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오빠." "..." "....ㄱ...수오빠." "..." "..경수오빠" "...어?"
눈앞에 네가 아른거린다. 행복하다는 듯 웃고있는 너.
"뭐하는거야. 안웃어줄꺼야? 사진 찍자며." "아..응. 그래야지." "자- 포크 쥐고. 맛있어요- 표정!" "맛있어요-" "아, 귀여워!" "..씁. 오빠한테 귀엽다니." "귀여운걸 어떻게 해."
네가 행복해한다. 나 또한.. 행복한가. 행복할 것이다. 네가 이렇게 웃어주니까. 나도 행복해. 네가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얼굴로 밝게 웃는다. 이건 필시 꿈이다. 내 앞의 네가 이렇게 웃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세나야." "세훈아! 와- 언제 왔어?" "..." "방금. 형, 세나랑 뭐 먹었는데 얘가 이렇게 신나있어?" "아.. 아좀." "오빠가 파스타 해줬어. 그치?" "응.." "와, 형 나도 줘 응?" "응? 응. 기다려봐." "완전 맛있어!"
그래. 넌 내 것이 아니였으니까. 애초..부터. 그를 향한 웃음이였어. 너는.
"오빠." "응?" "오빠는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 없어?" "..갑자기 그건 왜?" "한번도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아.." "저번에 약속했잖아. 생기면 꼭 소개시켜준다고." "아직 없네." "..에이. 이렇게 멋진 오빠가?" "..멋져?" "응, 오빠만큼 멋진 사람도 없을껄? 아, 세훈이 빼고!" "..그래." "궁금하다 오빠가 좋아한다는 사람."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너는 알았을까. "..오빠."
"..." "나, 꼭 해야 할 말이 있는데.." "세나야." "..응?" "..피아노. 쳐줘." "..그래. 우리 오빠가 좋아하는 곡 쳐줘야지. 노래 불러줘!"
그리고 우리의 끝이, 다가온다. 아니, 이 끝은 항상 정해져있었다. 내가 외면했을 뿐.
"...저기, 나 할말 있는데." "..나중에 하면 안될까?" "안돼. 오늘은 꼭. 해야해서.." "..." "미안해." "..." "오빠를 많이 좋아해." "..." "그런데.." "..." "그것뿐이더라."
이 개같은 악몽에서 날 꺼내줘.
"결혼하게 되었어."
그만해.
"그는 나에게 잘해줘."
그만하라고.
"오빠도 와서 축하해줬으면 하는데.."
그만..
"..그리고, 오빠도 얼른 다른 사람 찾아야지. 나 좋아하지 말지. 혼자 아프게 왜그랬어.."
제발..
"세훈이가 앞으로 피아노 하는데 있어서 도와준다고 약속도 했어."
그건 내 안에서도 가능하잖아.
"..이제, 오빠가 도와주지 않아도 돼."
...도데체.
"나를 많이 사랑한대. 그리고 ..나도 그를 많이 사랑해."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도 있는데.
"이미 전에도 알고 있었잖아. 이렇게 될거란 거."
왜...
"갈께. 꼭 와줘. 우리 결혼식."
네가 나를 떠나간다. 그 놈은 너를 많이 사랑하고. 너도 그를 사랑한다는 거. 나도 잘 알지만 그동안 가둬버렸다. 내 안에. 물론 나혼자.
"세나야!!!! 형, ㅅ..세나가.. 세나가.." "..어?" "차.. 콩쿨 가려고.. 차에 탔는데. 사고가 났어. 숨.. 숨을.. 안쉬어." "..."
너는 그렇게 나가고싶어 했던 콩쿨에 가려다 그렇게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처음엔 분노가 치밀었다. 너를 잘 지켜줄 것같았던 오세훈은 너를 그렇게 보냈다. 그놈의 잘못은 아니지만 끝까지 네 곁에 없었단 그 이유 하나만으로, 너를 지키지 못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가 미치도록 싫었다. 그리고 슬펐다. 마지막까지... 너의 마음의 끝은 오세훈. 그놈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결국 되지도 않을 희망을 품었다. 언젠가, 네가 나에게 오지 않을까.. 하는. 지금은 오히려 너에게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내 말 한마디만 듣고 가지. 그동안 미안했다고 결혼 축하한다는 말도 못했는데. 제발 한번만 내 이야기좀 들어줘. 내가 많이 사랑했다고 너를 억지로 가두었던 나를 좀.. 용서해달라고. 이런 나라도 네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나좀.. 나좀..
. . .
"..ㅅ..씨." ... "...수씨." ... "...경수씨" "....아." "괜찮으세요? 안색이.."
눈을 떳는데 네가 보인다. 아니... 네가 아닌 그녀가 보인다.
"괜찮아." "..정말로 괜찮으세요?" "..응." "다행이다. 물..가져다드릴께요." "..아니." "네?"
내가 항상 죄로 담아두었던 네가 아니라.
"..여기. 있어줘." "..." "..제발."
나를 볼때 아프게 웃던 네가 아니라.
"..아, 알았어요." "..."
내가 억지로 잡아서 가두었던 네가 아니라.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을께요." "..."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 "네?" "..응. 고마워."
그저.. 계약일 뿐이라도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사람. 언젠가, 너로 비쳐보였던 이 사람이, 요즘 너와는 아주 다르게 보인다.
"..지금 시간이 몇시지?" "아, 7시예요." "..씻어, 30분에 식사하러 내려가야지." "아, 그랬었지. 정말 괜찮으신거 맞아요?" "괜찮아. 고마워." "아니예요.."
어색하게 웃던 그녀는 욕실로 들어갔다.
여긴 그러니까 본가의 내방이고, 어젠 어머니께 그녀를 소개시켜드렸다. 다음달이면 그녀와 결혼하게된다. 계약이긴 해도 이 사람과 같이 있으면 그녀에 대한 생각이 점점 잊혀간다.
"..잘된건가."
아마, 잘 되가고있을 것이다. 네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축복일지도.
* 그의 집은 정말이지 미로다. 처음 왔을 때 반겨주는 아주머니가 그의 어머니인줄 알았지만 '..가정부야.'하면서 날 보고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를 보며 조금 부끄러웠다. 그의 어머니는 정말이지 기품이 넘치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나를 보고는 바로 허락해버렸다. 이 결혼을.
"..어, 어!" "..조심해. 넘어져." "..고맙습니다." "잡아." "네?" "손, 잡으라고. 넘어지잖아." "..괜찮은데." "내가 안괜찮아."
그의 손은 조금 따뜻했고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오는게 어색한 나를 위해 배려해주는 듯 보였다. 내가 애도 아니고 부끄러웠지만 그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질까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계단을 내려가 주방으로 가니 정말 맛있는 음식이 잔뜩이였다.
"..맛있겠다." "좋아해주셔서 다행이에요. 경수도련님 입맛에 맞춘건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아, 아니예요. 저는 다 잘먹어요. 감사합니다."
그와 나의 밥그릇이 있는데.. 하나가 또 있다.
"어머님이 아직 안오셨는데.." "사모님은 입맛이 없으시다고 하셨고, 새벽에 세훈도련님이 뉴욕에서 오셨.." "뭐?"
그의 표정이 급속도로 구겨졌고 이내 식탁에서 일어나버렸다.
"ㅇㅇㅇ, 일어나." "네?" "..아침은 다른곳에서 먹도록 하지." "아니 여기 다 차려져 있는데.." "..나와 그냥." "나 안보고 갈꺼야, 형?" "..." "..어?" "..어."
남자가 놀란듯 눈이 커지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고 작게 '..아, 그럴리가 없지.'하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내 웃으며 내게 손을 내민다.
"..안녕. 나. 오세훈. 경수형 친척동생" "..네?"
내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자 어색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으려 손을 뻗자 경수는 나를 끌어당겨 제쪽으로 오게 한다.
"어..?" "...아." "..오세훈." "..." "내가 말했잖아." "..." "..나는 너 보기 싫으니까.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형." "..가자. 차 밖에 있어."
그는 나를 끌고 그대로 나가버렸고 주방에서 오세훈이란 사람은 나를 멍하게 바라만 보다가 이내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 "오세훈." "..네?" "그새끼랑 친하게 지내지 마." "..왜..냐고 물어보면 대답해줄꺼예요?" "아니." "..그럴줄 알았어."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푸스스 웃으며 '..이미 나를 다 알아버렸네.'하고 말했다. 웃으면 참 예쁜 사람인데. 조금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 아침에 어디서 밥을 먹어요?" "다 방법이 있지." "도경수씨가 김밥집에서 밥을 먹을리도 없고." "..뭐?" "아니예요."
내가 작게 웃자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서 '아침에 미안해. 지금 좀 부탁할 수 있나.'하고 말한다. 이내 전화를 끊더니 차를 돌려 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레스토랑은 아침에 안열잖아요." "여기 셰프랑 친해. 내 친구." "아.. 완전 실례 했네요." "그래도 뭐 어떻게 해. 배고픈데."
그와 나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음식을 시켰다. 패밀리레스토랑은 몇번 가봤지만 이렇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은 가본 적이 없어서 메뉴를 못고르는 나를 보다가 그는 한 숨 쉬며 '코스A에 얘는.. 봉골레.'하고 말했다.
"나 해물 좋아하는거 어떻게 알았어요?" "..저번에 잘먹길래." "아.."
음식을 먹는 내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 자꾸 눈치를 보자 '..누가 밥 먹다가 때리냐. 아니면 맛이 없어?'하고 물어왔다.
"..아, 아니요. 말이 너무 없어서." "..귀찮게. 말도 해줘야 해?" "아니예요. 그런데, 도경수씨는 그게 끝이예요?" "..뭐가." "음식이요. 반이나 남겼잖아요." "원래 밥 잘 안먹어." "사람이 일하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인데, 이렇게 살기 위한 수단을 낭비해서야 되겠어요?" "..뭐?" "다- 드세요. 아무리 우리가 진짜는 아니지만 제가 있는 동안은 남기는 꼴 못봅니다. 빨리요." "..하."
그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다가 이내 풋 웃으며 다시 스테이크를 썰었다. 이렇게 그와 대화하게 되다니 나름 친해진 것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계약이여도 끝까지 어색하면 불편할테니까..
"돈, 말인데." "..." "너, 학교 다니고싶다며." "...네?" "다음 학기부턴 다녀. 등록금 대줄테니까." "..그래도." "너 졸업할 때까진 책임져줄꺼야. 그리고.." "..." "네 빚. 그것도 알아서 해줄께." "..고맙습니다." "뭐가. 그만큼 네가 하는 일이 스케일이 크다는 소리야." "..아." "..다 먹었어. 보여?" "아, 네. 그러네요." "..가자."
그는 계산을 하면서 '늘 미안해.'하고 말했고 셰프로 보이는 사람은 '네가 이러기를 한둘이냐.'하고 말했다. 그가 나가자 따라 나가려는데 셰프가 나를 불러세웠다. "저기." "네?" "..경수, 잘 부탁해요." "아..네." "조심해서 가요." "네. 안녕히 계세요." 나에게 부탁하는 셰프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