 내 얼굴을 쳐다보며 걷고 있어서 취한 티를 내질 못 했다.
왜냐면 내 주사는...
***
"요한찌 나 취취!"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그랬냐"
2019년 1월 1일, 내가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날 요한이랑 단둘이 내 주량도 모르고 술을 마시다가 저 꼴이 난 것이다. 그 장면을 김요한이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술 마실 때마다 내 주량도 모른 채 계속 마시다가 모든 사람들에게 내 애교를 보여주었을 지도 모른다.
김요한과 처음 술 마시고나서도 난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도 몰랐다. 사실 애교 부린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술 마시면 필름 끊기는 것도 버릇인 것 같다.
1월 1일날 김요한과 처음 술 마신 날 이후로 3일 동안 요한이에게 연락이 오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었는데 오랜만에 한 전화에서 내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니 아무 일 없었고 술병걸려서 좀 누워있다가 바쁜 일 처리하느라 연락을 못 받았다는 말만 들었다. 처음엔 좀 의심스러웠지만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그 날 집에 데려다 준 사람이 요한이라는 말을 듣고 뭐라 추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내 주량을 넘겨서 마시면 혼자 산책을 하면서 술을 깨곤 했는데...
***
"근데 선배.. 왜 저 따라나오신거에요?"
내 질문을 들은 승우선배는 살짝 웃으며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분명 같이 술 마셨는데도 술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고 이름 모를 향수의 냄새가 내 코 안에서 맴돌았다.
"그냥.. 너랑 더 친해지고 싶어서"
"아.."
또 그 친해지자는 말뿐이네. 사실 아까 같이 산책가자고 했을 땐 그 분위기에 휩싸여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자고는 했는데 또 친해지자는 말을 들으니까 있던 기대감조차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친해지자는 말은 정말 친구로서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로 난 알고있으니까.
나의 탄식같은 말에 승우 선배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랑 친해지기 싫어? 라고 물어보았고 내가 고개를 흔들자 그제서야 안심한 듯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학교에 대해 궁금한 거 없냐는 질문에 반수할 거라는 말을 내뱉으면 분위기가 안 좋아질게 뻔하기에 그냥 친구 사귀는 법이 어렵다고 이야기 했다.
"너 되게 인기 많을 것 같은데"
"네?"
"귀엽고 이 학교 들어온거면 공부도 잘할테고 특히 웃는게 예쁜 것 같아.. 아 미안 초면인데 이런 말해서.. 내가 취했나보다 나 조금만 더 산책하고 들어갈게 먼저 들어가"
벙쪄있는 나를 개강파티 장소로 데려다 준 승우 선배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고 나는 술 기운이 슬슬 올라오기도 했고 승우 선배의 말을 듣고나서 머리 속이 정리가 안돼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잃기 전 내 눈에 보인건 눈이 풀리는 내 모습을 보며 급히 뛰어오는 승연이의 모습이었다.
***
승우가 식당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식당 문만 쳐다보고 있던 승연은 승우가 들어오고 그 뒤에 나비가 눈이 풀려 쓰러지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급하게 달려나갔다. 급하게 달려나가는 승연의 모습을 본 승우는 뭔가 알아차린 듯 뒤를 돌아보고 같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승연은 나비를 들어 안아 작곡과 과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급하게 뛰어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개강의 설레임에 휩싸여 정적도 잠깐이고 바로 자기들의 이야기로 식당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비를 안고 뛰는 승연의 뒷 모습을 본 승우는 혼잣말로 복잡해지겠네.. 라며 천천히 과방으로 향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나비가 큰일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전력질주를 한 승연은 과방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나비를 눕히고 입고있던 자켓을 벗어 땀을 식히고 있었다. 승연은 승연의 몸매가 다 드러나는 반팔덕분에 누가 봐도 시선을 사로잡을 듯 했다.
잠시 정신이 든 나비는 눈을 떴을 때 보이는 모습이 승연의 반팔차림 모습이었기에 깬 티를 낼 수 없었다. 다시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고 있던 중 승우가 과방으로 들어오고 승연의 인삿말이 들리고 그 후로는 과방에 정적만 흘렀다.
***
"아 머리아파..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정신이 들고보니 나는 과방에 홀로 누워있었다. 아까 눈을 떴을 때 승연이의 모습이 보였던 것 같은데 너무 민망해서 눈을 뜨기엔.. 그리고 아까는 또 누가 들어온거지? 선배였던 것 같은데..
승연이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승연과 과방에 들어온 사람 두 사람의 모습이 모두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지금 기숙사에 들어가면 벌점은 받지 않을 것 같아 과방에서 짐을 챙기고 나왔다.
짐을 챙기고 음대 1층 로비로 나왔더니 라운지에서 자고 있는 승연이의 모습이 보여 잠시 승연이의 옆에 앉아 있었다. 자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 반팔 위에 자켓을 덮고 자고 있었는데 손목에 살짝 보이는 타투가 내 눈에 띄었다.
무의식적으로 타투를 만지려고 손을 뻗은 순간 승연이의 눈이 떠지더니 타투를 만지려는 내 손목을 잡고 다정하게 괜찮냐는 한 마디를 던졌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고 승연이는 슬며시 일어나 내 옆자리에 앉았다.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왜 쓰러진거야?"
"아니 그냥.. 술이 좀 많이 취했나봐"
"너 술 진짜 약한가보다"
"소주 세잔이면 취해.."
"애기네 애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승연이를 보고 조금 당황했지만 그 뒤에서 승우 선배에게서 생각할 수도 없던 표정을 지은 승우 선배가 쳐다보고 있어 더 당황했다.
"둘이 뭐 해?"
승연이는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변명을 하려 했지만 승연이가 자기가 말하겠다는 표정을 짓고선 승우 선배를 향해 걸어갔다.
둘 사이에는.. 아니 음대 로비 라운지에는 미묘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