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Concerto
No.2 mov
(BGM- Adam Levine-Lost Stars<비긴어게인ost>)
W. 두번째손가락
11.
진환은 덮고 있던 하늘색 이불을 뒤척이다 동혁이 누운 방향으로 몸을 빙글 돌렸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동혁은 눈을 말똥히 뜨고 진환을 보고 있었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만이 두 사람의 기숙사 방을 가득 채웠다. 시간은 자비없이 빨리 흘렀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순간까지.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고 툭툭 초침을 떨군다.
진환은 팔을 문지르다 몸을 웅크렸다. 시간이 빠르다. 소름돋아.
적막함을 뚫고 동혁이 말을 걸어왔다. 졸린 목소리는 아니였다. 동혁의 눈이 달빛에 잠시나마 반짝였다.
" 형. 긴장되요? "
" ... 조금. "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난 대강당에서. 피아노 앞에서. 관객들 앞에서 연주를 하겠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연습했던 시간들이 진환의 머리에 하나 둘 그려졌다.
처음 내 연주를 칭찬해준 김한빈. 처음 눈 앞에서 내 연습을 바라봐준 동혁이. 처음 내 문제점을 알려주고 다독여준 김지원. 그리고..
" .. 동혁아. "
" 네? "
" 고마워. "
" 뭐가요오- "
" 그냥. 다. "
마지막으로 준회가 떠올랐지만 진환은 고개를 젓고 동혁을 바라봤다. 그동안 날 인정해주고 도와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힘내자.
밤이 짙어질수록 진환의 긴장도 그만큼 짙어지는게 느껴졌다. 곧 동혁의 얕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자 진환도 눈을 감았다.
내가 처음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던. 구준회. 잠에 빠져들즈음에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그 이름은 진환의 꿈에서도 나와 내내 진환을 괴롭혔다.
" Honey. "
오후 3시. 2시간 후면 경합이 시작된다. 시계를 쳐다보던 한빈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무심하게 대답했다. 왜요.
어깨를 감싸온 단단한 팔은 어김없이 분명한 지원의 것이었다.
" 김진환 얘기하면 화낼거야? "
" .. 내가 왜 화내요. "
" 그야 Honey가 질투하니까. "
" 질투 아니라니까. "
반박하려 고개를 돌린 한빈에게 지원의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었다. 한빈은 튀어나올듯 눈을 크게 뜨고는 다시 원상태로 고개를 되돌렸다.
고개를 돌리면서 코가 스친 것도 같다. 이 미친사람. 얼굴은 왜 이렇게 들이대는거야.
" .. 김진환 뭐요. "
" 걔. 너랑 비슷해서. 아니지, 똑같다고 봐야지. "
" ... 뭐가요? "
지원이 한빈의 귀를 톡톡 두드렸다. 한빈은 움찔했지만 이내 깨닫고 지원을 쳐다보았다. 절대음감? 그 사람이?
" 무대공포증이 아닌건 확실해. 증상이 너랑 같더라. "
" 무슨... 절대음감이 흔한가. "
" 딱 고딩때 너라니까. "
" .. 형이 그렇게 말하면 그런거겠지. "
한빈이 입술을 오물거리자 지원은 눈을 반달처럼 휘어접으며 웃었다. 어떻게 말까지 이렇게 이쁘게 하지?
그 입술에 당장이라도 입을 부비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른 지원이 한빈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대신했다.
" 그래도 난 김진환이 들어왔음 좋겠네. "
" ... 나도 그래요. "
" 오늘. 잘해야 할텐데. "
지금쯤 엄청 긴장하고 있지 않으려나? 지원이 시계를 확인하며 생각햇다. 괜히 나까지 다 긴장되네.
경합 30분전. 진환은 대기실이라고 만들어 놓은 방에 앉아 동혁과 경합시간을 기다렸다. 대강당 좌석에 점점 사람들이 자리를 메우는 소리가 들리자 진환은 눈을 질끈 감았다.
동혁이 그런 진환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부들부들 떠는 진환의 모습이 그저 안쓰러웠다. 대기실의 문을 열고 윤형이 들어오자 긴장감은 배로 늘어났다.
비웃는듯한 눈빛. 윤형의 얼굴을 본 진환은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향했다.
" 형, 어디가요? "
" .. 화장실 좀 다녀올게. "
쾅. 닫힌 대기실 문을 확인하곤 진환은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을 찾았다. 왜. 왜 이렇게 긴장되지? 속이 메스껍다.
걸음이 점점 빨라져 발까지 헛디디며 화장실을 찾는 진환은 다급했다. 토할 것 같아. 이마에선 식은 땀이 흘렀다.
앞으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걸었던 탓인지 진환의 어깨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누군가와 강하게 부딪혓다.
그 힘에 비틀거린 진환이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죄송합니다.. 작은 목소리로 사과하는 진환에게 상대방은 손을 내밀었다.
" ....! "
" 뭐가 이렇게 급해. "
" .. 구준..ㅎ.. "
" .. 어디 아파? "
준회는 진환에게 잡으라는듯 손을 내밀었지만 진환의 주춤거림에 진환의 이마를 훑었다. 땀은 왜 흘려.
" 아.. 아니야, 이건 더워서.. "
" 11월에 퍽도 덥겠어. "
" ...... "
" 긴장되서 그러는거야? "
진환이 고개를 못들자 인상을 찌푸린 준회는 허리를 숙여 진환의 얼굴을 찾으려 애썼다.
' 동정, 혹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거겠지. '
윤형의 말이 진환의 귓가에 멤돌았다. 진환은 고개를 들어 준회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 진짜 괜찮아? "
" ... 괜찮아. "
" 고개나 들어봐. 땀 흘리잖아. "
" .. 이거놔. "
진환의 턱을 잡아 올리던 준회의 손이 허공에 붕 뜨자 진환의 얼굴이 저절로 준회를 향했다. 미안해 하고 사과하려던 진환은 입술을 깨물고 시위하듯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작은 충격에 허공에 날아오른 제 손을 잠시 쳐다보던 준회는 저보다 머리통 하나는 작은 남자에게 어쩔 줄 몰라했다. 뭘 잘못한거지.
준회의 동공은 넓은 흰자만큼 이러저리 굴러다니며 방금 제가 한 행동을 되짚었다. 내가 뭘 잘못한거야.
" 저.. "
" 있잖아. "
" 어..? "
" .. 내가 불쌍해서 도와준거야? "
뭐? 준회의 얼굴에 처음으로 혼돈이라는 표정이 찾아올 틈도 없이 진환은 말을 이었다.
" 기대도 안했던 내가.. 김한빈한테 인정받고도. 연주하나 똑바로 못하니까. "
" ...... "
" 그래서.. 불쌍해서 도와준거야? "
붉어진 진환의 눈과 마주친 준회는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었다. 불쌍해서 도와줬냐고? 저런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거지.
저 작은 머리통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어처구니 없고 광활한 상상력이다. 준회는 다시 허리를 숙이고 민망했던 팔을 무릎에 받혔다.
내려다봐야했던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이런 감정을 가지고 거울을 본 적이 없어서. 준회는 진환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진환이 쳐다보는 제 눈이. 금방이라도 없어질 것만 같았다. 한 번 보고나면 사라질 것 같아.
" 어디서 튀어나온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
" ...... "
" 난 내가 인정한게 아니면 안 봐. "
" ... 어? "
" 잘 봐. "
갑작스럽게 다가온 준회의 얼굴에 진환은 민망해져 몸을 틀었다. 진환의 어깨를 준회의 큰 손이 막아섰다.
" 지금 내가 보고 있어. "
" ...... "
" 널 보고 있다고. "
'인정했다' 라는 말에 진환은 모든게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지난 밤 쌓아두었던 근심들. 꿈에 나와 저를 향해 냉소 지었던 준회의 모습.
냉소보다 무서웠던건 동정이었다. 어느샌가부터 단순한 친절이, 동정이 소름끼칠만큼 거북했다.
윤형에게 한 번 당해서일까. 아님 준회에게 동정 아닌 다른 무언가를 바란걸까. 마주보고 있는 순간까지 답은 찾을 수 없다.
그저.. 그저 날 동정하지 말아줘. 상상만해도 가슴 찢어지는 일이다. 준회가 저를 동정의 눈길로 바라본다는 것은.
" ... 동정이 아니야? "
" ...... "
" .. 넌 내 연주를 들어본적도 없잖아. "
인정할만한게 없잖아. 네 입장에선. 그럼 날 도와준 이유가 뭐야. 덧붙인 진환의 질문에 준회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건.. 준회가 입을 떼자 진환의 뒤에서 동혁이 소리쳤다. 형, 이제 준비해야 해요!
" 어어..! "
급하게 대답한 진환이 준회를 쳐다보자 진환의 어깨를 잡았던 손에서 힘이 풀렸다. 주춤하던 진환이 이내 대기실로 몸을 돌렸다.
그건.. 미처 대답하지 못한 준회가 달려가는 진환의 뒷모습을 보다 중얼거렸다.
" 그건.. 나도 모르겠어. "
여기까지 널 찾아온 이유도. 준회는 자리에 굳은듯이 서 있다 관객석으로 향했다.
'동정' 도 아니고, '인정' 이라 하기에도 구실이 부족한 나는 널 뭐라 생각하는건지. 한빈과 지원의 옆자리를 찾아 착석할때까지 진환의 질문은 준회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꽤나 많은 수의 관객들이 모인 무대에서 진환과 윤형이 모습을 드러내자 박수소리가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그 커다란 소리에 진환은 몸을 움츠렸고, 윤형도 보일듯말듯한 긴장 된 표정으로 무대 중앙에 섰다. 사회를 맡은 승훈이 두 사람 사이에 서서 간단히 진환과 윤형을 소개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먼저 연주를 하는 사람은 윤형이었다. 승훈이 들어가고 진환도 관객석에 목례를 한 뒤 대기실로 이동했다. 대기실로 돌아오자 동혁이 다가와 진환을 살폈다.
" 형.. 정말 그렇게 할거에요? "
" 응. 난 연주를 끝내고 싶은거니까. "
" .. 관객들이 당황하지 않을까요? "
" 그래도 어쩔 수 없어. "
이건 내 연주야. 하고 말하는 대화 사이로 대강당에 울려 퍼지는 윤형의 연주가 파고 들었다. 윤형의 연주. 그 특유의 깔끔함이 묻어나왔다.
전에 자주 들었던 윤형의 연주가 시작되자 진환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받았다.
진환과 마찬가지로 지독한 연습벌레인 윤형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연주였다. 잘하네. 진환이 덤덤하게 말했다.
윤형이 연주하는동안 대기실은 적막이 돌았다. 동혁은 더 이상 진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예민한 진환을 위한 나름의 배려엿다.
몇 분의 짧고도 긴 연주가 끝이나자 박수소리가 들리고, 승훈의 멘트와 동시에 윤형이 돌아왔다. 만족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 ... 수고했어. "
이 말을 하는게 맞는건가. 당연하지만 윤형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동혁의 응원을 받은 진환이 심호흡을 하고 무대로 나섰다.
박수소리가 진환을 덮쳐왔다. 커다란 강당, 수 많은 관객들. 진환은 관객들을 둘러보다 맨 앞자리에 단원들을 발견했다. 김한빈의 팀이었다.
자신을 보고 있는 단원들. 그 중에서도 김지원, 김한빈, 그리고.. 구준회. 준회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는 준회를 볼 수 있었다.
동정이 아니라면, 넌 지금 무슨 눈으로 날 보고 있는걸까. 진환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집히는 물체를 꺼내 천천히 귀에 꽂았다.
쟤 지금 뭐하는거야..? 한빈을 비롯해서 의아해하는 술렁임이 관객석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지만 진환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진환의 귓가엔 기다란 이어폰 줄이 'Adam Levine' 의 'Lost Stars' 를 내뱉고 있었다.
진환의 행동을 관객석에서 지켜보던 한빈이 지원을 쏘아보았다. 저게 설마 형이 알려준 방법이야? 지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어때? "
" 어떻냐고? 미쳤어? 저런 무리수를 두면 어떡해. "
" 쉿. "
" 진짜 자기 일 아니라ㄱ.. "
" 지금 나한테 자기라고 한거야? "
.. 한빈은 할 말을 잃어 이마를 짚었다. 다른 음악을 들은 채 연주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짓이었다.
" 잘할거야. 한 번 보자고. "
관객들의 경악에서 뒤를 돈 진환의 앞엔 피아노가 서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피아노와 둘 뿐이었던 것처럼.
들리지 않아도 칠 수 있어. 진환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귀에선 여전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And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It's hunting season
And the lambs are on the run
진환의 손가락이 건반을 찾았다. 완전히 다른 음악. 귓가에서 나오는 노래는 손에서 흐르는 음악과 판이하게 달랐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단 한음도, 진환의 연주를 방해할 수 없었다.
We're searching for meaning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있잖아, 듣고 있어? 내 연주.
I thought I saw you out there crying
I thought I heard you call my name
I thought I heard you out there crying
But just the same..
동정이든. 인정이든. 그 무엇이든. 그것으로 너와 내가 만날 수 있었다면. 난 아무래도 좋은 것 같아.
그건 너와 내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거니까. '남' 이 아니니까. 나는 왜 이것에 안도하는걸까. 잘 모르겠어.
And God, give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Its' hunting season
And this lamb is on the run
날 향한 네 감정이, 널 향한 내 감정이. 무어라 명명할 수 없는것이라해도.
Searching for meaning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네가 들어주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좋아.
I thought I saw you out there crying
I thought I heard you call my name
I thought I heard you out there crying
동경이든. 관심이든. 그 무엇이든. 너와 내가 만날 수 있었다는게 난 아무래도 좋은 것 같아.
아무래도 말야.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아무래도. 그 누구보다 감사해. 듣고 있는 너에게.
그 무엇보다 감사해. 네가 듣고 있다는 사실에.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있잖아.
지금 듣고 있어?
Student ID |
Name : 이승훈(Lee Seung Hun) Student ID : A03_0612 Grade : 3 Major : Flute Class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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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손가락/암호닉 |
2015년 모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네요:D 2015년도 피아노협주곡 많은 사랑 바랍니다ㅠㅠ 항상 댓글 감사히 읽고 있어영.. 조회수에 비해 댓글이 많은거에 감동받고 있답니다! 홍보 한 번 없이 써온 글인데 암호닉 분들도 생기고/// 글 쓰는데 힘이 많이 납니다. 내년에 완결을 바라며! 독자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사랑받고, 사랑주는 한 해 되세요~ 아이콘 데뷔도 소취♥맥매 딥디 빨리오길 소취♥아이콘 내년 신인상 소취!♥
[암호닉] : HAPPY NEW YEAR! 김지원, 텐션, 휴지, obsession, 보나, 짜잔, 잔디, 레모나, 아이린, 맨날밥이야, 주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