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가 없었다. 이 상황도, 이 현실도 말이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며 절절한 눈빛으로 고백했었던 날부터,
그리고 모든 게 처음이었던 설레었던 그와의 연애에서도,
나 혼자만 전혀 바보같이 느끼질 못했다.
주변의 만류처럼 무심히 재빠르게 끝나버릴 사랑이란 것을.
헤어짐에 있어서도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그 여자와 혀를 다시금 엉켜 보이며 내 마음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너에게 있어선 나는 결국 갖고 놀다 질려버린 장난감이었을 뿐 이라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그런 너란 새끼 때문에, 울고 있는 내가 더 증오스럽다. 그도, 이 눈물도 알아서 멈춰줬으면 이 자리까진 안 왔을 텐데…. 못 본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렇게 널 대할 수 있었을 텐데.
“…….”
“…그만 마셔.”
“경수다, 경수우……."
경수다, 도경수.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네가 반갑지? 내가 들고 있는 술잔을 뺏어 보이며 바로 비어있는 옆자리에 털썩 앉으며 짧은 한숨을 쉬고는 날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지, 기억도 채 안 나고, 언제나처럼 내가 무슨 일이 생기던, 아니던, 평소처럼 내 옆을 묵묵히 지켜주는 경수에게 나도 모르게 연락을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혼자서 얼마나 마셨나… 테이블에 널브러진 여러 병들과 의도치 않게 자꾸만 꼬여지는 내 말과, 정신이 지금 이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마셨어.”
“얼마 안 마셨어.”
“거짓말 한다. 내가 널 몰라? 도대체 여자애가 겁도 없이 혼자서…!”
“…오늘만 좀 봐주라.”
“…….”
“빨리 줘어…, 더 마실 거야…….”
“그만 마시라고 했지.”
“…도경수!”
경수가 손에 쥐고 있는 술잔을 다시 빼앗자, 경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허락지 않는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아 올리며 술잔을 다시 제 손에 쥐어 보인다. 그 모습에 왜 이렇게 심통이 나는지 모르겠다. 평소 같았음, 내 편을 들어주며 가만히 내 얘기를 들어줄 아이인데, 오늘은 왠지 달라보였다. 술도 내 맘대로 못 먹어? 너도 지금 나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알면서… 괜시리 더 서글퍼졌다. 알코올이 들어가서인지는 몰라도 나도 내 몸도, 머리도 제 맘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겠고… 북받쳐 오른다.
“우냐.”
“…….”
“울지 말라고, 그딴 새끼 때문에.”
“……아니거든? 네가 술 못 먹게 하니까, 그래서….”
“네가 이렇게 몸 못 가눌 정도로 술 먹는 것도 그 새끼 때문에 먹는 거잖아.”
“…….”
“하나하나 그 새끼와 있었던 일 생각하면서 마실 텐데, 그럼 내가 뭐 어떻게 해줄까.”
내 왼쪽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스윽- 닦아 보이며 코앞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경수를 보며, 왠지 모르게 우리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고 느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떨구자, 경수는 따뜻한 손으로 내 두 뺨을 살며시 감싸 올렸다.
“나 봐.”
“…….”
“…제발 나 좀 봐줘.”
경수의 눈에 비치는 나는 왜 이렇게 밉고 초라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정말 꼴도 보기 싫었다. 내 눈에 비치는 경수, 자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나와 같을까? 자신을 봐달라는 경수의 말에는 뼈가 서려있었다. 이 분위기를 나 자신이 어색하고, 감당하지 못하겠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뭐야… 하며 살풋 웃어 보이고는 경수에게서 떨어졌다.
“…그래, 지금 네가 필요한 건,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지.”
“…….”
“정말… 잔인하다.”
“…….”
“미안한데, 나 위로 못해줘, 이젠 같이 슬퍼해주는 척도 못하겠어. 나, 나쁜 거 알아… 근데,”
“…경수야.”
“자꾸만 기대하게 되는 걸 어떡해, 네 옆에 이젠 내가 서있을 수 있다고 혼자서 기대하고, 기뻐하고… 그러다 또 네가 다른 사람, 바라보며 웃고, 슬퍼하고, 또 그걸 다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보고, 마냥 기다리는 나는.”
“……”
“이런 거면 친구, 괜히 했다.”
경수는 답답한 자신을 못 참겠는지, 잔에 따르지도 않고 옆에 놓여있던 술병을 잡고 급하게 자신의 입에 털어 넣어 버렸다. 그리고 견디기 힘든지 일그러진 표정까지. …술도 못하는 애가! 한 잔만 마셔도 취해버리는 체질 탓에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할뿐더러 좋아하지 않아,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경수가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에 멍해있던 정신이 번쩍 뜨이며 또다시 술을 입에 데려는 경수의 손을 제지했다.
“술도 못하면서…!”
“놔, 이런 거 마시면 사람이 잊어져?”
“도경수!”
“근데 난 왜 더 생각나? 더 갖고 싶고, 나만 바라봐줬으면 좋겠고, 지금처럼 나 걱정해줬으면 좋겠는데.”
“너, 취했어.”
“아니…? 안 취했어. 멀쩡해.”
순식간이었다. 경수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내 팔목을 잡아 올리며 다른 한 손으론 내 허리를 감싸며 자신에게로 바짝 끌어당겼다.
“키스하고 싶어.”
“뭐하는…”
“친구는 키스하면 안 되지?”
“…….”
“이제부터 하지말자, 그 빌어먹을 친구.”
“도경…!”
도경수를 외치던 나의 말은 애석하게도 제 입술을 강하게 부딪혀오는 경수로 인해 먹혀 들어갔다. 떨어져보려 발버둥 쳐봤지만 내 뒷머리를 잡고 고개를 꺾어오며 더욱 더 깊숙이 파고들면서 몰아붙이는 경수로 인해 소용없었다. 경수의 혀는 내 입술사이를 배회하며 훑어 내렸지만,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 내 입술에 갈증이 나는 듯,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왔다. 그러자 벌어진 입술 틈으로 경수의 말캉한 혀가 밀려 들어와 어쩔 줄 모르는 내 혀를 감고 빨아 당겼다. 타액이 뒤엉키는 생경한 느낌과, 경수의 낮은 신음소리. 낯설고 생소한 느낌이 나를 헤매게 했다. 숨이 막혀 경수의 어깨를 퍽퍽 내려치자, 그제야 부딪혀있던 입술은 가느다란 실이 아찔하게 늘어지며 떨어졌다.
똥망상.... 똥글 지성합니다.......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