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e Back in Memory
당신은 땅바닥에 누워있는 채로 눈을 뜬다. 바닥은 차갑게 식어있고, 천장은 매일 보던 당신의 집이 아니다. 낯선 방에서 주위를 둘러보던 당신은 이상하게도 평소답지 않게 새까만 정장을 입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 쪽 벽으로 다가가 걸려있는 거울을 보자 헝클어져있는 갈색 머리와 비뚤어진 검은색 넥타이가 눈에 들어온다. 깔끔한 성격인 당신은 오른손으로 제법 섬세하게 옷차림을 가다듬고 방 한가운데에 섰다. 당신이 아는 곳인가? 고개를 젓는다. 방 한 구석에 개어지지도 않은 채 널부러져있는 하늘색 이불은 언제 마지막으로 빤 건지 퀘퀘한 냄새가 당신에게까지 퍼졌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텅 빈 개 사료 봉지와 밥그릇. 개를 키우던 집인듯 하지만 전혀 생명의 최근 흔적이라곤 없는 이 집의 꼴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당신은 집을 둘러 본다. 거실은 텅 빈 채 소파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화장실은 물론 조그마한 쪽방에도 사람의 발자국이 없다. 당신은 처음 당신이 깬 방으로 돌아와 혼잡하게 널부러진 책상 위를 본다. 온갖 공책과 먼지가 쌓인 컴퓨터, 그 바로 옆에 놓인 집전화, 전화기 앞에 볼펜과 여러 장의 메모지. 벽에 걸린 달력은 벌써 2년이나 전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궁금한 것은 무엇인가? 말해보아라.
1. 내가 왜 이 곳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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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주변을 둘러봐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다. 어젯밤 술에 취해 들어온 곳인가? 하고 추측만 할 뿐. 하지만 당신은 숙취 후 찾아오는 메스꺼움과 두통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래 잔 것 같지도 않다.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 보았을 때는 전혀 눈꼽이나 베개자국같은 것들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곱게 다려진 양복에도 주름이 거의 없었고. 그럼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류한다. |
2. 이 곳은 누가 살던 곳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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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책꽂이를 둘러보다 앨범으로 추정되는 두꺼운 플라스틱 책자를 집어든다. 먼지가 쌓여있다. 벌써 낮인듯 창으로 햇빛이 새어들어온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앨범을 구경하는데, 이 앨범의 주인인듯 계속 반복되는 한 남자가 있다. 앨범을 덮고 앞표지를 보자 '정택운 13~20' 이라는 제목이 쓰여있다. 아마도 정택운이라는 사람의 13살부터 20살까지의 사진인 듯 하다. 앨범을 다시 책꽂이에 꽂아두고 책상 위에 있는 공책의 표지를 살펴보자 전부 '정택운' 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 집의 주인임이 틀림없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제부터 당신은 그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
이미 집을 한 바퀴 둘러 본 당신은 그제서야 당신의 왼쪽 바지 주머니에 무언가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펼쳐진 종이에는 '10시, 기린' 이라는 단어가 날아가는 글씨로 쓰여있다. ....! 당신은 책상 으로 급히 다가가 당신 바지 속 들어있던 종이와 전화기 옆 메모지를 비교해본다. 같은 종이다. 다른 공책에 남아있는 필적과도 비슷한 글씨는 덩그러니 놓인 검은색 모나미 볼펜으로 썼음이 틀림없었다.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흘러들어온다. 보인다. 당신은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영상을 머리 속에 집어넣는다. 앨범에 등장했던 남자, 정택운이 한창 전화기를 손으로 붙들고 있다 한숨을 깊게 내쉬며 메모지를 아무렇게나 뜯어 '10시, 기린' 이라는 글씨를 써 넣는다. 볼펜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은 남자는 뒤돌아 개지 않은 이불을 발로 밀어 한구석으로 치워놓고 본인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하얀 말티즈를 몇번 쓰다듬는다.
당신은 머리 속으로 박히듯 들어오는 기억에 놀란다. 나에게 무슨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런게 영화에서만 보던 사이코메트리라는 건가? 여러번 곱씹어보는 그 남자의 이름이 혀에 딱 맞게 감겨온다. 익숙한 듯 낯선 느낌에 찜찜한 느낌을 떨치지 못하고, 당신은 물을 좀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을 나와 부엌으로 향한다. 찬장에는 여러개의 머그컵이 있었지만, 전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먼지가 껴있다. 냉장고를 열어도 텅 비어 있을 뿐, 물이라곤 한 병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누가 살긴 살았던 건가, 하고 생각하며 당신은 냉장고를 닫는다. 두번째 기억이 흘러들어온다. 택운이 냉장고를 닫으며 손에 든 반찬을 당신, 기억 속 당신에게 건넨다. 수줍게 웃는 택운을 당신이 안는다.
당신은 소스라치게 놀라 냉장고에서 떨어진다. 뒷걸음치다 부딪힌 식탁에서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마주보고 앉아 둘이 함께 만든 반찬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분명 한 쪽에서 들어오는 햇살로 보아 한가한 주말 아침이리라. 당신은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떠올린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서둘러 부엌을 나온다. 분명 당신이 들고 들어왔을 서류가방을 찾고 이 집을 바로 떠나리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거실에 멈춰서서, 원치않는, 이상한 흑백의 기억들에 괴로워하며 머리를 잡고 주저앉는다. 쏟아지는 기억은 분명 당신에게 없던 것들이다. 껴안고, 소파에 누워 함께 티비를 보거나, 심지어 관계까지 하는 그런 기억들이 당신을 아프게 한다. 도대체 누구길래, 당신은 누구였길래, 이런 곳에서 괴상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인가. 당신은 이 사람이 기억은 나는 것인가?
1.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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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수 없는 기억들이 당신을 벼랑으로 몰고 간다. 그래, 당신은 이 사람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뒤의 기억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당신은 주머니에서 찾아냈던 쪽지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기린, 기린이 무엇일까. 당신은 눈을 감고 이 엉뚱해보이는 단어를 음미한다. 1. 기린? 동물임이 틀림없다.
2. 기린? 기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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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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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자켓을 보고 겨우 이름을 알게 된 사람이, 당신과 예전에 무슨 관계였는지 알 게 뭐란 말인가. 당신은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구석 구석 서류가방을 찾아 헤맸다. 당신의 가방은 커녕, 쇼핑백 하나 돌아다니지 않는다. 당신은 포기하고는 어떻게든 한 시라도 빨리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현관을 찾는다. 구두까지 신고 난 후, 뭔지 모를 이 기이한 곳을 나선다. 바깥공기는 집 안의 공기보다 훨씬 상쾌하고 시원했다.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지만, 다시 돌아가기는 싫어 우선 아파트로 보이는 이 건물을 한 번 훑어본다. 당신은 집과 꽤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어째선지 바로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당신의 아내와 이제 갓 2살이 된 사랑스러운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HAPPY ENDING. |
+) 단편이에요. 사운드 노벨같은 느낌으로 만들어보려고 했지만ㅠㅠㅠㅠ 저거 더보기 넣는 거에서 막 꼬이고 장난아니네여....진챠ㅠㅠㅠㅠㅠㅠㅠㅠ
맨날 쓰기만하면 글이 엄청 심각하게 되버리네요..다음엔 정말 형사물 도전해볼 예정이에요 켄택엔+켄홍이 될 것 같네요!
이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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