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01
"오늘 니네 집 간다. 병찬이 형이 오늘 플스 준다했거든."
"병'신. 좋냐."
"나 오늘 기분 좋으니까 시비 걸지마라."
"그 과자는 뭔데? 딱 봐도 니가 감히 먹을 수 없는 고급스러운 포장진데?"
"이거 이은상이 받아온건데. 말하지 않았나 이은상 좋다는 애들 천지에 널렸다고. 분발해라 김여주."
"나도 가면 안돼?"
"응? 갑자기? 뭘?"
"너네 집. 황윤성 간다며 오늘. 나도 가보면 안돼?"
그저 빛같은 사람. 그래서 자꾸만 올려다볼 수 밖에 없는 사람.
그 날은 웬일인지 느낌이 좋았다. 은상이가 먼저 다가와줬다는 생각에 그저 그랬다보다. 은상과 처음 트러블이 생겼던 그 날은 황윤성을 잡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나는 이은상의 말 하나에 설레고 상처받고 여리고 어린 여학생이었을테니.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멀어지는 건, 사람이었고 사랑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황윤성이 우리 오빠와 머리를 맞대고 신나게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나와 은상이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나섰던 것이었나.
셋이 아닌 둘이서 걸어도 어색하지 않고 침묵이 흐르지 않는 그 분위기가 가져온 나의 방심과 거만함 때문이었나.
"은상아, 근데 나 궁금한거 있는데"
"응, 어떤거?"
"아까 너 지갑에서 이거 사진 떨어졌길래 주웠거든,"
"아, 그래 고마워."
"누군지 물어봐도 돼? 누가 그러기로는, 너 예전에 엄청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 있었다고 …"
"그 얘기는 안하고 싶은데."
"맞구나. 예쁘다, 너랑 잘 어울렸을 것 같아. 궁금하네 어땠을까, 그 때의 너는."
"알거없잖아."
"어?"
"선, 안넘어줬으면 좋겠어."
"… 선?"
"실례잖아. 너 궁금하단 이유로 그런 얘기 멋대로 꺼내는거."
"이은상."
"미안, 먼저 집에 간다."
"너 그렇게 가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데."
"… 변하는거 없어. 친구잖아, 너랑 나. 갈게."
그 당시 내 자신이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그냥 이은상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나를 자책했다. 사실 그 때는 내가 잘못한 것을 알았다기 보다는 그저 은상이 화났다는게 최우선의 생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어리지 않았나 싶다. 해결하고싶은 내 궁금증이 내가 사랑하는 그의 상처보다 앞섰던 때.
"뭐야, 이은상은? 왜 혼자 들어오냐. 일부러 둘이 보냈더니."
"야, 황윤성. 나…"
"뭐냐 그 울것 같은 표정은."
"나 망했어."
그 말을 끝으로 엉엉 울기 시작한 나는 그 자리에서 몇십분을 울었던 것 같다. 최병찬이 가져다 준 수건으로 눈물 콧물 다 닦으며 서럽게 우는 동안 황윤성은 내 옆을 조용히 지켜줬던 것 같다. 그냥 딱히 별 말을 하지 않고도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 힘이 되는 것, 그런 친구였다 황윤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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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이은상인데 머리는 황윤성인 이 기분은 뭘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