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딸랑. 누군가가 문을 열어젖히는 걸 알아달라고 말하는 듯이 경쾌하게 울린 종소리가 경수의 귓가를 때렸다. 이 편의점이 손님도 자주 오지 않고 한가하다고 해서 지원하게 된 알바였는데 정말 소문대로 그런 것 같았다. 30초 전까지는 손님이 없었지만 말이다. 편안하게 앉아 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던 경수는 일어나 인사했다. 검은색 니트에 검은 바지, 검은 선글라스, 올블랙으로 차려입은 남자가 긴 다리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구둣굽 소리를 내며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터라,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무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경수는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거 하나요.”
남자는 편의점 안에 진열된 무수히 많은 담배 중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딱히 원하는 담배가 있는 것이 아니니 아무거나 달라는 식의 제스처인 것 같았다. 경수는 어정쩡하게 남자가 가리킨 쪽의 담배를 꺼내 내밀었고 남자는 경수를 쳐다봤다.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경수를 유심히 보다가 군말 없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을 내밀었다. 만 원 받았습니다. 경수가 거스름돈을 챙기는 와중, 남자는 편의점을 둘러보다 한 쪽에 놓인 사탕이 눈에 띄었는지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사탕 다섯 개를 꺼내 카운터에 내밀었다.
“이것도 계산해드릴까요?”
“네.”
“천 원입니다.”
경수는 투철한 서비스 마인드를 가진 알바생이었다.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해사하게 웃으며 남자를 대했다. 거스름돈과 함께 영수증을 주자, 남자는 영수증은 놔두고 담배를 제 뒷주머니에 지갑과 함께 꾸겨 넣었다. 그리고는 사탕을 집어넣으려다 말고는 경수에게 내밀자 얼떨결에 두 손으로 받으며 의문 가득한 얼굴로 남자를 응시하자, 남자는 말했다.
“그건 그쪽 드세요.”
경수는 멍하니 나가는 남자를 지켜보기만 했다.
편의점 알바생의 일상 上
박찬열 X 도경수
남자는 그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편의점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화려한 색감은 아니지만 나날이 남다른 패션 센스를 선보이는 남자는 겉으로 본다면 여자들을 꽤나 울릴 외모였다. 커피샵에 여유롭게 앉아 블랙커피를 마실 것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수트를 차려입고 편의점에 있는 완구세트 앞에 주저앉아 유심히 물건을 살펴보는 모습은 아이러니했지만 말이다. 경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도장을 찍는 남자가 이상하기도 했지만 관심이 가기도 해 남자를 지켜봤다. 남자는 물건들을 다 사볼 모양인 듯 왼쪽 구석에 진열돼 있는 물건부터 차례대로 하나씩 사가기 시작했다. 하나씩, 매일 말이다.
“계산이요.”
“네, 5000원 받았습니다.”
며칠 듣다 보니 남자의 목소리도, 톤도 익숙해졌다. 목소리도 외울 판이었다. 경수가 거스름돈을 주며 고개를 들었는데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오늘은 매번 쓰고 오던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모습이어서 였을까, 뚫어져라 쳐다보자 남자는 한 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경수를 내려다봤다. 남자는 키까지 컸다. 묘하게 진 것 같은 느낌에 애꿎은 고개를 숙여 담배 바코드 종이를 만지작 거리자 남자는 그런 경수를 차례로 훑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드러나는 목덜미라든가,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붉어 보이는 귀라든가.
“왜 쳐다보십니까.”
“예? 아, 아닙니다.”
“원래 이름표를 달아줍니까?”
경수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한 채로 남자를 올려다보자, 남자는 힐끗 시선을 옮겨 경수의 유니폼, 즉 유니폼에 달린 명찰을 바라봤다. 경수는 그제야 알아차린 듯 아, 하며 작게 소리를 냈다. 명찰은 어제 출근했을 때 사장님이 준 것이었다. 일하게 된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라나 뭐라나. 경수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자, 남자는 경수의 명찰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도 경수라….”
“귀여운 이름이네요.”
경수는 처음으로 남자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게 제 이름을 보고 웃은 거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남자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경수에게 내밀었다. 뭐지. 경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종이를 받아들었다. 명함이었다. 박 찬열. PK엔터 전무이사. 이사? 이사라고? 그냥 돈 많은 백수가 아니었구나. 경수는 생각했다.
“관심 가지게 하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으니 데이트 하려면 한 달은 걸리겠네요.”
“예?”
“내일도 당신을 보러 오겠다는 말입니다. 도 경수씨.”
남자, 찬열은 근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경수는 같은 남자임에도, 여자에게나 먹힐법한 작업 멘트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두근 거림에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거렸다. 그러자 찬열은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듯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아, 그렇다고 부담 갖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남자라 꺼려진다면…”
“다시는 오지 않을 거고 눈에 띄지도 않겠습니다.”
“저, 내일 다시 와도… 됩니까?”
찬열의 불안한 음성은 경수가 듣기에 꼭 비 맞은 강아지가 떨며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강아지의 목소리에 홀린 듯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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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너무 뜸했죠. 하하... 죄송해요. 시리즈물...? 이라고 해야 되나... 이번은 찬디 편인 거고, 다음 편은 다른 커플링이 나올 거 같습니다. 아, 아마... 술래잡기 같은 경우는 그냥 지른 거라 엄청 느리게 굴러가거나 아예 엎을지도 몰라요... 가볍게 봐주세요. 항상 고맙습니다. + 암호닉
뿌요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