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機). 01 부제: equal 유난히 하늘이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그토록 좋았던 날씨에 나는 아빠를 잃었다. 평범했던 가정이 아빠의 교통사고로 인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딱히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 그런 흔한 사고였으니깐. 단지 그 사고가 왜 하필 우리 가족일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장례식장에서 엄마의 모습은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안쓰러웠고 비참했다. 엄마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큰소리로 울 수도 아빠를 목놓아 부를 수도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의 빈자리는 우리 가족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엄마는 출근하지 않았고 나는 등교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러보냈다. 그런 우리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아빠 친구분이셨다. 아저씨께서는 우리에게 금전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내가 본 아저씨는 누구보다도 선한 분이셨다. 그래서 우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으셨을 거다. 아저씨로 인해 우리 가족은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엄마는 아저씨와 진지하게 만남을 갖고 있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년밖에 안되는 시간 동안 벌써 아빠를 잊은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그런 엄마 옆에서 아저씨가 어떻게 보살펴줬는지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환경에 적응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적응하기도 전에 바뀌어버렸다. 아저씨는 동정이라고 했다. 우리를 가엾이 여기던 연민의 감정을 자신이 잠시 착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아저씨는 사과했고 떠나갔다. 엄마는 다시 한번 무너져버렸다. 엄마가 그토록 의지했던 사람이 떠나버린 것은 엄마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나 보다. 나를 놔두고 떠나버릴 만큼 세상을 놓아버릴 만큼 그렇게 지쳤었나 보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내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는 서럽게 울었다. 나를 혼자 남겨두고 간 원망 때문일까 엄마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서일까 이러다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펑펑 울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집이 나를 마주했다. 이렇게 큰 공간에 나 홀로 남은 것이 무섭고 두렵고 서러웠다.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할 줄 안다. 나는 이제 국가보조금을 받아서 살아야 할 것이고 앞으로 돈이 많이 부족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이사를 해야 했다. 주변 친척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와도 된다고 했지만 진심으로 말하는 이는 없는 것 같아 거절했다. 부모님이 남겨두고 가신 돈으로 원룸을 샀다. 아빠 엄마의 물건들을 다 챙겨가고 싶지만 집이 작아서 다 챙길 수가 없었다. 아빠 엄마를 추억할 수 있을만한 중요한 물건 몇 개만 챙겨서 나는 이사를 했다. 이사를 다 끝내고 학교에 내일부터 등교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방학이 끝나기 하루 전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개학하고 이주 정도 학교를 가지 않았다. 내일 학교를 가면 반이 바뀌어있을 것이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밥 먹을 친구는 있었다. 그 같이 밥 먹는 친구들은 내 소식을 알고 있을 텐데 문자 한 통 오지 않았다. 딱히 미련이 남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 사이가 그 정도였구나 생각만 할 뿐이다. 친구가 있는 것도 내게는 사치다. 그냥 나 혼자 다니고 싶다.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교무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끝 쪽에 앉아계신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네가 유 솔이니?" ".... 네" "그래 솔아 너는 2학년 9반이고 내가 담임이야 그... 소식 들었는데 괜찮니...?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지 선생님한테 말하고" "아..... 네" "먼저 반에 올라가있어 선생님은 종 치고 올라갈게" 나는 담임선생님의 말대로 교실로 향했다. 마음을 비우고 왔지만 막상 문 앞에 서니 조금 긴장이 된다. 뒷문에서 서 문을 열려고 손을 뻗자마자 문이 열리더니 내 어깨를 치고 누군가가 나갔다. "아..... 씨" 인상을 찌푸리고 나간 쪽을 보자 키 큰 남자애가 아무렇지도 않게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아 무시하기로 했다. 열린 문 사이로 교실에 들어가자 반에 있던 아이들이 힐끗 쳐다보더니 제각기 하던 일에 집중한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있는 내게 안경 낀 여자아이가 말을 걸었다. "나는 이 반 부반장이고 네 자리는 창문 쪽 맨 뒤야" 자신의 할 말만 끝내고 부반장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가르쳐준 내 자리에 앉아 종이 치기를 기다렸다. 종이 치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나를 배려한 것인지 개인 사정으로 인해 늦게 왔다고 나를 소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님의 배려가 무색하게 모두 내가 왜 늦게 학교에 온 것인지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셨다. 내 옆 옆자리에 든 거 없어 보이는 가방만 놓여있는 빈자리를 보고 한숨을 쉬셨다. "오세훈 오늘은 가방 놓고 어디로 갔다니" "......" "반장 나중에 세훈이 선생님한테 오라고 전달 좀 해줘" "네" "자 그럼 조용히 자습하자" 선생님은 출석부를 챙기시고 바로 나가셨다. 학교에 있는 하루 동안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애들은 없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고. 애들은 그냥 내 뒤에서 나에 대해 불쌍하다 고아네 뭐네 하는 동정 섞인 비웃음만 보일뿐이다. 난 이 상태가 좋았다. 나에게 딱 이 정도의 관심만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시하는 건 상관없으나 쓸데없이 더한 관심은 사양하겠다. 그렇게 내 바람대로 한 달이 흘렀다. 점심시간 여느 때와 같이 교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아니 나와 다른 한 아이를 불렀다. "반장하고 솔이하고 선생님 잠깐만 볼까?" 나는 반장과 함께 선생님을 따라나섰다. 텅 빈 교무실로 들어가서 선생님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셨다. "아 선생님이 너희를 따로 부른 이유는 너희가 지원받을 수 있는 게 있어서 이거 종이만 작성하면 되는데 할래? 너희한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선생님이 주신 종이의 제목에는 '소년소녀 가장 돕기'라고 적혀있었다. 순간 그럼 반장도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반장을 쳐다봤다.
'도경수' 사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던 나는 반장의 이름을 명찰을 보고 그때 처음 알았다. 얼굴도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도경수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선생님께 말했다. "할게요" 도경수의 말을 듣고 나도 내 처지에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저도 할게요" "그러면 선생님이 지금 밥 먹으러 가야 돼서 저기 앉아서 이거 작성하고 쌤책상에 올려두고가" 교무실 창문 쪽에 있는 둥근 모양의 탁자를 가르키셨다. 둥그런 탁자의 의자에 앉다 보니깐 도경수와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탁자에 있는 볼펜을 가져다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펜이 멈추었다. '생사 여부' 나는 두 분 다 돌아가신 걸 잘 알고 있다. 사망으로 적어야 되는데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이렇게 내 손으로 적어본 적은 없었다. 나는 내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참아야 한다. 도경수가 내 앞에 있다.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계속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고개를 더 숙였다.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렸다. 숨기려고 했지만 소리가 새어 나온다.
"야" 갑자기 들린 도경수의 잠긴듯한 낮은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참지 말고 울어" "............" "신경 쓰여" 도경수의 눈이 나를 흔들림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한 번도 대화해본 적 없는 도경수가 나에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나는 나와 닮은 도경수의 서투른 위로를 외면할 수밖에 없어서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숨었다. 도경수가 나를 잡으러 오는 것도 찾으러 다니는 것도 아닌데 숨어버렸다. 차라리 도경수의 눈길이 동정 어린 눈빛이었다면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닮은 도경수의 눈이 나를 울게 한다. 나를 진정시키고 화장실에서 나와 교무실로 향했다. 도경수는 없었다. 몇몇 선생님들께서는 일을 하고 계셨지만 담임선생님은 오지 않으셨다. 다시 종이를 적으러 탁자에 갔는데 종이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쳐다본 선생님 책상에 종이 2장이 올려져 있다. 위에 놓인 종이는 내 종이였다. 그곳에는 중간부터 나와 다른 정갈한 글씨체로 적혀있었다. 앞부분만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적는 곳이어서 그 뒤부터는 도경수가 적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차마 적지 못한 부분도 도경수가 적어놓았다. 도경수가 알고 있는 것이 다른 애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다음 장은 도경수 종이였다. 눈길이 저절로 내가 글을 쓰지 못한 칸으로 갔다. 나는 내 종이에 사망이라고 적힌 것보다 도경수 종이에 모름이라고 간결하게 적혀있는 것이 더 마음이 아려왔다. --------------------------------------------------------- 부제는 equal 무슨의미일까요? 여주 이름이 등장했네요!! 앞으로 많이 읽어주시고 댓글도 많이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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