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은 언제나 좋지 못한 공기로 가득하다. 중무장을 하고 시끄러운 기계 앞에 앉아도 작업을 마치고 나오면 온 몸이 시커멓고 건조하게 물든다. 요즘 갑자기 몰린 주문량을 소화해내느라 공방을 대여하는 텀이 다른 때에 비해 아주 짧아졌다. 목 뒤는 늘상 뻐근하고 틈만 나면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기침을 해댔다. 라고 말을 마치는 순간 코끝이 간질거려왔다. 취. 취. 에취! 반대편으로 달려가 출입문을 살짝 열고 마스크를 잡아 내리자마자 재채기가 튀어나왔다. 쪼그려 앉아서 문틈사이로 푸우 숨을 뱉었다. 문 바로 옆에 충전시켜둔 휴대폰 시계가 정오를 넘기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나와서 한 번도 쉬질 않았다. 너무 무리 했나. 먼지 때문에 탁한 눈을 찡긋거리며 홀드를 풀었다. 뭐가 많이도 와있다.
...
[점심 같이 먹죠]
[바빠요? 작업 중?]
[전화 걸어도 돼요?]
[똑똑똑]
[할 말 있어요]
[너무 열정적인 것도 단점인데]
[벌써 밥 먹은 건 아니죠?]
[대답하기 귀찮으면 점이라도 찍어줘요]
광고 말고는 울릴 일 없던 휴대폰을 요즘 들어 몸살 나게 만드는 건 모두 한 사람의 몫이다. 김남준, 이라고 적힌 메시지 창 윗부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장을 보냈다.
[ . ]
1이 없어지자마자 휴대폰이 진동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입속을 구르던 말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왜 그래요, 진짜, 안 그래도 지쳐 죽겠는데, 친구가 없어? 그래서 그래요? 같이 밥 먹을 사람 소개시켜줘요? 두다다다 총알을 맞은 상대편은 잠잠하게 그러나 지지 않을 기세로 원하는 것을 파고들어 그 자리에 자신의 용건을 묻고.
-몇 시에 출근했어요.
“8시요!!!”
-여기 작업실 앞 커피숍이에요.
“나 작업실에 없,”
-작업실에 없고 작업실 바로 옆 공방에 있죠. 내가 거기까지 기웃대길 바라진 않죠?
“김남준씨”
-장인들도 밥은 먹고 한 우물 팝디다.
“...”
-당분간 데이트 하자고 안 할 테니까 점심 같이 해요. 네?
“어차피 사진 촬영도 다 했는데 무슨 데이ㅌ...에에취!”
-끊을게요. 바로 나와요. 아 불쌍해 죽겠네.
마지막으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기계 소음 사이로도 분명히 감겨왔다. 불쌍해? 부울쌍해 죽겠다고? 통화 종료 후 기본 화면만 떠있던 액정이 틱 꺼지며 까맣게 변했다. 동시에 배속에서도 콰광 천둥이 친다. 가방과 함께 바닥에 던져놓은 후드를 뒤집어썼다.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허덕이는데 부울쌍하다니. 간질한 코를 훔치며 작업대를 대충 정리했다. 구석에서 어제 완성시킨 반지 샘플 하나가 굴러나왔다. 시작은 분명히 보정 작업이었는데 모니터 속에 예쁘게 펼쳐진 김남준씨의 손을 보고 있자니 쓸데없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버렸다. 주문이 밀려 정신없는 와중에도 기어이 그걸 만들었다. 빤히 보다가 호주머니에 챙겨 넣고 출입문을 힘껏 열었다. 그러니까 다 김남준 때문이야. 아주 아작을 내줄테다. 취. 취. 에취!!!
,라고 다짐해놓고 왜 또 이 남자 앞에 얌전히 앉아 밥을 먹고 있는 걸까.
“누나, 물 더 드릴까여?”
“고맙습니다.”
밥알을 막 삼키다 눈을 홉떴다. 아니 나한테 물어봤는데 왜 그쪽에서 대답을 하고 난리람. 난처하게 웃으며 내 물 잔에 물을 따라주는 지민씨에게 인사를 하려 나도 모르게 후드를 벗으려다가 아차 싶어서 더 꽉 눌러 쓰고 우물대는 발음으로 고마워요 지민씨 했다. 내 단골 카페의 내 단골 자리에 앉아 내 단골 메뉴인 볶음밥을 미리 주문해둔 김남준을 신기해하기에 앞서 지금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태라는 게 엄청 신경 쓰였다. 카운터로 돌아가는 지민씨의 뒷모습을 미안하게 보고만 있는데 맞은편의 김남준씨가 마시던 물 잔을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한텐 다 친절하네.”
“...”
“그보다 그것 좀 벗어 봐요. 안 답답해요?"
“안 답답해요.”
“화장 하나 안하나 별 차이도 없을 것 같은데 뭘 그렇게 가려요.”
“...할 말 있다면서요.”
“...일단 밥 다 먹고요.”
너저분한 나와 다르게 검은 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온 김남준은 단정하면서도 해사해보였다. 둘 다 말없이 밥을 먹었다. 목 뒤가 시큰거렸다. 접시에 코를 박고 있어서 그런 건가 싶겠지만 실은 셔츠 소매 아래로 쭉 뻗은 손목과 반찬을 집어 드는 정갈한 젓가락질을 훔쳐보느라 그런 것이다. 당장 저 손에 내 반지를 끼우고 사진을 찍고 싶어, 와 이쯤 되면 정신병이 아닐까, 의 두 생각이 머릿속에 마구 뒤섞이며 나를 괴롭혔다. 결국 막 젓가락을 놓고 숟가락을 들려던 김남준씨의 손을 잡아채 호주머니에 넣어온 반지를 꺼내 끼워보았다. 놀랐는지 어어억 소리를 내면서도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준다. 잠깐의 고마움은 그 뒤로 늘어지는 잔소리에 깡그리 잊혀졌다.
“나보면 일 생각밖에 안 나죠?”
“...”
“외간 남자 손 이렇게 덥석 덥석 잡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네에네에...”
“아주 건성건성...근데 이건 쇼핑몰에서도 못 본 것 같은데,”
“당연하죠. 내가 김남준씨 손 보고 특별히,”
“내 손 보고 특별히?”
“...특별히, 뭐가 떠오른 게 아니고 그냥 굴러다니던 거 손 본거라고요. 뭐 나쁘지 않네.”
“그럼 나 이거 줘요.”
“네?”
“굴러다니던 거라면서요. 그럼 줘도 상관없는 거 아니에요?”
“아...네, 뭐, 근데 마음에 들어요?”
“내 스타일이에요, 딱.”
본다, 지그시. 반지 말고, 내 눈을. 이마에 닿아있는 후드 끝자락을 더 꾹 잡아 내렸다.
“...하, 할 말이 뭐에요. 얼른 들어가야 해요 나.”
“공연을 하나 해요.”
“공연이요?”
“네. 나 음악 하거든요. 직접 물어봐 줄때까진 말 안하려고 했는데 내가 급해져서 안 되겠네.”
남준이 가방을 뒤적이더니 티켓을 꺼내어 건넨다. HIPHOP이 크고 화려하게 적혀진 티켓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공연 이름인데...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 되면, 놀러올래요?”
“...”
“일만 하지 말고, 즐기기도 해요. 이거 구하기 꽤 힘든 티켓인데.”
“괜히 생색내려고 그러죠.”
“생색내봤자 타박이나 줄 텐데 내가 뭣하러요.”
“생각해볼게요.”
정확하지 않은 대답에 투덜거림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마저 먹고 카페를 나섰다. 해는 쨍쨍한데 스치는 공기는 피부가 아프게 느껴질 만큼 매서웠다. 나란히 걷는 김남준의 가죽재킷 위로 기다랗게 뻗은 목선이 오후 햇살에 휑하니 드러나 있었다.
“안 추워요?”
“걱정돼요?”
“뭔 말을 못해...”
“목도리를 잃어버렸어요.”
“어디서요.”
“...모르겠어요. 작업실인가. 물건을 하도 잘 잃어버려서”
“칠칠치 못하게.”
“옆에서 챙겨줄 거 아니면 뭐라고 하지 말아요.”
“여자 친구를 만들어요.”
“나 물건 안 잃어버리자고 여자 친구를 만들어요?”
“...”
“그리고 그게 나한테 할 말이에요?”
“내가 뭘요.”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한테 훅날리는 거 알아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한 방 맞으면 엄청 상처받는다고요.”
“왜 상처를 받냐구요 그러니까.”
남준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몇 걸음 앞서가다 멈춘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땅만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심각해진 대화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저 남자가 나에게 바라는 게 뭘까. 그가 뒤에서 너무나 쉽고 정확하게 답해주었다.
“좋아하니까요.”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게 누군데. 고개를 들어 김남준을 보았다. 웃지 않는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사나워 보였다. 끝이 조금 쳐진 눈이 나를 향해있다. 피하지 않고 마주한 채로 한참을 눈싸움 하듯 바라보았다. 뭘, 어쩌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순간 그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뭐라 반박할 새도 없이 성큼 다가온 김남준이 나를 잡아 돌리며 자신 쪽으로 세게 끌어당겼다. 코끝에 차갑게 언 목덜미가 닿아왔다. 방금 전에 내가 서 있었던 자리에 선 김남준의 등 뒤로 오토바이가 엄청난 속도를 내며 지나쳐갔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못 들은 걸까, 아니면,
“괜찮아요?!”
낮게 잠긴 다급한 목소리가 웅웅 하고 얼굴 위로 쏟아졌다. 가까워진 거리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과 내 양 팔을 힘 있게 그러쥔 커다란 손과 밋밋하지만 정확한 눈매가 모두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뭐라 말하려 입을 뻐끔대다가 나는 곧 어떤 것도 말도 하지 못하고 손을 들어 후드를 끄집어 내렸다. 눈 아래, 가능하다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모두 가릴 수 있을 만큼 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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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오늘부터 일본 투어를! 그리고 3월에는 한국에서도!!!!!!(깨춤을 춘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방탄을 보고 있자니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하면서 열심히 끄적여 보았어요. 스아실 좀 더 진도가 나갔어야 했는데...손가락이 드릉드릉해서 일단 올려봅니다!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 신청해주신 충전기님, 꾸기님, 벨 님, 나무님, 코코몽님, 목도리님, 모니님, 콩 님(아이쿠 깜빡했어요ㅠㅠ) 싸랑합니드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