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를 향한 내 감정을 언제 깨달았냐고?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정의 내릴수는 없지만 아마 연습생때 부터 였을거다. 물론 내가 말하는 도경수를 향한 감정은 유치한 짝사랑 같은거고. 동기는 충분했다. 예뻤다. 예쁘게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내 눈에는 그래보였다. 큼직큼직한 이목구비가 예뻤고, 위선이라곤 없어보이는 단호하면서도 딱딱하고, 어딘가 해학적이기도 하면서 복잡한 모든걸 갖춘 성격이 예뻤다. 어릴적부터 꽤나 사랑받고 자란 타입인지, 사람들의 관심과 티나는 접근에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비교적 늦게 연습생에 들어온 나에게도 텃세를 부리지 않고 딱 본인이 할일만 열심히 하는, 겉치레로 보이는 선행은 일체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노래를 할때면 도톰한 입술 사이로 듣기 좋은 중저음이 흘러나오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목소리에 완전히 반한거다. 어떻게 노래를 저렇게 하지? 친해지고 싶어서 미치겠는거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도경수랑 친해지는 건. 나보다 연습생 기간도 훨씬 많은 애들이랑은 거리낌 없이 쉽게 친해질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도경수와는 친해질수가 없었다. 딱히 말을 나눠본적도 없고… 항상 친한 무리에서도 꼭 한명씩 안친한 애가 있는데 도경수가 나에겐 그랬다. 여럿이 모여 얘기를 할땐 같이 몇마디라도 주고받고 시선을 마주하는데 말이지 이상하게도 둘이만 남으면 공기마저 차갑게 식어버리는 기분이였다. 도경수도 커다란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이 어색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고, 나 또한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내기도 전에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난 도경수와 금방 친해질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데뷔를 하고 나서도 이어졌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더 악화됐다고 봐야한다. 행사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침대로 뻗었던 그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영 하지 않을거라 믿었던 몽정을 하고 말았다. 대상은 도경수. 얼마나 속으로 앓았으면, 도경수가 꿈속까지 나타나서 나를 괴롭혔을까. 일체 노출을 꺼려했던 도경수는 꿈속에서 반나체로 내 몸 위를 느릿느릿 기어올라왔다. 땡그란 눈은 힘이 풀린채 촉촉히 젖어있고. 도톰한 입술 사이로 나타난 혀가 내 목젖을 야하게 햝으며 백현아- 하고 불렀을때 난 우스꽝스러운 괴성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분신도…
"미치겠다…"
나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고 내 자신이 한심해서 한탄이 나왔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생각하는 회로가 완전히 망가져버린 듯 하다. 난 축축하게 젖은 트렁크 팬티를 검지와 엄지로 들추고는 옆 침대에서 자고있는 찬열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화장실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자꾸 생각나는 야해빠진 도경수의 잔상에, 진심으로 죄책감이 느껴져서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내가 도경수를 상대로 무슨 생각을 한거야 도대체. 한숨을 푹푹 쉬며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샤워기에 팬티를 몇번 적시고 온힘을 다해서 쥐어짜냈다. 손빨래를 마친 팬티는 곧장 세탁기 안으로 들어간다. 난 여분으로 챙겨온 속옷을 꾀입고 뚜껑내린 변기에 앉아서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있을 도경수를 향해서 몇번이고 사과를 했다. 경수야 부디 날 용서해. 널 두고 음란한 꿈을 꾼 나를 용서…아. 그때 불현듯 그 꿈이 다시 생각난건 어쩌면 운명의 장난이 아니였을까. 난 진심으로 욕이 나왔다. 도경수만 생각하면 제어기능을 상실하는 내 분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난 결국 절대 하면 안될 짓을 하기 시작했다. 도경수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자위를 했다. 신기하게도 엄청난 흥분제라도 되는듯이 입에선 가쁜 숨이 멋대로 비집고 나오며, 손놀림이 빨라졌다. 도경수. 도경수. 엎드린, 훤히 두 다리를 벌린, 말갛게 웃는, 우는, 신음하는, 도경수. 도경수. 경수야-
"하아… 도경수윽,"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었을때 난 보고말았다. 열린 화장실 문 틈 사이로 도경수를 생각하며 수음하는 날 바라보는, 날 이렇게 만든 장본인. 도경수를. 눈이 마주치자 진심으로 까무러칠 뻔했다. 온 몸이 굳어버리고 소름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돋더니 발기한 제 분신도 사그라들고 있었다. 흥분이란 감정이 뭐였는지 까먹을 정도로, 난 놀라 정신을 잃을것만 같았다. 도경수도 꽤나 충격을 받은듯했다. 항상 고요하게 가라앉아있던 눈이 해일이 일듯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1분정도? 우린 가만히 눈을 맞췄다. 난 그제서야 정신을 다잡고 다급하게 외쳤다. 그게, 내 말좀 들어봐!
그런데 도경수는 생각보다 칼같은 사람이였다. 내 말이 마치기 무섭게 도경수는 쾅- 하고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다. 난 너랑 할 얘기 없고 니 꼴도 보기 싫다는걸 간접적으로 나타낸건가? 난 팬티를 황급하게 올리고 정액이 묻은 손을 닦지도 않은채 문을 열고 도경수를 향해 뛰쳐나갔다. 그 순간동안 난 엑소를 탈퇴해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을 했던것같다. 나는 그대로 도경수의 손목을 잡아 돌려세웠다. 하필 도경수를 잡은 손이 정액범벅의 손이였다는게 인생 최대의 실수지만말이다. 변백현 이거 놔. 하고 외치는 도경수의 얼굴이 구겨졌다. 난 아차, 했지만 그 손을 떼지않았다. 잡은 손목을 놔버리면 그대로 도망갈것 같아서.
"경수야. 오해하지 말고."
"그럼 이 상황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해야해?"
"아니, 잠시만 내 말좀 들어봐."
"……"
"어, 그게… 어, 그러니까…"
"할말없지?"
맞다. 나는 할말이 없었다. 몽정을 했다는걸 말하기엔 내 자존심에 금이가는듯 해서. 그리고 몽정에 니가 나와서 날 유혹했다는 저급스러운 말도 입에 올리기 싫어서. 난 손에 힘이 풀려 그냥 그렇게 경수를 놔줄수밖에 없었다. 도경수는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행사장에서 나를 보며 웃던 경수였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난 바닥에 고개를 쳐박고 찌질하게 울었다. 오열을 한건 아니고,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다가 왼쪽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정도 찔끔 난거다. 엉켜버린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감이 안잡혀서 슬펐고, 수음하는걸 도경수에게 들켜서 쪽팔렸고, 날 벌레보듯 보던 도경수마저 너무 좋아서 짜증났다.
직접적인 우리의 시작은 이랬다. 어쩌면 도경수와 내가 어색하기만한 동기였던 이유는, 직접적인 무언가가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난 정액묻은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미친듯이 발버둥치다가 어쩌면 좋게 호전될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의식의 밑바닥을 드러낸거다. 한마디로 그냥 미친거다.
도경수한테 미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