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 도도한 얼굴 구경이나 해 보자.
알베르토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기획사의 대표 프로듀서를 직접 행차하게 하는 위인이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알베르토의 개인 비서 일리야가 가볍게 목례를 하곤 그가 있는 쪽으로 안내한다.
일리야가 가르킨 쪽을 보니, 납치된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알베르토를 보고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다. 꽤 거칠게 데려왔는지 얼굴에 상처가 보인다. 그러니까 친절히 말할 때 따라올 것이지, 알베르토는 생각하며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니엘, 이라고 했나?"
"......."
"생각했던 것 보다 어리네."
알베르토의 물음에 다니엘이라 불린 남자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실 대형 기획사라곤 하지만, 요즘 알베르토의 회사는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애초부터 양보다 질로 승부한다는 주의로 시작해 소수의 가수들로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승승장구하던 알베르토의 회사는, 무슨 일인지 지난 해부터 발매하는 앨범마다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최근에는 대중들의 외면까지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가수를 발굴해 내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클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던 알베르토의 귀에들려온 이름이 다니엘이었다.
다니엘은 본인의 이름으로 활동하지는 않지만, 이미 음악가들 사이에선 소문이 자자한 천재 작곡가였다. 여기서 소문이라 하면, 그가 자신의 곡을 어떠한 계약도 없이 다른 가수 혹은 작곡가에게 판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영업방식인 것 같지만, 실제로 크게 히트 친 유명 작곡가들의 곡 중엔 이름만 바꾼 다니엘의 곡이 꽤 있었다.
알베르토 역시 그의 곡을 받아 다시 기획사의 이미지를 회복하길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보낸 여러 번의 정중한 거래제안에 다니엘은 매번 무시와 거절로 화답했고, 원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어내기로 악명높은 알베르토는 결국 폭력과 협박을 통해서라도 곡을 얻어내겠다고 생각해 지금, 일리야를 시켜 다니엘을 무력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아직도 나와 동업할 생각이 없으신가? 금액은 부족함 없이 드릴 수있는데."
이미 지겹도록 들은 제안을 또다시 말하는 알베르토를 보며 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싫어-"
철썩. 말 끝나기 무섭게 알베르토의 큰 손이 다니엘의 뺨을 내려친다. 충격에 살짝 휘청인 다니엘은 입안에 고인 피를 바닥에 뱉어내곤 붉어진 뺨을 매만지며 말한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다니엘이 피식 웃음지으며 알베르토를 노려본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이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말로 했는데 안 들었잖아. 아니면, 뭐 따로 원하는 거라도 있나?"
"없어, 근데 난 내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만 작업을 해서 말이야."
"흠.....나는 언제쯤 마음에 드시려나...?"
말을하며 알베르토는 손끝으로 천천히 다니엘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건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건지 다니엘은 눈 하나 깜짝 않는다.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한다.
"글쎄.... 일단 날 좀 매너있게 다뤄주지 그래?"
"싫다면?"
어느 새 목까지 도달한 알베르토의 손이 다니엘의 목을 움켜쥔다. 다니엘의 얇은 목이 한 손에 잡힌다. 쿵.쿵.뛰는 그의 맥박소리를 느끼며 알베르토는 천천히 손에 힘을 주었다. 다니엘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양 손은 자신의 목을 잡고 있는 알베르토의 손을 꽉 쥐었다.
그럼에도 끝내 마음에 들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객기 부리지 말고 이쯤 하지. 알베르토가 낮게 읊조렸지만 다니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알베르토가 먼저 손을 놓았고, 다니엘은 바닥으로 풀썩 쓰러진다.
"이거 완전 물건이네."
호탕하게 웃은 알베르토는 손가락을 까딱 하며 일리야를 불렀다.
*
"일어났네."
침대에서 뒤척이는 다니엘에게 알베르토가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옷을 추스리며 일어나 물을 건네받은 다니엘은 알베르토의 넓은 방 한 켠에 있는 책장에 다가간다.
"어울리지 않는 취미가 있나봐?"
물을 옆의 화분에 부어버린 다니엘이 알베르토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한다.
"그래서, 이제 내가 좀 마음에 드나?"
피식 웃음을 지으며 알베르토는 소파에 앉았다. 책장에서 책을 하나 뽑아든 다니엘이 그에게 다가온다.
"어제보단 낫군."
다니엘이 알베르토의 무릎 위로 올라타며 말했다. 알베르토도 그에 지지않고 얼굴을 가까이하며 속삭인다.
"당신은 어젯밤이 더 예뻣던 것 같은데."
"유감이네."
힘 빠진 듯한 웃음 소리를 내며 다니엘이 알베르토에게 입을 맞춘다. 두 사람의 혀가 섞이고 짙은 키스가 이어졌다. 알베르토가 다니엘의 허리를 쓸며 그를 눕히려 할 때 쯤, 다니엘이 망설임없이 입술을 떼고 일어선다. 그래, 이래야 다니엘답지. 알베르토가 작게 읊조린다. 살짝 아쉽지만 그래서 더 재밌다.
"계약금. 내가 어딨는지는 알아서 잘 찾아 오겠지, 어제처럼."
언제 빼앗아 갔는지 알베르토의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책 사이에 끼운 다니엘이 말하며 빈 지갑을 알베르토에게 던졌다.
"생각보다 저렴하네."
다니엘의 당돌함에 웃음이 터져나온 알베르토가 대꾸했다. 다니엘은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뒤도 안돌아보고 알베르토의 집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에서 비릿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정말 아무 생각없이 짧은 조각글로 시작을 했는데, 결국 연재까지 오게 되었네요.
모두 여러분들의 사랑 덕분입니다!♡
이번 편은 그취에서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두 사람의 첫 만남이자 시작이져!
지금 계획으로는 아마 다음 편에서부터 수위가 슬슬 나올 것 같아요....후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댓글은 더욱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