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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Blind)

: 허상과 현실

 

 

 

 

 

 

 

한 밤 중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다말고 거실에 나와 시계만 멀거니 쳐다봤다.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12에 멈추었을 때 나는 뛰듯 방에 들어와 휴대폰을 꺼냈다. 입으로 뱉을 땐 익숙했지만 아직 자판으로 몇 번 눌러본 적 없는 이름을 전화부에서 찾아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때 네 목소리가 어땠더라? 졸음이 가득 껴있었던가, 아니면 늘 교실에 들어설 때와 같은 한껏 신이난 목소리였던가? 아니면 한밤중의 내 전화가 달갑지 않았던 투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올해로 들어 딱 4년을 채웠으니 별로 비상하지 않은 내 머리가 기억하기엔 너무 세부적인 내용이었다.

 

 

 


01:

 

 

 


올 것 같지 않던 스무살이 왔다. 이제 술집에서 남의 얼굴을 흉내낼 필요도 없이 내 사진이 떡하니 박힌 민증을 꺼내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 것이라곤 마시는 것 말고는 모르는지 하루하루를 술로 가득 채워보냈다. 그에 반해 나는 새해가 뜨자마자 알바자리부터 구했다. 대학을 갈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모두가 공부에 매진할 때 나는 그 옆에서 책이나 읽고 잠이나 잤다. 삶의 목표라는게 없었다. 그럴만한 경제형편이었고, 그럴만한 가정사였다.

 

 

 

 

“ 갱수야, 오늘도 안올거야? ”

“ 어, 나 일하잖아. ”

 

 

 


그러니까 저녁에 알바는 뭐하러해- 제 딴엔 안들리겠지 하고 중얼댄 것 같은데 이미 내 귀에 다 들어박혔다. 니가 내 상황되봐. 울컥하고 따질 힘도 이젠 없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결국 실실 웃으면서 내 옆으로 기어들어오는 녀석은 변백현, 올해로 3년째 되는 인연이다. 남들 눈에는 절친이네, 진짜 친한 친군가보네 싶겠지만 딱히 친구라고 여긴 적은 없다. 변백현은 날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아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내가 내 멍청한 머릿속에 몇 번이고 되새긴 다짐을 깨트릴 마음은 추호도 없다.

 

 

 

 

“ 조금 쉬지, 너 학교다닐때보다 더 피곤해 보인다 야, ”

“ 학교에선 잠이라도 푹 잤었으니까. ”

“ 이야, 이거 학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숙박업체 이름인 줄 알겠다 ”

 

 

 

 

변백현은 나보다 더 멍청했다. 내가 공부머리가 떨어졌다면, 변백현은 그 외의 머리도 나빴다. 사람 대하는 것이 헤펐고 정도 마음껏 줬다. 누가 사귈만한 놈이고, 누가 멀리해야할 놈인지 구분하질 못한다. 그덕에 발은 넓지만 쓸만한 쪽으론 넓지 못했다. 아, 그래서 나랑 붙어먹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사귈만한 놈이 아니니까.

 

 

 

 

“ 오늘 끝나면 뭐하나? ”

“ 집가서 자야지. ”

“ 나랑 소주한잔 하자 ”

“ 나 술 못하는 거 알잖아? ”

“ 그럼 옆에서 곱창이나 주워먹어, 술은 내가 마실게. ”

 

 

 

 

술이 고프면, 모임에 나가면 되는거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뻔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 눈치정돈 있었다. 오늘 모임에 안나가는 건 내가 안간다고 못을 박아놓은게 가장 큰 이유겠지. 변백현은 웃겼다. 정말 날 제 단짝이라 여기는지 내가 동창들과의 모임에 빠지면 저도 빠졌다. 처음에 왜냐고 물었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또 물었더니 그제서야 물에빠진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너에게 소외감을 주고 싶지 않았어. 라며 개미만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그때 얼마나 웃겼는지. 한바탕 끅끅대며 웃어버려서, 토라진 녀석을 달래느라 애썼었다. 그후로는 묻지 않았다. 딱히 고 강아지 같은 표정이나 개미만한 목소리가 거슬려서가 아니라, 내가 그 말을 또 들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 아니다, 나도 마실게. ”

“ …어, 어? ”

“ 마신다고, 술. ”

 

 

 

 

변백현이 짐짓 놀란표정을 짓는다. 고 멍청한 머리에서 또 무슨 상상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한데 들으면 또 어이없어서 헛웃음만 나올 것 같아 듣기 싫었다. 변백현이 한참을 있다가 입을 떼려는데, 마침 손님이 들어와버려서, 도로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유라도 물으면 어떡해야하나, 싶었는데. 나이스 타이밍. 처음보는 손님께 하이파이브라도 청하고 싶었다.

 

 

 

 

 

 

*****

 

 

 

 

 

 

 

그 날은 너무 외로웠다. 평소엔 익숙했는데, 그날따라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나를 옭아매고, 눈물까지 찔끔 나게 했다. 도저히 다음 수업을 들을 상태가 아니라 보건실에 가려했는데 남는 침대가 없다며 퇴짜맞았다. 땡땡이라도 까볼까, 했는데 그랬다가 집에 연락이라도 가면. 그건 절대 있어선 안될 일이어서, 나는 힘없이 앞반으로 향했다. 수준별 수업이었다. 우리반이 A반, 앞반이 B반. 나는 당연히 성적이 낮은 B반이였고, 놈들도 B반이었다. 삼삼오오 조를 짜 모여있는 아이들 사이를 갈라 왼쪽 맨 끝 혼자 덩그러니 놓인 책상에 책을 내려놓았다. 여기선 노래도 못듣고, 잠도 못잘 것이다.

 

 

 

 

“ 와, 저 새낀 진-짜 낯짝 두껍다. ”

“ 그니까, 여기있느니 나같으면 이 시간에 땡땡이를 깐다. ”

“ 뭐 그게 안된다면 머리박고 죽는 것도 좋지, ”

 

 

 

 

나가고 싶다. 문으로 못나간다면 창문이라도 깨서 나가버리고 싶었다. 지긋지긋했다.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말로 나를 조롱하는 놈들보다, 말도 안되는 소문에 얽힌 내 신세가 더 원망스러웠다. 요동치는 몸을 간신히 짓누르며 참던 중에 선생이 들어왔다. 아이들의 조롱이 끊켰다. 숨이 트이는 것 같아 겨우 호흡을 내뱉었다. 하얗게 질렸던 얼굴에 피가 다시 돌 모양인지 열이 오르는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의자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출석을 부르던 선생이 말을 멈추었다.

 

 


“ 왜 일어났니? ”

“ 아, 원래 자리로 가려구요. ”

 

 


낯설은데, 익숙한 목소리었다. 나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가끔 교실에서 이어폰을 빼낼때면 늘 들렸던, 온종일 신이 나있던 목소리.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안섰다. 하지만 얼마안가,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었다는 걸, 굳이 눈을 굴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찾아낼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 안녕? ”

 

 

 

 

내 책상 오른쪽에 붙은 그 책상, 내 오른쪽 귀에 선명히 들어박힌 그 목소리. 나는 아직도 그를 생각할때면 그 때를 먼저 떠올린다.

 

 

 

 

 

 

 

****

 

 

 

 

 

 

눈이 번쩍 떠졌다. 그건 늘 나를 깨우는 알람 때문도 아니었고, 늦은 새벽 배려없이 닫히는 현관문의 마찰음 때문도 아니었다. 속이 메슥거리고 쓰렸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알바를 끝내고 변백현과 한잔 했었던 기억이 난다. 분명 곱창집에가서, 소주 한 병을 혼자 비워낸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가 텅 비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으나 어차피 오늘은 토요일이라 알바도 없고, 무슨 짓을 했겠나 싶어 다시 침대에 누웠다. 보나마나 멍청한 변백현은 나를 침대에 뉘이고 저가 바닥에 자는 걸 자처했겠지. 장롱 쪽을 바라본채 몸을 뉘였다가 변백현이 괜히 눈에 밟혀서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분명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마저 다 차버리고 자고있겠……… 어라?

 

 

 

 

“ ……안녕 ”

“ 뭐야, 깨있었네? ”

 

 

 

 

변백현이 내 왼편에 누워있었다. 꽤 놀랐지만 놀란티를 감추고 시덥잖은 아침인사를 건네는 변백현에게 맞는 시덥잖은 대답을 해줬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지만 별로 대답을 기대한건 아니라서 똑바로 누운 뒤 천장만 물끄러미 봤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이면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나저나 침대에서 잤네. 변백현네 집에서 잠을 잤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변백현과 나란히 잔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스럽다. 근데 그마저도 그러려니했다. 뭐 어때, 남자끼리고, 애초에 변백현 침댄데. 그렇게 생각들을 정리해 나가는데 변백현이 헛기침을 여러번 하더니 말을 꺼낸다.

 

 

 

 

“ 어, 어제일 없었던 일 취급하는거 아니지, 지금? ”

“ …무슨 일? ”

“ 어제, 말야… ”

 

 

 

 

뭐라는 거야. 기억 안나는데? 퉁명스럽게 던지고 싶은 말이지만, 무슨 짓을 했길래 저렇게 우물쭈물 거리는지 궁금해졌다. 말없이 천장만 보다가, 고개만 돌려 변백현을 쳐다보니까 지혼자 또 찔리는지 마른 침을 꿀떡, 삼키는 게 여기까지 들린다.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자 변백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처음이던 아니던,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 ”

“ ……? ”

“ 너, ……너, 남자랑 자는 거 처음 아니라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

 

 

 

 

근데, 미안한게 아니라 그냥 책임을 지고싶어. 내가 그래…. 그니까 나 그만 놀리고, 어? 어제 술김이었대도… 끝무렵에는 목소리가 좀 울먹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딴걸 지금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니까. 지금 내가 뭘 했다고? 어젯밤에, 너랑 뭘 했다고? 머리가 지끈 거렸다. 단순한 숙취때문은 아닌게 확실했다. 자연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목소리가 내 뇌와 귀를 움켜쥐고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 처음맞지? 소문따위 왜 믿어, 니가 아니라고 했는데. ’

 

 

 

 

 

그땐, 그때 너는 뭐라고 했던가? 저 말 후에, 너는 나를 책임지겠다고, 했었던가?

 

 

 

 

 

 

 

 

 

 

 

 

 

 

 

----------------------

 

 

 

안녕하세요:) 처음 올려보..는 건 아닌데

쓰던 작품이 도저히 답이 없어서

새로운 작품으로 왔습니다! 잘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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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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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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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 변백~~~~~~~~~~ 머~~~~쮠|~~~데~~~~~ 자까님 신알신 신청하구 가여❤️❤️❤️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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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
감사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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