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봄
w. 뭉게구름
ㅁㅁ고등학교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개학식, 많은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서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서로 얘기를 하고있다. 선생님들도 이런것이 익숙한지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나갔다. 학생들 소리에 마이크를 대고 설명을 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섞이니, 아주 가관이다.
"...시끄러워."
유일하게 조용히 앉아있던 한 학생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소 작은 몸집과, 동그란 눈, 꼭 눈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그를 2학년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필이면 키 큰 남자애들 사이에 앉아서 더욱 눈에 띄는 것 같다.
자신의 앞에는 피부가 거뭇하고 이국적으로 생긴 학생이 있었다. 그를보며 3학년 중 저런 사람이 있었나 생각해보지만, 생각이 나지 않기에 전학생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다면, 그의 큰 키덕분에 앞이 하나도 안보여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고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당을 나간다.
하교 후, 친구들과 모여서 무엇을 하고 놀지 얘기하는게 보통이지만, 몸집이 작은 학생은 친한 친구가 없어 바로 집으로 향하던 중 이었다. 따돌림 당한건 아니고, 그가 친구를 사귀는 것을 멀리 하였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연락도 안할 사람들에게 정을 줄 만큼 마음이 열린아이가 아니었기에. 봄 치고는 너무나 강한 햇빛에 그는 큰 눈을 찌푸렸다. 그 햇빛에 그의 명찰이 빛난다. '도경수.'
다음 날, 등교를 하며 경수는 어제 보았던 키 큰 남자애를 보았다. 앉았을때는 그냥 큰 건줄 알았지만, 지금보니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것 같다. 괜히 기분이 상해 그를 지나쳐 걸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어? 혹시 ㅁㅁ고 학생?"
"...?"
자신을 불러세운건 다름이 아닌 그남자애였다. 겨우 거리를 벌려놨는데, 다가오니 키 차이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 뼘은 무슨, 두 뼘은 더 큰 것같다. 고개를 숙이니 그의 이름이 보인다. '김종인.' 이국적인 얼굴과는 달리 꽤 평범한 이름.
"죄송한데, ㅁㅁ고 가려면 몇번 버스를 타야해요?"
"..어제는 어떻게 오셨는데요."
"아.. 길을 잘 몰라서 부모님 차 타고 왔어요."
역시, 전학생이구나. 도경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이 타는 버스와 같을 것이니 같이 타자고 하였다.
그 후, 학교건물에 들어섰을때 1학년 2반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고 식겁했지만.
등하교 길이 같다보니, 김종인은 도경수에게 자꾸 들러붙는다. 2학년이니 선배라고 부르라 하였지만, 들은 채 하지도 않고 계속 말을 놓는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경수였지만 그냥 참았다. 그랬다가는 자신을 편하게 대한다고 생각하여 더 귀찮게 굴까봐.
"야"
"선배라고."
"분식집가자. 나 배고파"
경수는 싫다며 손사례를 쳤지만, 종인이 자신의 팔을 낚아채며 끌고가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괜히 덩치가 큰게 아니었구나. 꼭 힘이 다 빠진 사람처럼 끌려가던 경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김종인이 향하는 곳으로 갔다.
"뭐 먹을래?"
"..."
"내 맘대로 시킨다?"
"..어."
결국 자신을 분식집까지 데리고온 종인은 주문을 하고는 경수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 그의 다정한 행동에 기분이 좋아졌다. 참,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단순했다.
떡볶이를 먹던 도중, 종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왜 전화했어?"
"지금 분식집."
"응."
"어 곧 갈게, 기다려-"
마치 통화하는 사람이 자신의 앞에 있는듯이 밝게 웃으면서 통화하던 종인은 전화를 끊고는 경수에게 미안하다며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한다고 했다. 경수가 괜찮다는 사인을 주자 돈을 계산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통화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여친일까.
여자목소리였던게 신경쓰였지만,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며 신경질적으로 떡볶이를 먹었다. 그게 왜 신경쓰여, 왜...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었다.
그동안 종인은 경수를 따라다니며 놀러가고, 연락도 했다. 끝까지 선배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처음엔 자신을 쉽게 생각하는 그가 싫었던 경수지만, 이젠 그가 그러는것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배'라는 말을 듣고싶지 않아졌다.
"...여보세요."
-야 주말인데 나랑 놀자.
"...안돼 나 오늘 학원가야돼."
-오늘만 째고 와. 나 할 말 있어서 그래.
"그럼 지금하던가.. 왜 굳이 만나서 해."
-...아 그냥 와. 2시까지 ㅁㅁ당구장으로 와. 끊는다.
"네 여친이나 신경ㅆ.."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재수없는 놈, 전화매너가 없어.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다. 2시간후면, 김종인과 만나겠지. 어제도 학교에서 만났지만, 그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 벌써부터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학원은 3시였지만, 오늘은 안가야지. 지루하고 졸린 학원보다 김종인이 더 중요했다.
경수는 원룸에서 살아 부모님이 집에 없었다. 부모님 두분 다 일하느라 바쁘시기에 집이나 이 원룸이나 다를게 없었다. 가끔 반찬을 두고 가거나 용돈을 주고 가신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릴 적부터 사랑이 고팠다. 일종의 애정결핍이 그의 안에 생겨나고 있었다.
그는 흥얼거리며 옷을 한참 고르다가 결국 검은 윗옷에 검은 청바지를 입었다. 나중엔 꼭 밝은 색의 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갈 준비를 하고나니 벌써 1시 30분이었다.
"어. 왔냐? 뭔 범죄자같이 입고왔어 새까맣게."
"너 때문에 학원도 째고, 뭐하는 짓이냐 이게."
"왜 좋잖아~ 안그래?"
"..어?"
좋지 않냐는 그의 말에 경수는 흠칫한다. 뭐가 좋다는 거지. 설마 눈치챘나? 아냐 무슨....
"학원 째고 노니까 좋지 않냐고."
곧 들려오는 종인의 말에 그는 안심을 하고 긴장을 풀었다. 대체 무슨 걱정을 한거야 도경수. 쟤가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푸흐흐 웃던 경수에게 종인이 왜그러냐고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당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눈치 없는 새끼.."
풉 하고 웃고는 종인도 곧 뒤따라 들어갔다.
안돼 도경수. 정신차려.
쟤는 남자야. 여친도 있고.
내가 좋아하면 안돼.
늦은 저녁, 당구장에서 나온 경수는 한참 허공을 보며 걸었다. 요즘 김종인을 보면 너무 가슴이 뛴다. 그에게 들릴까봐 겁날만큼, 엄청.
"야, 너 괜찮아?"
"..."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김종인은 빨개진 경수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에 몸을 움찔하며 경수가 악! 소리를 냈다. 종인은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경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답을 듣고싶어서 한 말이 아닌지,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설마 너."
"..."
"나 좋아해?"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저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떡하지. 망했다.
"아니...나는"
"내가 할 말 있다고 했지."
"..."
아, 그랬지.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자신에게 다신 오지 마라고 할까, 눈에 띄지 마라고할까.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원하는 답은, 계속 자신의 곁에 있어주라는 말이었다.
"좋아해."
무슨.. 무슨 소리야.
"개학식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좋아했어."
"..그게 무슨"
"나랑 사귀자, 도경수."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었다. 김종인이 제게 고백을 하고, 도경수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게 꿈인가 싶어 볼도 꼬집어봤지만, 아프다. 진짜, 진짜로 김종인이 제게 사귀자고 했다. 말도 안돼.
"..."
"내가 너랑 사귀려고 ㅇㅇ이랑도 헤어졌어."
"..."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 선배."
"..."
"많이 좋아해."
꿈에서만 들을 수 있던 그의 말에 눈물이 흘렀다. 울면 안되는데... 흉한데... 그럼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흑.."
"왜그래. 울지마요."
"으..."
"미안해, 놀랬어?"
"아...흑"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네가 미안하지 않아도 돼 라고 하고싶었지만 눈물때문에 말이 안나와서 경수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사랑스럽다는듯이 보던 종인은 곧 그를 꼬옥 껴안았다. 자신을 평생 지켜줄거라고 말하면서.
경수가 대학생이 되고, 둘은 자주 만나지 못하였다. 종인은 수능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경수는 과제를 하느라 쉴 틈도 없었다. 겨우 통화 몇 통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매일 만나던 그들이 갈라지니 엄청난 그리움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어느 날, 종인과 경수 둘 다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통화를 하다가 종인이 하교를 하면 교문앞에서 보자고 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날 생각에 경수는 행복하게 웃었다. 웃음이 익숙하지 않던 그에게 행복을 알려준 김종인을 만난다.
그는 차에 시동을 걸고 도로로 나갔다. 이것보다 빨리 가면, 종인을 더 빨리 만날 수 있겠지.
어느 정도 학교에 가까워졌을때, 경수의 옆에는 자신을 향해 달리는 트럭 한 대가 있었다.
종인은 하교 후 교문으로 달려가 경수를 찾아보았다. 없다. 도경수가 없다.
그리곤 들려오는 소음에 뭔가 싶어 그쪽으로 달려갔다. 꺾인 큰 트럭과, 박살난 자동차. 그 안에 도경수가 없길 빌면서 다가갔다.
"...도경수..?"
"..."
"형..."
"..."
자신이 보고있는것이 믿기지 않는지 그를 흔들어보지만, 미동조차 없다. 경수의 머리에서 나온 피가 그의 손에 묻었다. 김종인은 울부짖으면서 그를 끌어안았다.
수술실 앞에서 종인은 한참을 허공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자신이 부르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에게 갔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신은 그들에게 한없이 잔인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경수의 몸에는 하얀 천이 덮혔고, 곧 얼굴까지 가려졌다. 종인은 힘없이 그의 가려진 얼굴을 쓰다듬었다. 슬픈 웃음을 지으면서.
"형."
"..."
"미안해."
"..."
"나 때문이야"
"..."
"전부, 다."
"..."
아무리 말을 걸어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종인은 울컥한다. 항상 제 말에 웃으며 말을 해주던 그가, 이젠 제 곁에 없다.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사랑해."
"..."
"나, 그냥 형 따라갈까."
"..."
"거긴, 봄이었으면 좋겠다."
"..."
"우리가 처음만난 날처럼, 따뜻한 봄."
우리가 처음만난 날처럼, 아직도 봄으로.
| 사담 |
하하... 갑자기 삘 받아서 쓴 건데 맘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보고 번외도 쓸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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