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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엔 전체글ll조회 1058l 2

 

 

 

다니엘은 미리 녹음해 둔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악보에 가사를 써내려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 수건만 걸친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다가와 엎드려있는 다니엘의 등에 입을 맞추었다. 다니엘도 등 뒤의 따뜻한 감촉에 뒤를 돌아보며 마주 웃었다. 남자의 입술이 장난스럽게 다니엘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하지마, 이안."

 

 

다니엘이 간지러운지 그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 이안이라고 불린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다니엘의 옆에 누워 물었다.

 

 

 "뭐하고 있었어?"

 

 "가사쓰고 있었어. 들어볼래?"

 

 

고개를 끄덕인 남자에게 다니엘이 이어폰 한 쪽을 끼워 주었다. 한쪽 귀에 잔잔하지만 화려한 피아노 선율이 울려퍼진다. 고개를 까딱이며 노래를 음미하던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다니엘이 노래를 시작했다.

 

 

 시간도 소용 없네요 기억은 아픔이 돼요

 

 

다니엘의 손가락이 노래하는 부분의 악보를 따라 움직인다. 이안은 노래하는 다니엘의 입술과 손가락을 번갈아 바라보다 그 손을 마주 잡는다. 다니엘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끝마치곤 물었다.

 

 

 "어때?"

 

 "좋아."

 

 

다니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하는 이안에게 다니엘이 단호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객관적으로."

 

 "진짜 좋아. 가사도 좋고, 네 목소리도 좋아."

 

 

진심이라는 표정으로 다니엘을 찬양하는듯이 말하는 이안을 보며 다니엘이 큭큭 웃었다.

이안을 처음 만난 것은 1년전, 소극장 공연을 준비하면서였다. 아마추어 밴드의 보컬이었던 이안이 노래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 지금의 만남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 노래로 데뷔하고 싶어."

 

 "잘 될거야, 다니엘. 네 노래는 대단해. 분명히 모두가 좋아할 거야."

 

 "비행기 태우지 마."

 

 

손을 내저으며 웃은 다니엘에게 이안이 다시 한 번 말한다.

 

 

 "정말이라니까? 너의 재능은 너무 뛰어나서 나는 가끔 네가 부러워. 그에 비해 나는 잘 하는게 없잖아. 노래도 안 늘고, 너처럼 작곡도 못 하고. 아마 평생 아마추어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신세한탄을 하는 이안에게 다니엘이 다가가 입을 맞추곤 위로하듯이 나긋하게 말했다.

 

 

 

 "우리 둘 다 잘 될거야."

 

 

 

 

*

 

 

 

 

 "뭐하는 짓이야!"

 

 

다니엘이 말없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이안에게 소리쳤다. 몇 년간 돈을 모아 마련한 작업실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무섭게 노려보던 이안이 손에 들고 있던 악보를 다니엘에게 던지며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획사에 곡 보냈더라?"

 

 "....그게 뭐가 어때서?"

 

 

 "나에겐 들려주지 않은 노래잖아!"

 

 

이해할 수 없는 이안의 행동에 다니엘은 말문이 막혔다. 요즘들어 부쩍 이안이 이상해진 것을 느꼈다. 이전의 샹냥하고 밝던 그는 온데간데없고, 이렇게 사소한 것에 불같이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 혼자 데뷔해서 잘 되려고 그러는거지? 애초부터 나 같은 딴따라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잖아, 너는!"

 

 

 "그게 무슨 소리야! 이안, 너 요즘 이상한 거 알아? 내 일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무대에서 노래도 못 하게 하잖아. 계속 이럴거면 나 이제 너 못 만나. 그만 끝내자."

 

 

 

결국 폭발한 다니엘이 매정하게 말하곤 작업실을 벗어나려고 뒤를 돌아 서는데,

 

 

 

 "아악!!!"

 

 

이안이 다니엘의 손목을 붙잡아 그대로 꺾어버린다.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진 다니엘에게 이안이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망가트려 버릴거야."

 

 

다니엘은 고통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더이상 그가 알던 이안이 아니었다. 다니엘의 비명소리를 듣고 온 사람들이 말리고 나서야 다니엘의 손목을 놓아준 이안은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옆에 있던 키보드를 발로 차서 부숴버렸다. 애처로운 건반 소리가 다니엘의 귓가를 때렸다. 아픈 손목을 감싸고 일어난 다니엘이 이안에게 울먹이며 물었다.

 

 

 "......나를 사랑하긴 했어?"
 

 


떨리는 다니엘의 목소리에 그를 쳐다본 이안이 가소로운 듯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난 널 사랑한게 아니야. 너의 그 재능을 사랑했지."

 

 

말을 마친 이안이 사람들을 밀치고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다니엘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

 

 

 

 

다니엘은 들고있던 악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자주 드나드는 소극장에서 하는 공연이지만, 한동안 이안이 못 오게 해서 무대위에 서는 것은 오랜만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다. 다니엘은 최근 이안 문제로 꽤나 속을 썩였다. 이별 선고를 했지만 며칠동안 이안은 끈질기게 다니엘을 찾아왔고, 오랜 시간 진심으로 이안을 대했던 다니엘에겐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잊고 무대에 서는 날을 위안삼아 버텨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 바로 노래하는 순간이니까, 생각하며 다니엘은 무대 위로 올랐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큰 환호 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피아노가 있는 무대 가운데로 걸어갔다.

 

어느정도 객석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며 피아노 앞에 섰을 때, 갑자기 다니엘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조명에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생각하며 다니엘은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너무 어두워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곧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쿵-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놀란 다니엘이 상황 파악도 하기 전에 무엇인가 다니엘의 뒤통수를 가격했고, 그 충격에 다니엘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조명이 켜지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은 자신의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애써 눈을 떴다. 눈 앞엔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보였다. 모두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다니엘의 머리가 더 아파왔다.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니엘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려 할수록 날카로운 통증이 그를 괴롭혔다. 누군가 다가와 다니엘의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야 다니엘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지러운 머리에 시야가 흐릿했지만 다니엘의 눈에 익숙한 실루엣과 얼굴이 보였다. 이안, 그가 다니엘을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을 비웃는 듯한 그 표정을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의식을 잃었다.
 

 

 "멀쩡한 무대가 갑자기 무너질 게 뭐람.....그래도 이 정도만 다쳤으니 운이 좋았어. 이번 기회에 푹 쉬어 다니엘."

 

 

병문안을 온 친구들의 의미없는 위로가 다니엘의 아픈 머릿속을 울렸다. 왜 갑자기 그런 사고가 났는지 다니엘은 알 것 같았지만, 그저 병실에 누워 잠을 청할 뿐 할수있는 일이 없었다. 이안이 꾸며낸 일이라고 말해봤자 마땅한 증거도 없고, 전 애인에게 사고를 뒤집어 씌우는 한심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고 이후 더 이상 이안이 다니엘을 찾아오지 않았으니, 다니엘은 이것이 그를 완전히 떨어트려 놓은 대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니엘이 생각했던 것보다 사고의 여파는 컸다. 일단, 다니엘은 꽤 오랜 시간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무엇보다 다시 무대에 오를 수가 없었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그 날의 일이 생각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이안이 보고있을 것 같아 두려웠고, 무대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그 때의 충격이 되살아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러니 노래는 커녕 연주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안 다니엘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일을 할 수 없게되자 절망감에 빠져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음악과 라디오만 들으며 집 안에 틀어박혀 한참을 나오지 못했다.

그 날도 못하는 술을 마시며 멍하니 침대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니엘의 귀에 익숙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기억하면 할수록 후회만남던 시간들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라디오의 볼륨을 높여 보았지만,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와 가사가 들려왔다.

 

 

 시간도 소용 없네요 기억은 아픔이 돼요

 

 

말없이 노래를 듣고있던 다니엘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괜찮아질 거라는 그 생각도 이제는 부질없죠

 

 

다니엘의 노래, 처음으로 끝까지 완성해 데뷔곡으로 하고 싶어했던, 그 곡이다. 밴드 사운드가 추가되었지만 확실했다. 게다가 이 목소리는......이안이다.

 

 

 

 

 

 

다니엘은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켰다. 악몽이라도 꾼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니 축축했다. 언제 흘렸는지도 모를 눈물이 이불을 잔뜩 적셨다.

 

 

 네-최근 컴백한 밴드의 데뷔곡이자 가장 인기를 끌었던 곡이죠, 밴드 보컬 이안씨의 자작곡이라고 해서 더 화제가 되ㅇ....

 

 

다니엘은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는 라디오를 신경질적으로 껐다. 그렇다. 이안은 다니엘의 곡을 훔쳐 가수가 되었고, 다니엘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순식간에 인기가 많아진 밴드에 아무도 다니엘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곡을 빼앗기고 무대조차 오를 수 없게 된 다니엘은 나름대로 살 길을 찾아 자신이 쓴 곡을 팔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이안이 찾아낼까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도 못한 채. 처음에는 이름없는 작곡가의 곡을 아무도 찾지 않았지만 입소문이 퍼지자 이걸로도 먹고 살만한 돈이 되었다.

이젠 이것에 만족하고 살아가려 했는데......다니엘의 눈 앞에 알베르토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안을 만난 이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없이 의심하며 그 마음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던 다니엘에게 이번에는 다를 거라며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 잊고 있었던 노래하는 즐거움을 다시 깨우쳐 준 사람, 그가 알베르토였다.

 

 

 "이젠 어떡할까, 알베르토......더 기대해 봐도 될까?"

 

 

침대 옆에서 웅크린 채 잠이 든 알베르토에게 다니엘이 작게 물었다.

 

 

 

 

**

 

 

지난 화에서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선전포고 했는데......

생각보다 제 손이 빨랐군요.(민망)

드디어 다니엘의 과거가 밝혀졌습니다ㅠㅠㅠㅠ

저도 속이 다 시원하네요!

전부터 이 부분을 신경써서 써야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힘들군요.

이안 역을 한참 고민하다가 어울리는 이미지의 패널이 없어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이름으로 했습니다.(빠밤)

덕분에 알베르토 분량이 안습이네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댓글은 더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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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루시엔
감사합니다ㅠㅠㅜㅜㅜㅜ(맞절)
9년 전
독자2
ㅠㅠㅠ다니엘한테 이런 과거가 잇엇군요ㅠㅠ... 알베가 이안의 존재를 알게되서 무대위로 다시 올라갈수 잇게 도움을 줬으면 좋겟어요!
9년 전
루시엔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ㅠㅠㅠㅠㅠ감사합니다
9년 전
독자3
다니엘의 슬픈 과거사....ㅠㅠㅠㅠㅠㅠㅍ어서 알베가 다 치유해줄 수 있길 바랍니다 흑흑 오늘두 잘 읽고가요 8ㅅ8♥
9년 전
루시엔
흑흑 어째 점점 슬퍼지네요ㅠㅜ감사합니다
9년 전
독자4
(((((((다니엘))))))) 으어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랬구낭 그래서 그런거구나ㅠㅠㅠㅠㅠ 알베랑 빨리 행쇼해서 빨리 이겨나가길 작가님 사랑하는거 알죠?헤헤헿
9년 전
루시엔
넵 사랑합니다ㅠㅜ
9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9년 전
루시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ㅠㅠ댓글에 힘이나요ㅠㅜ
9년 전
독자6
이런과거였네요ㅠㅠㅠㅠㅠㅠ 알베가 치유해주길♡ㅎㅎㅎㅎㅎㅎㅎㅎ
9년 전
루시엔
알베가 사랑으로 감싸주면 좋겠네여ㅜㅠㅜ감사합니다!
9년 전
독자7
어휴ㅠㅠㅠㅠ다녤ㅜㅜㅠㅠㅠㅠㅠㅠㅠ다녜류ㅠㅜㅜㅜㅜㅜㅠㅠ불쌍한다녤ㅜㅜㅜㅜ작가님 진짜 문체 빨려들어가네여ㅜㅜ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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