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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가약 百年佳約

                                                                                                               01화

 

 

 

 

 

 

 

 

 

 

 

돌담 위,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

불이 꺼진 늦은 시각이라지만 하얀 눈에 반사된 달빛에 어느 때보다도 환한 밤이었다.

경수는 들고 있던 책을 글씨를 읽을 수 있나 확인이라도 하려는 양 펼쳐 보았다. 잘하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요리조리 밝은 달빛을 찾아 책을 돌렸다.

 

 

“도련님. 저 죽는 꼴 보시려고요?”

 

 

하인인 용구가 저를 나무랐다. 질책하는 듯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 위 달에게 호- 작은 입김을 불었다.

 

 

“괜찮다. 네가 아버님 주무시는 거 확인했다 하지 않았어?”

“저는 불을 끄셨다고만 했지 주무신다고는 안했어요. 빨리 오셔요.”

 

 

용구의 재촉에 경수는 알았다며 돌담 앞으로 다가섰다. 답답한 움직임에 서둘러 경수의 날갯죽지에 손을 넣어 든 용구는 담 너머로 경수를 옮기고, 자신도 잽싸게 담을 넘었다.

담을 넘어 예정된 장소로 향하는 경수의 옆을 따르던 용구의 입이 쩍 벌어지고 하품이 터져 나왔다. 도련님은 낮에 글 좀 깨작거리며 읽고 낮잠을 자면 되지만 머슴의 신분인 자신은 온갖 심부름을 하며 온 고을을 누비고 다녔기에 피곤하다며 투덜댔지만 15살인 도련님의 고집은 용구로써는 꺾을 수 없었다.

15살이라 해도 체구와 성품은 삼 년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기에.

 

경수는 약간 설레는 얼굴로 어느새 얼어버린 두 손을 용구에게 들어보였다. 어휴. 용구는 한숨을 내쉬며 언 작은 손을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감쌌다. 헤- 웃는 도련님에게서 고개를 돌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이 밤마실을 시작하게 된 거지?

 

 

 

 

 

 

 

삼년 전, 결혼한 경수의 누님댁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누님이 잘 살고 계시는 거 같아서 좋아. 라고 말은 하지만 헤어지는 것이 섭섭한 듯 보이는 경수의 표정에 용구의 마음이 덜컥 내려 앉았다.

 

 

 

"도련님, 장터에 가서 좋아하시는 눈깔사탕을 사드릴까요?"

 

 

아가씨가 여비도 넉넉하게 주셨고 그깟 눈깔사탕으로 도련님의 마음 좀 달랠 수 있다면야.

경수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바로 장터로 향했다.

 

 

장터는 여느때와 같이 시끌벅적 했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장터 안의 사람들이 모두 한 도령만을 바라보며 떠들고 있었다.

그 도령의 앞에는 푸줏간 주인인 털보가 서있었고 매우 화가 난 듯 씩씩거렸다.

 

 

 

"예보슈. 양반이면 다요?"

"무슨 소린가 그게?"

 

 

 

씩씩거리는 털보와는 달리 담녹빛의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능청스럽게 손을 들어보이는 어린 도령에 장터 내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호기심 많은 경수도 어느새 털보와 사내를 둘러싼 무리 중 하나에 섞여 들어갔고 용구도 이런 구경을 놓칠 수 없다며 경수 뒤를 따랐다.

 

 

 

"내 고기 어쩔 것이오? 당신이 갑자기 와서는 흙을 뿌리지 않았소!"

"그것이 왜 당신 고기인가?"

"뭐요? 그럼 이 쇠고기가 내것이지 당신 것이오?"

"하하. 말 잘했네. 그래 그 고기는 쇠고기. 소의 고기라는 말이야."

"이런 미친 양반을 보았나."

 

 

 

털보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지만 장터 내 사람들은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맞네, 소의 고기지 털보의 고기가 아니잖어. 용구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쳐가며 그 도령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경수도 큰 눈을 감지도 않고 똘망똘망 바라보고 있었다. 그 도령이 털보에게 턱을 맞아 날아가기 전까진.

어이구야, 저 털보가 다혈질이더만 양반한테도 함부로 손을 휘두르다니.....쯧쯧. 용구는 상황이 끝났다는 듯 도령을 바라보았다.

턱을 감싸안은 도령이 겨우 일어났고 아차 싶은 표정의 털보는 안절부절이었다.

도령의 입이 벌어졌다. 불호령이라도 떨어질까 털보의 눈이 꾹 감겼다.

 

 

 

"아야."

"저기...저...양반님..."

"이제 자네가 소에 이어 내 고기까지 도륙하려 했으니 나를 좀 봐주시게."

"예에?"

"나도 순간의 치기에 휩쓸려 벌인 일이니 서로 용서하자 이거야."

 

 

 

그러고는 소맷자락을 휙휙 날리며 무리를 헤치고 걸어가는 도령이었다. 저게 무슨 일이야? 무슨 양반이 저리 격이 없나?

얼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은 털보를 제외하고 흥미거리가 사라진 모든 무리가 흩어졌다. 용구와 경수 또한 눈깔 사탕 가게로 향했다.

 

 

 

 

"용구야."

"예, 도련님."

"그 도령, 또 보고 싶다."

 

 

 

 

저도 그런 구경은 처음 했습니다 라며 말은 했다만, 그 치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대감님, 즉 경수의 아버지의 명에 따라 관아에 문서를 전해다 주러 가는 길이었다. 용구 혼자 가도 되는 심부름을 경수는 관아 구경을 하고 싶다며 굳이 따라나섰다. 푸른 옷깃을 들어 자신의 손을 잡는 도련님의 귀여움에 용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모시고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관아로 가던 길목에 있는 대감님 소유의 밭을 지날 때였다. 용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지만 경수의 호기심 가득한 눈길은 그 것이 사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밭 한가운데, 웬 커다란 누렁소가 밭을 처참히 밟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해 가을, 밭에 심어놓은 작물들이 다 엉망이 되고 있었다.

 

 

“아니, 저 미친 소를 보았나! 제가 몰아내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세요.”

“잠깐만, 소보다 저 기묘한 사람은 누구냐.”

 

 

그렇다. 소는 둘째 치고 그 소 위에 한가로이 올라타 피리를 불고 있는 도령.

이건 무슨 광경이란 말이냐.

용구는 자신이 잘 못 본게 아니라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느 집 한량이 이 고을 제일가는 대감의 밭을 망칠 수 있단 말인가.

보통 정신 나간 작자가 아님은 확실했다.

 

 

“....그...어찌됐든 제가 말리고 올 것이니 도련님은 걱정 마시고 기다리셔요.”

 

 

경수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뒤로하고 얼었다 녹아 진득해진 토지 위로 발을 올려 그 작자에게 다가갔다.

 

 

“여보시오.”

 

 

용구의 부름에도 남자는 아랑곳 않고 기어코 피리 한 곡조를 끝내고서야 눈을 마주쳤다. 마치 왜 내 연주를 방해 하냐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에 용구는 눈알을 뱅그르르 돌렸다. 살짝 기가 죽었다. 익숙한 얼굴이라 했더니 이 작자는 그 때 장터에서 본 그 도령이 아닌가. 하지만 도대감 댁 하인으로 이런 한량에게 맞서지 못하는 것은 수치임에 분명했다. 그 한량은 뻔뻔한 낯짝으로 입을 열었다.

 

 

 

“왜.”

“왜? 그쪽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이 마을에 살려면 이 밭주인 존함 정도는 알아둬야 할 것이요.”

“누군가의 이름을 알아야 살 수 있는 마을도 있나?”

“도 근자 식자. 바로 그 유명한 도 태수님의 밭이다. 이겁니다. 저 밭 밖에 계신 분은 그 댁 아드님이시구요.”

 

 

 

용구가 경수를 가르키고 도령은 살짝 눈길만 주었다 돌렸다.

 

 

 

“도 태수가 뉜지는 모르겠으나, 혹시 마을 입구에 고래 등 같이 덩실한 기와집이 그 댁이냐?”

“그럼요. 아주 잘 봤소. 이제야 정신이 똑바로...”

“태수가 청렴하기보다 거대한 저택을 지어 백성들의 고혈을 빼먹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다니니.....멍청한 하인을 두어 태수의 낯에 흙탕물을 튀기는 구나.”

 

 

 

따박따박 대꾸하던 용구의 입이 턱 막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경수의 입에선 미소가 지어졌다.

경수를 평소 잘 알던 이가 아니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미소였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경수가 발을 옮겨 밭으로 걸어 들어왔다.

용구는 경수의 푸른 비단신이 진흙에 버무려지는 것을 보고 질겁했다. 오늘 마님한테 타작을 맞겠구나. 경수는 소 가까이 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도령의 가르침 감사합니다. 존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백현이다.”

“도령의 말씀에 저 같은 소인도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집안에도 너같이 멀쩡한 이는 있나보구나.”

 

 

 

경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던 백현이 소의 위에서 펄쩍 내려와 경수에게 다가갔다.

 

 

 

“네 아비의 이름은 궁금하지 않지만 네 이름은 궁금하다.”

“도경수입니다.”

“도경수라...올해 몇이냐?”

“12살이 됩니다.”

“나랑 셋 차이가 나는군.”

 

 

 

15살이라는 말을 들은 용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배운 바 없는 천민이라지만 서른을 먹은 내가 약관도 안 된 젖비린내 나는 도령에게 말상대도 안 되다니 자존심이 이만저만 상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제 맘도 모르고 그 도령에게 저자세로 말을 건네는 도련님이 야속해 용구는 먼저 관아로 향했다.

 

 

 

“도련님, 저 먼저 관아로 갑니다. 빨리 안 오시면 관아 구경 놓치셔요.”

“관아, 관심 없다.”

“예?”

“나는 백현 도령과 이야기를 나눌 테니 다녀오거라.”

 

 

 

어쩔 수 없이 홀로 관아에 다녀와 도련님에게 다시 돌아가는 그 사이,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삼 년 동안 이렇게 안방의 불이 꺼지면 부리나케 그 도령의 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 짧은 사이에 그들은 서로를 백현 형, 경수야. 라고 호칭까지 바꿨고 그 도령의 집만 가면 새벽이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서로 담소를 나누는 정다운 사이가 되었다.

 

 

어느새 백현 도령의 집에 도착했나보다. 밭을 망치던 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백현은 추운 날씨임에도 방문을 벌컥 열고 경수를 반겼다.

 

 

 

“우리 소가 이제 네 발소리를 아나보다.”

“그럼.”

 

 

 

내가 올 때마다 먹을 것을 줬잖아. 경수가 여물통에 용구가 짊어지고 온 볏짚을 올려주며 말했다.

 

 

 

“날씨가 추우니 얼른 들어와.”

 

 

 

경수와 용구가 차가운 발과 손을 따뜻한 구들장에 가져다 놓았다. 가자미눈을 한 백현이 용구에게 쏘아 붙였다.

 

 

 

“너는 무슨 하인이 이리 격식이 없냐. 주인보다 안쪽에 들어가 있으니...”

 

 

 

아무래도 첫만남에서 미움을 많이 받았나 보다 도령의 집에 온 첫날은 사실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었다.

 

 

 

 

“형. 용구가 나 때문에 매일 고생하니까 좀 쉬게 해줘.”

"네가 그럼 상관은 없다만, 그냥 쟤 낯짝이 주인을 배신할 관상이니 조심하거라."

 

 

 

 

용구가 고단해 잠들어 백현의 말을 못들은 것이 다행이었다. 경수는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자꾸 나오는 콧물을 작은 손으로 막으려 애썼다.

자, 백현이 하얀 손수건을 건넸다. 손수건의 자수를 볼 새도 없이 경수는 고맙다며 코에 가져갔다.

 

 

 

 

"매번 오느라 힘들지?"

"아냐, 난 여기 오는 길이 세상에서 제일 신나."

 

 

 

 

정치이야기를 나누며 음모를 꾸미는 아버지나 보석이라면 눈이 돌아가 벼슬을 파는 어머니.

그런 부모 밑에서 사서삼경을 외우던 경수는 그 둘 사이의 괴리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다 모두가 공신이라며 칭송하는 자신의 아버지의 속내를 읽어내고 비난한 백현을 만났을 때,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형, 절대 어디도 가면 안돼. 만일 어디론가 떠날 거라면 나도 데리고 가줘."

 

 

 

 

백현은 대답대신 씩 웃어 보였다. 백현의 마른 손이 경수의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경수도 피곤했는지 어느새 백현의 무릎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 때묻지 않은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인생을 지옥에 던져도 상관없었다.

 

 

 

 

 

 

그래, 백현은 이 열 다섯 먹은 소년을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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