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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선천적 장애로 말을 하지 못한다. 길 좀 알려달라는 사람들의 질문도, 길 가다가 걸어오는 남학생들의 번호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들도,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시키시는 발표들까지 이 세상의 모든 대화는 내게 사치였다. 그렇게 23년을 살아왔다.  

난 중학교가 다 끝나갈 무렵, 너를 만났다. 너는 후천적 장애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교통사고가 났었다고 했다. 너도 나처럼 이 세상 모든 소리는 사치라고 느끼겠지.  

너와 난 종이에 쓰거나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위해 배워야만 했던 수화를 통해 대화하곤 했다.  

같이 네 번째 가을을 맞은 그 해. 우린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던 내게 추운데 뭔 아이스크림이냐고 엄마처럼 나무라던 너는 내 고집에 결국 푸스스 웃으며 금방 사 올 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네가 저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날은 유달리 환히 웃는 너를 잘 볼 수가 없었다. 그냥 그랬다. 보고 싶었으나, 제대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마치 태양을 보는 것과 같았다.  

네가 내 눈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그때였다. 저 옆에서 트럭이 빠른 속도로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트럭을 눈치챈 듯 뭐야 음주운전인가 봐 하며 피했다. 그러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너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미친 트럭의 미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짜내었다. 나오는 소리라곤 으 어 따위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뿐이었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너에게 흥분하여 손짓 발짓 다 해가며 미친 듯이 다가오는 트럭을 가리켰지만 넌 알아채지 못하였다.  

있는 힘껏 너에게 달려갔다. 태어나서 이렇게 빨리 뛰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두 발자국만 더 가면 너에게 닿을 수 있었다.  

눈앞을 지나치는 트럭. 너는 더 이상 내 눈앞에 없었다. 내게 남은 건 무언가 치이는, 떨어지는 굉음과 사람들의 비명소리 뿐.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수화기엔 흐느끼는 소리뿐이었다. 결국 옆 시민분이 도와주셔서 겨우 너를 차디찬 맨바닥에서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 너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 했다. 10월 3일. 그날은 너의 생일이었다.  

처음으로 너와 나의 장애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피부가 하얬던 너는 어김없이 하얀 가루가 되어 나온다. 하얀 가루 속에 파묻혀 있는 은색 목걸이. 너와 내 커플 목걸이였다. 목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한없이 답답했다. 여전히 내 목에도 걸려있는 이 목걸이가 점점 조여오는 듯한 답답함이었다. 목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있었다.  

눈앞은 이미 뿌옇게 흐려져 앞이 보이질 않았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눈에서 툭툭 맑은 액체만이 떨어졌다. 그저 가루일지라도 너를 한 시라도. 단 한순간이라도 놓칠 수 없던 나는 수없이 눈을 깜빡였다. 가슴을 쾅쾅 내려쳤다. 차라리 소리라도 지를 수 있었다면 좀 나았을까.  

네가 떠나고 세 번째 맞는 겨울이다. 나는 너의 웃는 모습, 우는 모습, 화내는 모습,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심지어 해맑기만 했던 너의 그 마지막 모습까지도 내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 했다. 지우지 않았다. 시도조차 하지 못 했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높은 곳은 시원하다. 바람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다가 잠시 거쳐가는 것 같았다. 너도 한없이 돌아다니다가 힘들면 내 옆에 앉아 쉬었으면 좋겠다. 나는 두 발자국을 더 다가가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더 빨리 달리지. 더 힘껏 달리지. 더 빨리 알아채지.  

높은 곳은 시원하다. 바람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다가 잠시 거쳐가는 것 같았다. 너도 한없이 돌아다니다가 힘들면 내 옆에 앉아 쉬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야 너를 향해 두 발자국을 내디뎠다. 너에게 두 발자국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바람을 조금 느끼고 있으니 곧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의 그 굉음이 들렸다. 조금 더 선명하고 잔인하게.  

눈을 겨우 들어 올리니 세상이 전부 옆으로 누워있었다. 내 손에 있던 두 개의 아이스크림이 처참하게 뭉개졌다. 안되는데. 너를 만나면 줘야 하는데. 아. 등이 차갑다. 차갑다는 느낌도 없을 정도로 차갑다. 너는. 너는 어떻게 여기 누워있었을까. 너는. 너는 어떻게 이 아픔과 괴로움을 뒤로한 채 날 떠나갔을까.  

여긴 네가 누워있던 옆 건물이다. 나는 네 자리에 누워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차디찬 바닥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는 몸을 일으킬 수 없겠지. 오늘따라 보고 싶다. 많이.  

네가 차고 있던 나와 같은 목걸이가 또다시 내 목을 조여왔다. 오늘은 1월 19일. 나의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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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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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헐헐헐 재밋어요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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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잡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쓴건데 고마워요 :)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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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 진짜 아련아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먼저 떠나간 너를 위해, 곁을 따라간 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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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잡
앗 왜 지금 봤지ㅠㅠㅠㅠㅠㅠ 재밌게 읽어줘서 고마워요 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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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헐ㅠㅠ아...진짜 찌통이예요ㅠㅠ와....진짜 세라야 현아야ㅠㅠ다읽고나서 진짜 현실눈물흘릴뻔했어요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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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너무슬퍼...ㅠㅠㅠㅠㅠ아련터지고새벽에읽으면 더 그럴꺼같아ㅠㅠㅠㅠㅠㅠㅠㅠㅙ...생일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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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ㅠㅠㅠㅠ어ㅜㅜㅠㅠ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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