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열 자경수 上
W.윤리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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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앙-아빵-"
".......경수야. 아빵이 아니라 아빠야."
".........이게 뭐야?"
"응? 뭐긴. 니 애잖아."
아침부터 어떤 은혜로우신 분이 나를 찾아오셨나 싶어
반갑게 문을 열고 꼬리치며 달려나갔더니
"아빠앙-"
왠 애기가 헤어졌던 여자친구 품에 안겨있다.
"그니까 얘가 왜 내 애냐니까?"
기껏해야 두살밖에 안되보이는 애기.
2년전에나 헤어진 여자친구인 혜진이의 품에 폭 안겨서는
자꾸 시끄럽게 아빠-아빠-거린다.
"니가 나한테 한 짓은 생각 안나서하는 소리냐!
나랑 부산여행 갔다 오자마자 미국으로 날라버린게 누군데."
"그건 공부하러 간거잖아!말 이상하게 바꾸지마!"
얜 근데 왜 이렇게 나랑 똑같이 생겼냐.
눈도 땡그래가지고.
"뭐 어쨌든. 할 말이 있어서 온 사람 자꾸 밖에 세워둘래!!!"
"자..잠깐만"
혜진이를 집안으로 안내하자 그녀는 안고있던 애기를 내 품안으로 밀어넣고 애기만한 가방을 또 던진다.
얜 또 왜 이렇게 무거워!!
내 품안으로 밀어넣어진 애기가 팔딱거리다가
팔 밖으로 떨어질뻔한걸 겨우 붙잡아 올렸다.
혜진이는 애와 가방을 같이 들고 온 것이 버거웠던지 손바닥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하다가
손을 내리고 내가 가져다준 과일을 포크로 집어먹으며
"나 두달동안 좀 바빠. 그때까지만 경수 좀 봐줘."
라고 말했다.
뭐?
"야, 넌 니 일만 중요하냐? 2년 전에 헤어져놓고 아무 말 없다가 이제와서 애를 맡아달라고?
나도 커리어라는 게 있는 사람..."
"임신했단 얘기는 했었잖아."
"............"
"결혼하잔 얘기도 했었고."
내가 죄인이지..
혜진이는 내 품 안에 안겨있는 아기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안돼! 이렇게 휘말렸다간 앞으로의 내 두 달이 어찌될지 아무도 장담못해!!
"근데 얘가 내 앤지 어떻게 알아?"
진짜로.
니가 밖에서 낳아온 애일수 있잖아?
너가 나한테 거짓말을하고 떠맡길수도 있다 이거야.
만약 그렇다면 절대 널 용서하지 않....
"뭐,새꺄?"
"아..아니야. 잘 다녀와. 2개월 후에 보자.
사랑하는 애엄마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울 것같은 표정을 했던 혜진이는 옆에 있는 포크로 날 찔러 죽일 기세였다.
"후...."
"두달이면되. 그 다음에 데리러올게."
"어디 가는데?"
이유는 알고 맡아줘야지.
내 품에 안겨있는 아기는 나와 눈을 맞추며 입가에 살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결혼준비때문에."
.........아
"남편도 알고 있어, 경수 있는거. 시댁도 알고.
근데도 나랑 결혼을 하겠대. 나도 눈치껏 결혼준비하는 동안은 시댁 분위기도 살펴야되는데 괜히 경수 데리고다니다가
시댁 식구들한테 경수 미움받게 만들면 안되잖아."
난 부끄러움에 도저히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무책임한 나 때문에 마음고생 심했을 혜진이 생각을 하니까 도저히 그 친구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무슨 생각 하는지 아는데, 난 너 원망안해. 그때 콘돔빼자고 한 건 나잖아. 그리고! 그때 너랑 결혼했으면 내가 지금 남편을 어떻게 만났겠냐?
난 너가 나와 결혼해주지 않아서 너~무 너~무 고마운 사람이야, 알아?"
역시 똑똑한 여자다.
분명히 많이 힘들었을텐데도 옛 연인을 위해 웃으며 농담으로 넘겨버릴줄도 알고.
혜진이는 포크에 찍힌 딸기한개를 한 입에 밀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탁할게. 13개월이라서 왠만한 건 먹을 수 있는데 매끼마다 뭐 먹일건지 문자해.
오늘 저녁은 일단 미음 먹이고."
"응...."
그렇게 혜진이가 가고, 공허해진 집안에는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나, 그리고
"........."
"아빠앙-"
그래, 니 아빠 여깄다.아가야.
아기뿐이었다.
내 품안에 안긴 아기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도혜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는 혜진이를 붙잡아세우자 혜진이는
급하게 열림 버튼을 눌렀다.
"왜?"
"애 이름이 뭔지는 알려줘야될거아냐."
"애이름?"
"그래."
"도경수!"
삐빅-
가방과 애를 받아든 나는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집안을
훑어봤다.
곳곳에 쌓여있는 나의 담뱃꽁초 탑,
널려있는 컵라면.
습기가 많은 장마철에 빨아서 냄새나는 빨래들.
구석구석 쳐박힌 양말.
도저히 애가 생존할수 없는 환경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
"아빠앙-"
하아...그래,그래.
니 아빠 여기 있다니께로?
"........경수..야..?"
아 이거 기분 묘하네.
2년 동안 듣도보도 못한 내 자식을 부르고 있다니.
"아빠가 너의 목숨을 위해 청소를 할테니.
넌 여기 누워서 손가락을 빨고 있거라."
경수..의 겨드랑이로 팔을 넣어서
소파위에 앉혔다.
"자,그럼 난 이제 우리 이쁜 아들을 위해 청소ㄹ..."
"으아아앙!!!!!"
"아, 깜짝이야!!!"
바닥에 엎어져 국물이 나오려고 하는
컵라면을 주으려고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소리를 빽지르는
아들때문에 나는 매우 소녀같은 포즈로 뒤로 한발 물러섰다.
한발을 살짝올리고 두 손을 볼에 갖다댄 나를 보며
빽빽 울어재끼는 아들.
"뭐...뭐야..?"
눈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혀선
주저앉아 울고 있는 아들.
눈물을 닦을새가 없는건지 아니면 그 방법을 모르는건지 눈물은
계속 흐르고 흘러 소파위에 있는
내 아이폰으로 떨어졌다.
"우앗??!!!!!!"
나는 급한 마음에 다시 애기를 끌어올려
어깨에 들어매고 후다닥 뛰어들어
촉촉해진 아이폰을 집어들었다.
"하아......"
다행히도 아이폰은 무사했다.
애키우는게 힘든거구나.
아직도 아들이 울고 있을것같아
어깨에 맸던 애를 들어 팔로 끌어안았ㄷ....?
"헤에......"
......뭐지..
아까완 다르게 밝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고있는 아들.
저번에 인터넷에서 본것같기도 한데.
애기들중에서는 품안에서 내려놓기만 해도 우는 애기들이 있다고.
아마 얘도 그런 종류의 애가 아닐까 싶어서
한번 다시 소파 위에 올려놓아보았다.
"으으...으...."
꿀꺽
목뒤로 넘어가는 침.
아까완 또 다르게 상반되어가는 애기의 표정.
부들부들 떨리는 손.
동시에 떨려오는 내 손.
".....으에엥!!"
OK.
파악했다.
역시 이 아이는 그 '내려놓기만 해도 목이 찢어져라 우는 아기들'에 속하는 아이였다.
"하아...."
정말 피곤한 아이를 낳았구나, 도혜진.
뭐 사귈때도 넌 참 피곤한 여자였지 아마.
뒤적뒤적
아까 같이 받은 가방에서 겨우 포대기를 찾았다.
포대기를 찾을때도 내려놓질 못해서 애좀먹었다지.
"자~이제 아빠 등에 업혀있자~"
"...헤에...."
제발 그렇게 바보같이 웃지마렴.
아빠처럼 이렇게 멋있게 웃어줘야지.
거울앞에 서서 아기가 잘업히는지 보며 포대기를
묶는 동안에 애기가 자꾸 웃길래
이렇게 해보란듯 멋있게 웃어줬다.
"이렇게."
"..헤에..."
"아니,눈을 그렇게 하면 바보같잖아.
이렇게. 피식하고 웃어봐."
"...피식."
"그렇지!아우!!뉘집 아들인지 진짜 똑똑하네!!!!"
"피식피식."
"그래!이제 좀 시크하고 멋있네!역시 내 아들......."
근데 지금 내가 애데리고 뭐하는 거지.
포대기를 낑낑대며 묶고 있고
또 시크한 줄 알았던 표정을 거울로 다시봐보니 완전 개빙구 표정이고,
또 등뒤에 업혀선 피식거리는 애기.
부전자전.
애가 불편해하지않도록 겨우 포대기를 고쳐매고
거실로 갔다.
"경수야.뭐부터 치울까?"
대답도 못할 애였지만 나는
계속해서 중얼중얼거리면서
집을 치워나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컵라면봉투를 하나둘 집어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담배와 라이터를 주워서 봉투에 담아넣고,
담배꽁초를 모아둔 재떨이를 깨끗하게 씻어서 방안저편으로 던져놨다.
애가 있는동안에는 피우면 안되겠지.
애기를 업은 상태에서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하고 모든 컵과 접시를 위로 올렸다.
그 동안 밀려서 빨지 않아 냄새가 나는 빨래도 모두 빨고,널고
창문도 죄다 확확열어재끼고.
그러는 동안에 살짝 뒤를 보니 등에 기대어 자고 있는 애기.
".........."
한 5분을 계속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집을 치워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6시.
"아....."
그러니까,이걸 어떻게 하지.
얘도 밥먹을 시간일텐데.
다시 가방을 뒤적거려보니 다행히도 미음만드는 방법이
적혀있었다.
......아직은 아빠가 미숙하구나.
인터넷을 뒤져보니 배달이유식도 있다고 했지만
뭔가 그래도 애기가 먹는 건데 내가 직접해줘야 할것같아서
주방으로 갔다.
믹서기를 꺼내 쌀을 가는 동안에도 애가 깨지않도록
조심조심하느라 한참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
"...............이걸 어쩌지.."
미음은 일단 만든지 오래다.
문제가 있다면 얘를 어떻게 깨우냐는 것이다.
일단 애가 스스로 깨면 먹이는것이 더 좋을것같아서
침대로 데려가 눕혔다.
"우응......"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자 눈을 비비며 자세를 잡는 애기.
바닥으로 떨어질것같아서 얼른 옆에 있던 배게를 끌어다가 옆에 놔줬다.
"헤에에......."
잘때도 웃으면서 자네......
침대옆에서 쭈그려 앉아서 애기를 보는데
귀찮을것같았는데 의외로 얌전한 애라서 편했다.
손하나를 슬쩍 들어서 애기 볼을 쓰다듬으니
"헙!"
아,또 깜짝 놀랐다.
몸을 홱 돌려서 내 손가락을 붙잡는다.
되게 조그마네.....
내 검지를 입에 물고 자는게 또 귀여워서 깨지 않을 정도로 살살 흔들었다.
혜진이와 나 사이에 애가 있다는것은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사실 그 애기때문에 미국을 간것도 약간 있지만.
하지만 그땐 내가 한창 철없을때인 스물셋일때.
미국을 갔다오니 정말 남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작곡공부를 2년동안 하고 돌아오자 세상은 이미 날 잊은듯 했고
1년간을 거의 방안에서 작곡만하고 지냈다.
물론 경제상의 여유는 어느정도 있었다.
가수들의 곡을 써주고 그 저작권료만 받아도 충분했으니까.
한국을 떠나기 전에 혜진이가 나한테 전화를 하긴 했었다.
임신헀으니까 결혼하자고.
하지만 난 겁쟁이 처럼 숨어버렸고,
혜진이도 지난 2년간을 힘들게 지내긴 했을것이다.
미국에서 작곡공부를 하면서도 의외로 생각이 많이난
내 핏줄이라는 아이.
이메일로 오는 아이사진도 보지 못하고 내가 지워버린것이
생각나 괜히 애기한테 미안해졌다.
이제라도 내가 맡게 됬으니
내가 데리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 잘해줘야 겠지.
"우응......"
"....어."
손가락을 물고 있던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망했다.
"우으....우....."
쓰고있던 비니 틈사이로 땀이 흐르는것같다.
아.....얘가 깨면......
"우에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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