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김한빈의 관계는 애매했다. 친구라기엔 너무 가깝고, 그렇다고 연인이라 칭하기에도 애매하고. 우린 서로를 친한 친구라 칭했지만, 그 말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지나가다 내게 들리는 김한빈 어때? 라는 물음에 그냥 친구야. 대답하면 하루종일 김한빈은 뾰루퉁해 있었고, 어쩌다 김한빈이 000? 그냥 친구지. 라는 말이 들리면 하루종일 기분이 알쏭달쏭했다. 그냥 친구.
언제까지?
*
연한 파란색 하늘 위로 우중충한 납빛 구름이 가득했다. 가랑비가 곤색 아스팔트 바닥에 톡톡 떨어지며 요란하고도 잔잔한 리듬이 흘렀다. 나는 접어두었던 우산을 펼치고 길을 나섰다.
"000!"
멀리서 김한빈이 나를 불러왔다. 발 밑에 고인 웅덩이를 보지 못했는지 신나게 달려오던 김한빈은 웅덩이 안에 발이 쑥 빠졌고, 교복 밑단은 축축하게 젖어들어갔다.
"으어!"
김한빈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튀어오르듯 발을 뺐고, 그 모습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김한빈은 친구가 웅덩이에 빠진게 웃기냐며 내게 쏘아붙였고 나는 삐죽 튀어나온 김한빈의 입술에 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기다려, 양말 가져다줄게."
"아아, 괜찮아, 금방 마를걸?"
빨리 가자. 김한빈은 내 팔을 잡아당기더니 제 우산 아래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도 우산 있는데?
"이렇게 좁은 길에서, 우산 두개는 민폐야."
그런가? 나는 김한빈의 말에 수긍하며 들고있던 내 우산을 접었다. 우산에서 빗방울이 통 튀었고, 빗방울은 내 얼굴에 내려앉았다.
"으아, 차거"
풉, 김한빈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휙 돌리니 김한빈은 언제 웃었냐는 듯 입꼬리를 내리고 날 보곤 왜? 하고 되물었다. 이런 요망한 것. 김한빈은 킬킬 웃으며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둘렀고 내게 팔걸이용으로 딱 좋다며 입을 놀렸다.
"미안하다, 키가 작아서."
"아니, 그래서 좋다고."
*
학교에서 나와 놀아주는 건 김한빈 뿐이었다. 가끔 옆반에서 놀러오는 김한빈 친구 김지원하고는 예의상 하는 인사만 주고받았고 사적인 대화를 하는 일은 적었다. 김지원 뿐이 아니었다. 김한빈하고만 다녀서 그러는지 아이들은 내게 잘 다가오지 않았고, 그나마 다가오는 애들은 친화력이 엄청 좋아서 친구가 많은 애들, 그 뿐이었다. 가끔, 아주 가끔 여자애들이 나와 김한빈의 사이를 물어오기도 했지만 그 질문 외에 네 번호가 뭐냐, 어디 사냐, 뭐 좋아하냐. 이런 질문은 받아본 적이 없다. 김한빈을 제외하고는.
"00아, 이번주 어머니 기일이시지?"
김한빈은 내 일정을 나보다 더 잘 알았다. 내가 엄마 기일에 꽃을 사러 꽃집에 들르려 하면 제가 먼저 사뒀다고 갈 필요 없다며 내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다음날에 내게 깊은 향이 물씬 풍기는 새하얀 백합 한 다발을 쥐어주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미래 사위가, 이정도 쯤이야."
김한빈은 나를 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미래 사위는 무슨, 나는 김한빈을 아프지 않게 툭툭 쳤고 김한빈은 서방님을 때리면 쓰나, 라며 웃었다. 김한빈은 엄마의 유골함 앞에서도 미래 사위가 왔다며, 잘 지내셨냐며 인사했다.
*
"000 걔 엄마 자살했다며."
"어, 걔네 아빠가 바람나서 농약 마시고 뒤졌다는데?"
교실에 들어서려는데 반 아이들이 낄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야기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닌 내 부모님의 이야기.
"헐 대박, 그럼 000은 누구랑 살아?"
"내 알빠야? 혼자 살거나 능력이 되면 남자 하나 물어서 살거나."
속에서 깊은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씨발. 너네가 뭔데 우리 부모님을 거들먹거려. 나랑 말 한마디도 안 섞어본 애들이.
"니네가 봤어?"
김한빈의 목소리였다. 문 너머로 들리는 김한빈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김한빈의 목소리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내 속이 가라앉았다.
"니네가 000 부모님 봤냐고, 씨발."
"알면서 지껄이든가."
"존나 좆같네."
김한빈의 말이 끝나고 나는 교실 문을 열었다. 여러개의 눈동자가 내게 주목됬다. 물론 그 중에는, 김한빈도 있었다.
"왔어?"
김한빈은 살갑게 웃으며 일어나 내게 다가왔고,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매점갈래?"
나는 김한빈에게 물었고 김한빈은 니가 먼저 가자고 하고, 왠일이래? 하며 날 끌고 매점으로 향했다.
"이거 먹어."
나는 김한빈에게 피크닉 하나를 쥐어주고는 재빨리 몸을 틀어 교실로 돌아왔다. 뒤에서 김한빈이 흘린 웃음소리가 나를 쫓았다. 내 두 볼이 뜨거웠다.
*
오늘따라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건지, 내가 잡념이 많은건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볼 땐, 벌써 종례가 끝나고 애들은 책가방을 싸고 교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자. 00아."
비가 언제 그쳤는지 하늘은 맑게 개어있었다. 들어오는 공기가 상쾌했다. 그 느낌이 매우 좋아서 하늘만 올려다 보고 있었는데, 김한빈이 내 옆으로 가깝게 다가왔다.
"하늘 본다고 키 안큰대."
아이 씨. 기분 좋았는데 초치네 김한빈. 입술을 삐죽 내밀고 김한빈을 바라보자 김한빈은 비엔나 소세지 같다며 긴 손가락을 뻗어 내 입술을 톡톡 쳐댔다. 두 볼이 또 뜨거워졌다. 나는 발걸음을 더 빨리했고, 김한빈은 삐졌냐며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
집 앞에 도착해서야 나는 김한빈을 돌아봤다. 김한빈은 숨을 헥헥대며 내게 여자애 걸음이 뭐 그리 빠르냐며 타박했다.
"한빈아."
숨을 가다듬은 김한빈이 나를 마주했다. 나는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다가, 지그시 깨문 입술을 열었다.
"고마워."
항상 하고싶었던 말이었다. 내게 다가와준 것도, 애들 사이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도, 함께 집에 가는 이 순간까지 고마웠다. 김한빈은 갑자기 왜 이러냐며 개구지게 말했고, 나는 그런 김한빈의 말을 잘랐다.
"진심이야."
"진짜 너밖에 없다, 한빈아."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흐를것만 같았다. 나는 김한빈을 보며 씩 웃어보였다. 정말 고마워. 김한빈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많은 감정이 오가는 듯 보였다. 김한빈은 혀로 입술을 축였고, 깊은 숨을 한번 내쉬더니 날 보곤 입을 열었다.
"나밖에 없으면,"
"나랑 사귀자."
"나도 너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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