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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Απολαύστε άνθρωποι θα κερδίσει』 








01. 이그조 대륙








여기 100년 동안 평화를 만끽하던 <이그조 대륙>은 주신, 세르니이그쥬 여신의 이름에서 따온 대륙명이다. 




하지만 주신의 보호 아래 있다한들 신도 가끔씩 신생(神生)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소위 농땡이를 피우니 그만큼 소홀해진 보호막의 틈을 깨고 온갖 잡신들이 대륙을 잡아먹기 위해 기승을 부린다. 더군다나 마신(魔神)까지 나서자 대륙에는 암흑기가 찾아와 대지는 생명력을 잃고 바다는 거센 파도를 일으켜 흉흉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검은 숲에 숨어지내던 우매한 동물들은 악한 힘을 받아 괴수가 되어 인간들을 점령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시도때도 없이 도시로 내려와 판을 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생명력을 끌어올리면서 각자 살길을 찾아떠나기 시작하고 대륙은 200년만에 16조각으로 와해되었다. 5개의 왕국과 7개의 공국, 4개의 공화국으로 나뉜 각 나라들은 저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발전해나갔다.





이그조력 316년이 되던 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다른 나라를 탐내기 시작하고 괴수의 공격을 막는 와중에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니 각 나라의 우두머리와 대신들은 서로 눈치보기 바쁘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군대라는 개념없이 무식하게 힘겨루기를 하다가 5개의 왕국 중 땅이 가장 작았던 루카스(빛) 왕국이 최초로 루카스 왕국군을 편성하여 대군을 이용한 전술(戰術)을 펼쳤다. 주먹다짐만 하던 이들에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전술은 정신을 쏙 빼놓기 충분했고 그 결과 루카스 왕국은 처음으로 호쾌한 승리를 거두어 거의 본토의 2분의 일에 해당하는 영토를 전리품으로 점령했다. 






루카스 왕국에게 영토를 빼앗긴 세 나라는 이를 바득바득 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영토를 거의 뺏겨버린 아네모스(바람) 공국은 조용히 제 나라를 살릴 방법을 도모하여 포티아(불) 왕국과 접촉했다. 포티아 왕국은 제5왕국 중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왕국이었다. 영토의 크기가 곧 힘의 크기였던 시절에 포티아 왕국은 루카스군의 전술로도 함락하기 힘든 상대였다. 특히 포티아 왕국의 플록스(화염) 광산에서 나오는 마력석은 다른 광산에서 나오는 것보다 파괴력이 배는 뛰어났다. 아네모스 공국과 포티아 왕국의 연합은 신의 한 수였다. 세르니이그쥬 여신의 권능을 부여받기라도 한 듯 그 기세는 날로 커져갔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군주의 몫도 컸다. 포티아 왕국의 왕, 알차노르 4세는 한 큐를 아는 세기의 승부사였고, 아모네스 공국의 오를리 대공은 상대보다 세 수 이상 멀리 내다볼 줄 아는 희대의 지략가였다. 포티아 왕국과 아네모스 공국. 줄여서 포아네 연합군은 루카스 왕국보다 그 주변 지역을 먼저 점령하고자 했다. 안토스(꽃) 공국과 우라노스(하늘) 왕국을 점령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열흘에 불과했다. 불이 붙고 바람이 부니 그 기세는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결국 루카스 왕국은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전에 한 수 내보인 루카스의 전술도 이미 오를리 대공에 의해 포아네 연합군에게 전달되었고 알차노르 왕은 루카스를 칠 타이밍만재고있었다. 루카스 왕국 당당한 척 연합군을 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무리 뛰어난 전술이 있더라도 10배나 차이나는 전력과 포티아에서 나오는 마력석의 위력은 공포 그 자체였다. 전의를 상실한 적을 치는 것은 골골거리는 쥐를 밟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알차노르 왕은 싱겁게 끝나버린 루카스 점령에 혀를 차며 루카스 국왕, 배카헨의 목을 쳤다. 그 때의 알차노르 왕을 본 자라면 아직도 벌벌 떨만큼 그의 입가에는 아주 짙은 웃음이 걸려있었다.




포아네 연합군을 결성한 지 겨우 한달만에 루카스 왕성 위에는 포아네 연합군의 휘장이 새겨진 깃발이 걸렸다.









전리품 분배로 연합군이 분열될 일은 없었다. 오를리 대공은 알차노르 왕의 실력을 인정하고 먼저 아네모스 공국을 포티아 왕국에 헌납했으며 알차노르 왕 역시 그의 재주를 높이 사 오를리 대공에게 공작의 지위를 내렸다. 포티아 왕국은 거의 배로 불려진 영토를 재정비하고 포티아 제국을 선포하였으며, 주변국에서 제국선포에 대한 반발이 나올 때마다 그 나라를 쳐서 그 땅을 낼름 주워먹었다. 반발할수록 제국은 자꾸 커져만 가니 주변국에서는 자연스레 제국군을 대륙의 강자로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그나마 남아있던 접경 국가들은 포티아 제국의 눈치를 보며 화합의 선물이라고 유례없는 뇌물을 찔러넣느라 바빴다. 포티아 제국 또한 반세력이 시들어지자 대충 전쟁의 끝을 준비했고, 이그조력 321년 포티아 제국과 네포우(물) 왕국, 코마(대지)공화국. 그리고 동쪽의 나라 크루스탈로스(얼음)까지 크게 총 네 개의 국가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











《붉은 꽃들이 만개한 들판 위에 혼자 멀뚱이 서있었다. 살랑살랑 바람에 꽃잎들이 쓸리는 소리를 들으며 팔을 활짝 벌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콧가에 흘러들어오는 진한 꽃향기가 전신을 옴싹달싹 못하게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그러고보니 여긴 어디지? 내 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어디서도 붉은 꽃들로 채워진 들판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다시 한 번 더 그 위용을 눈에 담고자 눈을 떴을 땐 파랗던 하늘은 시커멓게 어둡고 붉은 꽃들은 한순간에 시들어버렸다. 그 처참한 광경에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덜덜 몸만 떨었다.




-나의 아이야.






...?


공명하듯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귓가에는 꽤 강렬하게 꽂혔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찾으려고 했지만 전혀 방향성없는 목소리에 찾기가 쉽지는 않다. 그 때 다시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나의 아이야. 이리로 와서 운명의 실을 끊으렴. 장난의 끝은 죽음 뿐이니 망설이면 안 돼...







아니다. 이건 귓가에 꽂혔다기보다 심장에 박혔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고운 여인의 목소리가 한마디씩 심장을 강하게 파고 들어와 너무 아프다. 순식간에 주위가 사그라들며 새하얀 공간에 새빨간 빛을 뿜어내는 구멍이 열렸다. 뭐지? 하고 구멍 속으로 손을 넣으려다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거둔 손을 귓가에 댔다. 앗, 뜨거워...? 가만 뜨거웠던가? 가만 생각해보니까 진짜 뜨거움을 느꼈는지 의문이 들었다. 구멍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뜨거울거라 생각했지만 귓볼에서 뗀 손가락은 너무도 멀쩡했다. 꿈이구나. 불길 속에서 처음보는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때부터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의 얼굴과 그 주변를 주의깊게 살폈다. 하지만 꿈인걸 알아차리기 무섭게 주변이 캄캄해지며 순간 바닥이 사라져 몸이 훅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헉.

이끌리듯 상체를 일으켜보니 이불을 꽉 쥔 손에 땀이 흥건하다. 마력석을 운용해 스탠드를 켜고 옷에 손을 슥슥 문지르며 땀을 닦아냈다.







얼마만에 꾼 꿈이더라?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손을 더듬거리며 침대 옆 협탁에 항시 준비해두는 양피지와 깃펜을 들었다. 펜 끝에 잉크를 찍어 굵직하게 글씨와 간단한 그림을 그려넣고는 서둘러 침대에서 빠져나와 원피스 위에 숄더를 걸쳤다. 밖에 서있을 시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격하게 방 안에 울려퍼지자 가장 옆에서 시중을 드는 매리가 기겁하며 문을 열고 뛰어들어온다. 무슨 일이냐며 소란스러운 매리를 향해 너까지 소란할거 없다며 주의를 주자 입을 삐쭉 내미는게 요새 너무 편하게 해줬나보다. 눈을 흘기며 양피지를 둘둘 말아 묶어놓고 매리를 향해 말했다.







“교황에게 가야겠어.”

“교황님이요?!”

“그래. 그 능구렁이한테 말이야.”

“어머나! 공주님. 그렇게 교황성하를 함부로 부르시면 안 돼죠!”

“흥. 너만 입조심하면 돼!”






공주라는 게 황제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교황에게 겁도 없이 막말을 해대니까 자신을 대신해 잔뜩 겁을 집어먹는 매리에게 그 입만 조심하라는 말을 꺼내자 입을 앙 다무는 모습이 참 재밌다. 저를 놀리기 위해 일부러 더 그러는 나를 알면 아마 심술궂다며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릴테다. 그만큼 워낙 감성적이고 여린 아이니까. 근데 그런 매리를 보는게 즐거운 나란 인간은 참으로 못된 사람이야.



하지만 폐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텐데요? 
또다른 걱정을 꺼내놓는 매리를 향해 씨익 웃었다. 의미심장한 미소에 설마하는 눈으로 바라보길래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절대 안 돼요!!! 하고 소리치는 매리때문에 깜짝 놀라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렸다. 쉿. 누가 들어오면 어쩔꺼냐며 다그치자 매리는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뜯어말렸다.







“저번에 분명 폐하께서 더이상 봐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에이. 설마 하나뿐인 딸 죽이기야 하겠어?”

“공주님!!”

“소리 좀 지르지 말라니까? 그럼 넌 여기 있던가. 나 혼자 몰래 갔다올께.”

“...”







그래그래, 쉽게 도와주지 않을거란건 이미 알고있었어. 


부들부들 떨며 저를 앙칼지게 바라보는 매리를 뒤로 하고 나는 혼자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 몰래 빼돌린 기사복으로 갈아입고 남은 드레스를 줄줄이 엮어 침대 다리에 튼튼하게 감았다. 몇 번 당겨보고는 창문을 열어 옷줄을 힘껏 밖으로 투척했다.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바닥에 닿은 옷줄을 확인하고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다시 매리를 바라보았다. 어쩔꺼야? 쇠힘줄보다 쎈 내 고집을 알고있으니 제풀에 꺾여 따라올 매리를 알면서도 당당히 물었다. 역시나 매리는 울상을 지으면서 옷장에서 로브를 주섬주섬 꺼내 내 몸에 두르더니 후드를 머리에 씌어주었다. 이번에야말로 분명 제 목이 날아갈 것이라고 매리가 힘없이 걱정하기에 나는 헤헤 웃으며 그녀를 꽉 껴안으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넌 내 친구나 다름없는걸? 널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아. 진심이 담긴 마음에 조금 누그러진 매리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안겨있다가 크게 쉼호흡을 한 뒤 먼저 옷줄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기에 쭉쭉 빠르게 옷줄을 타고 내려온 우리들은 우선 마굿간부터 들렸다. 성과 대신전과의 거리는 꽤 멀었기때문에 말을 빌려야했다. 나는 성문 밖에서 빌리자고 말했지만 그마저도 거리가 멀어 걷기 힘들다고 매리는 굳이 성 안의 마굿간으로 날 데려간다. 투덜거리며 마굿간에 도착해 말을 고르고 있는데 태연하게 마차를 찾는 매리때문에 기겁했다. 마차는 무슨! 그냥 튼실한 말 한 필이면 충분하다고 우기자 이번에는 매리가 기겁을 하며 우리는 서로 옥신각신 다투었다. 그 사이에서 괜히 관리인만 난감한 모양새다. 밤이라 대기하고 있는 마부도 없으니 결국 내 말따라 말 한 필만 빌리기로 했다. 먼저 앞자리에 훌쩍 올라타 매리를 기다리는데 말값 대신 황족의 휘장을 보여주는 행동에 기가 막히다. 매리, 우리 몰래 빠져나가려는 중인데? 휘장을 본 관리인은 화들짝 놀라 허리를 굽혀 인사하기 바쁘다. 하는 수 없이 오늘 우리가 여기 온 것은 평생 비밀로 간직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뒤로 낑낑거리며 올라타는 매리를 노려보았다. 이게 목적이였구나? 고작 이런 일에 돈을 허투루 쓸 수는 없다며 혀를 빼꼼히 내미는 매리가 얄미워서 예고도 없이 말고삐를 쥐고 이랴! 발을 굴렸다.
.






“흐이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매리는 내 허리에 팔을 둘렀고, 말은 곧장 대신전을 향해 달려갔다.








*


















사랑과 유희와 전쟁의 여신 세르니이그쥬를 모시는 대신전은 도시 중앙에 위치해 황궁에 버금가는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제국 내에 대신전의 우두머리인 교황의 위력이 황제 못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황제와 교황의 권위가 맞먹는다는건 솔직히 몇년 전까지만해도 교황이 꿈으로나마 만날 세상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으니.  






3년 전, 당시 18세가 되어 성인식을 치룬 견습사제들을 신관으로 임명하는 자리에서 묘한 신력(神力)이 감지되었다. 아주 찰나였지만 신력을 캐치한 당시의 교황은 눈에 불을 켜고 그 출처를 찾았고 이제 막 신관이 된 한 청년에게서 뿜어져나온 것을 눈치챘다. 신녀도 아니고 남자의 몸에서 신력이 발현되었다는 것은 대신전을 발칵 뒤집어 놓을 만큼 아주 커다란 사건이었다. 황제도 가질 수 없는 신력을 가진 이가 교황이 된다면? 황제는 교황을, 대신전을 함부로 대할 수 없으리라! 
여태 고작 치유사 정도의 하찮은 대접을 받아온 신관들은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벅차올라 자신들의 신, 세르니이그쥬 여신을 찬양하며 경배를 올렸다.






그 때부터 대신전에서는 황제의 눈을 피해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오를리 공작이 낌새를 눈치채고 대신전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신력을 가진 신관이 워낙 존재감이 없던 생활을 즐겨왔기에 들키지 않고 무사히 프로젝트는 진행되어 갔다. 그 과정에 대신관들의 눈을 또 한번 뒤집은건 고작 18세의 청년이 현자가 써클을 다루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신력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교황이 한번 따로 불러 진지하게 물었더니 5세에 신력을 감지했고 7세에 신력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12세에 신력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었다는 청년의 말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교황 자신이 과연 신력을 다루는 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했던 지난 밤들이 싸그리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교황의 입에는 실실거리는 웃음만이 가득했고 정확히 1년 후 교황은 이제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공표했다.






갑작스런 교황의 사퇴에 백성들은 깜짝 놀라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왕족과 귀족들에게는 하찮은 존재였다지만 백성들에게는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여신의 대리자인 교황이 건네는 한마디로 하루를 버티는 그들이었기에 교황의 빈자리는 여신님의 부재나 다름없었다. 백성들의 아우성은 알차노르 황제에게까지 전달되었고 잠시 눈을 떼놨다고 어마어마한 폭동을 일으킨 대신전의 소식에 황제는 불같이 화를 내며 직접 대신전까지 행차했다. 교황의 자리에 있던 이는 교황의 옷을 벗고 평범한 신관복을 걸친 채로 황제를 맞이했다. 그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이게 무슨 짓이냐는 황제의 일갈에 신관들은 일제히 숙인 허리를 들어올리고 고개만 숙였다. 그리고 새로운 교황을 세워 황제에게 알렸다. 본래 교황은 황제가 임명해왔던 터라 이 상황에 더 크게 노(怒)했다. 

더군다나 어린 티가 팍팍 나는 교황이라니. 신관들이 단체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교황으로 추대받는 자는 12세에 신력을 마스터하고서도 감춰온 능구렁이같은 자요. 황제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목을 세워 인자해보이는 웃음만 지었다.







“세르니이그쥬님의 전언입니다. 황제폐하, 동쪽에서 귀한 손님이 당도할 것이니 부끄럼없이 대접하십시오.”

“... 젊은 놈이 꽤 당돌하구나.”

“모두 신의 뜻입니다.”






황제는 당장 이 목을 벨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그럴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느낌이 거슬렸다. 이 정체가 확실해질 때까지 황제는 이 청년의 목을 베는 것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온 오를리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제 아들뻘 나이인 청년에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품이 흘러나왔다. 황제를 보고도 멀쩡히 서있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자신 역시 처음 연합군을 꾸릴 때 그 기에 눌려 몸이 허약해진 적이 있으니까. 자신을 보면서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는 새로운 교황의 알 수 없는 당당함에 공작의 눈에 잠시 이명이 띄었다.






황제와 공작은 조용히 물러났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본 신관들은 기뻐 날뛰었다. 당장이라도 자신들의 교황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아직 황제의 윤허가 떨어지지 않은 이상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수틀린 황제가 교황의 목을 베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황제와 공작은 며칠 뒤에 제국 땅을 찾은 크루스탈로스의 사자를 앞에 두고 탄식을 내뱉었다. 동쪽에서 온다던 귀한 손님이 이를 두고 한 말이었나보다. 
처음 보는 동쪽의 사람을 앞에 두고 교황을 떠올린 황제는 크루스탈로스의 사자를 극진히 대접했다. 크루스탈로스는 대륙의 동쪽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로 그 크기가 제국과 비슷하다. 포티아 제국은 왕국과 공화국을 견제해야하는 반면 크루스탈로스는 그야말로 동쪽을 제패하고 있는 단일 국가인 만큼 반감을 사면 오히려 지금의 제국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신을 소홀함없이 대해야 했다. 황제의 명령에 공작은 그 어린 교황이 이 사실을 진작 파악한건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일은 곧 황권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어린 교황이 자칫 야심이라도 품는다면? 이번 일을 보아 똑똑한 교황이 위험해보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시 제국군을 끌고 대신전을 찾은 황제와 공작의 등장은 신관들을 공포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기어코 일이 이렇게 되는구나... 대신관들은 한숨을 쉬며 교황을 뒤로 숨기기 바빴다. 하지만 어린 교황은 겁도 없는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황제를 맞았다.







“손님은 무사히 돌아가실 겁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크루스탈로스의 사자를 보내자마자 찾아온 걸 어찌 알고... 황제는 흠칫 굳은 표정으로 어린 교황을 주시했다. 교황은 그 말을 끝으로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옆에 있던 오를리 공작이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아무래도 어린 교황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제게 이 나라의 미래를 빼앗길 걱정을 하시는 모양입니다.”

“!”







단숨에 생각이 읽히자 공작은 교황을 마주하고 있던 것을 잊고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황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뒤에서 신관들과 기사들이 웅성거리자 어린 교황은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그리고 교황은 두 손으로 황제의 손을 감쌌다. 뒤에서 준남작급의 기사가 무례하다며 달려들려고 하자 공작이 막아섰다. 교황은 깊은 보조개가 보이게 웃으며 손에 신력을 불어넣었다. 황금빛이 손에 물들자 그를 지켜보던 모든 이가 놀랐다. 특히 황제는 제 앞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교황은 천천히 입을 떼며 임명식에서 교황이 황제 앞에서 하는 맹세를 읊었다.






“포티아 제국 신 레이. 세라피아(치유) 대신전 교황으로서 항상 폐하의 길에 축복을 뿌리겠나이다.”






맹세 끝에 레이 교황은 황제의 손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으며 그와 동시에 황금빛은 모두 황제에게 스며들었다. 황제는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진 느낌을 받았다. 성스러운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모두는 황제와 교황에게 무릎을 꿇고 존경을 표했다. 오를리 공작마저도.






성으로 돌아온 황제가 교황에게 내린 것은 파격적이었다. 황제는 이미 피부로 느꼈다. 이번 교황은 감히 제가 다룰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건네준 황금빛의 기운.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그에게서 축복을 충분히 받았다는 것을. 황제는 대신전이 서있는 도시를 제국에서 분리시켜 교황자치국으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의 일은 전적으로 교황에게 맡기기로 했다. 더불어 그 안에서는 황명보다 교황의 선택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렸다. 신관들은 생각보다 과한 처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날 보았던 레이 교황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에는 그들의 뼛 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이 교황을 향해 넘실대고 있었다.








*
 









앞에 놓인 홍차를 들어 홀짝거렸다. 윽, 달아. 코 끝이 찡할 정도로 단 맛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 나를 보고 레이는 안그래도 웃고있던 얼굴을 더욱 찌그러뜨리며 웃는다. 잘도 이런 걸 마시네. 내 말에 레이는 피곤할 땐 단 것도 좋다면서 홍차를 들이킨다. 단 것도 정도가 있지...






“내가 말 편하게 하랬잖아. 싫어도 이제 그러셔야 한다고, 교황님아.”

“천천히 고치겠습니다. 공주님.”






여전히 여유로운 사람이다... 실실 웃으면서 습관은 참 무섭다며 쉽게 말 놓지 않는 레이를 흘겨보았다. 혁명을 일으킨 교황이 너일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 아니, 사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특유의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언젠가는 이런 일을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새삼 견습사제 시절의 레이를 떠올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레이와는 내가 10살 때 가출하고서 만났다. 나보다 3살 많은 13살의 레이는 견습사제 시절이었다. 아버님은 나를 어려서부터 과잉보호했다. 나를 위하는 마음이라지만 성격상 못참겠더라. 역마살이 끼었는지 성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으면서 밖을 그리워했더랬지. 결국 유모의 눈을 피해 마침 성 밖을 나가는 공작의 마차에 몰래 숨어들었다. 눈에 띄지않게 숲 속에서 빠져나온 나는 무작정 성의 반대로만 걸었다. 되도록 멀리 멀리~ 를 외치면서.






체감상 한 반나절은 걸었던 것 같은데 좀처럼 끝나지 않는 숲길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숲이라 그런지 밤도 빨리 찾아와 어둑해지자 으슬으슬 찬 기운이 몰려왔다. 당장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걷기 밖에 없었다. 발이 퉁퉁 부어 걷는 것도 많이 힘들었지만 숲에서 밤을 보내는게 더 무서웠다. 호로록호로록거리는 새소리와 아까부터 잎이 부딪히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내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으악!!!!”






갑자기 뒤쪽의 풀숲에서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에 나는 기절초풍하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누,누구냐?!”







눈을 질끈 감고 던진 질문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순간 온 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공포에 휩싸여 귀도 막고 온 몸을 웅크렸는데 뭔가 손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

“괜찮아요오?”






고개를 들어 온기의 주인을 확인하자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갔다. 왠 착해보이는 얼굴이 놀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바로 레이였다.




나를 일으켜준 레이는 나를 살피다가 눈썹을 찡그렸다. 내 무릎을 가리키며 이런, 요기 까졌다.. 하고 제가 더 아픈 목소리를 낸다. 피가 흐르는 무릎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끌어당겨 큰 바위 위에 날 앉혔다. 멀뚱히 그를 올려다보니 그는 주저앉아 무릎의 상처 위에 손을 가져갔다. 만지려고?! 곧 찾아올 고통을 상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지만 계속 멀쩡한 것 같아 한 쪽 눈만 슬며시 떴다. 하지만 금세 내 두 눈은 번쩍 뜨였다. 그의 손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리는 금세 멀쩡해졌지만 나는 대신전까지 레이의 등에 업혀 왔다. 덕분에 숲에서 캔 식물들은 모조리 버려두고 온 것 같았다. 미안하다고 성에 돌아가 레이에게 선물을 보내도 모두 거절당해 다시 되돌아왔다. 워낙 욕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내가 성에 돌아갈 땐 포박만 안했지 거의 총 출동한 아버님의 플록스 나이트에게 끌려왔다. 난데없는 기사들의 출동에 대신전은 난리가 났는데 정작 레이는 내가 절대 나와선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해서 기사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플록스 나이트의 사령관은 이미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성을 빠져나오고 나서 아마도 아버님께 처음으로 달달 볶였겠지. 지금쯤 내 방문 앞을 지키고있던 호위병은 진작에 징계를 받아 내 욕을 하고 있을거다. 대체 왜 자꾸 이러시냐고 하소연을 하는 폴렌 경의 모습이 안쓰럽긴 했지만 난 콧방귀만 뀌었다. 그러니까 폴렌 경이 좀 아버님에게 나 좀 자유롭게 해달라고 설득해보라고. 하지만 그는 아버님과 나 사이에 절대 끼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만 죽어날 뿐이라면서 한사코 나를 잡으러 오는데만 충실했다. 

그 결과 아버님의 과잉보호는 지금도 여전하시고 그래서 이 나이가 되어서도 이렇게 몰래 빠져나온거다.






그 후로 성에서 빠져나오면 대신전은 빼먹지 않고 꼭 들렸다. 레이는 또 몰래 빠져나오신거냐고 걱정하면서도 나를 알뜰살뜰 챙겨주었다. 내가 공주라서 그런가도 생각했지만 내가 볼 땐 순전히 남 챙기기 좋아하는 그의 천성이었다.









“그런데 이 밤에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찻잔을 들고 나보다 더 조신하게 차를 들이키던 레이가 테이블 위에 사뿐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묻는다.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레이를 밉지않게 노려보았다. 소매에 넣어가져온 양피지를 꺼내 그의 앞에 펼쳤다. 양피지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그는 소리없이 미소를 지었다.







“꿈을 꾸셨습니까?”






레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꿈에서 이런 얼굴을 봤다고 양피지에 그린 그림을 가리켰다. 내 인생의 걸작이건만 그림을 바라보는 레이의 표정에는 당황감이 서려있었다.







“너도 이미 이 얼굴을 알고있지?”

“...”

“몰라? 넌 세르니이그쥬님이 신경(神鏡)으로 보여주셨을거 아냐.”

“네. 보긴했지만...”







레이는 선뜻 그림에 대한 평을 내리지 않았다. 흥, 예술도 모르는 교황같으니라고. 레이는 이제 아예 그림에서 눈을 떼고 신경에 비춰진 남성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나는 양피지를 획 거둬들이며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누군데?”

“이분에 대해선 듣지 못하셨습니까?”

“그러니까 묻는거잖아.”






나 토라졌어요. 하는 티를 팍팍 내니까 레이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삐지셨냐고 묻는 레이에게 그래. 너 이미 점수 팍팍 깎였어.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레이는 일어나 손을 뻗었다. 쓰담쓰담 소리까지 내가며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레이는 습관이라던 존칭을 버리고 다정하게 말한다.







“우리 공주는 너무 잘 삐지는 것 같아.”






이봐, 이렇게 잘할 줄 알았어...






“... 지금 나 속이 좁다는거지?”

“그럴리가. 하지만 공주, 항상 응석을 부리는건 좋지 않아요.”

“바보. 레이니까 그러는거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머리 위로 익숙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아마도 방금 레이의 손이 빛났을거다. 맑아진 머리를 쓰다듬는 레이의 손길이 기분 좋아 잠자코 있었다. 한동안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자리에 앉은 레이는 내가 꿈에서 본 것을 설명해보라고 했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기억나는 처음부터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런데 남자의 얼굴을 보는데 특이하다고 생각한게 있어.”

“그게 뭔데?”

“머리는 분명 검은데 귀가 약간 뾰족했거든. 검은 머리는 동쪽의 특징이지? 그런데 엘프같이 귀도 뾰족하고... 혹시 동인과 엘프가 낳은 하프인걸까?”

“글쎄, 동쪽에도 엘프가 산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는걸?”

“그건 그렇지만... 동쪽에도 엘프와 비슷한 종족이 있을 수도 있잖아. 레이! 그만하고 알려줘. 이미 내 머리는 한계야...”






맑아진 머리가 금세 탁해진 것 같아 울상을 지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레이는 그런 나를 보고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하프가 아니야. 동인도 아니지. 


내 추리는 모두 틀렸다. 기껏 고민했는데 맞는게 하나도 없으니까 힘이 빠진다. 사람은 맞긴해? 혹시나하는 질문에 다행히 레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인간이야. 우리와 같은. 다만...”

“?”

“우리와 다른 차원에서 사는 인간이지.”

“!”







헐, 내 추리보다 훨씬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p.s. 본격 쟁여둔 판타지썰 풀기.
             찬열이는 다음화부터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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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43.149
아ㅠㅠㅠㅠ너무 좋아요ㅠㅠㅠㅠ다음그류ㅠ빨리 읽고싶어지네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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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 제가 판타지 참 좋아하는데요.. 전개가 빨리 됐으면 좋겠네욥 기대합니다!!!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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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헐 ㅠㅠㅠ 분량도 그렇고 내용도그렇고 짱잼 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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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꿀잼 허니잼이에여 !!!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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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4.39
아으 진짜 취적ㅠㅠㅠㅠ아진짜 사랑해여...ㅠㅠㅠㅠㅠㅠㅅㅠ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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