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으면
w.아세틸
"원컨데 자유를!"
수많은 군중들의 선발대로 나서는 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손에 담긴 화염병은 곧 불이 붙어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반대편의 검은 방패들 사이로 떨어졌다. 쨍그랑-소리와 함께 바닥에 불꽃이 농밀히 퍼지고 이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장성의 종대가 흐트러졌다.
"이재환!"
정택운은 재환을 향해 달려오는 독재의 개들을 보고는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낡디 낡은 슬라이드를 쇼처럼 철그덕,철그덕 이 죽음의 씬이 흐르는 것을, 그 필름을 멈춰 세우는 자루를 잡을 수가 없었다. 칠흑같이 몰려드는 죽음은, 공포는, 그리고 그 속으로 잡아먹히는 이재환은, 손 끝조차 닿지 않는 무한의 공간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이재화안!!!!!'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목구멍 속으로 콱 콱 조이는 슬픔이 밀려들어 숨을 막았다. 소리가 만들어 지지 않았다. 택운의 목에 붉게 힘줄이 섰지만 입에서는 꺼억 꺼억하는 신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안 돼, 가면 안 돼. 아직..아직 안 돼. 제발 아니야 아직은 때가 아니야. 정택운의 팔이 허공을 급히 휘저었다. 닿지 않는 목소리로 줄기차게 소리를 지르고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어둠을 계속해서 움켜잡았다. 목에서 비린 핏맛이 느껴졌지만 아픔은 없었다. 재환을, 이재환을 잡아야 했다.
-..형, ...운형,
"정택운!"
"-헉!"
거칠게 어깨를 흔드는 손길 덕분에 택운은 깊은 물속에서 끌어당겨지듯이 악몽에서 깨어났다. 땀에 흠뻑젖어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조심히 쓸어 넘기는 손길이 느껴져 시선을 들자,자신이 그토록 잡으려 애쓰던 이재환이 어슴푸레한 새벽빛을 등지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택운의 한쪽 어깨를 잡은채로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괜찮아 형? 무슨 꿈을 꿨길래 그래?"
"...어? 어어...꿈..."
택운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배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손 끝이 푸른빛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방금전까지 자신을 잡고있던 몽마가 아직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재환아...나 꿈에서 네가..."
"응."
"..."
"왜, 꿈에 나 나왔어?"
"....아니야. 미안, 시끄러웠지? 다시 자... 자자."
말을 하려다 마는 택운을 잠시 골똘한 얼굴로 쳐다보던 재환은 택운의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 덮었다.
그리고는 배를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옆에있는데 왜 자꾸 악몽을 꿔."
몇일째 반복되는 상황에 재환역시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지만 깊이 묻진 않았다. 좋은 이야기가 아닌것 같으니 다시 이야기를 하면 택운이 힘들지 않을까 배려를 하는 것이었다. 택운은 그런 재환에게 차마 꿈에 대해 말 할수 없었다. 다시 고른숨을 쉬며 잠든 재환을 바라보며 택운은 꿈을 떠올렸다.
네가 꿈에서 자꾸..자꾸만 죽어..내가 아무리 구하려고 해도 손이 닿질 않아. 눈 앞에 있는데, 닿을것만 같은데 신기루처럼 닿지를 않아. 내 꿈에 너가 보인단 말야. 너의 미래가 보인단 말야.
그리고 난 이 미래를 바꿀 힘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하지 재환아?
창 밖으로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사이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