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01
희미한 공간, 흐린 시야 속에서 살짝 몸을 일으켰을 때 난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있었다. 다만 머릿속으로 아―꿈 속인가. 싶었다. 몸 위에 무거운 바위가 짓누르는 듯 무거웠고 정확히 어느 공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내 옆에 검은 물체가 있다는 것 정도만. 고갤 돌려 위를 올려다봤을 때 슬픈 눈동자가 날 관통하고 있었다. 흐물흐물해 보이는 형태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어 나와 같은 위치가 되었다. 서서히 몸과 눈이 풀리면서 그의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나를 도와줘…."
누구지? 누구인데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분명히 초면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얼굴, 눈을 관통하는 그의 슬픈 구슬. 따뜻한 향기.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네."
그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살짝 귀여웠지만 그의 슬픈 눈빛을 지울 수가 없었다.
"놀랍지 않아?"
"…왜요?"
"내가 누군지 알아?"
그가 이제야 물었을 때 난 알아챌 수 있었다. 어쩌다 가끔 TV를 돌리면 나오는 그는 연예인 D.O 아니, 정확히 그의 이름은 도경수였다. 그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생생해진 이 공간과 그의 눈빛과 향기는 모두 꿈인 걸까. 궁금한 게 많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대답 없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잘 모르겠어요."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다. 왠지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내 머리가 자기 마음대로 내뱉는다.
"…내 이름은 도경수."
"…도경수…"
그는 내 대답에 오히려 안도하는 듯 자기 이름을 밝힌다. 그 큰 눈망울이 작게 흔들린다. 마치 곧 죽은 사람처럼. 곧 떠나야 할 사람처럼. 그가 다시 일어나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도경수에게만 집중하던 시선을 떼고 주위를 돌아봤을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는 온통 새하얬고 정확한 정사각형 모양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광활한 어느 3차원의 공간이었다. 어릴 적 맞추려고 온 힘을 다했던 큐브 속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세계는 정말 큐브처럼 알 수 없이 복잡한 공간이었다.
"여긴 꿈속이야"
"…."
"그리고 여긴…음, 아지트 같은 공간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나에게 형식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말투로 속삭이듯 말한다. 그가 손가락으로 이 공간 속의 구석 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쪽으로 고갤 돌렸을 땐 벽과 똑같이 흰색에 문고리마저 흰 색인 문이 있었다. 그가 말하길 문 앞에 서서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고 문을 열면 그곳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네? 다시 한번 말해주세요."
"……너도 믿지 못하겠지만 여긴 평행세계야."
"…말도 안 돼…."
"네가 상상한 그 공간은 지구의 공간안에서 한정되지. 그렇지만 말 그대로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다만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 꿈 속이자 평행세계 밖에서의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쳐."
"…이거 정말 꿈 아니죠?"
"숨 쉬고 있잖아."
그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민다. 훅 들어오는 그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TV로 보기엔 평범하고 괜찮은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뭐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의 눈빛을 마주했을 땐 우주를 볼 수 있었다. 너무나 외롭고…고독한, 이 방안처럼 광활한 우주를. 그가 다시 홱 돌아 멈춘다. 그는 뒷모습이지만 무슨 표정일지 알 수 있을것만 같았다.
"아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
"…네?"
"다시 생각해봐."
"…도와달라고 하셨고 전 그러겠다고 했죠."
"내가 뭐 때문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생각해?"
"…."
그가 천천히 빙그르 돌아 나를 쳐다본다. 살짝 작지만 든든하면서 강직했던 그의 눈빛엔 슬픔이 담겨있었다. 내가 힘없고 어린 짐승이라면 그의 눈빛은 올가미 같았다. 지구 끝까지라도 날 쫓아오는….
"난 죽었어."
"…."
"자살도 사고도 아니야."
"…."
"네가 도와줄 것은, 나를 다시 현실로 돌아가도록. 그래, 날 다시 살리는 거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그는 말없이 벽 쪽으로 가더니 벽에 기대 털썩 주저앉는다. 멍하니 위쪽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속이 텅 빈 껍데기 같다. 호기심에 대답을 촉구하고 싶었으나 그의 모습은 입을 꾹 다물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신기한 사람이다. 눈빛만으로 날 사로잡고 슬픔에 빠지게 하며 사람과 대화를 못하던 내가, 떨지 않고 말하고 있는 것이…. 그냥 꿈 속이기에 그렇다고 단정 지으며 그를 다시 쳐다봤다.
"내 영혼은 갈기 갈기 찢어졌어."
"…."
"누구 때문인지 궁금하지?"
"…네."
그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대답이 없었다.
"직접 보면 알 거야."
"…."
"아, 참고로 나는 이 공간 밖에선 말할 수가 없어. 그리고 너한테 밖에 안 보일 거야. 아마."
"…그래서 저한테 도움을…?"
"굳이 너한테 도움을 요청했던 건 아니고 그냥, 누군가 필요했어."
살짝 바람 빠지는 기분이었다. 선택받은 자에서 그냥 우연히 걸린 사람이구나, 싶었다. 왜 내가 아쉬워하는 걸까? 처음 본 사람이고 얘기도 많이 나눈 것도 아니며 평소 현실에서도 관심 없던 이인데…. 우주 같은 그는 나를 빨아들이는 면이 있었다. 역시 무서우면서 슬픈 사람이었다.
"그래도 너는 믿을만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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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읅 계속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이제야 쓰네염....☆★ 의식의 흐름대로 쓴거라 8ㅅ8 망했네요...그래도 틈틈히 쓰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