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자, 고개 들고 약간 비스듬히... 좋아. 좀 더 웃어.”
검은 천막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세를 고치던 소녀는 수줍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더, 더, 더를 외치는 남자의 주문에 이미 경직된 입꼬리는 오히려 주춤하고 아래를 향한다.
“... 찍을게.”
아무래도 고칠게 많겠어. 렌즈를 통과해 자신의 눈에 비치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찰칵
셔터를 누르자 순간 후레시가 팡 터지며 소녀는 질끈 눈을 감고야 말았다. 재빨리 눈을 뜨긴 했으나 이미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고 소녀는 울상을 지으며 사진가를 향해 묻는다.
“잘 나왔어요?! 저 눈감았죠? 아, 다시 찍어주시면 안 돼요?!”
쉿.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붓던 소녀에게 사진가는 기다란 검지손가락을 제 입에 척 올린다. 몽롱한 사진가의 시선에 소녀는 저도모르게 입을 꾹 다문다. 쥐 죽은 듯이 그저 짝다리를 짚은 채 카메라의 LCD를 확인하는 잘생긴 사진가를 발그레진 얼굴로 쳐다본다. 다시봐도 넋이 나갈만큼 잘생긴 얼굴이다. 사진관 근처에 있는 저 학교 여학생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남자를 바라보던 소녀는 다시 제게로 돌아온 시선에 헙, 하고 숨까지 들이마신다.
“한번 더 찍을건데, 이번엔 좀 자연스럽게 웃어봐. 너무 긴장하지말고. 나 포토샵 잘 못하니까.”
그 쪽이 너무 잘생겨서 그렇잖아요... 생각하던 소녀는 아이피스에 다시 눈을 대며 포토샵을 운운하는 사진가의 말에 저도 모르게 풉 웃음을 터뜨린다. 그 새를 놓치지 않고 ‘좋아, 여기보고!’ 하는 사진가의 외침과 함께 다시 후레시가 터진다. 멍... 빠르게 지나간 셔터눌림에 소녀는 화들짝 놀라 남자를 바라보며 외친다.
“저 또 눈감았죠?!”
그 사이 LCD에 뜬 사진을 확인한 사진가는 카메라를 내리며 소녀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올린다. 잘나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제스쳐에 소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상하면 다시 찍어주세요란 소녀의 요청에 사진가는 피식 웃으며 천막을 걷히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척 헝클인다.
“매년 잘 뽑아가면서 왜 이러실까.”
사실 벌써 3년 째 이곳에서 증명사진을 뽑아가는 소녀는 사진가의 말에 베시시 웃다가 헝클어진 머리에 인상을 찡그리며 사진가의 손을 잡아내린다.
“아! 이게 몇시간짜리 머린데?!”
“... 만진 머리였어?”
“아저씨!”
“ㅋㅋㅋ”
사진가, 종인은 발끈하는 소녀를 뒤로한 채 앞서 키득거리며 천막 밖으로 빠져나왔다.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메모리 카드를 꺼내 리더기에 꽂았다. 파일을 열자 수백개의 사진원본파일들이 쫙 나열된다. 거침없이 스크롤을 내려 맨끝에 자리한 파일을 열었다. 고객의 초상권은 지켜줘야지. 정수정이라는 이름으로 파일명을 고치고 빠른 손놀림 끝에 프로그램 위에 얼굴이 크게 뜨자 옆에서 흐익하고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헐! 완전 못생겼어!”
“이게 학생 얼굴이야.”
“에이, 저 원래 사진빨 안받는 체질이에요.”
“.. 누가 그래?”
장난 반 진심 반이다. 어쨌든 사진 속에 나온 얼굴 역시 당신의 얼굴이니까. 그래도 이쁘다는 말을 해주길 바랬는지 수정이는 어깨에 주먹을 내리꽂는다. 그리고 그제야 ‘이뻐, 이뻐.’ 해주는 나를 흘겨본다. 완전 엎드려 절받기라고. 근데 너 좀 쎄게 쳤다? 얼얼한 어깨를 살살 문지르며 마우스를 움직이다가 본격적으로 패드에 펜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옆에서 팔짱끼고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던 수정이 이리저리 참견을 벌인다.
“여기 더 깎아주세요.”
“됐어?”
“눈 좀 더 키워주시고...”
“...”
“아, 이마에 뽕 좀 넣어주시구요!”
아예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지? 원본에서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사진에 혀를 내두른다. 원래 이쁘장하게 생긴 학생이라 사실 원본사진도 나름 이뻤는데 열심히 수정해놓고 보니 서울 한복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성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극사실주의의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정말 아니꼬운 사진일 수 밖에 없다. ‘이제야 좀 괜찮아졌네.’ 하고 뿌듯하게 말하는 수정의 말에 혀를 찼다.
“이게 무슨 너야.”
“왜요~ 이제야 완전 나같은데??”
“네네. 고객님 뜻대로 하시죠.”
단골이랍시고 수정학생에게 시간을 너무 많이 쏟았다. 줄 서서 기다리고있는 학생들의 입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크, 잠시만 기다려줘. 학생들. ’ 하고 윙크를 하며 양해를 구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 학생들에 한숨을 돌렸다. 여학생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올~ 아저씨 영업 좀 하시네요?”
“뭐?”
“아저씨, 솔직히 얼굴 하나 믿고 사진관 차린거죠? 사진 찍는 실력이 영 의심쩍다니까~? 나도 2년 전에 이 얼굴에 속아서 온 거잖아요~ㅋㅋㅋ”
“뭐라는거야, 학생? 지금 감히 내 사진을 무시해?”
“ㅋㅋㅋㅋㅋ”
기껏 사진찍어 줬더니? 인화된 사진을 자르려다말고 헛소리를 늘어놓는 수정이 얄미워 손을 멈추었다. ‘이렇게 잘리고 싶냐?’ 사진을 마구잡이로 놓고 날을 세우자 여유롭게 책상에 턱을 괴고 있던 녀석이 기겁하며 내 팔을 잡아당긴다. 뭐하는 거냐고 귓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수정의 얼굴에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이런... 나 되게 못됐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큭큭, 웃다가 사진을 가지런히 잘라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수정학생 손에 고이 쥐어주었다.
“정수정, 이제 그만 가. 너 이제 고3이잖아. 가서 공부 해야지.”
내 말에 현타라도 왔는지 윽, 소리를 내며 제 심장을 움켜쥐는 수정이 꽤 귀엽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먼 과거를 회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 난 공부는 안했구나. 진작에 사진에 인생 올인하면서 포기했으니까.
고3한테 그말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아냐고 떠들어대는 수정에게 일해야하니까 그만 떠들고 이제 좀 제발 가라고 학생의 등을 떠밀며 보내놓고나니 여전히 줄서서 기다리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받아놓은 이름만도 열명이 넘는데 줄은 계속 길어지기만 한다.
해가 바뀔 때면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하루에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왔다가고 한다. 주변에 재단이 있어서 그런지 특히 교복입은 학생들이 많았다. 첫 해는 무난하게 넘어갔다지만 작년부터 눈에 띄게 사람이 늘어났다. 특히 여학생들이. 줄기차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행렬에 사진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파리만 날리는 것보다는 다행이긴 하나 하루에 같은 자세로 같은 배경을 뒤에 둔 얼굴을 몇백장씩 찍으려니 마치 사진찍는 기계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럴려고 카메라를 잡은건 아니었는데... 씁쓸한 입맛에 작게 혀를 차고는 리스트 적혀있던 정수정이란 이름 옆에 체크를 하고 그 아래에 적혀있는 이름을 불렀다. 정수정과 같은 교복을 입고 줄 맨 앞에 서있던 학생을 바라보며.
“정은지학생? 안에 들어가서 준비하고 있어요.”
수정학생을 상대하고 있을 때 내내 하품을 쩍-하면서 기다리고 있더니 이름이 불리자마자 ‘네!’하고 씩씩하게 들어가 머리를 만진다. 속으로는 어차피 이번에도 프로그램으로 다 다듬을텐데 뭐하러 저렇게 신경쓰는건가 생각하면서도 일부러 좀 더 기다렸다가 촬영실로 들어섰다. 3년동안 일하면서 느낀건데 여자들은 꽃단장할 때 누가 보고있는걸 굉장히 싫어하더라.
“이제 찍어볼까요?”
학생이 다소곳이 의자에 앉고나서야 카메라 앞에 서서 학생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카메라 앞에 설 기회가 부족한 학생들은 저 의자에만 앉으면 항상 저리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그건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지만 유난히 학생들은 더 심하다. 사진에서 비춰지는 제 모습에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유형 중 하나이다.
“고개는 이렇게.”
“...”
“약간 비스듬히”
학생 앞으로 걸어가 손수 자세를 고쳐주자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다닌다. 손가락을 한개를 올렸다. 반사적으로 그 손가락에 집중한 학생에게 ‘시선은 카메라에.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리는 겁니다.’ 말한 뒤 피식 웃었다.
조금 발그레해진 자연 볼터치가 나쁘지는 않다.
“자, 그럼 찍습니다. 여기 보세요.”
뷰파인더를 통해 비춰지는 학생의 모습을 깨끗하게 초점 맞추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학생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고요한 적막을 깨고 셔터누르는 소리만이 촬영실에 울려퍼진다.
으아.. 드디어 마지막인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남학생까지 사진을 잘라 고이 봉투에 넣어 건네주었다. 그리고 책상 뒤 소파에 털썩 몸을 뉘우며 팔뚝으로 눈을 꾹 눌렀다. 깜깜해진 시야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끝나지않을 것만 같던 줄이 드디어 끝을 보였다. 팔을 조금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몇 초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어둠에 적응한건지 눈에 들어온 빛이 꽤 날카롭다. 인상을 찡그리며 시계를 올려보자 벌써 마감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런... 막내가 기다리는데. 어머니를 보채며 저를 기다리고 있을 막둥이를 떠올리곤 무거운 몸을 으쌰 기합까지 넣어가며 일으켰다. 우유라도 사가야겠네.. 생각하면서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데 문에 걸어둔 종이 딸랑이며 움직이는 소리에 몸이 멈칫거린다.
이 시간에 또 누가... 인상을 구기며 퇴근을 방해하려는 불청객에게 단호하게 ‘영업 끝났어요’라고 말하려고 했던 입은 난데없이 ‘어서오세요’라는 엉뚱한 환영인사를 건네는 입에 눈을 질끈 감았다. 미친, 이 망할 습관성... 이미 환영까지 해놓고 다시 돌아가란 말을 하는건 좀 그런가..? 한숨을 쉬고 그제야 찾아온 손님을 대충 바라보며 물었다.
“뭐하시려고요?”
“... 사진을 좀.. 찍고 싶어서요..”
가까스로 들려오는 개미만한 작은 소리에 한 번,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싶어 왔다는 당연한 소리에 또 한 번. 네? 하고 물을 뻔 했다. 내내 놀다가 왜 이제야 오고 난리래. 심기가 불편해진 나로써는 문 앞에서 꼼지락거리며 대답하는 남자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하긴, 손님이 내 맘에 들어서 뭐하나. 가방을 챙기던 손을 멈추고 결국 고객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공책을 펼쳤다.
“무슨 사진 찍으실꺼냐고요.”
“아... 그게...”
이어서 이름을 물어보려던 나는 머뭇거리는 남자를 향해 다시 물었다. ‘그냥 진짜 아무 사진이나 찍으려고 왔어요?’ 신경질적인 질문에 남자는 꾹 다물고있던 입술을 달싹였고, 난 쥐고있던 펜을 떨어뜨릴 뻔 했다.
“... 영정사진.. 이요.”
| 여기를 보세요, 찰칵 |
걍 단순하게 끄적인 조각글입니다. 소재가 무거워서 풀어나가기 어려울텐데 ㅠㅠ 괜히 건드린거 아닌가 싶기도하고...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아니군요! 하지만 뭐 이 글을 많이 봐주실거라 생각하지 않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제 노트라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여유롭게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 그럼 안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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